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의 의술은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이이화, 『인물한국사』)

 

『동의보감』저자 허준은 양반가의 서자였어요. 출사(벼슬길에 나아감)에 한계가 있는 신분이었죠. 그가 의술을 접하게 된 배경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런 신분적 한계가 큰 이유였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어요. 이 짐작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출사에 한계가 없는 양반가의 자제라면 굳이 의술을 평생의 업으로 택할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베스트셀러였던 『소설 동의보감』도 이런 점에 착안, 그의 신분적 고뇌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지요.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가기 전의 상황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요. 20대부터 의명(의원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이 알려져 있지 않은 기간이 사실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어요. 진정한 의인(의사)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이 거듭난 시간이 있었기에 후일 『동의보감』같은 명저를 쓸 수 있었다고 보여요. 앞서 언급했던 『소설 동의보감』도 이런 점에 착안, 그가 진정한 의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지요. 첫머리 이이화의 언급은 허준의 거듭난 의인으로서의 모습을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경옥고(무병장수를 위한 한약의 일종)에 대한 동의보감내용 일부예요. 읽어 볼까요? 전정보수조진양성반노환동/보백손제백병만신구족오장영일/발백부흑치락갱생행여분마/일진수복종일불기갈공효불가진술/일료분오제가구탄환오인/일료분십제가구노체십인/약이십칠세복기수가지삼백육십/약육십사세복기수가지오백년(塡精補髓調眞養性返老還童/補百損除百病萬神俱足五藏盈溢/髮白復黑齒落更生行如奔馬/日進數服終日不飢渴功效不可盡述/一料分五劑可救癱瘓五人/一料分十劑可救勞瘵十人/若二十七歲服起壽可至三百六十/若六十四歲服起壽可至五百年)

 

이런 뜻이에요: 정기와 골수를 채우고 보해주며 타고난 심성을 조화롭게 배양시켜 늙은이를 다시 어려지게 만든다. / 온갖 부족함과 병을 채우고 없애주어 정신과 오장을 튼튼하고 충실하게 만든다. / 흰 머리를 다시 검어지게 만들고 빠진 이가 다시 돋게 하며 걸을제 달리는 말과 같게 만든다. / 하루에 수차례 복용하면 종일토록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나니 (경옥고의 약효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한 경옥고 재료를 다섯 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중풍 환자 다섯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 한 경옥고 재료를 열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결핵 환자 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 만약 27세에 복용을 시작한다면 수명이 360에 이를 수 있고(이렇게도 번역해요: 만약 27년을 먹으면 360세를 살고) / 64세에 시작한다면 수명이 500에 이를 수 있다(이렇게도 번역해요: 64년을 먹으면 500세를 살 수 있다).

 

경옥고가 얼마나 좋은 약인가를 설명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설명중에 눈여겨 볼 대목이 있어요. "한 경옥고 재료를 다섯 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중풍 환자 다섯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 한 경옥고 재료를 열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결핵환자 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이 부분은 경옥고 설명에서 빼도 괜찮을 대목이에요. 이 대목 앞 뒤 부분은 경옥고를 복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개인적 효과를 기술한 것이고, 이 대목은 그와 다소 동떨어진 설명이거든요. 이 대목이 빠져야 수미쌍관한 설명이 돼요. 허준은 왜 군더더기 같은 이 대목을 넣은 걸까요?

 

허준 당시 경옥고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요? 극소수였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나누어 먹으시오. 그러면 가련한 처지에 있는 다섯 명의 중풍 환자와 열명의 결핵 환자를 고칠 수 있소이다." 이런 무언의 질책을 담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라 보여요. 그리고 이는 그의 거듭남과 상관이 있을 것 같구요.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때문에 삽입한 대목이라 본건데, 견강부회한 생각일까요?

 

사진은 아내가 수술 받은 후 선물받은 경옥고 포장 내용이에요. 이 포장에는 이 내용 외에도 '귀한 분만 드시는'이란 문구가 삽입되어 있어요. 아내에게 위 추측 내용을 말하며 나눔의 정신을 발휘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하더군요. (한심하단 뜻이겠죠? ㅠㅠ)

 

 

낯선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 볼까요?

