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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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김승옥 작가가 직접 작업한 각본이다. 소설 무진기행이 어떻게 시나리오 형식의 옷을 입고 재탄생했을까. 무진기행이라. 기억나는 것은 안개뿐이었다. 책을 사면 구입 년도와 날짜를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던 때라, 책에는 1996129일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글씨는 이렇듯 선명한데 내용은 흐릿하다.


 

책 안개를 읽다보니 소설 무진기행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시나리오에서는 생략된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해보자. 주인공 윤기준은 서울에서 제약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회사의 어떤 일로 인해 고향 무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여인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이 두 남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 각본상에서는 윤이 안 좋은 일로 인해 고향으로 잠시 피신 아닌 도피를 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소설에서는 일종의 휴가를 내려온 모습이다. 훌쩍 건너뛰어 마지막도 조금 살펴보자. 소설에서의 윤은 다시 자신의 삶 속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음을 나눈 여자 인숙은 무진과 무진을 둘러싼 안개 속에 남는다. 아니 어쩌면 버려지는 듯한 인상이 더 강하다. 그 와중에 변명 같은 편지를 썼다가 구겨버리는 윤이 달리는 버스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면 각본상의 결말은 소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각본상에서는 불쑥 등장하는 경찰들에 의해 서울로 연행? 되는 차 안에서 인숙을 향한 고백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종결을 짓는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소설과 각본은 약간의 차이를 갖는다. 마담의 존재도 그렇고. 두 주인공의 일종의 일탈행위도 그렇다.

 


실은 말이다. 오늘 새벽까지 침대에 누워 고민했던 것은 바로 안개가 갖는 상징적 의미였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짧게 남겼던 메모는 이런 것들이었다.

-안개. 보호막인 동시에 넘어서야 하는 거대한 벽? 짙은 안개로 인해 잃어버린 시야. 그에 대한 안도감? 혹은 불안감의 이중적 감정들. 결국 드러나는 민낯. 자살한 여자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

 


윤에게 있어 무진은 어쨌든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었든 그는 그 때마다 무진에 들어와 몸을 낮추고 숨결을 고르었으니까. 반면에 무진의 안개에 싸여 사는 이들에게는 벗어나고만 싶은 곳이 바로 무진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숙이 서울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었던 그녀에게 무진은 넘어서야 하는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안정감을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주는 곳이 바로 무진이었을까.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무진에 정착했다는 다방 마담의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 초반에 등장하는 미친 여자의 에피소드도 그리고 술집 여자의 자살도 그렇고.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주인공 윤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들이 아니었을까. 시나리오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설에서 그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글들을 말이다.

-갑자기 나는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접어든 우산에 묻은 물을 휙휙 뿌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p140


 

소설에서 주인공 윤이라는 인물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지만, 각본에서는 인숙의 심리와 내면의 것들을 더 집요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윤과 인숙이 주고받았던 대화는 각본상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과 각본이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약간의 차이인데 무엇에 더 중점을 두었는가에 대한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개는 위험하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안개는 안전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안개의 위험성과 안전함을 논하는 것은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달라질 법하다. 이들에게 있어 안개는 어떤 존재였을까. 윤기준과 하인숙, 마담과 다른 인물들에게 있어 안개를 몰고 오는 무진은 어떤 곳이었을까.


 

작가 김승옥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서울·1964년 겨울을 가장 아끼는가 싶다. 무진기행이든, 1964 겨울이든 내가 찾았던 것들은 이런 부분들이었다. 시대적 상황과 함께 인물의 내적 고뇌와 자괴감이 어떤 형식으로 펼쳐지며 또 어떻게 치유되는가? 라는 부분들이라고 할까. 작가의 시선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분함을 잘 유지하는 듯하다.

 


사설이다. 불쑥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이 생각난다. 천지간이 연상되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그렇다는 말이다. 낯선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어떤 것들. 익숙했으나 결국 낯선 것이었던 그 무엇들. 이 모든 것들은 늘 함께 공존하는가 보다.


 

---일상적인 생활이 난파할 때, 때때로 우리는 그 장소로 간다. 즐거운 듯한, 쓸쓸한, 그리고 무의식의 내면 속에서 무진의 안개는 피어오르는 것이다----p7

(이어령의 무진기행 평론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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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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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하루 이틀 사이 겨울의 대찬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니(겨울)도 힘이 들어 잠시 쉬어가는가. 삼한사온이라고 했던 말도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기후 변화 때문이겠지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니가 쉬고 있는 덕분에, 먼저 내린 눈이 서걱서걱 부석부석 소리를 내며 녹아들 것만 같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누군가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책이다. 경북 의성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다시 추억하며 글을 썼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빛깔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지개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에는 꽃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추억들이 함께 펼쳐진다. 그녀가 기억하는 꽃과 나무에 보태어진 추억들은, 곱고 아름다우며 딴은 부드러우면서 애잔하다. 마치 아롱지게 빛나는 무지개 같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화려하진 않아도 나름 아름다웠던 시절들 말이다.


