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국어 시간에 배운 시조예요.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의 회고시(懷古詩)로 흔히 세상사와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정작 이 시조를 배울 당시는 이 시조의 주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에 세상사와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지요. 학교를 졸업한 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사 이 시조의 주제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렴풋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시조의 주인공처럼 한 시대 역사의 틀을 짜거나 권력의 못을 박아본 적이 없기에 이 시조의 작자가 느끼는 무상함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사진은 길재 선생의 '한거(閑居)'라는 시예요. 위 시조와 관련하여 읽어보면 내용 이해가 한결 더 쉬울 것 같아요.

 

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시냇가 초가집 홀로 한가롭나니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달 밝고 바람 맑으니 흥 넘쳐라.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불래산조어   외갓네 오지 않고 새 소리만 조잘조잘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대 울타리 아래로 평상 옮기고 누워서 책을 보다.

 

하늘에 달이 휘영청 밝고 바람은 서늘해요. 모르긴 해도 시냇가 옆에 지은 초가이니 시냇물 소리도 은은히 들려오겠지요. 외갓 사람 오지 않은 조용한 곳인데다 한 밤중이라 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요. 더없이 고적한 공간에 있지만 시인은 외롭지 않아요. 외려 흥이 나요. 왠지 모를 충만감이 밀려오기 때문이에요. 하여 자신도 모르게 누옥(陋屋)을 나와 대 숲 아래 평상을 옮겨 놓고 누워 책을 봐요. 고적하지만 충만함이 가득한 공간에 자신도 동참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시에서 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어요. 바로 마지막 구절이에요. 내용 전개상 무리가 없는 듯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좀 문제가 있어요. 지금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달빛 아래 책을 본다는 것일까요? 옛날 도서의 글씨가 아무리 크다 해도 달빛 아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한 일이지요. 비록 시적으로는 그럴듯한 행위일런지 모르지만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길재 선생은 실제 책을 본 것이 아니다. 다만 시적 표현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시적 표현을 위해 등장시킨 이 부분은 선생 자신도 모르게 선생의 마음자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책은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문명의 산물이다책을 본다는 것은 아직 완전한 한거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이 시를 선생의 한거와 유유자적함을 읊은 것으로 보는데, 이는 피상적 분석이 아닐까 싶어요.

 

길재 선생은 한 때 역사의 틀을 짜고 권력의 못을 박는 위치에 있었어요. 그러나 새 정권의 탄생과 함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권력의 뒷방으로 물러났어요. 그렇게 물러난 한거란 사실 그리 흔쾌한 한거가 아니지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 길재 선생의 한거는 어쩔 수 없는 체념에서 택한 한거라는 생각이에요. ‘오백년...’의 시조에서 과거의 영화에 대한 그리움의 자취가 어른거리듯 이 시에서도 어쩔 수 없는 체념에서 택한 한거에서 오는 세상에 대한 미련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누울 와)(물건 품)의 합자예요. 높은 곳에서 몸을 구부려[] 아래 있는 대상을 살펴 본다는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임하다'는 본뜻의 일부를 사용한 거예요. 높은 곳에 위하하여 아래를 바라볼 자세를 취했다란 의미로요. 임할 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臨時(임시), 降臨(강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먹을 식)(나 여)의 합자예요. 는 음을 담당해요. 풍족하게 먹어 배가 부르다는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남다'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배가 부르기에 더 먹을 수 없어 남겼다란 의미로요. 남을 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餘談(여담), 餘裕(여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벼 화)(많을 다)의 합자예요. 벼 모를 옮겨 심는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다이)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소출을 늘리기 위해 이앙을 한다는 의미로요. 옮길 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移徙(이사), 移秧(이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흙 토)(까마귀 오)의 합자예요. 둑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村塢(촌오, 촌락), 塢壁(오벽, 작은 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사람 인)(신하 신)의 합자예요. 엎드려 쉰다는 의미예요. 신하는 보통 군주 앞에서 몸을 굽힌 자세를 취하기에 을 합하여 의미를 표현했어요. 눕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여기에도 쉬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지요. 누울 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臥佛(와불), 臥薪嘗膽(와신상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길재 선생의 시를 너무 혹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시를 100번 가량 읽었는데도 일반적으로 이 시에 대해 언급하는 한거의 운치가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 하여 그 이유를 따져보다 위와 같은 평을 하게 됐어요. 시 한수를 가지고 길제 선생이 한거의 운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좀 무리가 있긴 해요. 그러나 적어도 이 작품을 가지고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한거의 운치가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적어도 제게는요. 사진은 예산에 있는 한국 서예 비림 박물관에서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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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11-28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 개인적인 의견을 혹평이라 생각하지도 않지만서도,
무릇 평이란걸 하려면 적어도 백번은 읽어야 한다는 의미처럼 생각되어서 숙연해집니다.
백번은 커녕, 날림으로 읽어내고 감정을 분출해내는 저를 반성하게도 되고요.

