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바쁘실 줄 알지만 연락이 없어서…."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어렸을 때 흔적을 남기고 싶어 거금 100만원을 주고 캠코더를 구입했어요. 그런데 촬영 중 실수로 캠코더를 바닥에 떨어트렸어요. 이후 재생시 화질이 깨지는 거예요. 수리 센터에 수선을 부탁했는데 영 연락이 오질 않아요. 할 수 없이 수리 센타에 전화를 걸어 먼저 정중하게 말을 꺼냈어요. 연락을 주지 않는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죠.

 

 상대는 정중한 서두에 좀 당황한 것 같았어요. 보통은 다짜고짜 퉁명스런 말투로 짜증을 부리기 일쑤인데.

 

 "저희는 거금을 들여 샀는데, 제 때에 쓰지 못하면 사용의 의미가 없어서... 어려우셔도 이른 시일안에 수리를 좀 완료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상대는 더더욱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답변을 했어요. "사실은 저희가 고쳐 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본사에서는 교환을 잘 해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그럴 때는 이런 식으로 적극 어필하세요."

 

수리  센터는 본사 산하일텐데 왜 반품 교환 요령까지 알려주는 걸까? 속으로, 의아했어요. 이후 수리 센터에서 먼저 본사에 잘 말했는지 본사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고 제품은 교환됐어요. 벌써 십 몇년 전 일이네요.

 

그분과 통화할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있었어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핵심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인데 통화중에 그것을 활용했더니 생각잖은 좋은 결과를 얻은 거예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고 하죠? 예전에는 서비스를 하는 분들이 외려 고객에게 상전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역전된 느낌이에요. 예전도 좋지 않지만 지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요. 상호간 예절있는 있는 말투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갑을 관계가 되어 횡포를 부리는 것은 눈쌀을 찌푸리게 해요.

 

사진은 '겸수익 만초손(謙受益 滿招損)'이라고 읽어요. '겸손은 이익을 받고, 오만은 손해를 부른다'는 뜻이에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이죠. 겸손과 오만중 어느 것이 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인지는 이익과 손해를 거론하지 않아도 잘 알수 있지만 굳이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겸손과 오만을 말한 것은 피부에 와닿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겸손'과 '위선'의 구분이에요(오만은 어차피 자신의 직정(直情)을 표현한 것이니까 거론한 필요가 없구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지글지글한데 겉으로 야들야들하게 대한다면 그건 위선이 아닐까 싶어요. 이 경우 겸손은 '이익'의 관점에서 택한 '위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이죠. 카네기도 그런 점을 강조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謙은 言(말씀 언)과 兼(겸할 겸)의 합자예요. 겸손하다란 뜻이에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겸손한 행동이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말씨'이기에 言을 사용했어요. 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내가 상대에게 겸손하게 대하면 상대도 내게 겸손하게 대한다는 의미로요. 겸손할 겸. 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謙遜(겸손), 謙讓(겸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損은 扌(手의 약자, 손 수)와 員(수효 원)의 합자예요. 덜어낸다는 뜻이에요. 扌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건을 덜어내면 그 수효가 줄어든다는 의미로요. 덜 손. 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損害(손해), 損失(손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그렇게 바꾼 캠코더는 이제 퇴물이 되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디카를 넘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니 캠코더는 자연스럽게 손을 떠나더군요. 촬영해 놓은 테잎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고….

 

사진은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614  에서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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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출처: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614

 

 

척벽비보 촌음시경(尺璧非寶 寸陰是競). 지름 한 자의 구슬, 결코 보배가 아니라네. 토끼 꽁지같은 시간, 이것이 진정 보배일세.

 

 

'천자문'의 한 구절이에요(의역 했어요). 초등학교 시절 이 구절을 읽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됐어요. 그 때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나도 과연 어른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의미를 조금 이해할 듯 싶어요.