 

처음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단순하게 꽃과 나무가 등장하는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저자의 유년 시절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자연과의 교감들이 저자의 추억 속에 한 아름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등장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저자의 시선이 마주했던 풀꽃과 나무와 자연이 선물해준 것들과 순박하게 잘 어우러져 자리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멀리 고향을 두고 온 이들에게는 고향을 생각하고 유년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나처럼 서울이 고향인 이들에게조차 막연하게 꿈꾸는 또 다른 고향의 이미지를 선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소개하는 꽃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꽃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느릅나무와 느티나무는 아무리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사진을 들여다봐도 차이를 잘 모르겠다. 되려 경북 영주가 고향인 남편이 더 잘 알 것 같은 이름들이 아닌가.

나는 꽃을 잘 모른다. 아니 아는 꽃이 별로 없다. 많이 알려진 뻔한 이름과 의미의 꽃들 말고 토종 꽃이라든지, 시골 맑은 곳에서 자라는 꽃들의 존재는 내겐 너무 멀리 있는 대상이다. 마가목이라든지, 박주가리꽃이라든지, 쥐똥꽃이라든지, 타래붓꽃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꽃들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궁금해졌다고 해야할까. 책 속에 꽃과 나무의 실제 사진이 없는 게 아쉬웠다. 아주 가끔 그림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일일이 사진을 찾아보다가 지쳤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보람 있는 수고로움이 아니었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꽃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노루귀꽃이다. 노루귀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란다. 가만 있자. 내가 이리 화려한 꽃을 좋아했던가? 화려한 듯 수려하고 단아한 듯하나 새촘한 느낌의 꽃이다. 꽃도 꽃 나름이라 생김새가 여느 꽃과는 달리 보였던 것이 시선을 끌었던가보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하더니 이젠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다. 꽃도, 나무도, 바람도, 하늘도, 구름도 예전하고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달라지고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 생각.....

어제는 지역 관광지 근처 어느 처마 밑에 매달린 긴 고드름을 발견하고 남편이 뚝 떼어다 건네주는 바람에 아이처럼 고드름을 들고 다녔다. 내가 지나온 유년의 편린에서는 깨끗한 고드름이 없었던가 보다. 손이 시려웠다. 버리려고 가지고 다녔던 마스크 봉지로 잘 싸서 고이 들고 다녔는데, 옆에서 직접 따준 이가 어린애 같다고 장난을 걸었다.

뭐랄까. 나는 고드름을 따준 이의 마음과 옛 추억을 존중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매달린 고드름이 더 좋았지만, 내게로 향하는 그 마음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기꺼이 함께 좋아하면 될 일이다.

 


몹시 춥고, 폭설이 내리고, 마음이 울적한 일들이 연이어 있었지만, 숲하루(필명도 곱다)의 책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을 통해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무심한 듯하지만 나는 결코 무연할 수는 없는 존재다. 그래도 도꼬마리(도깨비바늘)처럼 어딘가에 상처는 주지 않으며 살아가련다. 욕심은 그렇다. 인생은 참 힘겨운 무엇인데 다짐은 이리 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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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소란하지 않은 계절 현대시학 시인선 107
이경선 지음 / 현대시학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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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소란하지 않은 계절

 


현대시학시인선 이경선의 시집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접했다. 누군가는 시 읽기 좋은 계절을 일컬어 가을을 이야기하지만, 겨울도 시 읽기에 참 어울리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눈이 내렸다. 그냥 내린 게 아니고 많이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한파라는 말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가 싶다. 몹시 춥다.

기말고사 기간 중인 아들은 시험을 망치고 연이어 한숨만 내쉰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만 들어봐도 녀석이 만들어낸 하루의 기분을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책이나 봐야지 싶다. 그런데 책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감정은 이렇게 전염성이 큰가보다. 애틋하면서도 안타까운 것들이 꿈틀거린다. 시집을 읽고나면 생각이 참 많아진다.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질문이 잘못됐나?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이 젊은 시인의 시를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따뜻함과 보드라움. 여리고 아리고 아련함이었을까.

시집 말미에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까지 꼼꼼히 읽었다. 그는 아마도 이 시인이 짓고 있는 그만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기억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기억이라…….

