"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따금 패악한 사람에게 쏟아내는 질타예요. 여기 하늘은 초월적 심판자, 즉 신을 가리키죠. 신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이 질타가 얼마나 의미있을지는 미지수예요. 하지만 이 말이 전혀 황당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 내면에 깃든 신의 그림자를 자극하는 말이라서 그러지 않은가 싶어요.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지만 아직 그 신의 그림자가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기에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공명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

 

 하늘[신]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중국 고대 은나라 때는 하늘에 해당하는 존재가 상제(上帝)였어요. 이 상제는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주재하는 존재였어요. 사람들은 이 존재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점을 쳤죠. 은나라의 유적지에서 나온 갑골문은 이 점사를 기록한 글씨이죠. 은 · 주 교체기에 상제는 '하늘[天]이란 존재로 바뀌어요. 아울러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주재하는 존재에서 유덕한 자에게는 행운을, 부덕한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선한 의지를 가진 인격신으로 이해되죠.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선 이런 경향이 강화됨과 동시에 정반대의 경향도 나타나요. 인격적 하늘을 배제한 자연의 이법으로 하늘을 보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죠. 한대에도 이런 두 경향이 이어지고, 위진 남북조 시대에는 후자의 경향 - 하늘을 자연의 이법으로 보는 - 이 강해지죠.

 

수 · 당대에 이르면 하늘과 인간을 관통하는 이치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는 송대로 이어져 천리(天理) 개념이 형성돼요. 송대 성리학의 종지가 '성즉리(性卽理)'인데 여기 성은 곧 하늘이에요. 따라서 성리학은 천리를 파악하고 거기에 따를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죠. 명대에 들어와선 순연한 이치라는 천리에 인간의 욕망이 더해져요. '천리인정(天理人情)'이 그것이죠. 생존욕을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긍정하는 사고는 청대에도 계승돼요. 근대에 들어와 하늘은 더이상 인간적 가치와 관계를 맺지 않는 단순히 적자생존 혹은 우승열패라는 무정(無情)한 이치로 받아들여져요. 천연(天演)이 그것이죠.

 

하늘은 자신이 주재자일 때도 선한 의지를 지닌 인격신일 때도 자연의 이법일 때도 순연한 이치일 때도 욕망을 긍정하는 이치일 때도 무정한 이치일 때도 아무런 말이 없었어요. 하늘이 어떻다고 찧고 까불은 것은 사람들이죠. 그저 자신의 내면에 깃든 신의 그림자를 시대에 따라 달리 보고 달리 표현한 것 뿐이죠.

 

사진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한문으로 쓴 거예요. '개상제애세지 이독생자사지 사범신지자 면침륜이득영생 왈당신주야소기독 즉이여이가필득구의(蓋上帝愛世至 以獨生子賜之 使凡信之者 免沈淪而得永生 曰當信主耶蘇基督 則爾與爾家必得救矣)'라고 읽어요. "상제[하나님]가 세상을 사랑함이 지극하여 독생자(獨生子, 유일하게 낳은 자식)를 내려 그를 믿는 자로 하여금 고통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길이 행복한 생을 얻도록 하였다. 말하노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너와 네 집이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풀이해요.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죠.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이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라고 되어 있어요. 영어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한글 번역이 원문에 가깝게 번역됐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한문 번역이든 한글 번역이든 영어 성경이든 이 요한복음 3장 16절은 다 이상해요.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은 예수가 니고데모라는 이에게 한 말로 돼있는데 세 기술 모두 그 말의 주체가 예수라기 보다는 기자(記者)인 것처럼 돼있거든요. 모호하게 표현된 것이죠. 경전(經典)의 기술(記述)치고는 수준이 높지 않은 기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경의 한문 번역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상제'예요. 하나님[God]을 번역한 말인데, 은나라 때의 하늘 개념을 가져와 번역한 것이 특이하죠. 일종의 격의(格義) 번역이라고 할 거예요. 격의는 외래 개념을 외래 개념 자체로 인식하기 전 기존의 전통 개념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불교 유입 초기 중국에서 '공(空)'을 도가의 '무(無)'로 이해한 것이 그 한 예이죠. 이런 격의 이해는 타 문화의 유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하나님[God]을 상제로 이해하여 번역한 것이 중국인에 의해 이뤄진게 아니라 서구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에요. 성경의 한문 번역은 선교사들에 의해 이뤄졌거든요. 이렇게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기죠: "선교사들은 과연 상제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리고 또 한가지 의문이 생기죠: "하나님을 상제로 번역한 성경을 대하며 당시 지식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선교사들이 상제의 의미를 중국인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예요. 다만 주재자라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이니 차용한 것 뿐이겠죠. 당시 지식인들은 성경을 그다지 높게 취급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성경이 번역될 당시 - 원대 이후 - 중국에서 상제는 이미 시효 지난 존재였기 때문이죠. 시효 지난 존재를 다룬 경전이 높게 취급되긴 어려웠을 거라고 보는 거죠(이상은 저의 억측이에요. 특히 후자. 자료를 찾아본 바 없거든요).