 

 

옛 글을 읽다보면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내용을 많이 만나요. 왜 시간을 소중히 하라고 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조선조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을 넘기 힘들었다고 하니 그 이전 시대는 더 짧았겠지요. 이 짧은 삶에서 사회적 성취까지 이뤄야 하니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평균 수명 70을 상회하는 지금은 시간을 함부로 대해도 될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다만 시간의 의미를 강조하는 연령대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옛날에는 유소년기의 시간을 소중히 다뤄야 했지만 지금은 노년기의 시간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소중히 다뤄야 할 노년기의 시간에 가장 유의미한 행위는 무엇일까요? 공부 아닐까 싶어요. 젊은 날의 공부는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고역이었지만 노년의 공부는 생존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즐기며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공자는 "공부가 즐거워 세월가는 줄 몰랐다"고 고백한 적이 있어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노년의 즐거운 행위 중 공부가 으뜸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그리 무리한 주장은 아니예요. ^ ^

 

 

사진은 '백천동도해 하시부서귀 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百川東到海 何時復西歸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라고 읽어요. '모든 물줄기 동으로 동으로 바다에 이르나니/ 어느 때 제자리로 온단 말가/ 젊은 날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들어 후회감만 남으리'라는 뜻이에요(의역했어요).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소중히 아껴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지요. 젊은 이들에게 주는 교훈이겠죠? 이 글을 지금 상황에 맞춘다면 이렇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천집도해 하기유장귀 소장불식취 노대경흠상(百川集到海 何其悠長歸 少壯不識趣 老大竟欽賞). 모든 물줄기 모여 모여 바다에 이르나니/ 어찌도 그리 유장하게 귀착되는지/ 젊은 날엔 그 맛을 느끼지 못했나니/ 노년에사 그 맛을 느끼네. (운과 평측은 맞추지 못했네요 ㅠ ㅠ)

 

 

낯선 서너 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에요. 至로 뜻을 표현했어요. 刂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칼이 예리하여 조금만 접촉해도 그 흔적이 남을 수 있듯, 그같이 가고자 하는 곳에 틀림없이 이르렀다란 의미로요. 이를 도.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着(도착), 到達(도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歸는 시집가다란 의미예요. 止(그칠 지)와 帚(婦의 약자, 아내 부)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여인이 시집가면 아내가 되기에 帚를, 또 시집을 가면 안정된 처소를 얻기에 이 뜻을 지닌 止로 '시집가다'란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돌아가다(돌아오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돌아갈(올) 귀. 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鄕(귀향), 歸國(귀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壯은 士(선비 사)와 爿(조각 장)의 합자예요. 몸과 마음이 장대하다란 의미예요. 士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爿은 음을 담당해요. 장할 장. 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壯士(장사), 壯大(장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傷은 人(사람 인)과 昜(볕 양)의 합자예요. 남에게 받거나 남에게 입힌 상처란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昜은 음을 담당하면서(양→상)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양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상처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상처 상. 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傷痕(상흔), 外傷(외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悲는 心(마음 심)과 非(아닐 비)의 합자예요. 생각하던 것과 어긋나거나 이치에 맞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는 의미예요. 슬플 비. 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悲慘(비참), 悲哀(비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노년기의 가장 보람있는 일이 공부라고 했지만, 젊은 날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분들에겐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거예요. 이렇게 보면 노년기의 가장 보람있는 일이 공부라는 주장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또 분명한 건 노년의 공부가 돈도 별반 들지 않고 의미있는 일이란 거예요. 젊은 날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분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본인도 노력을 해야 겠지만 뭔가 정책적으로도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평생 학습관 같은 곳에 강좌 개설하고 듣고 싶은 사람 듣게 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지 않은가 싶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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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道學)과 절의(節義) 그리고 문장(文章) 삼박자를 고루 갖춘 분이 있었던가? 아쉽게도 어느 하나나 둘이 뛰어나면 나머지가 부족했다. 그러나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드디어 그 인물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이시다(國朝人物道學節義文章忒有品差 其兼有而不偏者無幾矣 天佑我東 鍾生河西金先生 則殆庶幾焉)."