 


그런데 말이다. 실은 해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면서도 온전히 그렇구나, 라고 받아내기가 싫었던가보다. 이건 또 무슨 꽁하게 못난 심술보인가.

해설은 그저 시집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살짝 참고만 하면 좋은 어떤 것이라고 해두자. 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읽는 이마다 다르다. 그러니 연연해하지는 말자.

각자가 시를 이해하는 영역과 정도가 다르다고해서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그냥 내가(각자가)가진 경험과, 내가 가진 철학과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그런 나의 고유한 성향으로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시집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있으며 꽃, 가을, , 여름의 부재가 달렸다. 각각의 장에서 눈에 드는 시들과 마음에 드는 표현들이 꽤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2부 가을에 실린 시들이 계속 마음에 들어왔던 것을 기억한다.

시인의 이야기 안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이따금 누이가 등장하고 아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따뜻한 관심과 정()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득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담겼던 시인 기형도의 시가 생각나더라) , 그리고 하늘과 별과 바람이 등장한다. 장터와 골목과 주차장과 빗자루도 보인다. 그렇게 시인의 시선이 잠시 머물다 간, 세상의 모든 장소와 순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순간순간에 시인은 그만의 따뜻하고 여린 눈길로 바라보이는 세상을 끌어안았던가. 그렇게 시를 지었나보다.

 



소란하지 않은 소란. 제목과 시에서도 등장하는 표현이다. 어찌보면 모순이고 또 역설 같기도 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나 또한 이 표현의 어그러짐이 가져오는 의미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웅장하지 않아도 좋다. 화려한 수식어가 없어도 좋다. 따뜻한 시를 좋아한다. 암울함으로 그친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시를 가슴에 담아두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그 울림을 그런 시들을 찾는다.

 



-건너편 미소 짓던 / 까만 머리칼 곱디곱던/ 젊은 날의 여인 머무는 곳//

한 생에 사무칠 적/ 그날엔 채 알지 못하여서/ 볕 따라 맑을 뿐이었더라//

마음밭 한편엔 고것이 어려/ 메마른 삶에 한 줌의 생명 되었더니//

생명과 사랑 나의 먼 고향/ 노니는 산록을 본다//

<시절의 산록 중. 일부인용>P33

 

 

 

멀리 눈 감은 하늘/ 다시 흰 눈이 푹푹 나린다//

순백의 거리에서/ 눈송이 하나 집어도 본다/ 보드란 것이 곱기도 하다//

저 여인도 곱다/ 까만 머리칼 찰랑이고/ 하얀 얼굴엔 빗금 한 점 없다//

너머의 눈발은 오늘도/ 오늘도 날리고/ 나는 계절을 걷고 있다//

<남산 놀이터 중 일부 인용>P55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덜컹이는 소리가 더는 아프지 않다/

여인의 구두굽도 멀리 동그라니/ 아물 것도 같다//

찰나의 빗살에도 새 계절이 왔다/ 꽃씨는 절벽에도 제 삶을 피웠다//

<꽃씨는 절벽에도 제 삶을 피웠다 중 일부 인용>P113

  

 


감정일랑은 강요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적어놓고 보니 그 짓을 내가 또 하고 있다. 이렇게 저질러놓고 반성하는 나는 기실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하는 구절을 다 적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나는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일까. 나는 시인의 시에서 무엇을 찾아낸 것일까.

 


마지막으로 묘하게 마음을 끌던 시의 전문을 옮긴다.


 

 

각자의 사정


 

사월의 벚꽃은 지천에 흐드러지다,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같은 날의 매화, 지천으로 피우길 바랐으나

저 자태 함부로 뽐내지 아니하였다

 


은행나무는 가로수가 되길 원치 않았으나

시월의 가로수엔 완숙한 은행이 한창이렷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기관지성 천식을 앓던 사내

숨이 가빠

마스크를 쉬이 쓰지 못하였고

 


자식 여럿 이고 살던 사내는

저 초가삼간 못 가

객이 없어도 문을 닫지 못하였다

 


열시가 넘어 거리엔 사람이 많다

어디로 갈까, 아직 불 켜진 여관으로

혹은 낯선 밤으로

갈 곳 없어 헤매는 이 많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각자의 사정 전문인용>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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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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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정치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정치 관련 두 번째 책이다. 진땀을 내게 하는 책이다. 학교다닐 때 보다도 더 좀이 쑤셨던? 시간이었다. 뭐가 이리 복잡하지.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은 파시즘이 무엇이며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제목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책 내용에 무수히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무엇일까. 친절한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극단적 전체주의적, 배외적 정치이념 및 체제-라고 한다. 자유주의의 부정 및 폭력에 의한 일당 독재와 지배자에 대한 절대복종을 강요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그러면 이데올로기는 뭘까. -사회집단에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제약하는 관념, 신조의 체계-라 설명한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국어사전을 들여다봐도 어렵다