 

중국의 하늘 개념 변천사로 봤을 때 성경의 하늘[하나님]은 그리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에요. 그러나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라 하여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지금도 전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성경의 하늘을 믿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이들을 과연 우매하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효의 가치가 중시되지 않는 시대라고 하여 효를 행하는 이를 우습게 여길수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하늘이 무섭지 않는냐!"는 말이 공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 여전히 하늘[신]의 그림자가 드러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렇지 않고는 이 문화지체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사진의 낯선 한자를 몇 자 알아 볼까요?

 

는 艹(풀 초)와 盍(덮을 합)의 합자예요. 풀을 엮어 덮는다는 의미예요. 덮을 개. '대개'라는 발어사(發語詞)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거예요. 대개 개. 위 사진의 내용에서는 발어사의 의미로 사용됐죠. 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覆蓋(복개), 蓋草(개초, 이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는 貝(조개 패)와 易(바꿀 역)의 합자예요. 재화를 타인에게 준다는 의미예요. 貝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易은 음을 담당하면서(역→사)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재화를 타인에게 주면 그 재화의 소유 관계가 바뀌게 된다는 의미로요. 줄 사. 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下賜(하사), 厚賜(후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물에 잠겼다는 의미예요.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冘로 음을 나타냈어요. 잠길 침. 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浮沈 (부침), 擊沈(격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잔잔한 물결이란 의미예요.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侖으로 음을 나타냈어요. 잔물결 륜. '빠지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빠질 륜. 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淪缺(윤결, 쇠하여 없어짐), 淪埋(윤매, 파묻혀 없어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고을 이름이에요. 阝(邑의 변형, 고을 읍)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耳는 음을 담당해요(이→야). 고을이름 야. 어조사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거예요. 어조사 야. 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琅耶(낭야, 지역 이름. 琅邪로도 표기), 是耶非耶(시야비야, 옳을 가 그른 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차조기(꿀풀과의 일년생 재배초)란 뜻이에요.  艹(풀 초)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차조기 소. '깨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비로 차용된 거예요. 깰 소. 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紫蘇(자소, 차조기), 蘇生(소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금지시키다란 의미예요. 攵(칠 복)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강제 수단을 사용하여 못하게 한다는 의미지요. 求(裘의 약자, 갖옷 구)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갖옷이 몸을 보호하듯이 상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못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요. 금할 구. '구원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구원할 구. 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救援(구원), 救出(구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사진은 예산에 있는 한국서예비림박물관에서 찍었어요. 야외에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글씨들이 세워져 있더군요. 중국의 비림(碑林)을 모방해 조성했다는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그런지 성근 티가 역력했어요. 귀부인의 화장을 흉내 낸 촌 아낙네의 어설픈 화장 같다고나 할까요? 세월이 지나면 점점 더 나아지겠죠?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우리만의 개성있는 비림을 조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담 둘.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좀 언짢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성경 구절에 대한 의문, 성경과 기독 신앙에 대한 저의 평가(?)는 글의 흐름상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뿐 이에요. 어떤 의도를 갖고 내린 평가가 아니란 점을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하늘[신]'에 대한 이해 내용도 저의 사견이 아니라 중국 철학사에서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임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요컨대, 이 글을 가지고 저에게 옳고 그름[是非]을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潭.