 

 

우암 송시열이 지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선생의 신도비문 첫머리예요(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고 의역했어요). 신도비에 과장이 들어가는것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운운은 대단한 상찬(賞讚)이 아닐 수 없어요. 전하기론 이 부분 때문에 김인후 선생의 명성이 더 치솟게 됐다고 해요.

 

 

김인후 선생은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어요. 스승과 제자 사이 나이 차이는 6살 밖에 되지 않았어요. 둘은 의기가 상통했고, 정치 혁신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인종이 등극 후 기묘사화로 숙청당한 조광조 등을 신원한 것은 그 한 예이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종은 등극한지 9개월이 채 못되어 세상을 뜨고 말아요. 인종의 승하는 김인후에겐 더할 나위없는 큰 충격이었어요. 새로운 정치의 원동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죠. 당시 조정은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와 그의 친동생(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이었고 후계자로 지목된 명종은 나어린(12살) 군주였으니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죠(실제 얼마 안있다 을사사화가 발생하죠). 이런 절망적 상황에 놓이자 선생은 벼슬을 내놓고 은둔을 택해요. 선생은 인종의 기일이면 매번 산속에 들어가 크게 통곡하고 내려왔다 해요. 인종의 조사(早死)에 대한 아쉬움과 불의(不義)의 시대에 대한 개탄 그리고 자신의 불우(不遇)한 처지를 슬퍼했던 거지요.

 

 

사진은 선생의 '致詩謝西齋(치시사서재, 시를 올리고 서제를 떠나다)'란 시예요.

 

 

散漫松間影   산만송간영    솔 숲 사이 그림자 어른 거리고

玲瓏氷下泉   영롱빙하천    얼음 아래 물 수정처럼 맑아라

尊傾調急管   준경조급관    술잔 기울이니 조급한 피리 소리 느슨해    

月側罷淸筵   월측파청연    달 이울어 맑은 모임 파해라

醉舞沿溪曲   취무연계곡    시냇물 굽이 따라 취하여 건들건들

狂歌遶樹邊   광가요수변    나무 주변 맴돌며 고성도 질러보네

歸來興不盡   귀래흥부진    돌아갈 참이건만 여흥이 식지 않아

嘯詠謝諸賢   소영사제현    콧노래 흥얼대며 인사를 드리네

 

 

고아(高雅)한 모임에 참석했다 떠나며 지은 시인듯 해요. 고아한 모임이라 그랬을까요? '취무(醉舞)'와 '광가(狂歌)'라는 말을 쓰고 있음에도 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풍모는 결코 이백류의 광달(狂達)한 풍모가 아니예요. 이는 취무와 광가에 어울리지 않는 '영롱(玲瓏)' '조(調)' '제현(諸賢)' 등의 시어 사용에서 빚어진 엇박자 때문이에요. 고의로 이런 엇박자를 낸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시인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빚어낸 결과로 보여요. 여기서 송시열이 언급한 도학과 절의라는 말을 상기하면 좋을 듯 싶어요.

 

