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에요. 이재명 성남 시장이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작은 시정(市政)의 변화가 큰 국정(國政)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요. 자신의 개혁 의지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고 할 거예요.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어요. 작은 실수가 큰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로요. 작은 부주의가 부른 대형 참사가 이 경우에 해당 될 거예요.

 

사진은 순천 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안에 있는 한옥의 주련과 그 해설판이에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은 잡지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이었던 한창기(1936-1997)씨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세운 박물관이에요. 한창기 씨는 평소 한옥을 애호했는데 구례읍 산성리에 있는 김무규(1908-1994) 씨의 한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해요. 순천시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을 지으면서 김무규 씨의 한옥을 사들여 이곳에 옮겨 놓았어요. 평소 한옥을 애호했던 한창기 씨의 뜻을 기림과 동시에 그가 혹호했던 건물을 박물관 옆에 놓아, 비록 사후일 망정,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뜻깊은 건물 앞에 세워진 주련 해설판이 건물의 가치와 의미를 일순간에 퇴색시켜 버리더군요.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에요. 주련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볼까요?

 

丹心縣日月(단심현일월)    일편단심은 영원하고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는 가문에 전하고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학문으로 국가에 보답하고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는 자연에 있다

 

첫 구의 縣(고을 현)은 懸(매달 현)으로 고쳐야 해요. 縣과 懸은 비록 상통하는 글자이긴 하지만 한옥의 주련에 懸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해설판에도 懸으로 표기하는게 관람객에게 혼동을 주지 않을 거예요. 해석도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둘째 구의 해석도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로 고치는게 나아요. 세째 구의 해석도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네째 구의 해석은 "대의의 정신은 춘추(春秋,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하는 역사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상징)에 있도다"로 바로 잡아야 해요. 다시 정리해 볼까요?

 

丹心懸日月(단심현일월)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의 정신은 춘추에 있도다

 

해설판의 주련은 한 구 한 구를 독립된 구로 풀이했으나, 주련은 성격 상 두 구 혹은 네 구를 연결지어 해석하기에 위와 같이 연결지어 해석했어요. 위 주련 해설판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춘추'에 대한 풀이예요.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어도 '자연'이라는 황당한 풀이는 하지 않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너무 무성의한 해설이라고 아니할 수 없어요. 만약 김무규 씨나 한창기 씨가 생전에 이 해설판을 봤다면 필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懸은 心(마음 심)과 縣(고을 현)의 합자예요. 마음이 윗 사람에게 매여있다는 뜻이에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縣은 음을 담당해요. 매달 현. 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懸賞金(현상금), 懸案(현안, 해결이 안되어 걸려있는 안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章은 音(소리 음)과 十(열 십)의 합자예요. 하나의 곡[音]이 완결됐다[十], 란 뜻이에요. 악장 장. 辛(매울 신)과 日의 결합으로 보기도 해요. 辛은 본래 죄수들에게 묵형을 행할 때 사용하던 바늘로, 묵형을 받은 죄수란 의미예요. 日은 묶음을 표시한 것으로, 죄수를 결박했다는 의미예요. 합쳐서, 죄지은 자를 구속할 수 있는 '법'이란 의미로 사용해요. 법 장. 후에 '글'이란 의미로도 사용하게 됐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완결된 곡처럼 잘 지어진 글, 혹은 죄수를 벌할 수 있는 법조문처럼 내용이 세밀한 글이란 의미로요. 위 시에서는 '글'이란 의미로 사용됐지요. 글 장. 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樂章(악장), 憲章(헌장), 文章(문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在는 土(흙 토)와 才(재주 재)의 합자예요. 존재한다, 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표현했어요. 존재하는 것들은 땅 위에 있다, 란 의미로요. 才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才는 본래 땅에서 싹이 트는 모양을 표현한 거예요. 싹은 땅에 의지해 존재한다, 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있을 재. 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存在(존재), 現在(현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주련이 있는 한옥의 전경(前景)이에요(아래 사진). 한창기 씨가 한옥에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은 우리 것을 천시하고 외래 것을 추종하던 시기예요. 그의 한옥 사랑은 그의 시대와 연관지어야 그 의미가 드러나지요. 한창기 씨의 한옥 애호를 시대와 동떨어진 단순한 골동 취미로 평가한다면, 그건 대단한 실례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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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04-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찔레꽃님의 해박하고 정확한 한시해석,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죠? 검찰 수사에 의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300억이 넘는 돈을 비자금으로 사용했고, 그의 소유였던 영포빌딩은 다스의 비자금과 각종 불법 자금의 저수지였다더군요.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죠? 인정한 정도는 처 김윤옥 씨의 국정원 특수 활동비 10만 달러 수수 정도라는데, 이마저도 용처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청구했는데, 검찰의 수사를 모두 부인하는 사람이니, 검찰로선 당연히 구속 영장을 청구할 수 밖에 없었을 거에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위 사실은 이젠 공공연한 사실인데, 본인 혼자만 부인하고 있어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의 비위 사실을 부인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전하는 말에 의하면 비위 사실을 하나라도 인정하는 순간 모든 비위가 다 드러나기에 부인으로 일관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연쇄고리처럼 연결돼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비위 사실을 부정할 것 같아요. 설령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형을 살더라도 말이죠.