 

 주변의 - 제가 사는 지역의 - 사찰이나 음식점에서 심심찮게 보는 낙관이에요. 담(潭)은 읽을 수 있겠는데, ○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원'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긴 한데 확신할 수가 없더군요. 아이들이라면 장난삼아 '원(圓, 둥글 원)'자를 동그라미로  표기할 수도 있겠지만 성인 서예가라면 이렇게 할리 만무하니 필시 다른 의미를 동그라미로 표기했을 걸로 생각들어 선뜻 '원'으로 읽을 수 없었던 거예요. "에이, 고약한 서예가네. 왜 이렇게 읽기 불편하게 표기한거야. 글씨는 왜 또 이렇게 많이 까발리고." 욕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글씨는 의외로 맑고 군더더기가 없는 거예요. 생동감도 느껴지구요. "짜식, 글씨는 좀 쓰는 것 같네." 아니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지난 주말 지인과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 갔다가 '선(禪) 박물관'에 들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 박물관 안에 이 아니꼬운 자의 글씨가 가득한 거예요. 이 아니꼬운 자는 수덕사 3대 방장을 지낸 원담(圓潭, 1926-2008) 스님이더군요. 예의 맑고 군더더기 없으며 기운 생동하는 글씨를 대하니 덩달아 마음도 정화되며 기운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은 '원'으로 읽는게 맞는 거였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불필요한 생각을 일으켜 의심을 했던 셈이에요. '원(圓)'을 '○'으로 표기한 것은 선승다운 해학적 표기이자 저같이 의심많은 중생들에게 꺠우침을 주는 법문같은 표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님, 고맙습니다."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스님의 글씨가 주변에 흔한 것은 제가 사는 지역이 예산에 가까운 탓도 있고, 글씨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별 망설임없이 써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일종의 자비와 포교 수단으로요. 많이 까발린게 아니고 널리 베풀었던 셈이에요. "스님, 훌륭하십니다." 상찬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진은 원담 스님의 글씨예요(인용 출처: http://www.ggbn.co.kr/news/articlePrint.html?idxno=9241). 2005년 하안거 해제법어라는 군요. 앞서 말한대로 군더더기가 없고 맑으며 기운이 생동하는 느낌이 들어요. '대지산하시아가 갱어하처멱향토(大地山河是我家 更於何處覓鄕土)'라고 읽어요. "온 대지와 산하가 내 집인데 달리 어디서 고향을 찾는가!"라는 뜻이에요. 자타불이이(自他不二) ·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표현한 말인 듯 싶어요. 이 경지는 곧 깨달음의 경지겠지요. 진보와 보수, 남과 북, 부자와 빈자, 영남과 호남, 기성 세대와 신 세대 등 온갖 갈등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가르침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싶어요.

 

낯선 두어 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攴(칠 복)과 丙(밝을 병)의 합자예요. 고치다란 의미예요. 고칠 적에는 강한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攴으로 의미를 삼았어요. 丙은 음을 담당하면서(병→경)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고치는 것은 밝고 좋은 결과를 지향한다는 의미로요. 고칠 경. '다시'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란 의미로요. 다시 갱. 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甲午更張(갑오경장), 更新(갱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爪(손톱 조)와 見(볼 견)의 합자예요. 정체를 드러내기[見] 위해 파본다[爪]란 의미예요. 의미를 정리하여 '구하다'로 사용해요. 구할 멱. 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覓索(멱색, 찾음), 覓得(멱득, 구해 얻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나라 안의 특정 구역이란 의미예요. 고을의 의미를 갖는 좌 우의 글자가 뜻을 담당하고(幺와 阝는 모두 邑(고을 읍)의 변형이에요), 가운데 글자는 음을 담당해요. 고향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향 향. 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鄕(귀향), 故鄕(고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이란 말이 있죠. 요즘은 대부분의 문서가 워드로 작성되기에 손글씨 보기가 쉽지 않죠. 이제는 서여기인이란 말은 시효가 다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신어서판(身言書判)이란 말도 그렇구요. 그런데 역으로 시효가 다했기에 손글씨는 더 값어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치 시효 지난 도자기가 값나가는 골동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말이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심이병욱 2017-10-1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득도한 스님 말씀, 좋았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같아요."