도학를 탐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중용의 삶을 지향한다는 거예요. 중용의 삶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과불급(過不及)이죠. 시에서 '취무'와 '광가'를 등장시키는 한편 '영롱'과 '조'와 '제현' 등을 등장시킨 것은 바로 과불급을 조절하는 도학자의 의식이 발동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절의의 관점에서도 이 엇박자를 바라볼 수 있어요. 선생은 시대와의 불화로 은거를 택했어요. 자신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선생은 도사나 선사가 아니예요. 사(士)예요. 사의 은거는 결코 도사나 선사와 같을 수 없어요. 사의 은거는. 더구나 고명한 사의 은거는, 또 하나의 사회 참여 행위이지 도사나 선사처럼 세상을 버리는게 아니거든요. 그것은 불의의 시대를 고발하는 한 증표지요. 이 시가 초일(超逸)한 듯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㪔(나눌 산)의 합자예요. 잡다한 고기란 뜻이에요. 月로 뜻을 표현했어요. 㪔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기저기서 토막난 것이 모인 잡다한 고기란 뜻으로요. 일반적으로 '흩어지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흩어질 산. 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解散(해산), 散亂(산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曼(길 만)의 합자예요. 물길이 광대하다란 의미예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광대한 물길은 그 길이도 길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질펀하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질퍼할 만. 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漫畵(만화), 漫步(만보, 한가히 거니는 걸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令(아름다울 령)의 합자예요. 옥소리란 의미예요. 王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令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듣기에 아름다운[좋은] 소리가 옥소리란 의미로요. 옥소리 령. 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玲玲(영령, 옥이 울리는 소리), 玲玎(영정, 옥석이 울리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酋(술 유)와 寸(手의 변형, 손 수)의 합자예요. 공손히 받들어야 할[寸] 술잔[酋]이란 의미예요. 지금 술잔 이란 의미는 樽으로 표기하고, 尊은 주로 '높이다'란 의미로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술잔이란 의미로 사용했어요. 술잔 준. 높일 존. 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尊敬(존경), 尊嚴(존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의사가 잘 소통되어 화목하다란 의미예요.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화목하여 사이가 긴밀하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고르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和(조화), 調節(조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罒(그물 망)과 能(능할 능)의 합자예요. 법망에 걸린 유능한 이를 관대하게 용서해 준다는 의미예요. 일반적으로 '파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파할 파. 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罷業(파업), 罷免(파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竹(대 죽)과 延(길 연)의 합자예요. 긴 대자리란 의미예요. '대'를 빼고 '자리' 혹은 '잔치'란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자리 연. 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壽筵(수연), 經筵(경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沿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㕣(산속의 늪 연)의 합자예요. 물가를 따라 (내려) 간다는 의미예요. 물따라 갈 연. 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沿革(연혁), 沿岸(연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辶(걸을 착)과 堯(繞의 약자, 두를 요)의 합자예요. 에워싼다는 의미예요. 에워쌀 요. 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環遶(환요, 둥글게 에워 쌈), 圍遶(위요, 빙 둘러 앉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旁의 약자, 두루 방)의 합자예요.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걸어서 이를만한 곳, 즉 멀지 않은 주변 지역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塞(변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입 구)와 肅(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나즈막하게[肅] 입으로 가락있는 소리를 낸다는 의미예요. 휘파람 소. 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虎嘯(호소, 범이 으르렁 거림. 영웅이 세력을 떨쳐 활약함을 비유), 嘯兇(소흉, 악한 무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者(놈 자)의 합자예요. 여러 대상[者]을 일컫는 말[言]이란 의미예요. 모두 제. 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諸君(제군), 諸般(제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시 한편을 가지고 침소봉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선생의 삶에 맞춰 견강부회한 것 같은 생각도 들구요. 시를 감상할 때 선입견을 배제하는게 중요한데 왠지 그와 반대로 시를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여담 둘. 사진은  https://blog.naver.com/ldv1004/221091240335 에서 인용했어요. 낙관 부분은 '녹김인후선생시일수 소석 송형일(錄金麟厚先生詩一首 素石 宋亨日, 김인후 선생의 시  한 수를 쓰다. 소석 송형일)이라고 읽어요. 추사휘호대회에서 높은 상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시의 정서와 글씨체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글씨에 너무 힘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품도 훔쳐(?) 쓰는 주제에 객적은 품평까지 해서 혹 작가분의 노여움을 사는 건 아닌지…. (작가님, 혹 이 글을 보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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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아침마다 만나는 태권도장 관장. 한 아파트에 살고 반상회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참 인사성이 없었어요. 인사를 먼저하는 법은 절대 없고, 인사를 해도 잘 받지 않았어요. 얼굴은 늘 우거지상이었고. '왜 그럴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속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결론을 내렸어요: "운동(만) 해 무식해서 그런거다!"