좋고 귀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꾸벅~(__)

찔레꽃 2017-11-29 08:36   좋아요 2 | URL
겸손이 지나치셔요~ ^ ^ 좋게 말씀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양철나무꾼 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더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소 싱거운(?) 생각을 해봤습니다. ^ ^
 

'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동양화 기법이 있어요. 달을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구름에 가탁해 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달 주변의 구름을 어둡게 표현하여 달이 드러나게 하는 거죠.

 

 공자의 핵심 사상은 '인(仁)'인데,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죠. 묻는 이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답변했을 뿐 더러 그 조차 개념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이죠. 일례로 '인'을 묻는 안연에게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해요. 자신의 올바르지 못한 욕구를 극복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인'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그 '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아요. 마치 저 홍운탁월의 기법처럼 그저 무엇이 제거되어 달성된 그 지점이 '인'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사진은 '단진범정 별무성해(但盡凡情 別無聖解)'라고 읽어요. 원래는 이 구절 앞에 수행지요(修行之要)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됐어요. 이 말까지 넣어 풀이하면 '수행의 알맹이는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 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라고 풀이해요(법정 스님 번역을 빌었어요).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말이에요. 여기서도 수행의 알맹이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아요. 이 역시 홍운탁월의 기법처럼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하면 그것이 수행의 알맹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런 표현은 언어의 한계를 인식한데서 비롯된 것 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관계'에 우선한 철학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모든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실상을 정의할 때 이런 정의 방식을 택한 것 아닌가 싶은 거죠. 사랑한다의 반대는 미워하다이고 미워하다의 반대는 사랑한다이죠.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을 그 자체로 '무엇무엇이 사랑한다이다'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미워함이 없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다'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거예요. 미워한다도 마찬가지겠죠. 이런 정의가 가능한 것은 둘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죠. 종교와 철학에서 중시하는 관념이 선과 악인데 동양의 종교과 철학에서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죠. 이는 선과 악이 상관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악의 이면이 선이고 선의 이면이 악이란 상관 관념하에서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낯선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人(사람 인)과 旦(아침 단)의 합자예요. 웃통을 벗는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旦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아침이 되어 동이 트면 사물의 형체가 명확히 드러나듯 웃통을 벗으면 그 같이 몸이 드러난다는 의미로요. 웃통벗을 단. 지금은 '다만'이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지금은 웃통을 벗는 다는 의미를 袒으로 표기해요. 다만 단. 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但只(단지), 但書(단서, 본문 다음에 그에 대한 어떤 조건이나 예외 따위를 나타내는 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皿(그릇 명)과 盡(燼의 약자, 탄나머지 신)의 합자예요. 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듯이 그릇 속의 음식물이 남김없이 다 비워졌다란 의미예요. 다할 진. 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盡力(진력),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乃(이에 내)와 一(한 일)의 합자예요. 첫 시작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해요. 乃는 뜻을 연결지어주는 말이고, 一은 처음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무릇 범. '평범하다'란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평범할 범. 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平凡(평범), 凡例(범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冎(뼈발라낼 과)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칼로 뼈에서 살을 발라내듯이 분해한다란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다르다'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분해해서 구별했다란 의미로요. 다를 별. 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區別(구별), 別稱(별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呈(드러낼 정)의 합자예요. 귀로 소리를 듣고 실정을 이해하듯 온갖 사물의 실정에 통달했다란 뜻이에요. 그러한 경지를 '성스럽다'고 하지요. 성스러울 성. 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聖賢(성현), 聖經(성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角(뿔 각)과 刀(칼 도)와 牛(소 우)의 합자예요. 칼을 가지고 소의 머리에서 뿔을 해체한다는 의미예요. 풀 해. 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解剖(해부), 解決(해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사진에 나온 글씨가 좀 그렇죠? ^ ^ 아는 분이 스마트 폰에서 제 폴더 폰으로 보냈는데 이것을 이메일로 옮겨 붙이다 보니 사진이 이렇게 됐어요. 그냥 옮겨 붙이면 화질은 좀 괜찮은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확대하기를 택했더니 화질이 형편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자꾸 쳐다보니 나름대로 괜찮더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하하.