 

사진은 수도선부(水到船浮)라고 읽어요. 물이 차오르면 배는 뜨기 마련이다, 란 뜻이에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때 함께 찍혔던 사진이에요. 그런데 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 본뜻과는 다르게 해석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어요. 이 글의 원 의미는 "꾸준히 노력하고 공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예요. 조급한 성과를 경계하고 진득한 노력을 강조하는 의미이죠. 그런데 이것을 이명박 대통령의 비위와 견줘서는 이렇게들 해석했어요. 그간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비위 조사가 성과를 내자 드디어 그 비위의 몸통인 이 전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부상하게 되었다! 

 

한 때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가 애호했다는 이 문구는 그 자신이 살아온 삶과 부합되는 바 있어요.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적수공권의 일개 월급쟁이에서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기업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죠. 그 과정에서 그가 들인 공력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어요. 마침내 사장 자리에 오르던 날 그는 이 말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꼈을 거에요. "그래, 수도선부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아!"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제 이 말은 그간 그가 숨겨온 비위의 적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증언이 되고 말았어요. 아울러 이로 인해  그에게 따라 붙었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도 고운 눈길만 보내기 어렵게 됐구요. 과연 그의 성공이 올바른 노력의 결과였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된 것이죠.

 

수도선부, 왠지 진득한 노력의 성과를 말하는 긍정적 면모보다는 성공의 추악한 이면(裏面)을 말해주는 부정적 면모로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이에요. 至로 뜻을 표현했어요. 刂는 음을 담당해요.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達(도달), 到着(도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船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따라 내려 갈 연)의 합자예요. 배라는 뜻이에요. 舟로 뜻을 표현했어요.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연→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을 따라 내려가기 위해 만든 것이 배란 의미로요.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船舶(선박), 艦船(함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浮는 氵(水의 변형, 물 수)와 孚(孵의 약자, 알깔 부)의 합자예요. 떠있다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孚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알 위에 올라 앉듯 물 위에 떠있다 ,란 의미로요. 뜰 부. 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浮流(부유), 浮草(부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인터넷을 찾아보니 수도선부는 주희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문구로,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적공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나오더군요. 후일 이 의미가 연역되어 세속적 성공과 관련한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폐의 노출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게 될 것 같은데, 주희는 자신이 사용한 말의 의미 변천을 보면서 쓴 웃움을 지을 것 같아요. 허허,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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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04-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찔레꽃님의 유려한 문장과 해설! 늘 문장을 갈고 닦는 소설가로서도 감탄합니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디.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cieunja/221116482507)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김동리(1913-1995)의 수필보름달의 일부분이에요. 보름달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풍모를 찬미하고 있어요. 흔히들 나도향(1902-1926)그믐달과 견줘, 나도향의 그믐달이 이인(異人)의 달이라면 김동리의 보름달은 범인(凡人)의 달이라고 말하곤 하죠세상엔 이인보다 범인이 많고 보면 그믐달보다는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은 영월단(迎月壇)’이란 비석에 새겨진 시예요. 달맞이 장소란 의미의 영월단에서 맞이한 달은 어떤 달이었을까요?