 

塡은 土(흙 토)와 眞(참 진)의 합자예요. 빈 곳을 메운다는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眞은 음(진→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참된 것이란 바로 빈 곳 없이 충실한 상태를 이름이란 의미로요. 메울 전. 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塡(충전, 무엇이 빠진 곳이나 빈 공간을 채움), 塡輔(전보, 메워 기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髓는 骨(뼈 골)과 隋(墮의 약자, 떨어질 타)의 합자예요. 골수(뼈 속에 차있는 누른 빛의 기름 같은 물질)란 뜻이에요. 骨로 뜻을 나타냈어요.  隋는 음(타→수)을 담당해요. 隋는 후에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어요. 골 수. 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腦髓(뇌수), 精髓(정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溢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益(더할 익)의 합자예요. 그릇의 물이 흘러 넘친다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나타냈어요. 益은 음(익→일)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그릇에 물을 더하여 넘치게 됐다란 의미로요. 넘칠 일. 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海溢(해일), 充溢(충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奔은  大와 卉(풀 훼)의 합자에요. 풀 밭 위를 내달린다란 뜻이에요. 大는 달려가는 사람의 모양을 그린 거예요. 달릴 분. 奔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奔走(분주), 出奔(출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服은 배를 운행시킨다는 뜻이에요. 月(舟의 변형, 배 주)로 뜻을 나타냈어요. 나머지는 움을 담당해요. 행할 복. 입는다, 먹는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입을(먹을) 복. 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服從(복종), 服用(복용), 衣服(의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劑는刂(刀의 변형, 칼 도)와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가지런히 절단한다란 뜻이에요. 자를 자. 약재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약재 제. 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催眠劑(최면제), 湯劑(탕제, 달인 후 짜서 먹는 한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癱은 疒(병 력)과 難(어려울 난)의 합자예요. 중풍이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難은 음(난→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병이 중풍이란 의미로요. 중풍 탄. 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癱瘓(탄탄, 중풍)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瘓은 疒(병 력)과 奐(클 환)의 합자예요. 중풍이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奐은 음(환→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을 마음대로 굽힐 수 없기에 늘 뻗뻗하게 늘어진 상태로 지내야 하는 병이 중풍이란 의미로요. 중풍 탄. 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癱瘓(탄탄, 중풍)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瘵는 疒(병 력)과 祭(제사 제)의 합자예요. 앓는다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祭는 음(제→채)을 담당해요. 앓을 채. 瘵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凋瘵(조채, 쇠하여 앎음)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선조는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볼품없는 캐릭터가 돼죠. 그런데 허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돼요. 중인 신분의 허준에게 벼슬아치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렸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허준이 여러 의학 서적을 쓸 수 있도록 지시하거나 배려했고 왕실 소장의 값진 도서를 다량으로 제공했기 때문이에요.『동의보감』도 이런 선조의 지시와 배려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지요(물론 그 이전에 허준 자신이 그런 의학서를 쓰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겠지만요).어느 한 인물을 평가할 때는 늘 명과 암을 함께 봐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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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독경 소리 그치자(琳宮梵語罷)

하늘 빛은 맑기가 유리와 같네(天色淨琉璃)

 

김부식과 정지상은 정치적 견해차가 심한 사이였어요. 결국 김부식은 정지상을 죽이는데, 명분은 그가 묘청의 난에  연루됐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세간에는 이와 다른 이야기가 전해요.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인 건 과거 정지상이 그의 요구를 묵살한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거예요. 그 요구는 다름아닌 저 시구를 자신에게 달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정지상은 매몰차게 거절했고, 김부식은 이에 앙심을 품었다가 후일 그를 묘청과 관련지어 죽였다는 거예요. 시화집 『백운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이 시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적어도 시에 있어선 정지상이 김부식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

 

김부식이 탐했던 정지상의 시구는 산사의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청각과 시각을 빌어 표현했어요. 고요한 풍경은 독경 소리가 멈춘 순간을 통해, 맑은 풍경은 유리를 통해 표현했지요. 고요하고 맑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더없이 잘 표현했어요. 김부식이 탐할만한 시구예요.

 

정지상의 시구에서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됐어요(보다 정확하게는 '푸름'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되죠. 그런데 유리가 맑음의 상징 뿐 아니라 '강함'의 상징도 된다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유리 섬유의 가장 놀라운 속성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같은 굵기의 강철 가닥에 버금갈 정도로 강하다 … 유리에서 뽑아낸 경이로운 신물질인 유리 섬유는 가정용 단열재, 옷, 서핑보드와 호화요트, 헬멧, 컴퓨터 칩을 연결하는 회로판 등 온갖 곳에서 사용된다." (스티브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설명이 없다해도 방탄 유리 등을 생각하면 유리가 강함의 상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요. 유리를 '맑음'의 상징으로만 쓰는 것은 시정할 필요가 있어요.