 

여담 둘. 이 사진의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기 위해 법정 스님의 『선가귀감』번역본을 구입했어요. 난해한 구절에 스님의 주석이 붙어있는데 단순한 글자 풀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 불교의 개탄스런 현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어 흥미롭더군요. 아울러 스님의 대표 수필집으로 평가되는 『무소유』의 내용 원형도 이 주석에서 살펴볼 수 있었어요. 1,200원(원가) 짜리를 15,000원(판매가)에 샀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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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배 씨 칼럼도 내가 손봤지..."

 

 오래 전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분이 한 말이에요. 자신이 모 신문의 편집실장을 하고 있었을 때 당시 명칼럼니스트였던 김중배 씨의 칼럼을 받아 과감히 양을 줄이고 내용도 일부 수정했다고 무용담처럼 말하더군요. 일견 자신의 감식안이랄까 그런 것을 자랑하는 것 처럼 들렸지만 당시 김중배 씨가 누구고 그 분의 글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는 제게 그 분의 자랑은 그다지 실감나게 와닿지 않았어요.

 

 후에 김중배 씨와 그의 칼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게 되고선 그의 그런 행동이 자랑할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명(文名)이 있는 사람의 글을 손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식안 이랄까 그런 것이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니까요. 더불어 대가의 글도 항상 훌륭한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겠지요.

 

 사진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음주(飮酒)'란 시예요.

 

 客路春風發興狂   객로춘풍발흥광     나그네 길 봄바람 만나니 미친 흥 절로 난다

 每逢佳處卽傾觴   매봉가처즉경상     아름다운 곳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네.

 還家莫愧黃金盡   환가막괴황금진     집에 돌아와 돈을 다 썼다고 부끄러워 말자

 剩得新詩滿錦囊   잉득신시만금낭     금낭(錦囊)에 한 가득 신시(新詩)를 얻었거니.

 

 시인의 호쾌방탕한 면모를 보여주는 시예요. 그런데, 우리 말 번역에서는 느끼기 어렵지만 원문으로 이 시를 읽어보면 왠지 느슨한 느낌이 들어요. 미친 흥이 날 정도면 탄력있게 느껴져야 하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5언으로 해도 될 것을 7언으로 늘리면서 불필요한 언사를 넣었기 때문이에요. 매 구의 첫 2자는 군더더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매 구의 첫 2자를 빼면 탄력이 살아나고 여운도 풍부해져요.

 

春風發興狂  춘풍발흥광     봄 바람에 미친 흥 절로 나니

佳處卽傾觴  가처즉경상     아름다운 곳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네.

莫愧黃金盡  막괴황금진     노잣돈 다썼다 부끄러워 말자

新詩滿錦囊  신시만금낭     금낭에 신시가 가득하니.

 

우리 말 번역으론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이 번역을 앞 번역과 대조해 보면 위에 한 말이 과시 그릇되지 않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그렇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 ^ 원작자 포은 선생께서는 뭐라고 하실런지…).

 

 

낯선 한자를 몇 자 살펴 볼까요?