   

梧桐霽夜有情來  오동제야유정래      구름 걷힌 밤 오동나무에 달(유정) 찾아오니

坍上層峦映雪梅  단상층만영설매      단상 위 산봉우리에 설중매 보이네

氷魄天然菱花鏡  영백천연능화경      밝기는 천연의 거울(능화경)이요

玉輪怳惚琉璃杯  옥륜황홀유리배      둥글기는 황홀한 유리잔이로다

輞川別業愊時在  망천별업핍시재      힘든 시절에 망천의 별장 있나니

赤壁淸遊取次開  적벽청유취차개      적벽의 맑은 놀이 다시 열었네

白首主翁閒飮坐  백수주옹한음좌      흰 머리 노옹은 한가로이 앉아 술 마시고

詩朋隨影共相回  시붕수영공상회      시 벗들은 그림자 따라 왔다 갔다

   

앞 네 구는 영월단에서 맞이한 달의 모습을, 뒤 네 구는 영월단에서 함께 한 이들의 모습을 그렸어요. 비석에 보면 원운(原韵)이란 제목이 있는데, 원래의 운이란 뜻이에요. 영월단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 시를 지었는데, 그 때 사용한 운이 바로 이 시에서 사용한 운(, , , )이란 의미로 붙인 거예요.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제목은 아니예요.

   

시인은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듯해요. 망천별업과 적벽청유가 이를 말해줘요. 망천별업은 왕유(王維, 699-761)가 정치적 시련기에 머물렀던 별장이고, 적벽청유는 소식(蘇軾, 1036-1101)이 유배 시절에 찾았던 적벽에서의 한유(閑遊)예요. 둘 다 시대와의 불화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시인은 이 둘을 통해 자신이 영월단에서 갖는 모임 역시 시대와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냈어요. 아울러 왕유나 소식이 시대와의 불화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한층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났듯 시인 자신도 그러겠노라는 의지를 드러냈고요.

   

시인이 바라본 달은, 시 내용으로 봤을 때, 보름달에 가까워요. 그런데 시인은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으니 이인이라 할 만 해요. 그렇다면 그믐달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왜 그믐달을 맞지 않고 범인의 달이라 할 보름달(에 가까운 달)을 맞았을까요? 그렇죠! 앞서 언급한대로 성숙을 지향코자 하는 의지 때문이지요. 시인이 맞이한 달은 범인의 달이면서 범인의 달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볼까요?

 

(비 우)(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비나 눈이 그쳤다, 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는 쌀이나 보리 이삭이 패어 전체적으로 키가 비슷비슷해진 모습을 나타낸 거예요. 이때가 되면 성장도 멈추죠. 이 의미로 비가 그쳤다란 의미를 보충하고 있어요. 개일 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霽月(제월, 갠 날의 달), 霽朝(제조, 비가 갠 맑은 아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흙 토)(붉을 단)의 합자예요. 무너지다, 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무너질 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坍墻(담장, 무너진 담장)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단(흙을 높이 쌓아 올려 위를 평평하게 만든 장소)이란 뜻으로도 사용해요((단 단)과 통용). 위 시에서는 이 뜻으로 사용됐어요. 이때는 음을 단으로 읽어요. 단 단. 이 경우 坍上(단상) 정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은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란 뜻이에요. (뫼 산)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뫼 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巒峰(만봉, 산봉우리), 巒岡(만강, 언덕. 작은 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흰 백)(귀신 귀)의 합자예요. 넋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魂魄(혼백), 氣魄(기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달빛이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달빛이란 의미로 사용됐죠.