 

사진은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 에단 헌트(톰 쿠르즈 분)가 인도 뭄바이에 있는 무기 중개상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에요. 에단은 일부러 무기 중개상에게 정보를 흘려 러시아 정보당국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고 자신이 러시아 정보당국과 마찬가지로 핵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코발트를 막으려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런데 이 무기 중개상과 만나는 장면의 소품에 한글 '유리'와 같은 의미의 한자 '파리(玻璃)'가 등장해요. 파리는 유리의 이칭(異稱)이에요.

 

왜  유리와 파리란 명칭의 소품이 등장한 건지 궁금하더군요. 무기 거래가 불법적인 일이니 그 무기를 운반하는 상자를 위장하기 위해 이런 명칭을 붙인 상자를 쓴 거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에단이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서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과 관련지어 등장한 것 아닌가 싶어요. 그 빌딩을 지은 것이 한국 업체(삼성물산)이니 거기에 사용된 유리도 한국 제품일 가능성이 농후하여 그 연계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한글 '유리'라는 이름의 소품이 등장한 것 아닌 가 싶은 거죠(이 소품을 한국 영화 팬들에 대한 서비스라고만 보기엔 왠지 부족한 감이 있어 추측을 해봤는데, 억측일까요?). 그런데 한자 '파리'는 중국에 대한 단순 서비스로 등장한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 없거든요.

 

그나저나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는 유리가 맑음보다 강함의 상징(?)으로 나와요. 에단이 부르즈 할리파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이동 뒤 중앙 서버 장치가 있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특수총으로 유리 벽면에 흠집을 내고 온 몸을 부딪혀 유리를 깨려 하나 쉽사리 깨지지 않아 애먹는 장면이 그래요.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유리의 또 다른 면모를 읽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괜한 생각일까요?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 볼까요?

 

玻는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皮(波의 약자, 물결 파)의 합자예요. 맑고 깨끗한 물결같은 옥이란 의미예요. 유리 파. 과거에는 유리도 옥의 일종으로 여겨 王(玉)이 주된 의미로 들어갔어요. 玻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玻璃(파리, 유리)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璃는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离(離의 합자, 떠날 리)의 합자예요. 유리란 뜻이에요. 王은 뜻을, 离는 음을 담당해요. 유리 리. 璃는 황금색 점이 있고 야청빛이 나는 유리예요.  璃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琉璃(유리)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유리는 이산화 규소가 500도를 넘는 고열에서 용해되어 만들어진 거예요. 유리의 맑음과 강함은 상상 이상의 고열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요. 맹자는 하늘이 훌륭한 인물을 낼 때는 반드시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준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물질이나 사람이나 탁월한 존재가 되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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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꾸라지는 뼈가 단단해서…."

 

봄 무렵, 한 추어탕 집에 갔다가 미꾸라지 튀김을 시켰을 때 주인이 한 말이에요. 주인은 한마디 더 덧붙였어요. "손님이 굳이 원하시면 해드리지만 권하고 싶지 않네요." 순간, 살짝 당황했어요. 장사하는 입장이면 기를 쓰고 한 접시라도 더 팔아야 할텐데 이와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내 속으로 감탄했어요. '흠, 장사할 줄 아시는 분이구나!'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죠.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 목전의 이익에만 골몰하다 정작 큰 이익을 놓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반대 의미가 될 거예요. 작은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는다. 소기대득(小棄大得). 목전의 이익에 골몰하지 않아야 큰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전 추어탕 집 주인의 행동이 소기대득의 행동이라고 봤어요. 왜냐구요? 그날  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거든요. '그래, 이 집은 이제 내 단골 집이야!' 당장은 미꾸라지 튀김 한 접시 못팔아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충성 고객 하나를 확보했으니 장기적으론 이득되는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소기대득의 행동을 한 것이지요. 장사할 줄 아는 분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죠?

 

며칠 전 이 집을 들렸는데 벽면 한 쪽에 전에 없던 구호가 붙어 있었어요. 정선상략(正善上略). 정직과 선함이 최상의 전략이다. 가게에 걸맞는 구호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울러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큰 그림을 그리며 장사하고 계시구나.'