 


생각해보면 사는 동안 한번은 파시즘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표현을 접해보지 않았을까. 물론 사회에 나와서 들어봤을 가능성보다는 학생 시절에 교과서에서 봤을 가능성이 조금 더 크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파시즘과 이데올로기의 정의는 친한 친구처럼 같이 따라다니는 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자 따로 떨어뜨려 들여다봐도 무게감이 상당한데, 두 가지 개념을 묶어놓고 보니 각각의 무게감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저자 제이슨 스탠리는 이 막중한 부담감을 떨치고 그만의 논리적인 이론과 설득의 힘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현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가감 없이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가 생각하는 틀 안에는 정치과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반적으로 짙게 깔려 있다.

 


그는 어쩌면 파시즘에 몰입해 이야기하기 위해 책을 썼다기보다, 파시즘과 이데올로기의 개념 내지는 성향과 흐름을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풀어가는데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에는 신화적 과거, 프로파간다, 반지성, 비현실, 위계를 포함한 열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겼다. 이번 책은 작가 제이슨 스탠리가 파시즘 이데올로기라는 틀로 새롭게 들여다보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이런 표현들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의 이야기는 파시즘이 어떤 식으로 내부에 영향을 미치고 뻗어가는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대립과 분립으로 변모시키는가, 또 이러한 변화들이 가져오는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문제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세밀하게 풀어가고 있다.

 


파시즘과 관련한 신화 이야기로 책의 첫 시작을 열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들여다볼 때 어떤 정치적 정당성을 신화에서부터 가져왔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구체적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싶다. 정치와 신화의 관계라니. 그런데 말이다. 파시즘의 시각이 아니어도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와 신화, 권력의 관계가 만들어낸 다양한 모순을 접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 대한 느낌은 난해하다. 실은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는 듯, 또 어떻게 보면 전혀 이해가 안 된? 기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그래도 지배 민족의 관점. 민족주의, 선동적 행태, 음모론, 페미니즘, 집단 망상, 가짜뉴스 그리고 진실의 외면 및 왜곡 등 저자의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다.


 

한국 사회도 시끌시끌하다. 지금 우리가 떠안고 있는 문제들은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본 문제들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책은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다시 뻗어가고 있는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분위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경고는 불쑥불쑥 섬뜩하기까지 하다.

 


파시즘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보면 어떻게든 다양한 문제 안에서 사회적 이슈를 끌어내 문제를 만들어내고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일. 또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들을 자유주의 관점에서 지적하고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와 그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일인가. 아니 앞으로도 우리는 그들의 언행들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일인가.

서툰 목수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어려운 숙제를 그만 끝내고 싶어진다.

 


많은 문장이 있었다. 이를테면 중요한 문장, 의미 있는 문장, 명쾌한 정의가 담긴 문장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싶어지게 하는 대목에서 한 부분을 이곳으로 옮겨본다.

 


-거짓인 의견을 침묵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오직 “[진리와] 오류의 충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참인 믿음은 열띤 논쟁과 불일치 그리고 토론의 시끄러움 속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비로소 지식이 된다-p113

 


마지막으로 번역의 아쉬움이 있음을 남긴다. 직역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더 자연스러운 문장과 문맥의 흐름으로 책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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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2-12-1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천예진님.. 저도 읽고 있는 중인데 진도가 안나가서 마무리 못하고 있습니다 ^^;; 근데 보니까 이 책에 서평이 제법 작성되어 있네요. 그리 인기를 끌만한 책은 아닌데 뭔가 신기합니다. 참.. 예진님 글은 잘 봤습니다. ^^

월천예진 2022-12-14 18:56   좋아요 1 | URL
저.~~~ 베터라이프님. 얄라님께 쓰신글이 제게 잘못 배달이 온 것 같습니다. 얄라님이 받으셔야하는 글을 제가 받으니 죄송스럽네요. ㅡ.ㅡ 부디 알라님께 다시 방문해주셔요.^^;;

베터라이프 2022-12-14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며칠 전에 얄라님과 댓글로 말씀 나누다가 무심코 월천예진님께 실수를 했네요 ^^;; 탈진실과 관련해 얄라님하고 길게 얘길 나누다 월천예진님을 얄라님과 착각했나봐요 ㅜㅜ 너무 죄송합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근데 내용은 월천예진님 글에 쓰려고 했던 내용이에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월천예진 2022-12-14 19:05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 감사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댓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요 책 보느라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기분이 가라앉았었는데 기분 업 되는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강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

베터라이프 2022-12-1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너그럽게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월천예진님도 항상 감기 조심하시길 빕니다. 오늘 엄청 쌀쌀한 날씨네요.. ㅜㅜ 또 들르겠습니다~~
 

눈길

 [책장파먹기 9-10]



이번 시즌 책장 파먹기의 마지막 책이다. 작가 이청준의 눈길’.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아 가장 만만할 것 같았는데 다시보니 가장 묵직한 책을 마지막에 남겨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무게감이라니.