 

팔레스타인에 사는 살마는 레몬 농장을 운영하는 과부예요.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레몬 농장은 살마의 삶 그 자체예요. 생계 유지는 물론, 홀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레몬 나무는 부모이자 남편이고 자식이며 벗이기 때문이죠. 이런 살마의 레몬 농장에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웃으로 오면서 문제가 발생해요. 살마의 레몬 농장이 국방장관 집과 경계 지점에 있기 때문에, 보안상의 이유로, 이스라엘 정보부에서 농장의 나무를 베어버리려 했기 때문이죠. 보상금을 준다고는 하지만 살마에게 레몬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어요. 살마는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변호사를 찾아 레몬 나무를 지키기 위해 법정 투쟁을 시작해요.

 

'레몬 트리'란 영화 내용 일부예요. 사진의 한자를 보노라니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위 한자는 해(海)라고 읽고(다 아시죠? ^ ^), 아래 한자는 영(柠)이라고 읽어요. 해는 바다란 뜻이고, 영은 레몬이란 뜻이에요. 레몬을 한자어로 '영몽(檸檬)'이라고 쓰는데 '영'하나로 사용하기도 해요. 檸(영)은 번체자이고, 柠(영)운 간체자예요. 두 한자를 접하니 사해(死海)와 레몬이 생각나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그린 '레몬 트리'란 영화로 확장되더군요. 레몬 트리는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인데, 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레몬 나무 소송으로 빗대어 그린 영화로 봤어요.

 

1948년 뜬금없이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팔레스타인에 세워지면서 중동의 갈등은 시작됐죠. 물론 여기에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탈취했던 영국의 지지와 유태인들의 시온주의 그리고 1940년 대 초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대량 이주한 유태인들의 정착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죠. 결정적인 것은 국제연합의 팔레스타인 분리 결정이었고, 여기에는 미국의 강력한 입김이 작용했죠. 영국이나 미국이 이스라엘 건국의 후견인 노릇을 한 것은 이들 나라가 2차 대전시 유태인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죠.

 

오랜 세월 살아온 자신의 터전을 졸지에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에 적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죠. 그러나 이스라엘을 제거하기 위해 벌인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은 패전했고, 이스라엘은 외려 영토를 더 확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죠. 이제 아랍인 특히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을 모색하고 있어요. 분할된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들의 국가를 정식으로 수립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죠. 문제는 이스라엘의 태도예요. 경계 지역에 분리 장벽을 세우고 철저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과 소통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죠. 국제연합이 결정한 이스라엘 점령 지역(가자 지구, 웨스트뱅크, 골란고원)의 반환도 50년 째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죠.

 

평화롭던 살마의 레몬농장에 이스라엘 국방 장관이 이사오고 갈등이 생기는 상황은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갈등이 발생한 상황과 흡사해요. 살마가 법정 투쟁을 벌이는 것은 중동의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벌인 중동전쟁과 흡사하고요. 살마는 법정 투쟁을 통해 이런 판결을 받아요: "경계 지역에 장벽을 세우고 레몬 농장의 나무도 일부 벨 것." 이는 이스라엘과 공존하려는 팔레스타인들의 바램을 저버리고 700Km에 달하는 분리 장벽을 세우고 적대 관계를 지속하려는 이스라엘의 현 모습과 흡사해요.

 

바다는 수용의 미덕을 상징하고 레몬은 변화와 개혁의 미덕을 상징하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 두 덕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계인 것 같아요. 물론 이 덕목이 이스라엘에게 더 필요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죠.

 

만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柠은 레몬이란 뜻이에요. 木(나무 목)으로 뜻을 표현했고, 宁(편안할 녕)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영몽 영. '레몬 영'이라고 읽기도 해요. 柠이 들어간 예는 柠檬(영몽, 레몬) 외에는 들만한 예가 없네요.