 

(풀 초)(의 약자, 능가할 릉)의 합자예요. 마름이라는 수초(水草)를 표현한 글자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을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름은 물 위로 꽃을 피운다는 의미로요. 마름 릉.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菱花(능화, 마름꽃. 거울의 별칭), 菱荷(능하, 마름과 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쇠 금)(의 약자, 지경 경)의 합자예요. 거울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초기의 거울은 구리 종류를 사용했죠. 그래서 금속 종류를 나타내는 으로 거울이란 뜻을 나타낸 거예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나라와 나라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지경이듯 대상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거울이란 의미로요. 거울 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銅鏡(동경, 구리 거울), 顯微鏡(현미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수레 거)(다스릴 륜)의 합자예요. 바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수레바퀴가 잘 굴러 가려면 바퀴살이 고르게 잘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란 의미로요. 바퀴 륜.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輪禍(윤화, 자동차 사고), 五輪(오륜, 올림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옥과 흡사한 유리란 광물을 나타낸 글자예요. (의 약자, 구슬 옥)으로 뜻을 표현했도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유리 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琉璃窓(유리창), 琉璃甁(유리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그물 망)의 합자예요. 그물이란 뜻이에요. 본래 만으로 그물이란 뜻을 표현했는데, 후에 가 추가되었어요. 그물 망.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網羅(망라), 投網(투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종을 걸어 놓는 틀을 뜻하는 글자였어요. 위는 거는 부분, 중간과 아래는 지지대와 다리를 표현했어요. 후에 ''이란 뜻으로 전용됐는데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종을 거는 일을 한다, 란 의미로요. 일 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商業(상업), 職業(직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착)(떨어질 타)의 약자가 합쳐진 글자예요. 뒤따라간다는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그같이 자연스럽게 뒤에서 앞을 따라간다는 의미로요. 따를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隨筆(수필), 隨行(수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현대 수필 중에 윤오영(1907-1976)달밤이란 짤막한 수필이 있어요. 그런데 이 수필을 읽다 보면 왠지 위 시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정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과연 그런지, 한 번 읽어 보시겠어요?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 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 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고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 달이 하도 밝기에 ......”

!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하늘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잠겨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마셔 본 적이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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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진실되게 구하면 비록 적중하지 못한다 해도 본래의 목표에서 그리 멀어지지는 않는다. 자식을 길러본 뒤에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대학(大學)』「제가치국(齊家治國)」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평범한 말이지만 비범한 뜻을 담고 있어요.

 

사람은 대개 미지의 미래에 공포를 느끼죠. 이는 첨단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오늘 날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높아 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포감이 잔존하죠. 현재도 이러하니 과거는 오죽했겠어요?

 

미지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과거의 인간이 찾아낸 방법 중에 '성(誠)'이란 가치가 있어요. 외부적 대책이 아닌 내부적 대책이죠. 『대학』의 저 구절은 이 내부적 대책을 비근한 예로 설명한 거예요. 자식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미증유의 경험이에요. 공포감이 엄습하죠. 그러나 보통 결혼한 여성이라면 이 미증유의 사태를 별 탈 없이 해결해내요.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요? 『대학』의 화자는 그것을 성으로 보고 있어요. 진실된 마음이 출산과 양육이란 공포스런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주기에 별탈없이 사태를 해결한다고 본 것이지요.

 

나아가 이 성은 집안과 국가를 경영하는데도 적용될 수 있다고『대학』의 화자는 말하고 있어요. 집안과 국가에 닥치는 미지의 공포도 저 어머니의 성과 같은 자세만 있으면 능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비근한 사례를 들어 치가 치국의 요체를 말하고 있는 인용구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사진은 '오늘도 성실(誠實)'이라고 읽어요(벌교에 갔다가 찍었어요). 성실은 『대학』에 나온 성과 대차 없어요. 비석은 꼬막 정식을 파는 집 앞에 세워져 있는데, 처음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식점과 성실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서요.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니 이해가 될 듯 싶더군요. 음식점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사업 중의 하나이죠. 이 음식점 주인은 그간의 어려움을 성실로 해결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여 이 비석을 세워놓고 앞으로도 문제가 생기면 성실로써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오늘도 성실, 이 음식점 주인에게 성실은 신의 지혜를 빌어오는 주문이 아닐까요? 