 

앞으로 이 가게를 주목해 봐야 겠어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正은 止(그칠 지)와 一(한 일)의 합자예요. 올바른 기본[一]을 항상 견지한다[止]는 의미예요. 바를 정. 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正直(정직), 端正(단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善은 羊(양 양)과 言(말씀 언)의 합자예요. 말하는 것이 양처럼 순하다는 의미예요. 착할 선. 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善行(선행), 善心(선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略은 田(밭 전)과 各(각각 각)의 합자예요. 농지[田]를 구획짓고[各] 경작한다는 의미예요. 田은 뜻을, 各은 뜻과 음(각략)을 담당해요. 다스릴 략. 생략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구획짓고 경작함에 따라 번거로운 일이 줄어들게 됐다란 의미로요. 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戰略(전략), 省略(생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인터넷에서 정선상략 문구를 검색하다 이 문구가 아토미라는 다단계 판매회사의 올해 경영 방침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혹 추어탕 집의 정선상략 구호는 이 회사에서 건네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토미를 통해 식재료를 공급받다보니 이 구호를 붙이게 된 것 아닐까 싶었던 거죠. 이게 사실이라면, 이 구호를 건네 받으며 주인되는 분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떻게 이렇게 우리 식당과 잘 어울리는 구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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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물의 신 하백의 손자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쫓기고 있다. 도와줄 수 있겠는가?"

 

주몽(고구려의 시조)이 부여군의 추격에 쫓겨 강가에 이르렀을 때 물을 바라보며 한 말이에요. 화급한 처지지만 당당하게 말했어요. 이 말에 물고기와 자라들이 감응하여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어 주몽은 무사히 강을 건너죠. 추격군이 뒤쫓아 왔을 때, 물고기와 자리들은 다시 흩어졌구요.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물고기와 자라들이 주몽의 말에 감응하여 다리를 만든 것은 필경 주몽을 도왔던 그 어떤 세력의 신화적 표현일 거에요. 더불어 그들을 감동시킨 주몽의 비범함을 나타낸 것이기도 할테구요.

 

그런데 이 대목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도 무리 없어요. 주몽의 비범함은 물고기와 자라들을 감동시켜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고요. 주몽의 말이 전하는 기본 메시지는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니, 이 점만 부각시킨다면 어떤 해석이든 무방할 거예요.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魚龍)이 감동하고(誓海魚龍動) /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주네(盟山草木知)"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중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자신의 맹세가 어룡과 초목도 감동시킬만 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장군의 맹세가 실제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켰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맹세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만은 확실해요. 형태는 다르지만 저 주몽의 말 그리고 그에 감응한 어별(魚鼈)의 모습과 대차 없어요. 이순신 장군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의 한자는 '일서해산립강상어백대(一誓海山立綱常於百代)'라고 읽어요. '한 번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 백대에 변치 않을 떳떳한 윤리를 세웠도다.'라고 풀이해요. 현충사 주련(柱聯)중 하나예요. "한 번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는 위에 든 장군의 시 내용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고, "백대에 변치 않을 떳떳한 윤리를 세웠도다."는  시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에요. 어룡과 산천이 감동하고 알아줄 정도의 맹세였기에 백대의(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윤리를 세울 수 있었단 의미로요. 여기 맹세는 당연히 구국진충(救國盡忠, 나라를 구하고 충성을 다함)의 맹세일 거예요.

 

우리도 맹세를 하죠. 그러나 그 맹세가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죠. 아니, 감동시킨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죠.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의 맹세가 일신의 향상을 위한 맹세이지 그것을 넘어선 큰 가치를 지향하는 맹세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맹세는 지켰을 경우 자신에 대한 만족에 그칠 것이고, 지키지 못했을 경우 자신에 대한 불신에 이를터이니 어찌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킬 수 있겠어요? 장군이 자신의 맹세가 초목까지 감동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은 평소 자신에 대한 만족과 신뢰를 구축했음은 물론 이를 넘어 더 큰 가치- 구국진충 -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할 거예요. 이순신, 확실히 비범한 인물이었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誓는 言(말씀 언)과 折(꺾을 절)의 합자예요. 맹세한다는 의미예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折은 음을 담당하면서(절→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과거에 맹세를 할적엔 약속의 증표로 부절이란 것을 만든 뒤 이를 반으로 쪼개 나눠 가졌어요. 하여 부절을 쪼개 나눠갖는 것은 맹세의 상징이 되었지요. 여기서 折은 이런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맹세할 서. 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誓約(서약), 宣誓(선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綱은 糸(실 사)와 岡(언덕 강)의 합자예요. 벼리(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란 의미예요. 糸로 뜻을 표현했어요.  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언덕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벼리란 의미로요. 벼리 강. 위 시에서 綱은 이차 의미로 사용되었어요. 핵심이 되는 윤리란 의미로요. 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紀綱(기강), 大綱(대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常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예요. 존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내세웠던 깃발이란 의미예요. 巾은 뜻을, 尙은 의미와 음을 담당해요. 지금은 떳떳하다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떳떳할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常規(상규), 正常(정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시각에  전환점을 제공한 작가는 김탁환 씨예요. 그는 자신의 작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을 '칼을 든 사대부'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이전까지 이순신의 모습은 훌륭한 장수인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졌지요. 이는 시대 변화와 상관성이 있어요. 영웅의 모습은 군사정권하에서였고, 칼을 든 사대부의 모습은 문민정부하에서였거든요. 이순신은 우리 역사의 물줄기가 크게 바뀔때마다 구원의 상징처럼 등장하죠. 앞으로 통일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인물로 그려질 지 자못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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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8-06-18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글은 항상 알차고 좋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짧은 글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저 무심은 감동합니다

