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이단인데…."

 

맞선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교회 얘기가 나왔어요. 상대 여성은 감리 교회에 다닌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맞선을 주선했던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났어요. "그 색시 신심이 깊어!" 당시 종교가 없던 저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나 고민하다 어렸을 적 잠깐 다녔던 안식 교회가 생각나 다소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어요. "저는 안식 교회에 다닌적이 있어요." 그러자 상대 여성은 얼굴빛이 변하며 저 말을 하더군요. 30년 전 일이에요.

 

종교가 없는 이에게 '이단'이란 말은 별 충격이 없지만, 종교가 있는 이들에게 '이단'이란 말은 충격이 큰 말 같아요. 당시 그 여성의 안식 교회에 대한 혐오스런 표정은 지금도 생생해요. 그런데 무신자의 입장에선 솔직히 뭐가 이단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정통이니 비정통[이단]이니 구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거죠. 정통이나 비정통의 구별은 교리의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일 같은데, 외람된 말이지만, 무신자의 입장에선 와각지쟁(蝸角之爭)으로 밖에 안보여요.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요. 한 작가가 우연히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해석 논쟁을 하는 자리에 가게 돼 논쟁자들이 자신[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을 봤어요. 작가는 신분을 감춘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지만 참석한 논쟁자들에게 면박만 받았어요. 정통과 비정통 논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통이든 비정통이든, 무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하나님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방콕에서 찍은건데, 침례교의 한 지파 건물 사진이에요. 침신회회은당(浸信會懷恩堂)이라고 읽어요. 침신회회은당은 아래의 영문 표기 Grace Baptist Church를 한역(漢譯)한 거예요. 침신회 즉 침례교는 신교의 한 파로 세례시 침례를 중시하는 교파예요. 속죄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일반 침례교파와 선택받은 이들만 속죄를 받는다는 속죄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특수 침례교파로 나뉘어요(이상 침례교에 관한 내용 Daum 백과사전 참조). 이 교파의 건물은 침례교회라는 의미의 Baptist Church 앞에 은혜라는 의미의 Grace를 덧붙인 것으로 보아 침례교파중 특수 침례교파에 속하지 않나 싶어요. 이 지파의 교회는 정통으로 인정받을까요, 비정통으로 취급될까요?

 

낯선 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浸은 담그다, 배어들다란 의미예요. 氵(水의 변형, 물 수)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담글 침. 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浸透(침투), 浸水(침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懷는 잊지 않고 늘 생각한다는 의미예요. 忄(心의 변형, 마음 심)으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품을 회. 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懷疑(회의), 懷抱(회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恩은 은혜란 뜻이에요. 心(마음 심)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因은 음(인→은)을 담당해요. 은혜 은. 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恩惠(은혜), 施恩(시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전국민의 95%가 불교도인 국가[태국]의 수도에 있는 저 교회를 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더군요. 모쪼록 상호간의 교리를 존중하고 비토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 어떤 종교이든 사람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삶의 목표와 가치를 세움)을 안겨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진데, 거기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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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오후. “학교 다녀왔습니다~”를 외치며 방문을 와락 열었다. 그러나 평소 반갑게 맞아 주던 어머니는 안계시고 뒷문에 비친 오후의 긴 햇살만이 방안에 드리워 있었다.

 

늦가을 오후. 하숙방에 들어서니 책상 앞 큰 창문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방안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주인은 집을 비웠는지 안채는 고요했다.

 

한겨울 오전. 거실 유리문을 통해 따뜻한 햇살이 탁자에 쏟아졌다. 식구들은 모두 집을 나갔고, 유리문 앞에선 고양이가 졸고 있었다.

