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도둑 우리문고 21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선희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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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참 안 좋다. 딱히 미운 등장인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게다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전쟁을 그리는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력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이들이 우리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전쟁은 그렇게 간단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겪고 있으니까. 게다가 전쟁 당사국의 의지보다 다른 것(근현대의 전쟁을 보면 이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이 더 큰 영향을 주니까.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유대인과 장애인 및 거리의 부랑자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를 어느 꼬마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건지 아니면 부모가 모두 죽었는지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고 있다. 그것도 고아원에서도 아니고 거리에서. 그러니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배우지 못한 채 눈치로 상황을 파악한다. 대개 이런 이야기는 적어도 주인공의 이름은 지어주는데 여기서는 그 마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깨닫는데 시간이 덜 걸린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저절로 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절로' 아는 것은 없다. 모두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이다. 그런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려져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이 혼자 살게 된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누가 지어줄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남들이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게 자신의 이름인 줄 알았을 게다. 이 얼마나 섬뜩한 설정인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유리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들려주자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듯 기뻐한다. 그렇게 유리에게 미샤라는 이름을 선물로 받고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배워간다. 그러나 어린 미샤마저도 유대인이라면 무조건 안 좋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게 바로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 속에서 배우는 선입견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그렇게 믿어버리는 선입견. 어떤 것이 잘못되면 무조건 유대인을 의심하고 그러다 진짜로 믿어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집단. 그러나 난 여기서 왜 유대인에게 무조건 너그러운 마음을 못 갖는 걸까. 그건 아마도 당시의 상황은 분명 유대인이 아무 잘못없이 오로지 나치의 잘못이었다지만 그보다는 지금 그들의 행태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게다. 자신들이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해보았으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고통을 주면 안 되는데. 마치 호된 시집살이를 산 며느리가 나중에 똑같은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게 바로 '환경탓'이라는 것일까. 

여하튼 미샤는 정말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노인이 되어 손녀를 통해 간신히 정상적인 삶을 느낀다. 만약 미샤가 전쟁이 끝난 후에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정말 마지막에서야 '정상'을 경험한다-우울한 미샤의 삶을 함께하는 동안 나도 우울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게 더 우울하게 만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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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사라져 가는 세계 부족문화
크리스티안 라바퀘리-클랭, 로렌스 페루스테르홀츠 지음, 박상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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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다른 나라의 오래된 풍습은 (비록 현대와 너무 안 어울리고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고 힘겹다 하더라도) 지켜져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의 것은 현대적으로 발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거기에 약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전통 가옥의 경우 아름답고 편안하며 마땅히 그런 집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막상 내가 그런 집에 살고 있더라도 그런 생각을 할까 싶다. 겨울이면 외풍 때문에 입김이 나고 마룻바닥이 차가워서 발을 대기도 힘든 그런 집에서 살라면? 아마도 그래서 지금처럼 민속마을을 지정해 놓지만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떠나는 것일 게다. 게다가 현대적인 건물에서 살던 사람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남아날 전통이 하나도 없겠다. 내가 너무 염세적으로 생각을 했나 보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삶의 방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어쨌든 이 책은 아메리카의 여러 부족을 소개하며 그들의 삶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준다. 그러면서 그들의 유산을 설명해 주는데 유렵의 유산들처럼 거창한 멋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물건을 담는 광주리조차 그냥 물건을 담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술이 들어 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들어 있다. 잉카 족은 매듭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기도 한단다. 그러니까 매듭으로 이야기나 노래, 신화를 전달한단다. 물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었겠지. 그런데 사진을 잘 살펴보면 가끔 그것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다른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아마도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 아닐까.  