 

은 同(한가지 동)과 舁(마주들 여)의 합자예요. 한 마음으로 일시에 들어올린다는 뜻이에요. 일(어날) 흥. 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興起(흥기), 興趣(흥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미친 개라는 뜻이에요. 왼 쪽의 犭(犬의 변형, 개 견)이 뜻을 담당하고, 오른 쪽은 음을 담당해요(왕광). 지금은 '개'라는 의미는 떼버리고 '미치다'란 뜻으로 사용하죠. 미칠 광. 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發狂(발광), 狂氣(광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頃(기울 경)의 합자예요. 머리가 반듯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란 뜻이에요. 기울 경. 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傾斜(경사), 傾國(경국, 나라를 위태롭게 하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술잔이란 뜻이에요. 角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양→상). 술잔 상. 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濫觴(남상, 시초), 觴飮(상음,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心의 변형, 마음 심)과 鬼(귀신 귀)의 합자예요. 부끄럽다는 뜻이에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鬼는 음을 담당하면서(귀괴)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귀신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인데, 그같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마음 속에 간직한 부끄러움이란 의미로요. 부끄러울 괴. 愧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慙愧(참괴), 愧色(괴색, 부끄러워하는 얼굴 빛)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賸으로 표기했어요.  賸은 貝(조개 패)와 朕(나 짐, 천자의 자칭)의 합자예요. 남아도는 재물이란 의미예요. 貝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朕은 음을 담당하면서(짐→잉)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천자는 그 소유한 재물이 항상 남아돈다는 의미로요. 남을 잉. 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剩餘(잉여), 過剩(과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위 아래로 묶고 가운데 물건이 들어있어 불룩하게 된 모양을 그린 거예요. 주머니 낭. 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背囊(배낭), 囊中之錐(낭중지추, 능력이 있으면 저절로 드러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한시는, 여타 시도 그렇지만, 적어도 100번 이상은 소리 내 읽어봐야 해요. 그래야 행간의 의미도 알 수 있고, 한계는 있지만 리듬감도 느낄 수 있거든요(우리는 한시에서 운율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죠. 중국처럼 사성을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포은 선생 시에 가한 비평도 100번 이상 읽고 얻은 수확이에요. 그러나, 혹 모르겠어요. 포은 선생 시를 200번 혹은 300번 읽으면 생략시켰던 부분을 다시 복원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런지도. 이유는 제가 결코 시를 보는 감식안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다만 포은 선생 시를 100번 가량 읽어보니, 이 수준에서는, 매 구의 2자를 빼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히(?) 손을 본 것 뿐이지요. 거기다 사족을 붙이자면, 대가도 실수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고정 관념이 있어서….

 

여담 둘. 사진은 예산에 있는 한국 서예 비림 박물관에서 찍었어요. 잘 쓴 글씨이긴 한데, 시 내용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힘을 빼고 여유있게 썼으면 내용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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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차분해지시나요? 저는 좀 그런 느낌이 들던데^ ^ 사진에 나와있는 한자는 식화선(熄火扇)이라고 읽어요. '화기를 꺼주는 부채'란 뜻이에요. 화기 많은 분들은 이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면 좋을 듯 싶어요. 실제 등(燈)을 바라보면 효과는 배가 될 것 같구요.

 

명상센터에 어울릴법한 이 등은 인사동에 있는 한 채식 식당에서 찍은 거예요. 이 식당은 칭하이라는 영적 지도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분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식당 곳곳에 이 영적 지도자의 소품들이 놓여있더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식화선등도 이 영적 지도자의 작품이라고 나오더군요. 이를 알고 사진을 바라보니 왠지 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어요. 영적 지도자의 영성이 반영된 것으로 믿고 싶은 후광 효과겠죠? ^ ^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육식보다 채식을 강조하고 권장하는데 칭하이라는 분도 예외가 아니더군요.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채식을 강조하고 권장하는 이유는 채식이 건강 및 영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럴거예요. 만일 육식이나 잡식이 건강과 영성에 더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강조하겠지요. 이 식당 입구에는 채식이 의미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채식주의자였던 위인들의 사진을 걸어 놓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그리고 플라톤의 사진도 있더군요. 듣기론,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였다고 하던데 이 사람은 빼놓았더군요. 하하. 그러나 예외없는 규칙은 없는 법이니 이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무시받을 이유는 없을 듯 싶어요.