 

사진의 시를 대하면서 떠올린 제 기억 속의 장면이에요. 평온하고 고즈넉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전해줘요.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 그리고 주로 오후라는 시간적 배경 여기에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 빚어낸 장면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진의 시는 향잔숙묵임신첩(宿墨臨新) 일영허창감구시(日永虛窓勘舊)’ 라고 읽어요. 일영허창감구시(日永虛窓勘舊)는 사진에 거의 보이지 않죠? 사진에 보이는 부분만 읽을까 하다 시의 분위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보완해서 읽었어요. 이렇게 해석해요. ‘향이 남아 있는 갈아놓은 먹으로 새 법첩을 임서하고 / 햇살 긴 텅 빈 창가에서 구시(舊詩)를 매만지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둘째구로 추측해 보건데 가을 무렵이 아닐까 싶어요. 햇살이 길게 뻗는 때는 봄 · 여름 · 겨울에도 있겠지만 여기는 가을의 햇살로 추측돼요. 그 이유는 다음에 나온 텅 빈 창가 때문이에요. 텅 빈 창가는 봄날의 화사한 꽃그늘이 비치는 창가도 아니고 여름날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창가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겨울날의 차가운 북풍을 맞는 창가도 아니고요. 가을날의 창가가 어울려요. 그래서 계절 배경을 가을로 추정해 본 거예요. 아울러 둘째 구 끝부분 내용도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란 점을 추측케 해줘요. 화사한 꽃그늘이 비치는 창가에서나 혹은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창가에서나 또는 차가운 북풍이 부는 창가에서 과거에 지은 시를 매만진다는 것은 그리 어울리지 않아요. 가을날이 적당하죠.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햇살이 긴 것으로 보면 오후예요. 그리고 시인은 그 계절과 시간대에 홀로 있어요. 시속엔 주변의 기척을 드러낸 내용이 없어요. 이 시는 평온하고 고즈넉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기 충분한 조건을 갖췄어요(첫째 구의 내용은 둘째 구에 비해 계절이나 시간적 배경이 추측하기 어렵게 돼있어요. 그러나 시의 전체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충분히 일조하고 있어요. 고요하고 텅 빈 방안에서 글씨를 쓰는 모습은 둘째 구의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운 창가에서 시를 고르는 모습과 짝을 이뤄 이 시의 전체적 분위기를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러한 계절과 시간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라고 모두 슬프거나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는 않을 거예요. 외려 충만한 분위기를 전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시에서는 충만한 분위기 보다는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가 강해요. 이것은 객관적 설명이 다소 어려운데, 이 점은 이 시를 지은이에 대한 평가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주련(柱聯)의 시를 지은 이는 이서구(李書九, 17541825)예요. 실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죠.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외로움은 일생동안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벼슬보다는 은거(隱居)에 미련을 가졌어요. 그의 시는 혁신적이거나 현실에만 치우치기보다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두텁고 더불어 사색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요(이상 인용문 encykorea.aks.ac.kr. 참조). 이서구에 대한 평가를 배경으로 위 시를 대하면 이 시가 왜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전해주는지 조금은 납득이 되죠?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부서진뼈 알)(해칠 잔)의 합자예요. 상해를 입었다란 의미예요. 상할 잔. 나머지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주로 에서 의미 연역이 됐죠. 남을 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殘酷(잔혹, 殘飯(잔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수건 건)(차지할 점)의 합자예요. 백서(帛書)에 쓴 표제(標題)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표제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한다는 의미로요. 표제 첩. 탑본(搨本)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탑본 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標書(표첩), 法帖(법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심할 심)의 합자예요. 두 번 세 번 살펴 정확성을 기한다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삼았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세밀하게 살필 적에는 평범해선 안 되고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함이 요구된다는 의미로요. 헤아릴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校勘(교감), 戡定(감정, 생각하여 정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부엉이 환)(절구 구)의 합자예요. 수리부엉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수리부엉이 구. 옛날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차한 거예요. 옛 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新舊(신구), 舊態(구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주련 시가 있는 곳은 한국의 집’ ‘녹음정(綠吟亭)’이에요. 사진은 보다시피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표지 사진이에요. 한국적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해 이곳에서 찍은 것으로 보여요. ‘한국의 집에서 찍었으니 표면적으론 무리 없지만 주련의 내용이나 장소가 방탄소년단과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아요. 그들의 활달한 안무와 노래를 생각하면 역동적인 면이 강조된 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한국은 결코 고요한 은자의 나라가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서양인들의 눈에 설 비친 모습일 뿐이죠. 고요한 은자의 나라 국민이 어떻게 방탄소년단 같은 역동적인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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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1-3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탄소년단 사진이 걸려있어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주련의 글귀 내용이 쓸쓸하네요. 이렇게 다소 쓸쓸한 내용의 글귀를 주련에 담는 예가 흔했는지 모르겠어요.
전문을 보니 앞의 두 구절에 버들강아지와 복숭아꽃이 나와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찔레꽃 2019-01-31 14:4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군요. 엉터리 해몽을 했네요. 역시 단장취의는 위험해요 ㅠㅠ 다음엔 좀 더 세밀히 자료를 찾아보고 글을 써야 겠습니다. 에두른 세심한 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생선 요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득이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나는 생선 요리보다 곰 발바닥 요리를 택할 것이다."