꽤 오래전이다. 이십 대 초반쯤이었을까. 아직 남자친구도 없었고, 데이트라는 것도 할 줄 몰랐던 시절. 늦은 저녁 거실 소파에 엎드려 이 책을 보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때 곁에서 내 엄마가 했던 말이 먼 시간 속에서 잔잔하게 걸어나오는 것만 같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으며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눈길을 다시 읽는다. 수많은 생각들이 가슴을 훑는다. 코가 찡끗하게 울리는 걸 느끼면서 어느새 철없던 청춘의 시선에서, 한참은 늙어버린 중년의 시선으로 옮겨온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라는 자리는 원래 그런 것일까? 태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인연 중의 가장 거룩하고 또 가장 잔인한 인연이 어머니와 자식의 인연이 아닐까. 생각들이 이어진다.

 


소설 눈길에는 어머니와 아들과 아들의 부인이 등장한다. 도시의 분주함과 시끌벅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의 적막함. 어쩌면 의도된 침묵이다. 그렇게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형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고 남은 건 작은 초가집 한 채. 형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는 주인공 나는, 피해의식 속에서 형과 어머니에게 진 빚 따위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왔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소설은 하나의 계기로 인해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 외면한 채 숨겨놓은 어머니와 아들의 빚을 어쩔 수 없이 꺼내고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낡은 기억을 가져오면 단지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밥을 해줬다는 것. 눈길을 둘이 같이 걸었다는 기억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너무나 작은 부분만을 여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과하게 끌어안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손에 넘어간 집이었을망정 주눅 들고 위축되었을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 그 마음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완연하게 알 것도 같더란 말이다. 그냥 단지 문장으로 안다, 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작가의 감정. 그 감정이 불러오는 삶의 회한까지 이제야 다 알 것도 같더란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여기 현실에서 낙오가 된 모자가 있다. 아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동도 트기 전에 눈길을 헤치고 고향 집을 벗어나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떻게보면 어머니는 삶의 희망인 아들을 어두운 현실에서부터 도피시킨 인물이다. 그와 동시에 홀로 남겨져 암울한 현실에 남겨진 가녀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잿빛 우울함 안에서도 따스함을 보여준다...


 

더구나 동네에선 집집마다 아침 짓는 연기가 한참인디 그렇게 시린 눈을 해갖고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서라도 차마 어떻게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있더냐. 그놈의 말간 햇살이 부끄러워져서 그럴 엄두가 안 생겨나더구나.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자고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라....”p 117

아들과 함께 걸어온 발자국이 찍힌 눈길을 어머니는 홀로 되돌아간다. 눈길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이다. 그리고도 또 모든 것을 받아주고 덮어주는 어머니의 모정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담이다. 이틀 전 먼 집안 어른이 소천하셨다. 생과 사는 늘 멀리 있지 아니하거늘. 삶은 늘 사는 것과 죽는 것을 함께 이고 이어진다. 그래서 더 두렵고 간절하다.

삶 속에서 어머니의 자리, 부모의 자리는 어떠한지. 자식의 자리에서 느끼는 무게감은 또 어떠한지. 함께 느끼고 공감하지만 겉으로 드러내 표현할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우리 모두의 존재감을 힘들게 하는지를 생각한다.

결코 살면서 빚지지 않은 이는 없지 않은가. 엄마, 아니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아픈 빚을 지고 살아간다.


 

소설 속 화자 또한 그러하고 소설을 읽는 나도 그러하고 모두가 다 비슷하지 않은가말이다. 그놈의 삶의 빚. . ..... 빚이 더 큰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받아내고 살아가는 방법을 또 이렇게 배우며 사는가 싶다.


 

가지고 있는 책은 19971판을 냈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작가 이청준에 대한 추억을 다시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문체에 익숙하고, 그의 문장을 사랑한다. 이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젊은 작가들에게서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사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해서 드는 자괴감 같은 하소연일 수도 있다. 소설 눈길은 중편 정도 되는 분량이다. 책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함께 실렸다. 조근조금 나지막하게 풀어가는 작가 이청준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책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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