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은 황소 글력(근력)으로 쥐고, 먹은 새[鳥] 글력으로 갈아야 해!"

 

어렸을 때 붓글씨를 쓸 적마다 선친께서 해주시던 말씀이에요. 하지만 저는 늘 반대로 했어요. 먹물을 빨리 만들려고 황소 근력으로 먹을 갈았고, 글씨를 그림 그리듯이 예쁘게 쓰려고 새 근력으로 붓을 잡았어요. 선친은 늘 혀를 차셨죠. 특히 붓을 잡을 때는 더욱 그러셨는데, "아예, 붓털을 잡고 쓰지 그러냐!" 하실 정도였어요. 붓을 잡는 힘이 약하다보니 점점 붓대 하단을 잡고 글씨를 썼기 때문이이에요.

 

당시는 도저히 선친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는 운필(運筆)과 먹물의 농담(濃淡)인데, 자유롭게 운필하기 위해서는 다다 붓대를 힘있게 높이 쥐고 움직여야 하며 먹물의 농담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먹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죠. 성마른 어린 시절 선친의 질책을 들어가며 붓글씨를 쓰는 것은 고역이었어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붓을 놓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운 일이지만 당시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하하. 앞으로 혹 다시 서예를 하게 된다면, 선친의 말씀을 충실히 따를 것 같아요.

 

고창 선운사에 갔다가 선친께서 그토록 강조하던 필법의 글씨를 만났어요.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백파 선사 비문이에요. 비문을 대하니 과시 명필은 명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볼까요?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라고 읽어요. 화엄종주는 화엄종의 최고 인물이란 의미이고, 백파는 긍선(亘璇, 1767-1852)이란 승려의 법호이며, 대율사는 불교의 교리에 해박한 승려란 의미이고, 대기대용은 부처님의 마음[대기]과 가르침[대용]이란 의미예요(대기 · 대용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저는 유홍준 교수의 설명을 따랐어요.『완당평전2』참조). '화엄종주백파대율사지비'라고 해도 될 것에 굳이 '대기기용'이란 말을 덧붙인 것은 백파 스님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하는 조사선(祖師禪)에 입각하여 교선(敎禪)의 문제를 다룬 학승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한때 추사 김정희 선생은 선(禪)의 구분을 놓고 백파 선사와 논쟁을 하면서 감정적인 언사로 선사를 반박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가 돌아간 후 흔쾌히 비문을 짓고 쓴 것을 보면 선사에 대한 존중의 념(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 비문 뒷면에도 이를 짐작케하는 대목이 나와요: "예전에 나는 백파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변한 적이 있는데 이를 갖고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아는 것이니 아무리 만 가지 방법으로 입이 닳게 말한다 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어찌하면 다시 스님을 일으켜 서로 마주앉아 한번 웃을 수 있으리요(昔 與白坡頗有往復辨難者 即與世人所妄議者大異 此個處惟坡與吾知之 雖萬般苦口説 人皆不解悟者 安得再起師來相對一笑也)."(번역 인용처: 유홍준,『완당평전2』)

 

이 비문 글씨는 추사 선생 만년의 최고 가는 해서 · 행서로 평가받아요(전면은 해서, 후면은 행서로 씌였어요). 그런데 현재 세워져 있는 비석은 아쉽게도 모조품이에요. 워낙 많은 이들이 탁본을 떠가다보니 비석에 손상이 생겨 모조품으로 대체해 놓은 거죠.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추사체의 특징 중 하나인 '역(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비석을 뚫을 듯한 강렬한 힘이 느껴져요. 언젠가 추사 선생의 '서결(書訣, 글씨쓰는 비결)'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요지는 '온 몸의 충실한 힘과 정기가 붓끝에 모아져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 비문의 글씨는 바로 그 서결의 요지를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 듯 해요.

 