 

여담. 사진은 프랑스에 가 있는 딸 아이가 찍어 보냈어요. 치약갑이라고 하더군요. 왼쪽의 영문은 회사명이고, 오른쪽의 영문은 천연 추출물이란 의미예요. 아시아 마트에서 샀다고 하던데, 아시아인들을 겨냥해서 한자 표기를 추가한 듯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남한산성」보셨는지요? 병자년(1636) 청군의 침략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선 조정의 대응을 그린 영화지요. 원작자 김훈의 맑고 굳세면서도 허무 냄새 짙은 문체처럼 영화 역시 그런 느낌을 주더군요.

 

 영화 초반에 보면 김상헌이 홀로 어부의 도움을 받아 언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와요(강을 건넌 뒤 어부를 죽이죠). 남한산성에 뒤늦게 합류한 것이죠. 조정 대신이 일거에 떠나지 못하고 뒤늦게 합류한 것을 보면 당시 인조의 피난 행렬이 무척 황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김상헌처럼 뒤늦게 남한산성에 합류하려 했던 대신들 중에 예조판서였던 조익(趙翼, 1579 - 1655)이 있어요. 하지만 조익은 김상헌처럼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신했어요. 청군의 경비가 너무 삼엄해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죠.

 

 사진은 조익의 사적비예요. '포저 조익 선생 사적비(浦渚 趙翼 先生 事蹟碑)'라고 읽어요. 예산군 신창면에 있는데, 추석 연휴에 우연히 방문했다가 찍었어요. 포저는 조익의 호예요.

 

 비문은 조순 전 서울시장이 썼는데, 사적비가 으레 그렇듯, 상찬 일색이더군요: "폐지의 위기에 직면한 대동법을 존속시키었"고 "청국의 굴기에 즈음하여서는 국방강화의 필요성을 예견하여 방비책을 주청하였"으며 "과거제도에 관하여도 강경제도(講經制度)의 폐단을 시정하고… 바꾸기를 건의하였"다. "불편부당의 정신을 견지하"여 "이회제 이퇴계 양현을 비방하는 일부의 논의를 적극 반박하였고" "이율곡 성우계 양현의 문묘배향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조정이 소연하였을 때… 양현의 배향 타당성을 적극 주청하다가 끝내 관직을 사임하였다." "의식주의 사치를 멀리하였고" "또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장유 최명길 이시백 선생 제공과는 소시부터 친한 사이였고 평소 김청음[김상헌] 선생을 경애하였지만 공론에 임하여는 사적인 친소에 관계 없이 공정한 견지를 떠나지 않았"다. "도학자 정치가로서는 아주 드물게 보는 섬세한 예술적 감각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있었다"

 