 

채식에 명상을 곁들이면 화기는 더 많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채식을 팔며 식화선등처럼 은연중 명상을 유도하는 소품을 놓은 이 식당은 사실상 명상 센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식당 같아요. 이런, 본의 아니게 식당 선전에 채식 홍보까지… 죄송합니다~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火(불 화)와 息(쉴 식)의 합자예요. 불이 쉬다, 즉 불이 꺼졌다란 뜻이에요. 불꺼질 식. 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熄滅(식멸, 꺼짐), 終熄(종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戶(지게문 호)와 羽(깃 우)의 합자예요. 새의 깃처럼 양쪽에 달린 문이란 뜻이에요. 지금은 주로 부채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문을 여닫듯 펄럭이며 바람을 내는 물건이란 의미로요. 부채 선. 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扇風機(선풍기), 扇動(선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채식이 좋은 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특히 청소년. 고기를 먹어야 균형진 영양을 갖출 수 있다라는 기치아래 일찍부터 어린이 집 유치원 그리고 초중등 학교에서 매 끼니 육식을 먹이니 거기에 입맛이 길들여져 채식을 기피하는 것 같아요. 맛을 경쟁하면 채식이 육식에 지지요. 고기가 지니는 주성분인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로도 얼마든지 보충이 가능하다고 해요. 이로 보면 건강과 영성에 좋은 채식을 권장해야 할텐데 반대인 걸 보면, 여기 -  균형진 영양을 위한 육식 권유 - 엔 다분히 정치 경제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의 채식 기피는 그들 탓이 아니라 기성 세대의 그릇된 계산 탓이 아닐까 싶어요.

 