낯선 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華는 꽃이 피었다란 의미예요. 윗 부분의 艹(풀 초)로 뜻을 나타냈고, 아래 부분은 음[화]을 담당해요. '빛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꽃(빛날) 화. 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華麗(화려), 榮華(영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嚴은 본래 상부의 지시가 급하다란 의미예요. 급하면 큰소리로 전달해야 하기에  吅(부르짖을 훤)으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吅 아래 부분은 음[엄]을 담당해요. 지금은 '엄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긴급한 지시일수록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엄하게 전달한다란 의미로요. 엄할 엄. 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嚴命(엄명), 嚴親(엄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宗은 宀(집 면)과 示(神의 약자, 귀신 신)의 합자예요.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란 의미예요. '마루'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묘(마루) 종. 宗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宗社(종사), 宗家(종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坡는 土(흙 토)와 皮(가죽 피)의 합자예요. 고개 혹은 둑이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皮는 음을 담당해요(피→파). 고개(둑) 파. 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坡岸(파안, 제방), 坡陀(파타, 경사지고 평탄하지 아니한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律은 본래 가락을 조율하는 악기라는 뜻이었어요. 행하다란 의미의 彳(걸을 척)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聿은 음[률]을 담당해요. 법이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가락을 조율하듯 사람들의 행동을 조율하는 것이 법이란 의미로요. 가락(법) 률. 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律(조율), 法律(법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機는 베틀이란 의미예요. 木(나무 목)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幾(기미 기)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미세한 움직임이란 의미의 기미처럼 미세한 날줄과 씨줄을 이용하여 옷감을 짜는 기계가 베틀이란 의미로요. 기틀, 실마리 등의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베틀(기틀, 실마리) 기. 機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機械(기계), 機會(기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추사체의 가장 큰 특징은 '기괴(奇怪)'죠. 기괴의 특징은 파격(破格)인데, 재미있는 것은 추사 선생이 전통적인 서예 수련 과정을 무척 강조했다는 점이에요. 해서의 전범이라 할 당대의 구양순과 저수량 등의 글씨를 충분히 수련하고 이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서법을 수련할 것과 많은 법첩들을 열람할 것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아울러 충분한 독서도 강조하고 있구요. 추사체의 기괴는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지음)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거에요. 기본기를 등한시한 채 어설픈 파격을 창조입네 과시하려는 서예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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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사람들이 흔적,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나 문자와 유사한 흔적을 남긴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죠. 서양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도 일종의 문자와 유사한 흔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남긴 문자의 흔적사가 얼마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더구나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가 상당히 정제된 표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이전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상정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남긴 문자의 흔적사는 한층 더 위로 올라가겠죠.

 

사람들은 왜 문자의 흔적을 남긴 걸까요? 다방면의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영원성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요인 아닐까 싶어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 거죠. 그 욕망중에서 가장 큰 욕망은 당연히 영원히 살고 싶은 거겠죠. 비록 자신의 육신이 사라진다해도 문자로 남긴 흔적은 영원히 살아 자신의 삶을 대체한다고 믿는(믿고 싶은) 그런 불멸에 대한 욕망이 문자의 흔적을 남기게 한 것 같아요. 비록 그것이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이의 흔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죠.

 

사진은 정와(靜窩) 김인중(金仁中) 경암(敬庵) 김노수(金魯銖)라고 읽어요. 고창 선운사의 용문굴에 새겨진 흔적이에요. 『한국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과 『동양학대사전』(경인문화사)을 찾아 봤지만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유명한 분의 성명은 아닌듯 싶어요. 두 사람은 왜 용문굴에 자신들의 호와 이름을 새긴 걸까요? 그건 앞서 말한대로 영원성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바로 저 조용필의 노래 '킬로만자로의 표범' 한 대목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는 삶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흔적을 남기는 것 밖에 없다는 욕망에서 말이죠. 비록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두 분은 꽤 오랫동안 그 욕망을 충족시킨 것 같고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魯는 日(白의 변형, 나타낼 백)과 魚(물고기 어)의 합자예요. 노둔하다(어리석다)란 의미예요. 어리석은 이는 말과 행동으로 그 어리석음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日을 가지고 의미를 나타냈어요. 魚는 음을 담당해요(어→노). 노둔할 노. 나라 이름으로도 사용해요. 나라이름 노. 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魯鈍(노둔), 魯論語(노논어.『논어』초기본 중의 하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銖는 金(쇠 금)과 朱(붉을 주)의 합자예요. 중량 이름이에요. 흔히 양(兩)의 1/24을 가리키는 무게라고 하는데 일정한 정설은 없어요. 다만 극소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朱는 음을 담당해요(주→수). 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錙銖(치수), 銖分(수분, 세밀히 분석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靜은 靑(푸를 청)과 爭(다툴 쟁)의 합자예요. 본래 뜻은 '분명하게 살펴본다'였어요. 靑은 초목이 싹을 틔울 때의 색으로 그 빛깔이 선명하죠. 그래서 이 글자로 '분명하게 살펴본다'란 뜻을 표현했어요. 爭은 음을 담당하면서(쟁→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요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요. 靜은 주로 고요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요할 정. 靜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靜寂(정적), 靜中動(정중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窩는 穴(구멍 혈)과 咼(입비뚤어질 괘)의 합자예요. 움집이란 뜻이에요. 穴로 뜻을 표현했어요. 咼는 음을 담당하면서(괘→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움집은 출입구가 반듯하지 않다란 의미로요. 움집 와. 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窩家(와가, 도둑들의 소굴), 窩主(와주,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감추어 두는 곳)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구비문학이란 것이 있죠.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문학이란 뜻이죠. 여기서 구비란 말 그대로 입[口]에다 새긴 비석[碑]이란 뜻이죠. 구비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면서 또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흔적 남기기 방법이에요. 비근한 예로 우리 부모님들의 삶은 대부분 구비로 그 흔적이 남죠. 갖가지 표기 방식이 발달한 현대에 여전히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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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딱~뚱~~…"