조익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어요. 바로 인조의 어가에 합류하지 못한 점이죠. 조익은 인조의 환도후 어가에 합류하지 못한 일로 인해 지탄을 받았어요. 이에 대해 사적비는 "병자호란등  내우외환의 혼란 속에서 선생의 관력도 여러번 좌절을 겼었"다라고만 적고 있어요.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내용을 두루뭉실하게 적고 있는 것이죠. 조순 시장은 조익의 족손(族孫)이에요. 위와 같은 기술은 족손으로서 불가피한 기술이었을거란 생각도 들지만 사적비가 타인들에게 그 인물에 대한 감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은 아쉬운 기술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氵(물 수)와 甫(남자미칭 보)의 합자예요. 물가에 인접한 땅이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보→포)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남자의 미칭(美稱)처럼 풍경이 수려한 곳이 해안에 인접한 땅이란 의미로요. 물가 포. 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浦口(포구), 浦項(포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氵(물 수)와 者(黍의 약자, 기장 서)의 합자예요.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者는 음을 담당하면서(서→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기장의 많은 낱알처럼 많은 물로 둘러싸인 섬이란 의미로요. 섬 저. '물가'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해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지요. 물가 저. 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渚岸(저안, 물가), 渚鷗(저구, 물가에 있는 갈매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羽(깃 우)와 異(다를 이)의 합자예요. 날개라는 뜻이에요. 羽로 뜻을 나타냈어요. 異는 음을 담당하면서(이→익)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한 몸에서 좌우 양쪽으로 다르게 펼쳐지는 것이 날개란 의미로요. 날개 익. 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左翼(좌익), 翼室(익실, 좌우쪽에 있는 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足(발 족)과 責(맡을 책)의 합자예요. 발자취란 뜻이에요. 足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責을 음을 담당해요(책→적). 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史蹟(사적), 奇蹟(기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石(돌 석)과 卑(낮을 비)의 합자예요. 다음 세 가지 주 용도로 사용되던 키작은 돌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어요: 제사에 쓰일 짐승을 묶어 놓음. 시간을 알기 위해 세워 놓음. 하관(下棺)시 보조 설치물. 돌기둥 비. 후에 기릴만한 인물이나 돌아간 이의 행적을 적는 돌이란 의미로 전용(專用) 됐어요. 전용 의미는 본뜻 세 번째 뜻(하관시 보조 설치물)에서 연역됐다고 볼 수 있어요. 비석 비. 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墓碑(묘비), 碑文(비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조익은 청군의 경비가 삼엄하기 전 인조의 어가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강화도로 피신시키려던 아버지를 도중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시기를 놓쳤어요. 아버지를 찾아 강화도에 피신시킨 뒤 남한산성에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던거죠.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켜 청군을 격파하려 했지만 이도 실패했어요. 군사를 이끌던 장수가 전사했기 때문에 군대를 해산시킬수 밖에 없었거든요. 조익은 강화도로 피신하여 눈물의 나날을 보냈어요. 환도 뒤, 앞서 말한대로, 지탄을 받았지만 효행(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음)과 노력(근왕병을 일으킴)을 인정받아 지탄에서 벗어 낫지요. 여기에는 인조의 지지도 한 몫을 했던 것으로 보여요. 송시열이 지은 조익 비문에 보면 인조가 조익을 옹호하여 "그는 독서인(讀書人)일 뿐이지 않은가!"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조익의 한계와 한계 내에서 애쓴 노력을 인정해줬던 것이지요.

 

여담 둘. 조익은 이따금 양명학자로 취급되기도 해요. 「대학곤득(大學困得)」,「용학곤득(庸學困得)」등을 통해 주자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 점과 개혁적인 정책들을 많이 제시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죠. 하지만 이는 양명학을 혹호(酷好)하는 연구자들의 지나친 견해라는게 중론이에요. 조익이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고 경학에 있어서도 주견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양명학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확실히 침소봉대의 견해인 듯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례없는 추석 황금 연휴가 얼마 안남았네요. 혹 추석 연휴에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어쩌면 해외 여행을 계획하신 분 중에 사진의 장소를 가실 계획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진은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산(武夷山) 천유봉(天游峰) 표지석이에요. 천유봉시무이제일승지 위어육곡계북 위애용취 능운마소 구곡계산전세진수안저(天游峰是武夷第一勝地 位於六曲溪北 危崖聳翠 凌雲摩霄 九曲溪山全勢盡收眼底)라고 읽어요. 이렇게 풀이해요: "천유봉은 무이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중 육곡(六曲)의 시내 북쪽에 위치한다. 비취 빛을 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 위에 서면 구름을 뚫고 하늘을 만질듯 하다. 무이구곡의 전 시내와 산의 형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천유봉이 있는 무이산, 중에서도 무이구곡은 옛 선비들이면 한 번 쯤 가보고 싶어했던 장소예요. 그들이 흠모했던 성리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이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학문을 탐구했거든요. 그래서 그럴까요? 무이산은 이런 평가까지 받고 있어요: "동주는 공자를 낳았고, 남송은 주희를 낳았다. 중국의 고문화는 태산과 무이산에서 나왔다(東周出孔子 南宋有朱熹 中國古文化 泰山與武夷)."