 

운동(만) 한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편견이 틀리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운동(만) 한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편견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 같지 않아요. 어렸을 때 부터 주위 어른들한테 익숙하게 들었고, 학창 시절 주변 학우들에게서 실제 그런 면모를 확인했어요. 이런 편견은 사회생활을 통해 더 강화됐어요.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말이 거칠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기보다는 힘을 앞세워 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식할까요? 무식이 단지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식 = 머리 나쁨'을 의미한다면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해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좋고 사교성도 우수하다고 해요. 미국 대학 입시에서 고교시절 운동 (선수) 한 학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보면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말이 거칠고 힘을 앞세워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꼭 실제로 말이 거칠고 힘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이 문제를 푸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식한 자의 우둔한 방법이라기 보다 머리좋은 자의 약삭빠른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어쩌면 저 태권도장 관장의 무례도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약삭빠른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만일 운동 하는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도 예의바르고 말투도 공손하며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진은 '영도매화용법묘 춘생도리예림향(詠到梅花樁法妙 春生桃李藝林香)'이라고 읽어요. '매화 꽃 노래하듯 권법 오묘하고, 도리화 핀 봄날처럼 도장 향기롭네'라고 풀이해요. 영춘권(詠春拳)의 '영'과 '춘'을 가지고 이 권법의 특징과 수련생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어요. 영춘권은 견자단 주연의 영화 엽문을 통해 잘 알려졌죠. 특이하게 여성이 창안한 권법으로 보폭이 짧고 다이나믹한 손놀림이 특징인 권법이죠. 엽문(葉問, 1893 -1972)을 통해 널리 전파된 무술로 액션 스타 이소룡도 그에게 배웠다고 전하죠.

 

엽문은, 영화에도 나오지만, 본래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 영춘권을 익혔을 뿐 제자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고 해요. 대륙이 공산화되자 거처를 홍콩으로 옮기고 부득이 생계 수단으로 제자들을 받기 시작했다는군요. 인터넷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요. 또 가르칠 적에는 '재미(흥미)'를 중시하여 제자들의 재미 수준에 맞춰 개별 지도를 해줬다고 하더군요. 흡사 공자(孔子)의 교수법을 연상시키는 이런 지도 방법은 그가 지도한 것이 학문이 아니라 무예란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요. 무예 지도하면 으레 '강압'을 연상하는데 그의 지도는 이런 것과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영화 '엽문'에서도 보면 그가 제자들을 억지로 가르치기 보다는 자발성에 기초해서 따라오도록 지도하거나 제자들에게 인격의 수양을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러했던 것 같아요.

 

대련(對聯) 중앙에 있는 이는 엽문인데, 짐작컨대, 말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여요. 전혀 무도인같지 않고 오랫동안 수양을 해 온 도인처럼 보여요(이런, 무도인도 도인이긴 하네요). 이 사진 한 장으로도 그가 제자들을 어떻게 지도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춘권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영춘권 자체가 훌륭해서라기 보다 엽문의 훌륭한 인품과 능숙한 지도 방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낯선 자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樁은 木(나무 목)과 舂(찧을 용)의 합자예요. 말뚝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舂은 음을 담당하면서(용→장)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위에서 아래로 찧을 때 잘 박히는 것이 말뚝이란 의미로요. 말뚝 장. 위 대련에서는 '치다'란 뜻으로 사용됐는데, 이는 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칠 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定(장정, 확고하게 정함), 法(용법, 치는 방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藝는 본래 埶로 표기했어요. 埶은 坴(언덕 륙)과 丮(잡을 극)의 합자예요. 손에 씨앗을 쥐고[丮] 여러 땅에다[坴] 심는다는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재주'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씨앗을 심는 행위가 결실을 위한 초보 행위이듯이 재주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토대란 의미로요. 재주 예. 藝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藝術(예술), 技藝(기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태권도장 관장과 헤어진 지는 벌써 10년이 돼가요. 그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습인지 궁금해요. 만일 그가 엽문같은 좋은 스승한테 배웠어도 그런 모습을 취했을까 생각해 봐요. 무도만큼 스승의 영향을 깊게 받는 분야가 없기에(대부분 일대일 지도니까요) 그의 그런 무례한 태도는 스승의 영향도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디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는 그가 밟은 전철(?)을 답습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담 둘. 대련 해석에 확신이 없어요. 영춘권의 특징과 수련장의 모습을 담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풀이는 했는데 왠지 자신이 없네요. 사진은 처(妻)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얻었다며 준 것이에요. 글을 쓰는데 아내의 도움이 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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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12-09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만) 한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고, 아마도 인사할 줄 모르는 그 관장님 개인 품성이 문제겠지요.^^
오늘도 나를 돌아볼 계기가 된 좋은 글 감사해요~♥