"……(뭔 소리여?)"

"으흠, 산을 품었구먼!"

 

지음(知音, 소리를 이해함. 상대방을 이해하다란 의미)이란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 거문고의 달인인 백아가 산을 마음에 두고 거문고를 연주하면 종자기는 여지없이 그 마음에 둔 산을 바로 알아냈고, 물을 마음에 두고 연주하면 또한 여지없이 그 마음을 알아냈다고 하죠. 종자기 사후 백아는 자신의 가락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며 더 이상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하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있죠. 사람이 얼마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는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나타내준 말이라고 할 거예요.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는 그 한 사례가 되겠죠? 평론가란 존재는 창작인에 비했을 때 분명 한 격 떨어지는 존재이지만, 정작 창작물의 평가를 통해 창작인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평론가란 점을 생각할 때, 결코 홀대할 수 없는 존재예요. "세상에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백락(伯樂, 말 감정으로 뛰어난 인물)은 그렇지 않다."는 한유(韓愈)의 말은 평론가의 위상을 적실하게 나타낸 언급이에요.

 

그림에서, 특히 문인화에서, 화제는 흡사 평론가의 존재 같아요. 그림 그린 이의 화의(畵意)를 적실하게 드러낸다면 그림 그린 이에게 있어 그것은 종자기의 존재가 되어 창작의 환희를 안겨줄 거예요. 제 3자의 감상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할 테구요. 그런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화제는 옥상옥(屋上屋),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되어 작품 그 자체의 가치는 물론이고 그림 그린 이의 창작욕을 퇴보시킬 거예요. 제 3자의 감상에도 여지없이 방해를 줄 테구요.

 

사진은 낙안읍성 옆에 있는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 한창기 컬렉션에서 찍은 거예요. 선생이 받은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선생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하층 서민의 문화를 다룬 '뿌리깊은 나무'란 잡지의 발행인이셨죠. 한국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하여 누구보다도 미국(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분이 어찌보면 그와 정반대되는 우리 문화 그것도 양반 사대부 문화보다는 하층 서민들의 문화를 담아내는 잡지를 펴낸 것은 참 아이러니했다고 아니할 수 없어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도 싶어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미국(서양) 문화의 본질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 우리 문화란 생각이 들고, 그 문화 중에서도 가장 원형질을 이루는 것은 민중의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 아닌가 싶은 거죠. 한창기 컬렉션에는 선생이 모은 소박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더군요. 사진의 부채는 사실 대단한 물건이 아니지만 다른 소박한 물건들에 비교하면 외려 고급 물건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화제를 읽어 볼까요? "곡구소판교 산중고초각 일진황혼우 송향만허락(谷口小板橋 山中孤草閣 一陣黃昏雨 松香滿墟落)"이라고 읽어요. "골짜기 입구 작은 다리 건너니/ 산중에 외로운 초가 한 채/ 황혼녘 한바탕 비 내리니/ 소나무 향기 빈 골짝에 가득"이라고 풀이해요. 낙관은 "방매화도인필의 제구작이구 노안백련(傍梅花道人筆意 題舊作俚句 老顔白蓮)"이라고 읽어요. "매화도인의 그림 뜻에 부쳐, 전에 지었던 보잘 것 없는 시구로 화제(畵題)하다. 노안 백련(시를 짓고 쓴 이의 아호)"이라고 풀이해요.