 

한자를 공부해 볼까요?

 

誠은 言(말씀 언)과 成(이룰 성)의 합자예요. 언행이 일치하여 진실하단 의미예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成은 음을 담당해요. 정성 성. 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誠心(성심), 誠意(성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實은 宀(집 면)과 貫(꿸 관)의 합자예요. 집에 돈꾸러미[貫]가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실할 실. 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實(충실), 實證(실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성실이란 가치는 요즘 왠지 빛바랜 가치처럼 느껴져요. 모든 것이 기계화 속도화 되다보니,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듯한 성실은 시대와 안맞는 가치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느낌이나 생각이에요. 성실은 여전의 우리의 마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아니 점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첨단 기술이 빚는 초대형 사고가 성실과 반대되는 안일과 방심에서 비롯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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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모두 신이 되죠. 귀신. 하지만 귀신, 하면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싶은 귀신도 있죠. 수호신. 이들에게는, 그 귀신의 승락 여부와 관계없이, 제물을 바치며 자신들의 안녕을 기원하죠.

 

한 때는 똑같이 사람의 육신을 가진 존재였는데, 죽은 뒤 한 쪽은 꺼려지는 존재가 되고, 한 쪽은 가까이 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어요. 차이가 뭘까요? 한 쪽은 자신 만을 위해 살다간 존재이기에 죽어서도 역시 자신 만을 위해 살터이니 기대할 것이 없는 반면, 한 쪽은 타인을 위해 살다간 존재이기에 죽어서도 역시 타인을 위해 살터이니 기대할 것이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더구나 그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면 여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보태어져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사진은 '군수(郡守) 임공경업(林公慶業) 선정비(善政碑) 숭정(崇禎) 원년(元年, 1628) 사월(四月)' 이라고 읽어요. 임경업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석이에요. 낙안읍성에 갔다가 찍었어요. 임경업은 낙안에서 2년(1626-1628)동안 군수로 재직했는데, 이 비석은 그가 낙안을 떠나던 해에 세워진 거예요.

 

임경업은 사후 평범한 귀신이 되지 않고 수호신이 되었어요. 최영, 남이 등과 함께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추숭받고 있죠. 이 비석은 그런 신앙의 영향으로 해마다 제를 받으며 보호받고 있어요. 비석 상단에 금줄이 둘러져 있는 것을 보면 올 해도 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임경업 - 정묘호란 발발 시 군사를 이끌고 참전했으며(당시 낙안군수로 재직. 청과 화의가 이뤄져 실제 전투는 못함) 병자호란 때는 백마산성을 지키며 청군에 대비했으나 그를 꺼린 청군이 우회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투를 못해 본 사람. 이후 청이 명나라를 궤멸시키기 위해 조선의 참전을 요청했을 때 청군에 파견됐으나 의도적으로 명과의 접전을 피했던 사람. 청에의 압송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하여 명군과 함께 청에 대항하려 했으나 명군의 속절없는 항복으로 청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 청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버텼으나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 심기원 역모 사건 연루자로 몰아- 국내로 송환된 뒤 김자점의 간계로 장살된 사람.