찔레꽃 2017-12-10 12:17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 ^

무심 2017-12-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관장님은 무도라기보다는 무술을 배운 듯싶습니다. 저도 전에는 운동만 하는 사람들을 무시햇었는데 요즈음은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강호동‘은 그야말로 운동만 한 사람인데 얼마나 머리가 좋습니까! 그의 개그감각이라든가 언어감각은 웬만한 개그맨을 뛰어넘습니다.
저는 영춘권 같은 여성적인 운동을 높이 쳐줍니다. 여성적인 운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고 그 결과 ‘혈행‘을 원할하게 해 줍니다. 혈행이 원할하면 고혈압이라든가 당뇨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혈행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 수영 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는 운동‘을 저는 ‘혈행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따라서 축구나 복싱 같은 격한 운동은 건강에 안 좋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찔레꽃 2017-12-10 12:18   좋아요 0 | URL
‘술‘과 ‘도‘는 글자 한 자 차이인데, 경지는 하늘과 땅 사이인 것 같습니다. 무심 선생님만의 건강법을 갖고 계시군요. 부럽습니다. ^ ^
 

 

 

 

소아성애(小兒性愛)를 바탕으로 한 액션 활극에서 '삶과 행복'을 읽는다면 다들 이렇게 말하겠죠? "웃기네!" 하지만 어린 아이가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이따금 보석같은 말이 있듯 -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말했겠지만 - 그런 영화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놓치기 아까운 장면이나 말이 있을 거예요.

 

"사는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원래 그래."

 

영화 '레옹'에 나오는 마틸다와 레옹의 대화예요. 집에서 얻어맞아 입가에 피멍이 든 마틸다. 아파트 계단 베란다에 앉아 건들거리다 지나가는 레옹에게 무심코 건넨 말에 레옹이 감정없이 대꾸하는 장면이에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저는 삶의 진상(眞相)을 읽었어요. 삶은 결코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가시 덩쿨이 뒤엉킨 골목길이라는 것. 종교, 중에서도 불교의 그럴싸한 외피를 빌자면 '고(苦)' 그것이 바로 삶의 진상인 거죠.

 