 

이 화제는 화의를 살렸을까요? 죽였을까요? 그저 그럴까요? (사진으로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실물을 본 제 입장에서는) 감히 말하건데, 그저 그런 것 같아요. 화제의 내용에 어울리는 내용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거든요. 그런데 화제가 그림을 살리려면 그림 그린 이의 '신기(神氣)'를 드러내야 하죠. 아쉽게도 이 화제는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아요. 선생은 이 화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요. 신기한 것, 특별한 것에 크게 관심두지 않았던 선생이고 보면 이런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음, 되얐어. 그림의 모습을 잘 표현했구먼. 그라문 되얐지, 뭐. 안 그런가?" (선생은 전라도 분이셨으니 편한 자리나 홀로 생각할 때는 전라도 말투를 쓰셨을 것 같아 흉내를….)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板은 木(나무 목)과 反(반대할 반)의 합자예요, 널조각이란 의미예요. 木으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反은 음을 담당하면서(반→판)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널조각은 원판을 반으로 쪼갠 한 쪽이기에 이 한 쪽은 다른 한 쪽과 반대 쪽이 된다는 의미로요. 널조각 판. 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看板(간판), 板刻(판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橋는 木(나무 목)과 喬(높을 교)의 합자예요.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물 위에 높게 설치한 목재 구조물이란 의미예요. 다리 교. 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鐵橋(철교), 橋梁(교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陣은 본래 車(陳의 축약 변형, 베풀 진)과 攴(칠 복)의 합자였어요. 진을 친다는 의미예요. 무질서한 군사들을 데리고 진을 치려면 강제적인 수단이 필요하기에, 이 뜻을 담은  攴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車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진은 늘어선 형태란 의미로요. 진칠 진. 陣은 '한바탕'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진을 칠 때의 어수선한 상황을 나타낸 의미로요. 한바탕 진. 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背水陣(배수진), 陣頭(진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墟는 土(흙 토)와 虛(빌 허)의 합자예요. 언덕 혹은 터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虛는 음을 담당해요. 언덕(터) 허. 墟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廢墟(폐허), 墟囿(허유, 퇴폐한 옛 동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傍은 人(사람 인)과 旁(곁 방)의 합자예요. 가까운 곳,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예요. 곁 방. 의거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의거할 방. 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傍觀(방관), 傍門戶飛(방문호비, 남에게 기대어 출세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俚는 人(사람 인)과 里(마을 리)의 합자예요. 타인에게 의지한다란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里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땅과 사람이 있는 마을에 의지해 살아가듯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의미로요. 의지할 리. 비속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타인에게 의지해 살다보면 떳떳지 못하고 비루(속)하게 된다는 의미로요. 속될 리. 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俚言(이언, 속된 말), 俚淺(이천, 속되고 천박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란 말이 있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란 뜻이에요.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가한 말인데, 온축된 가운데 무궁한 의취를 풀어낼 수 있는 시와 그림이 최고라는 말로, 문인시화의 최고 경지를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말대로라면 문인화의 '화제'는 어찌보면 군더더기란 생각이 들어요. 자칫하면 무궁한 화의를 방해할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그림 그린 이의 신기를 드러낼 수 있다면 화룡점정의 '현(賢)'을 발휘할 수도 있겠죠. 화제는 이런 양 극단의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는 묘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담 둘. 해서를 제외한 여타의 글자체에 익숙치 못해 조금이라도 흘려 쓴 글씨를 만나면 해석하기가 어려워요. 위 화제도 마찬가지였어요(비교적 흘려 쓴 글씨가 적음에도). 할수없이 네이버 지식in의 '임정거사'님 도움을 받았는데, 이 분의 열의와 정성은 늘 저를 감동시켜요. 묻는 즉시 답변을 주시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미흡했다 싶은 답변은 요청이 없어도 추가 답변까지 해주시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임정거사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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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엔 본시 나무라 부를만한 몸이 없고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라 부를만한 마음이 있는 것 아니라네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本來無一物

 어데서 먼지가 인단 말가   何處惹塵埃

 

 선종의 실질적 완성자로 평가받는 혜능(慧能, 638-713)의 시예요. 선배였던 신수(神秀)의 시에 맞불을 놓은 시로, 스승이었던 홍인의 의발(衣鉢, 도통의 전수를 상징)을 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시죠. 혜능의 선은 이른바 견성성불(見性成佛, 본 마음을 깨치면 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로 "그동안 하찮고 불완전한 것으로 여겼던 자기 자신과 일상적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한 특징이 있죠. (인용문, 한형조)

 

 스승의 의발을 전수받았으나 주변의 시기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던 혜능은 15년 뒤 보림사(寶林寺)에 주석하면서부터 가르침을 펴요. 이곳에 흐르던 시내가 조계(曹溪)로, 이 때문에 혜능을 조계 혜능이라고도 부르죠. 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조계는 바로 여기서 가져온 이름이고, 승보 사찰인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의 조계 역시 여기서 가져온 이름이에요.