찔레꽃 2018-06-18 08:42   좋아요 0 | URL
무심 선생님, 격려 감사합니다. ^ ^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속으로 중얼거려요. 때로는 소리내어 외치기도 하구요. 사연이 있어요. 영상을 보고난 뒤 부터예요.  두 유리병에 갓 지은 밥을 담아놓고 한 쪽에는 좋은 말을, 한 쪽에는 나쁜 말을 들려 줬어요. 일주일이 지난 후 두 병의 밥 상태를 살폈어요. 좋은 말을 들려준 곳은 밥 상태가 깨끗했고 나쁜 말을 들려준 곳은 밥 상태가 안좋았어요. 거의 썩은 상태였어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실제로 입증된 현상이에요. 욕설의 해로움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영상이었어요.

 

욕 혹은 불만에 찬 말은 상대에게 내뱉기전에 내가 먼저 말하고 내가 먼저 듣게 돼죠. 따라서 욕 혹은 불만에 찬 말은 상대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전에 내게 먼저 나쁜 영향을 주지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비록 상대가 밉더라도 좋은 말을 한다면 상대에게도 내게도 좋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하다보니 매사 불만이 많고 감사하는 마음이 적어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조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보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확실히 효과가 있어요. 상대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불만스러운 상황이 있어도 속으로 이렇게 말해요. "그래, 뭔가 사정이 있겠지?" 운행중 새치기 하는 차가 있으면 전에는 화를 내거나 상스런 말을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말해요. "그려, 급한 사정이 있겄지. 조심허게~" 마음이 여유있어지니 얼굴에 미소가 절로 머물더군요. 전엔 거울을 보면 심각한 얼굴이었는데, 요즘엔 환한 얼굴이에요.

 

사진의 한자는 "자리이타여조양익(自利利他如鳥兩翼)"이라고 읽어요.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란 뜻이에요.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란 의미를 새의 양 날개에 견줘 설명한 내용이에요. 앞서 소개한 영상의 내용이나 제 경험으로 볼 때 결코 틀리지 않은 말이에요. 예산 수암산에 있는 법륜사 주련(柱聯) 중 하나예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利는 禾(벼 화)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벼를 수확한다[刂]란 의미예요. 이롭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벼를 수확하니 이로움이 많다란 의미로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利潤(이윤), 利益(이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他는 본래 佗로 표기했어요. 佗는 人(사람 인)과 它(蛇의 옛 글자, 뱀 사)의 합자예요. 짐을 짊어지다란 뜻이에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它는 음을 담당해요(사→타). 후에 '다르다'란 뜻이 추가됐어요.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경우예요. 다를 타. 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他人(타인), 他鄕(타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如는 본래 '따른다'는 의미였어요. 과거 여성은 순종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女(계집 녀)를 주 의미로 사용했고, 여성이 따르는 것은 부모와 남편 자식의 말이었기 때문에 口(입 구)를 보조 의미로 사용했어요. '같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부모나 남편 자식이 말하는대로 똑같이 행동하고 따른다란 의미로요. 같을 여. 如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如一(여일), 如此(여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兩은 본래 좌우 대칭의 저울을 그린 것으로, '똑같이 나눈다'란 의미였어요. '둘'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똑같이 나눈 두 개란 의미로요. 두 량. 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兩立(양립), 兩面(양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翼은 羽(깃 우)와 異(다를 이)의 합자예요. 날개란 뜻이에요. 羽로 뜻을 표현했어요. 異는 음을 담당하면서(이→익)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異에는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란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날개가 그같은 형태란 의미로요. 날개 익. 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左翼(좌익), 右翼(우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최근 남북 북미 관계가 해빙 무드를 맞고 있죠. 이것도 자리이타의 한 예가 아닐까 싶어요. 자리이타란 그저 개인의 심성수양을 위한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세상사를 통찰한 지혜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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