 

『맹자』에 나오는 이 구절은 맹자가 생(生)과 의(義)의 선택점에서 생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내놓은 말이에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내세운 비유죠. 재미있는 것은 이 구절에서 맹자 당시 요리의 일부분을 알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구절에 등장한 곰 발바닥 요리는 지금도 특별하고 값비싼 요리로 취급되는데 이것이 기원전 3~4세기에 있었다는게 경이로워요. 

 

맛을 추구하는 요리란, 다른 것이 대개 그렇듯, 양적인 충족 위에서 등장하는 거예요. 배고픈 처지에선 찬 밥 더운 밥 가릴 겨를이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맹자가 살던 시대에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 음식이 있었다는 것은 음식의 양적인 충족이 이미 달성됐다는 것을 반증하고, 나아가 요리 수준이 상당했다는 것을 말해줘요. 하지만 이것이 당시의 보편적 음식 문화였던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요. 『맹자』에 보면 굶어 죽는 백성들의 참상을 말한 내용도 있거든요.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음식 문화로 보는게 타당할 거예요.

 

요즘 행사장의 음식은 대부분 뷔페식이죠. 이는 우리의 음식 문화 수준이 양적인 충족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줘요. (물론 여전히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그럴까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했던 어떤 돈까스 집은 손님이 하도 많아 대기실까지 차렸더군요. 이렇게 음식 맛을 탐하는 행위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탐(貪)이란 것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니 부정적인 평가가 앞설 수 있지만 긍정적 평가도 가능할 것 같아요. 참맛을 찾기 위한 여정의 일환으로요.

 

사진은 심미(尋味)라고 읽어요. 맛을 찾다, 란 뜻이에요. 태국 치앙마이에서 찍었어요(이곳은 중국 자본과 관광객이 넘쳐 나더군요. 그들을 위해 간판 대부분에 한자가 병기되어 있더군요). 심미 옆에 '융합채(融合菜)'라는 말이 있는데, 다양한 채소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는 곳 같아요. 끼니 때 였으면 들어가 봤을텐데, 끼니를 비낀 때라 그냥 사진만 찍고 말았어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尋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寸(마디 촌)의 합자예요. 손으로[又] 거리를 측정하듯[寸] 정교한[工] 근거와 말솜씨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다란 의미예요.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尋訪(심방), 尋常(심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味는 口(입 구)와 未(아닐 미)의 합자예요. 맛이란 의미예요. 口로 뜻을, 未로 음을 표현했어요. 맛 미.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吟味(음미), 調味(조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뷔페에 가보면 대부분 새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새 접시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돼요. 굳이 새 접시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군요. 자신이 먹던 음식을 담았던 접시이니 위생상의 문제도 없고, 사용했던 접시라고 음식 맛에 특별히 지장을 줄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미관상 좀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흐트려가면 먹을 것인….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여담 둘. 음식의 참맛은 어디에 있을까요?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소박한 요리에 있지 않을까요? '반자 도지동(返者 道之動, 돌아오는 것, 그것은 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이라고 화려한 맛의 끝은 소박한 맛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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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지."