 

 사진은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찍은 거예요. 현대 고승의 한 분인 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의 친필 족자예요. "불락이변거 도무착각처 회봉무위인 정시본래여(不落二邊去 到無着脚處 會逢無位人 定是本來汝)"라고 읽어요. "양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 발 놓을 곳 없는데 이르러/ 머무는 자리 없는 사람 만나면/ 어와! 그게 바로 자네라네"라고 풀이해요. 낙관 부분은 "조계후학 효봉(曹溪後學 曉峰)이라고 읽어요. 조계는 혜능을 의미하고, 후학은 후배 ·  제자 정도의 의미예요. 효봉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굳이 번역하자면 '새벽 봉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혜능의 종지는 성속 · 시비 · 선악의 분별을 떠나 본마음을 직시하는 것인데, 이 족자의 시는 혜능의 그 종지를 표현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마지막 구 "어와, 그게 바로 자네라네"는 "그 자리, 그게 바로 부처라네"와 같은 의미라고 할 거예요. 효봉 스님은 오도송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해 보였지만, 이 시를 통해서도 그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시를 읽어보면 깨달음에서 오는 스님의 확신이 느껴지고, 아울러 낙관의 '조계후학'이라는 말도 비상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조계후학'은 '나는 선종의 승려다'라는 평범한 의미보다는 왠지 '나는 혜능의 의발을 전수받은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느껴져요. 견강부회한 느낌일까요?

 

낯선 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邊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방위 방)의 합자예요. 자신이 있는데서[自] 걸어가[辶] 어렵지 않게 이를 수 있는 곳[方]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川邊(천변), 周邊(주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着은 著의 속자예요. 著는 艹(풀 초)와 者(놈 자)의 합자예요.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예요. 풀은 종류도 많고 늘 보이기에  艹로 '드러나 보인다'란 의미를 표현했어요. 者는 음을 나타내면서(자→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者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듯, 그같이 숫자가 많으면 분별하여야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다란 의미로요. 드러날 저. 이 경우 著名(저명)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著는 '붙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드러나 보이려면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는 안되고 한 곳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붙다'란 의미일 때는 '착'으로 읽어요. 붙을 착. 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附着(부착), 接着(접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脚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却(물리칠 각)의 합자예요. 다리라는 뜻이에요. 무릎이하 복숭아뼈 까지의 부분을 가리켜요. 月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却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却에는 '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다리를 포개고앉게 될 경우 뒤에 놓이는 부분이 脚이란 의미로요. 다리 각. 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脚線美(각선미), 健脚(건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曹는 술을 받을 구유(입구가 넓은 큰 그릇)를 표현한 거예요. 曰 윗 부분은 술지게미를 짜는 모습을, 曰은 술지게미에서 나오는 술을 받을 구유를 그린 거예요. 구유 조. 후에 '구유 조'는 木을 추가하여 槽로 표기하게 됐고, 曹는 주로 '무리, 마을'이란 뜻으로 사용하게 됐어요.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구유에 술이 모여있듯, 많은 이들이 한곳에 모여있다란 의미로요. 무리(마을) 조. 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法曹(법조), 吾曹(오조, 우리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曉는 日(날 일)과 堯(높을 요)의 합자예요. 해가 떠오를 무렵, 즉 새벽이란 의미예요. 日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堯는 음을 담당하면서(요→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벽은 해가 높이 떠오르려는 하는 시각이란 의미로요. 새벽 효. 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曉星(효성), 元曉(원효, 신라 고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효봉 스님의 글씨는 '효봉'이라는 법명 낙관이 없으면 빛을 발하기 어려운 글씨라고 보여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또한 그가 선배(스승)로(으로) 삼았던 혜능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이에요. 혜능은 문맹이었다고 해요. 위에 소개한 그의 시는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고 그의 뜻을 다른 이가 대필해 준 것이라고 해요. 효봉 스님은 글씨에서, 혜능은 작문에서 '졸(拙, 못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셈이에요.