이런 삶에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자신의 동생을 죽인 마약 단속 반장 스탠스의 뒤를 쫓다 되려 스텐스에게 죽을 처지에 놓인 마틸다. 약에 취한 스탠스가 총을 어루만지며 으스스한 저음으로 말하죠.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지. 죽기 직전에야 삶이 고마운 걸 느끼는 거야." 스탠스의 대사에서 저는 행복의 진상을 읽었어요. 행복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란 바로 이 행복을 각성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진은 '신통묘용 운수반시(神通妙用 運水搬柴)'라고 읽어요.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해요. 살아 움직이는 일상의 평범함이 바로 신비롭고 오묘한 일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란 의미지요. 통념을 뒤집는 이 언급은 저 영화 '레옹'의 대사와 일맥상통해요. 고(苦)인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행복이듯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이 몸이 살아 움직인다는 평범한 일 이라는 것, 이 둘은 표현만 다르지 기본 인식은 같아요. 행복이나 신비는 먼데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神은 示(보일 시)와 申(번개 신)의 합자예요. 만물의 시원(始原)이 되는 자, 곧 만물을 지어내는 자란 뜻이에요. 만물이 형상을 드러냈다는 의미의 示를 가지고 뜻을 표현했어요. 申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 자는 번개처럼 두렵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로요. 귀신 신. 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鬼神(귀신), 神秘(신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通은 辶(걸을 착)과 甬(湧의 약자, 샘솟을 용)의 합자예요. 막힘없이 솟아 나오는 샘처럼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다닌다는 뜻이에요. 통할 통. 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通行(통행), 通路(통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妙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예요. 나 어린 소녀는 순진하고 귀여워 다들 좋아한다는 의미예요. 묘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확장된 의미지요.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妙技(묘기), 妙數(묘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運은 (걸을 착)과 軍(군사 군)의 합자예요. 군사들을 위한 각종 병기와 보급품을 이동시킨다는 의미예요. 운전할 운. 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運轉(운전), 幸運(행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搬은 扌(手의 변형, 손 수)와 般(돌릴 반)의 합자예요. 물건을 옮긴다는 뜻이에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돌리는 것은 곧 옮긴다는 의미니까요. 옮길 반. 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搬出(반출), 반입(搬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柴는 木(나무 목)과 此(이 차)의 합자예요. 땔 감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此는 음을 담당해요(차→시). 땔감 시. 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扉(시비, 사립문), 柴奴(시노, 땔 나무 하던 머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레옹'에는 이 외에도,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 괜찮은 대사들이 꽤 있어요. 그 중의 하나는 마틸다의 다음 대사예요.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해요." 화분을 갖고 다니는 레옹에게 마틸다가 하는 말이죠.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하여 나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일리있는 말이에요. 상대나 내가 아파서 흔들린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고통이죠. 사랑의 이름을 가장한(?) 고통. 이런 점에서 진정한 사랑은 결혼 이후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사진은 어떤 지인의 작품이에요. 방온거사(龐蘊居士, ? - 808)의 시 일부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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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7-12-0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 아주 좋습니다. 찔레꽃님의 한자 실력도 그렇거니와 삶에 대한 내공이 놀랍습니다. 하긴 제 와이프도 언젠가 이런 말을 했지요. ˝여보, 행복이라는 건, 별 일 없어서 다소 따분한 느낌의 나날들이 아닐까?˝

깊은 산속의 도사님들만 도를 깨치는 게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속세에 살면서도 충분히 도를 깨칠 수 있지요. 영화 레옹의 하찮은 대사와 방온거사의 일언이 통하는 원리이죠.


찔레꽃 2017-12-01 15:56   좋아요 2 | URL
무심 선생님, 오발에 꿩 잡는 수도 있다죠? 그 격 아닐까요? ^ ^ 선생님의 격려성 칭찬이 제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한 편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실망시켜 드릴까 봐. 블로그라는게 자유가 전제되야 하는데 선생님의 격려성 칭찬은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 부담을 주는 양면이 있네요. 선생님께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텐도 말이지요. 하하. 제가 좀 워낙 소심해서.... 날씨가 추워집니다. 늘 건강 잘 챙기셔요~ 꾸벅.

무심 2017-12-0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하하. 제 글도 항상 잘 풀리는 게 아닙니다. 발표해 놓고 나서 나중에 후회할 때가 있다니까요. 그렇다 해도 ‘삶을 성실히 사는 방법‘으로써 글을 써서 블로그에라도 발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거지요. 그 동안 제가 10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면 나중에 반 가까이는 만족 못하고 있습니다.
찔래꽃님. 글쓰는 일에 너무 부담 갖지 않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