 

오래 전. 서울에 올라가 연수를 받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한 동료가 제게 저녁을 샀어요. 동료는 서울서 근무하다 지방으로 내려왔어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한 마디 했어요.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그러자 동료는 웃으며 "내 구역에 왔는데 그럴수 있나?" 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던 끝에 저 말을 했어요.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어요.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좌우할 수도 있지." 연수받느라 고생한다는 위로의 마음이나 말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밥 한 끼 사는 행위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며, 때로는 그 행위가 마음이나 말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한 거였어요. 

 

시를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면, 보통은 내용을 우선시할 거예요. 그러나 저 동료의 말을 대입하면, 때로는 형식이 우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발 더 나아가 형식이 내용을 좌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 형식은 표현 방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에요.

 

사진은 추사(秋史)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병풍의 일부분이에요. 제사용 병풍으로 제작되어 시중에 판매되는 것인데, 병풍 마지막에 추사라는 낙관이 있더군요. 제사용 병풍으로 판매되는 것이라 추사의 진적(眞迹)이 아닌 것은 분명해요. 추사의 진적 복사본을 또다시 복사하여 만든 것이거나, 진적 임서본을 복사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돼요. 혹은 추사체를 모사하여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글씨의 진위를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추사의 시가 맞을까 하는 생각만 했어요.

 

시를 100번 가량 소리내어 읽어 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표현이 많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표현이 어색하니 내용은 도외시 되구요. 음식 그릇이 깨끗지 않으니 음식에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시를 읽어 볼까요?

 

高齋晴景美  고재청경미   높은 정자 개인 경치 아름답고

淸氣滿園林  청기만원림   맑은 기운 원림에 가득하여라

倚杖寒山暮  의장한산모   지팡이 짚고 거니는데 한산은 저물녘

開門落照深  개문낙조심   문을 여니 낙조 짙었네

 

이 시는 이른 시간에서 늦은 시간까지 그리고 높은 공간에서 낮은 공간까지 자신이 바라본 경치를 그렸어요. 이렇게 시공간의 변화를 주면서 경치를 그린 건 경치의 미감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그런데 압축을 중요시하는 한시에서는 시공간의 변화를 굳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일부분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도 충분하죠. 이런 면에서 이 시는 실패했어요. 첫째 구에서 비개인 산뜻한 경치를 표현했는데 이 내용을 둘째 구에서 반복하고 있고, 셋째 구에서 저물녘의 풍경을 그렸는데 이 내용을 넷째 구에서 반복하고 있어요. 이 시는 첫째 구와 셋째 구 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시예요.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도 돼죠. 아울러 이 시의 치명적인 실수는 첫째 구의 '아름답고[美]'란 표현이에요. 풍경의 아름다움을 시 전체를 통해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지 시인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말해 버리면 그건 시가 아니라 산문이죠.

 

이 시의 또 다른 표현 실패는 계절감을 나타내는 시어의 일관성없는 사용이에요. 첫째 구의 '개인 경치' 둘째 구의 '맑은 기운' 셋째 구의 '한산' 넷째 구의 '낙조'는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이 언제인지 헛갈리게 만들어요. 첫째 구와 둘째 구의 시어를 보면 계절이 여름인 것 같은데, 셋째 구와 넷째 구의 시어를 보면 계절이 가을인 것 같거든요.

 