여담 둘. 당신은 채식주의자냐고 물어보고 싶으실 것 같아요. 아닙니다. 채식지향주의자일 뿐입니다. 칭하이라는 분을 추종하는 사람도 아니구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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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구형의 황야』란 작품을 읽어 보셨는지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릴 즈음, 한 사내가 도쿄의 한 으숙한 숲에서 질식사한 시체로 발견돼요. 유일한 단서는 인근 연못에서 발견된 방명록. 경찰은 죽은 이와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방명록의 서명자들을 추적해요. 추적 중에 사망자의 신원을 알게 되고, 더불어 새로운 단서 하나를 얻게 돼요. 방명록의 서명 중에 이미 사망한 어떤 이의 필체와 유사한 서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물론 서명에 쓰인 이름은 죽은 이와 전혀 다른 이름이죠). 이 사실은 방명록 서명자 중의 한 명인 어떤 여인을 조사하던 중 그녀와 함께 있던 여조카에게서 알게 된 거예요. 이 여조카는 방명록의 필체가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사용하던 필체와 똑같다며 자신의 집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액자를 보여줘요. 그런데 이 여조카의 아버지는 이미 20년 전에 사망했어요. 그렇다면 그 동일한 필체의 서명은 누가 한 것이며, 그 방명록과 피살자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마쓰모토 세이치의 여타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강렬한 사회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한 살인 사건을 통해 전쟁과 평화 그리고 애국의 문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사진은 『구형의 황야』를 드라마화한 일드의 한 장면이에요. 바로 한 여인의 여조카가 경찰에게 소개한 자신의 아버지 작품이죠. 작품을 소개하며 아버지는 미불(米芾, 1051-1107, 북송의 서예가)의 작품을 즐겨 임서했다고 말해요. 이로 미뤄보면 이 작품은 미불의 작품을 임서한 것 같아요. 읽어 볼까요? 쾌제일천청연기 건범천리벽유풍(快霽一天淸淵氣 健帆千里碧楡風). '상쾌하게 개인 하늘 맑은 연못 기품이요, 먼 길 가는 돛단 배 바람 맞은 푸른 느릅나무로다'라고 풀이해요. 싱그러운 하늘과 상쾌한 바람에 떠가는 배를 그렸어요. 마치 우리 가요 '아, 대한민국'의 첫 소절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에요. 하늘엔 조각 구름 떠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그런데 이 액자의 내용은, 작품에서, 필체를 확인하기 위한 단순 소품이 아니라 주제를 담은 복선 기능을 수행해요. 『구형의 황야』 주인공은 2차 대전중 스웨덴에 파견되었던 외교관으로 그는 종전(終戰)을 통해 일본의 평화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하여 그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 죽은 것으로 가장 - 연합군에 투신해요. 이 액자의 내용은 바로 주인공의 평화주의자로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기에 복선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어요. 평화로운 풍경을 쓴 액자는 곧 주인공의 평화지향 정신을 상징하는 것 이니까요.『구형의 황야』는 평화주의자인 주인공과 그의 행위를 백안시하는 군국주의자들과의 갈등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통해 전쟁의 종언을 통한 평화야말로 진정한 애국이고 이를 위해 남모르게 희생한 이들을 청안시(靑眼視)할 것을 호소한 작품이에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忄(마음 심)과 夬(터놓을 쾌)의 합자예요. 마음이 흔쾌하다는 뜻이에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夬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음이 흔쾌하면 파안대소가 나온다는 의미로요. 쾌할 쾌. 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爽快(상쾌), 愉快(유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雨(비 우)과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비가 그쳤다란 뜻이에요. 雨로 뜻을 표현했어요. 齊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齊는 본래 이삭이 패어 키가 고르게 된 모양을 그린 것인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추지요. 바로 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는 거예요. 개일 제. 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霽月光風(제월광풍, 도량이 넓고 시원함), 霽朝(제조, 비가 갠 아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양 언덕 안에 갇혀 맴도는 물을 그린 거예요. 연못 연. 본래 氵(물 수) 없이 표기했는데, 후에 氵가 추가 됐어요. 못 연. 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深淵(심연), 淵曠(연광, 깊고 넓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사람 인)과 建(세울 건)의 합자예요, 굳센다란 뜻이에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建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꿋꿋하게 서있어야 굳세게 보인다는 의미로요. 굳셀 건. 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健實(건실), 健康(건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巾(수건 건)과 凡(汎의 약자, 뜰 범)의 합자예요. 돛이란 뜻이에요. 巾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돛이 바람을 맞아 배가 떠간다는 의미로요. 돛 범. 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帆船(범선), 帆檣(범장, 돛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石(돌 석)과 白(흰 백)의 합자예요. 옥과 흡사하며 푸른 빛[白, 순백색은 약간 푸른 빛을 띄죠]이 도는 돌이란 뜻이에요. 白은 음을 담당해요(백→벽). 푸를 벽. 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碧溪水(벽계수), 碧眼(벽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木(나무 목)과 兪(마상이 유)의 합자예요. 느릅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兪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兪는 통나무로 만든 배란 뜻인데, 이렇게 배로 만들 정도라면 통나무가 커야겠죠? 그같이 덩치 큰 나무가 바로 느릅나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느릅나무 유. 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楡莢雨(유협우, 늦봄에 오는 비), 楡塞(유새, 변방의 요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미불은 왕희지에 가장 근접한 서예가로 평가 받아요. 그의 서체는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위에 임서한 작품은, 감식안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풍이 느껴지질 않아요. 그래도 일본은 평소에 한자를 쓰기에 한자(문) 관련 소품을 설치할 때 글씨의 격이 심하게 떨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이 작품도 그렇구요. 반면에 생활 주변에서 점차 한자가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에선 영화나 드라마 소품에 한자(문) 관련 소품이 등장할 때 민망할 정도로 글씨의 격이 떨어져요. 최근 '대장 김창수'를 보았어요. 감옥소장과 김창수가 체결한 문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조잡한 글씨라니…. 그 체결 문서는 김창수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나름대로 중요한 소품인데 글씨를 그렇게 써 놓으니 옥의 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컨대, 서예가에게 부탁하면 비용이 추가될까 봐 스텝 중 한 사람에게 부탁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 제작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한자(문) 관련 소품은 꼭 서예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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