 

 무이구곡은 주희가 이름붙인 경승지예요. 일곡은 승진동(升眞洞), 이곡은 옥녀봉(玉女峰) , 삼곡은 선조대(仙釣臺), 사곡은 금계동(金鷄洞), 오곡은 무이정사(武夷精舍), 육곡은 선장봉(仙掌峰), 칠곡은 석당사(石唐寺), 팔곡은 고루암(鼓樓巖), 구곡은 신촌시(新村市)예요. 주희는 무이산 계곡 중 9.5Km에 달하는 구간에 이 구곡을 설정하고 이곳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지었어요. 이 무이구곡가는 단순 서경시로 보기도 하지만, 도에 들어서는 단계를 풍경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일곡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 맑은 내에 비치네.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 한 번 끊긴 뒤 무소식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만학천봉 안개속에 잠겼네.    <일곡(一曲)>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 경치 끝날 쯤 눈 훤히 열리니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평천의 우로젖은 상마가 보여라.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어부여, 무엇하러 도원경 찾으오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이 바로 별천지인데.       <구곡(九曲)>

 

일곡과 구곡의 내용을 읽어 봤는데 확실히 입도차제(入道次第)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보여요. 특히 일곡 시의 3, 4구는 유학의 도가 끊긴 상황을, 구곡 시는 유도 체득 이후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해요. 어떤 해석이 더 적절할까요? 주희는 시 짓기를 매우 꺼려했다고 해요. 성정을 도야하는데 별반 도움이 안된다고 여겨서요. 그런 그가 이런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시를 지은 것을 보면 비록 시 짓기를 꺼렸지만 시재는 풍부했던 듯 해요.

 

무이구곡가의 영향으로 과거엔 'ㅇㅇ구곡'이란 명칭과 'ㅇㅇ구곡가'란 아류 작품이 많이 지어졌어요. 대표적인 것이 송시열이 명명한 '화양구곡(華陽九曲)'과 이이가 지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지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산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 유산과 문화 유산이 함께 지정된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한창 성수기인 5월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1주일에 7~8천을 헤아린다고 해요. 대나무를 베어 만든 뗏목을 타고 무이구곡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는군요. 그런데 관광 코스는 구곡에서 일곡으로 진행된다고 해요. 이게 순류라는군요. 일곡에서 구곡으로 진행하는 것은 역류라고 해요. 주희는 역류하며 무이산의 경치를 감상했던 것이지요. 시대의 조류를 거스른 학문을 했던 - 성리학은 주희 생전에 불온한 학문으로 지목됐어요 - 그답게 경치 감상도 역류를 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㫃(깃발 언)과 汓(떠갈 수)의 합자예요. 깃발이 펄럭인다란 뜻이에요. 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汓는 음을 담당하면서(수→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가 물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떠가듯 깃발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린다는 의미로요. '놀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깃발이 펄럭이듯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나돌아 다닌다란 뜻으로요. 놀 유. 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游覽(유람), 游戱(유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위태롭다는 의미예요.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언덕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해요. 위태로울 위. 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危險(위험), 危機(위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從(좇을 종)의 합자예요. 귀머거리란 뜻이에요. 耳로 뜻을 표현했어요. 從은 음을 담당하면서(종→용)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소리를 잘 못듣기 때문에 타인의 얼굴과 몸짓을 따라 상대의 의사를 파악하는 이가 귀머거리란 의미로요. '솟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귀머거리는 잘 못듣기 때문에 늘 귀를 쫑긋 세운다는 의미로요. 솟을 용. 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聳起(용기, 우뚝 일어남), 聳耳(용이, 귀를 쫑긋거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羽(깃 우)와 卒(하인 졸)의 합자예요. 암녹청색의 새[물총새]란 뜻이에요. 羽로 뜻을 표현했어요. 卒은 음을 담당하면서(졸→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하인(노비)들에겐 그들의 신분을 구분짓기 위해 특별한 색의 옷을 입혔는데 이처럼 물총새의 깃털 빛깔도 다른 새의 깃털 빛깔에 비해 특별하다란 의미로요. 물총새 취. 비취색 취. 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翡翠(비취), 翠陰(취음, 녹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冫(얼음 빙)과 夌(언덕 릉)의 합자예요. 얼음의 돌출 부분이란 뜻이에요. 冫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夌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얼음이 언덕처럼 돌출됐다란 의미로요. 얼음 릉. 범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돌출된 얼음처럼 상대를 넘어선다는 의미로요. 범할 릉. 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凌駕(능가), 凌蔑(능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手(손 수)와 麻(삼 마)의 합자예요. 양 손으로 비빈다는 뜻이에요. 手로 뜻을 표현했어요. 麻는 음을 담당해요. 비빌 마. 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摩擦(마찰) 撫摩(무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攵(칠 복)과 糾(얽을 규) 약자의 합자예요. 죄수를 쫓아가 붙잡는다는 뜻이에요. '거두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거둘 수. 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收穫(수확), 收入(수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广(집 엄)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한 곳에 정착하다란 의미예요. 广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氐은 본래 땅 밑으로 곧게 뻗은 뿌리를 그린 거예요. 그처럼 한 곳에 뿌리를 박고 머무른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그칠 저. '밑'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밑 저. 底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底邊(저변), 底層(저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무이산의 무이는 신선 이름이에요. 무이구곡가 일곡에 등장하는 홍교[무지개 다리]는 그가 다른 신선들을 초대하기 위해 놓은 다리예요. 이처럼 무이산은 본래 도교와 관련깊은 곳인데 주희가 거처한 이후론 유교의 영향권에 들게 됐어요. 주희의 영향력이 어떠했던가를 알수있지요.