이 시가 추사의 진작(眞作)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읽을수록 느껴지는 표현의 어색함을 생각하면 추사의 진작이 아닐 것 같아요. 백 번 양보하여 추사의 진작이라 해도 표현에 있어선 그다지 후한 평가를 주기 어려워요.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齋는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제사 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예요. 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齊는 음(제→재)음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것은 그 둘을 가지런히 일치시키는 것이란 의미로요. 재계할 재. 제사를 지내는 집 혹은 서재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제실 재. 서재 재. 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書齋(서재), 齋戒(재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倚는 人(사람 인)과 奇(기이할 기)의 합자예요.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奇는 음(기→의)을 담당해요. 의지할 의. 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倚子(의자), 倚支間(의지간, 처마끝에 잇대거나 집채의 원간에 기대어 늘여 지은 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杖은 木(나무 목)과 丈(길이 장)의 합자예요. 기다란[丈] 지팡이[木]란 의미예요. 지팡이 장. 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几杖(궤장, 안석과 지팡이. 공로많은 노대신에게 내리던 상), 短杖(단장, 짧은 지팡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꼭 그렇게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요. 표현의 절제미를 상실한 것은 충분한 미감 전달을 위해 부득히 사용한 것이고, '아름답고'란 직설적 표현 또한 그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기에 부득히 사용한 것이며, 계절의 미감을 살리지 못한 표현은 있는 그대로 그릴 뿐 일관성을 염두에 둔 작위적 표현을 배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 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저만의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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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가보라고 하셔서.”

 

어느 날 군수가 저희 집을 방문해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말했어요. 그러면서 내복 한 벌을 선물로 드렸어요. 담소 후 집을 떠나며 아버지께 말했어요.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주십시오.” 군수의 방문은 동네의 화제가 됐어요. 아버지 얼굴엔 희색이 만연했죠. 그 해 겨울 아버지는 청와대로부터 각하 내외의 사진이 담긴 신년 연하장을 받았어요. 연하장을 받은 아버지 얼굴엔 또 한 번 희색이 만연했어요. 이 연하장은 아버지 생전에 거의 가보 수준으로 취급받았어요.

  

자신보다 한층 위에 있는 사람의 방문이나 서신을 받으면 감동하죠. 그 순간은 자신이 온 세상을 가진듯한 환희를 맛볼 거예요. 사진의 내용도 이와 유사해요. 옛글이라 매우 점잖게 표현됐지만 상대의 글을 받았을 때의 환희를 짐작할 수 있어요.

  

浮世淸緣 何以易就 且須隨喜方便 不必自惱自勞也 阮堂先生自欲句 堵冬(부세청연 하이이취 차수수희방편 불필자뇌자로야 완당선생자욕구 도동)

  

덧없는 세상의 맑은 인연인데, 어떻게 이루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좋은 방편을 기다릴 것이요 굳이 스스로 고심하고 수고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완당선생 자욕구. (글씨 쓴 이의 아호).

 

그런데 정작 읽어보니 편지를 받았을 이의 환희를 짐작하기 어렵죠? 이 글 이전의 생략된 내용을 읽어야 편지를 받은 이의 환희를 확실히 짐작할 수 있어요.

 

세후의 한 서신에 대해서는 마치 해가 새로워짐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꽃이 핀 때를 만난 것 같기도 하였으니, 그 기쁨을 알 만합니다. 그러나 다만 방만하고 초췌한 이 사람은 족히 높으신 권주(眷注)를 감당할 수 없을 뿐입니다. 산사(山寺)에 가자는 한 약속 또한(年後一椷 如瞻歲新 如逢花開 喜可知耳 但此頹放憔悴 不足以當崇注 山寺一約 亦) … (이상 번역: 고전번역원 DB 「완당(추사 김정희)선생이 석파(石坡)에게 준 편지글」)


 

확실히 편지를 받은 이의 환희가 느껴지죠 신분이 자신보다 높은 이가 산사에 가자고 청을 했으니 편지를 받은 이는 대단히 영광스러웠겠죠? 그러나 무슨 사정인진 모르지만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편지를 받은 이는 아쉬움을 달래며 후일을 기약하자고 말하고 있어요. 문맥은 상대를 위로하는 듯한 내용이지만 실제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거예요. 상대의 신분이 높으니 상대를 위로하는 어투를 취한 것뿐이지요.