'사라져 가는 세계 부족문화'라는 일부 제목을 보고 당연히 아프리카일거라고 생각했다. 글자는 아메리카라고 읽으면서도 말이다. 워낙 부족하면 아프리카가 자동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아프리카 못지 않게 다양한 부족이 있고 고유한 풍습이 있는 아메리카의 여러 부족을 돌아보며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현대 문명만 접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에게도 분명 남들이 경탄하는 전통문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구시대의 풍습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전통으로서 보존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서 누군가가 나서서 해주길 바라고 있다. 혹 나처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건 아닐까 내심 기대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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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왓? 맛있게 먹은 음식은 어떻게 똥이 될까?
이상배 지음, 백명식 그림 / 왓스쿨(What School)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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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소화과정을 이야기하리라는 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기에 차례를 보지 않고, 이야기의 처음에 나온 제목도 흘려보낸 채 읽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소화과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오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럼 간단하게 이야기한 뒤에 중점적으로 소화를 다루겠지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오감이 서로 자기가 중요하다고 싸우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결국 모두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그제서야 알았다.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감각에 대한 이야기 하나와 소화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 안에는 옛이야기가 들어있는데 진짜 옛이야기가 아니라 옛이야기 형식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나중에 각 감각기관을 이야기하며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그림도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기능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기관에 해당하는 속담을 말해주는데 이것이 다른 책과 다른 부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가 바로 소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역설적이게도 소화되지 않은 감씨가 지나가는 길을 보여주며 소화를 설명한다. 싹을 틔우기 위해 모든 역경을 이겨낸 감씨. 똥으로 나와서 드디어 언젠가는 나무로 태어나겠지. 아이가 다행히 들에서 볼일을 봤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뻔했다. 다만 아이가 새를 쫓고 있었다는데 요즘 대부분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나 이해하려나 모르겠다. 시골에서 자라더라도 새 쫓는 건 모를 텐데. 게다가 이렇게 밖에서 볼일을 본다는 설정이 언젯적 얘기일까. 그런데 첫 부분에 했던 이야기를 잘 보면 이해가 된다. 현재는 밭둑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고 거기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단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감나무가 여기 이렇게 있게 된 과정을 소화와 함께 들려준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앞뒤를 맞춰보니 소화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이런 구성을 생각했을까 싶다. 그래서 처음엔 별을 세 개만 주려고 했다가 네 개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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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왓? 23 회색곰 왑은 왜 사람을 싫어할까? WHAT왓? 시튼동물기편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함영연 옮김, 이준섭 그림 / 왓스쿨(What School)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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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시튼동물기다. 시튼이 직접 동물을 관찰하고 나서 쓴 책이다. 그러니까 회색곰 왑도 실화라는 얘기다. 그 사실을 굳이 모르고 읽더라도(시튼동물기라는 사실을 알고 읽었으므로 완전히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회색곰 왑의 일생을 인간의 개입없이 그려낸다. 그래서 마지막에 회색곰이 영원한 잠을 잘 때는 마음이 착잡하기까지 하다. 

어느날 갑자기 혼자 남게 된 왑(이름은 물론 시튼이 지어준 것일 게다.)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엄마곰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새도 없이 혼자 남겨졌으니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교적 순한 종인데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상당히 난폭하게 군다. 그러다 나중에는 원래의 습성을 되찾는다. 이 모든 것을 동화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관찰해서 알아낸 것이다. 지금도 연구자들이 동물에게 칩을 넣거나 인식표를 붙여서 그들의 습성을 연구한다. 헌데 이런 첨단 장비도 없던 시절에 시튼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밝혀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마지막에 왑이 로치백의 속임수에 넘아갔을 때 언젠가는 그것을 눈치챌 줄 알았다. (만들어낸)동화라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동화가 아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안타깝지만 왑이 힘들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내주고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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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왓? 13 노래기벌은 어떻게 사냥을 할까? WHAT왓? 파브르곤충기편 1
고수산나 지음, 김성영 그림, 장 앙리 파브르 원작 / 왓스쿨(What School)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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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있던 파브르 곤충기를 '왓스쿨'이라는 브랜드로 다시 펴냈나 보다. 내용은 변하지 않고 표지만 바뀐 듯한데 개인적으로 예전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그거야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니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용이겠지.   

워낙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 덕분에 주워들은 게 꽤 있다. 여름에 시골 마당에 있으면 땅바닥에서 벌이 기어나와 기겁을 하곤 한다. 아주 어렸을 때 벌에 쏘인 기억 때문에 벌을 유난히, 아니 가장 무서워한다. 그러면 둘째가 그 벌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설명해준다.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알을 낳는 거라나. 헌데 구멍에는 딱 하나의 알만 낳는단다. 그리고 먹이를 물어다 넣어 준 뒤 구멍을 닫아버린단다.  

그런데 단순히 이런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벌레 즉 먹이가 살아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나나니벌이 하는 행동은 정말이지 신기하다. 게다가 다른 곤충이 애벌레를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쳐 놓은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살아가기 위한 본능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본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머리가 좋아보인다. 

노래기벌은 또 어떻고. 나나니벌과 마찬가지로 애벌레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기 위해 독침으로 기절시키는 방법도 절묘하다.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두고 신기하다고 하기엔 뭣하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파브르곤충기의 원전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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