 

여담 둘. 효봉 스님 시에서 '會'와 '定'은 각기 '마침내' '틀림없이'의 의미인데, 번역에서는 생략하거나(會) 바꿔서(定, 어와!) 풀이 했어요. 문맥의 흐름상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긴 했는데, 왠지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시 번역은 쉬운 듯 하면서도(글자 수가 적기에) 어렵다는 것을(숨긴 의미를 잘 드러내야 하기에) 새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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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개어 풀잎마다 이슬이 보석처럼 빛나는 싱그러운 아침, 앞산에는 산그늘이 내리고 뜰에는 찬그늘이 내리는 해질녘의 한 때, 고독과 정적 속에서 내 산거(山居)는 선열(禪悅)로 충만하다. 꽃처럼 부풀어오른 이런 순간을 나는 아무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인생의 화폭에 넓은 여백을 지니고 싶다." (법정(法頂), 『산방한담(山房閑談))

 

80년대 초반, 집에서 홀로 재수를 하던 때 였어요. 무료하여 신문을 뒤적이는데 책 광고 하나가 유달리 눈에 띄었어요. "명사들에게 추천된 단 한 권의 에세이! 산방한담." 오래되어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광고 였어요. 명사들에게 추천받은 그 해의 좋은 책이 신문 지상에 소개됐는데 『산방한담』이 에세이로는 유일하게 그 목록에 들었다는 거였어요. 귀가 얇다보니 광고에 혹해 출타하시는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 책을 구매했어요.

 

『산방한담』한 대목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신 새벽 차가운 냉수를 들이킨듯 한 느낌이었어요. 어쩌다 읽어 본 스님들의 글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왠지 우중충한 느낌이었는데,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은 그런 기존의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켰어요. 무엇보다 이해하기가 쉬웠고 투명한 감성이 반영된 산뜻한 문체는 읽는 내내 가슴을 씀벅하게 만들었어요. 이후 법정 스님의 책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사 읽게 됐어요.

 

사진은 '불일암(佛日庵)'이라고 읽어요. 순천 송광사에 딸린 암자로, 법정 스님 에세이의 산실(産室) 이름이에요. 불일(佛日)은 태양같은 부처님이란 뜻으로, 태양이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의 무명번뇌를 환히 일깨워 준다는 의미로 사용된 거예요. 암(庵)은 작은 집이란 의미이니, 불일암은 '태양같은 부처님을 모신 작은 집'이란 의미가 돼요. 암자 이름으로는 좀 벅찬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는 법정 스님의 원대한 포부가 담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봐요. '내 비록 이 작은 암자에 살지만, 여기서 깨달은 부처님의 태양같은 지혜를 온누리에 펼쳐 보이겠다'란 포부 말이죠. 스님은 자신의 포부를 충분히 펼쳤을까요? 해답은 스님 자신만이 아시겠죠?

 

스님 생전에 불일암을 찾고 싶었는데, 사후 불일암을 찾게 됐어요. 스님은 자신이 생전에 사랑했던 후박나무 밑에 한 줌의 재로 묻혀 계시더군요. 스님이 앉았을 법한 원탁 의자에 앉아 스님이 『산방한담』에서 묘사했던 불일암 앞산을 잠시 바라봤어요. 스님의 책을 읽고 제가 무슨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저 자신도 정확히 말하기 힘들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다른 이의 책을 읽을 수도 있었을 때에 굳이 스님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부지불식간에 저의 행동을 지배했을 거라는 점이에요. 스님 생전에 불일암을 찾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왠지 더 차갑게 느껴지더군요.

 

佛, 庵 두 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佛은 人(사람 인)과 弗(아닐 불)의 합자예요. 사물을 보는 것이[人] 정밀하고 명확하지 못하다[弗]는 의미예요. 보통 '부처 불'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Buddha'를 음역한 것이에요(佛陀에서 佛로 축약). 지금은 원의미로는 사용하지 않고 '부처'라는 뜻으로만 사용해요. 부처 불. 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佛敎(불교), 佛像(불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庵은 广(집 엄)과 奄(가릴 엄)의 합자예요. 풀로 지붕을 덮은 작은 집이란 의미예요. 암자 암. 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庵子(암자)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불일암에는 참배객이 많아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 방문 시간을 제한하고 있어요. 아울러 참배할 때는 '묵언(默言)'을 지켜 달라고 강조하고 있구요. 묵언 요청은 스님 생전부터 방문객에게 요청된 덕목(?)이에요. 현재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의 제자도 이를 이어받고 있는 셈인데, 누구 못지 않게 많은 말들을 쏟아낸 스님이건만 정작 자신(제자)을(를) 찾는 이들에게 묵언을 요청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야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말보다 외려 침묵이 더 값어치 있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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