 

여담 둘.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정사 앞에는 주희의 동상이 있더군요. 마치 도산서원에 퇴계의 동상을 세워놓은 것과 다를바 없는 격인데, 왠지 품격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무이정사나 도산서원에선 그저 텅 빈 공간을 거닐며 주희와 이황의 정신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 제 맛일듯 싶어요. 동상이나 시설물은 되려 이곳 관광의 맛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싶어요. 주희의 동상은 철거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더군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심이병욱 2017-10-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글에는 늘 정성과 박식함이 담겨있습니다!

찔레꽃 2017-10-13 11:32   좋아요 0 | URL
이렇게 상찬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무심이병욱 2017-10-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저는 한글전용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운명임을 깨달은 겁니다. 한자를 배척하는 순간부터 우리 문화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국한문혼용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찔레꽃 2017-10-19 08:50   좋아요 0 | URL
한글전용을 하되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은데 이는 이상인 것 같습니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며 한자 문맹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나 싶어요. 국한문혼용이 중용적인 대안인데, 현실에서 지지를 받기란 너무 힘든 대안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저 안타깝게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어문 현실인 것 같아요.

김병문 2017-11-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고전 한문과 일본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국한문 혼용은 되려 시대에 역행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본어 중국어로 스마트폰, 컴퓨터 자판 치는게 얼마나 비효율적이던지... 저는 차라리 교육은 수학 과학을 더 강화하고 한문은 미국에서 라틴어와 고대영어를 AP라하여 인문계열학과 진학할 학생 혹은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집중 이수시키듯이 미국의 방식으로 나가는게 낫다고 봅니다.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소위 STEM을 전공 할 학생들은 라틴어 혹은 한문을 갖고 씨름하기보다는 수학, 과학, 공학을 더 배우는게 낫다고 생각하구요. 다만 인문계열 진학할 학생들은 지금보다 한문 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보고 있어서 인문계열 전공할 고교생들에 한해 한문을 필수 AP로 지정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정부 교육정책도 이쪽으로 잡고 있지만 한문은 찬밥신세다보니...

찔레꽃 2018-02-08 12:33   좋아요 0 | URL
폭넓은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한자와 한문은, 아시겠지만, 혼용되어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지요.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이나 자연 계열과 상관없이, 한자 교육이 아닌가 싶어요. 일상어나 학문 용어에 사용되는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이기 때문이지요.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혼용이냐는 그 다움 문제인듯 싶어요. 이치상으로는 국한문 혼용이 맞지 않나 싶어요. 배운 한자를 일상에서 경험해야 잊지 않고 활용이 되는데 그럴라면 국한문 혼용이 바람직한 표기 방법이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컴퓨터 입력이 대세인 상황에서 국한문 병기는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죠. 한글전용 표기는 어쩔수없는(?) 대세인 듯 싶어요. 한문 교육은 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추진하는게 좋은 방향인 듯 해요. 인문학에서 고전에 대한 소양을 빼면 남는게 없으니까요. 우리의 경우 그 고전은 한문 고전이 대다수를 차지하니 인문계열 학생들이 한문 소양을 갖춰야 할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