 

겉으로는 청을 배격하지만 실제로는 청에 굴종할 수 밖에 없었던 국내외 정치 상황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친명배청의 대의를 내건 그의 과감한 행동은 민중들에게 많은 호감을 안겨줬을 거예요. 게다가 그가 낙안군수 재직시 보여준 선정이나 북방의 경비를 맡을 당시 명과의 무역거래로 민부병강(民富兵强, 백성은 부유하고 군사는 강해짐)을 이룩한 성과를 볼 때 적절한 뒷받침만 있었으면 그의 분투가 충분한 성과를 얻었으리란 가정을 하게 되면 호감에 안타까움까지 더해지겠죠. 그가 민중들에게 수호신으로 받을어질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달리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민중들은 임경업의 삶에서 바르게 살려 노력하지만 늘 억울하게 핍박받으며 살아야 하는 자신들의 삶을 보았고, 그랬기에 그가 죽은 뒤에는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도와주리란 기대를 품었기에 수호신으로 섬긴 것이다. 임경업은 민중의 메시아였다.

 

한자를 공부해 볼까요?

 

慶은 鹿(사슴 록)의 약자와 心(마음 심)과 夊(천천히 걸을 쇠)의 합자예요. 기뻐할 일이 있어 사슴 가죽을 가지고 가 축하해 준다는 의미예요. 경사 경. 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慶賀(경하), 慶事(경사)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業은 본래 종을 거는 틀을 그린 글자예요. 윗 부분은 종을 거는 상체를, 중간 부분은 장식물을, 아래 부분은 받침대를 나타낸 거예요. 후에, 종을 건다→일을 한다로 의미가 변화되었어요. 일 업. 業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就業(취업), 業種(업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將은 寸(마디 촌)과 酱(장 장)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장수라는 의미예요. 장수는 원칙과 법도가 있어야 부하를 통솔할 수 있기에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寸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酱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장(간장, 된장)은 맛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같이 부하들의 여러 요구를 잘 조화시켜 이끌어야 하는 이가 장수란 의미로요. 장수 장. 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將軍(장군), 將星(장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崇은 山(뫼 산)과 宗(마루 종)의 합자예요. 산이 높고 크다란 뜻이에요. 山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宗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宗에는 시조(始祖)라는 뜻이 있는데, 시조는 뭇 자손들의 가장 높은 존재이죠. 그같이 가장 높은 산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높을 숭. 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崇尙(숭상), 崇仰(숭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禎은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貞(곧을 정)의 합자예요. 상서롭다란 뜻이에요. 示로 뜻을 표현했어요. 貞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곧아야, 즉 정직해야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란 의미로요. 상서로울 정. 禎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禎祥(정상, 상서, 길조), 禎瑞(정서, 상서, 길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임경업은 서해 지역에서 풍어신(豊漁神, 고기를 잘 잡게 해주는 신)으로 많이 숭배되고 있어요. 특히 조기잡이 철과 관계 깊은 풍어신으로 숭배되는데, 이는 임경업이 중국으로 망명한 시기와 상관성이 있어요. "조기 어군의 경우, 1~2월에 제주도 아래 남지나해 쪽에서 겨울을 난 후 흑산도와 홍도 일대에서 첫 어장이 형성되고, 영광 앞바다 안마도 어장을 거쳐 3월 초에는 전라도 부안 앞바다 칠산 어장에 이르게" 되는데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북상해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 앞바다 죽도와 태안반도 앞 격렬비열도를 잠시 거쳐, 연평도 어장에서 산란을 하고 6월 말경에는 평안도 철산의 용암포 앞바다까지 이른다"고 해요. 임경업은 6월 마포 나루에서 출발해 서해를 거쳐 중국으로 갔는데, 이 시기가 바로 조기 어군의 이동과 관계 깊기에 조기잡이 철의 풍어신으로 숭배받게 됐다고 보는 거지요.(인용문: 이영태)

 

여담 둘. 선정비의 하단 거북의 모습이 상당히 유머러스하죠? 보통 비석 하단의 거북은 입을 다문 엄정한 모습인데 이 비석의 거북은 상당히 편안하고 해학적인 모습이에요. 선정비를 세운 이들이 외압에 못이겨 마지못해 선정비를 세운 것이 아니라 - 많은 경우 선정비는 외압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세워졌지요 - 진심에서 우러나 선정비를 세운 것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 해요. 볼수록 정감가는 거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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