  

여기 영광스런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추사 김정희예요. (‘완당선생이란 단어에서 이미 짐작하셨죠?) 그러면 그에게 영광스런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석파 이하응이에요. 흔히 흥선대원군으로 불리는 사람이죠. 석파와 추사는 내외 종간의 먼 친척이에요. 석파는 영조의 고손자인 남연군의 아들이었고, 추사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11촌 조카였거든요. 둘의 나이차는 서른 네살 이었어요. 추사가 위였죠. 그러나 석파는 왕실 사람이었기에 추사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그에게 산사에 함께 가자는 청을 담은 편지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마치 저희 아버지께서 각하의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마음과 진배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자칫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어요. 추사가 받은 편지가 석파의 대원군 시절 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그러나 추사가 받은 편지는 석파의 대원군 시절 편지가 아니예요. 대원군의 파락호 시절 편지예요. 석파가 대원군이 되었을 때 추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러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기겠죠? ‘아니 파락호 시절의 석파에게 그것도 한참이나 나 어린 석파에게 추사가 저토록 감읍하는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돼요. 세간에 석파가 파락호로 지낼 때 모든 이들에게 천대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석파가 의도적으로 파락호 행세를 한 건 분명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를 우습게 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는 추사의 감읍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석파는 파락호 시절에도 여전히 왕실 사람으로 존숭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事實)일 거예요. 추사집(최완수 역, 현암사: 1976)에 보면 추사가 석파에게 보낸 편지 7통이 나오는데 모두 극존칭을 사용하며 존숭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요.

  

사진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물 수)(의 약자, 알깔 부)의 합자예요. 물위에 떠있다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가 부화를 위해 알 위에 올라 앉듯 물체가 물 위에 떠있다란 의미로요. 뜰 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浮草(부초), 浮標(부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높을 경)(더욱 우)의 합자예요. 돌출적으로[] 높은 언덕이란 의미예요. 높을 취. 이루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높이 성취했다는 의미로요. 이룰 취.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成就(성취), 進就(진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터럭 삼)(머리 혈)의 합자예요. 턱수염이란 의미예요. 수염 수. 모름지기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가차한 경우예요. 모름지기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必須(필수), 須眉(수미, 수염과 눈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착)(떨어질 타)의 합자예요. 뒤따라간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따를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隨行(수행), 隨筆(수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뇌 뇌) 약자의 합자예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괴롭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음이 괴로우면 머리도 아프다란 의미로요. 괴로워할 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煩惱(번뇌), 懊惱(오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위 추사의 편지에는 생략된 부분이 또 있어요. 그런데 이 생략된 부분이 사실은 추사 편지의 핵심이에요. 석파는 추사에게 난초 치는 법을 배우는 과정중 자신의 작품집 난화(蘭話)에 대한 추사의 품평을 요청했고, 위 편지는 그에 대한 답장이기 때문이에요. 생략된 나머지 부분을 읽어 볼까요?

 

난화(蘭話) 한 권에 대해서는 망녕되이 제기(題記)한 것이 있어 이에 부쳐 올리오니 거두어주시겠습니까? 대체로 이 일은 바로 하나의 하찮은 기예(技藝)이지만, 그 전심하여 공부하는 것은 성문(聖門)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학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일거수 일투족이 어느 것도 도()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니, 만일 이렇게만 한다면 또 완물상지(玩物喪志)에 대한 경계를 어찌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지 못하면 곧 속사(俗師)의 마계(魔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슴속에 5천 권의 서책을 담는 일이나 팔목 아래 금강저(金剛杵)를 휘두르는 일도 모두 여기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큰 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갖추지 않습니다. (이상 번역: 위 번역 출처와 동일) 

  

담 둘. 사진의 (기쁠 희)’자는 (뜻 의)’자로 나온 곳도 있더군요. 개인적 생각으론 가, 문맥상, 더 자연스러워 보여요. 사진은 친구에게서 얻었어요. 서각을 가르치는 분이 써 준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담 셋. 각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에요. 아버지는 그를 찬양하는 한시를 지어 청와대에 보내셨어요. 저는 후일 아버지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껴 타계하신 뒤 청와대 연하장을 불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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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찬 2019-09-1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추사와 석파, 그리고 엮으신 분의 인품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건필하십시오.

찔레꽃 2019-09-1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