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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모텔 ㅣ 0100 갤러리 23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조동섭 옮김 / 마루벌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혹자는 오래전에 이미 나올 만한 상상력은 다 나왔다고 했으나 그 후로도 아주 많은 상상력이 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라면 아예 특별하게 취급하겠는데 누구나 조금만 비틀어보면 가능했을 것 같은 그런 상상력 앞에서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책이 후자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이미 단색의 펜화로 <피라미드>와 <성> 등을 그려 무척 유명한 데이비드 맥콜리라는 작가 이름만 보고도 궁금해지는 책이다. 게다가 '미스터리'가 들어가니 미스터리한 뭔가를 이야기할 것 같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렇게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여는 순간, 까만 속지를 만난다. 대개 이런 책은 속지에서도 뭔가가 나올 것 같은데 아니다. 그럼 '미스터리'라는 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바로 시작되는 이야기. 아직 제목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짜고짜 1985년에 북아메리카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졌다는 글이 나온다. 가만, 이 책이 언제 씌어졌는지 찾아보니 1979년이란다. 그렇다면 이 책을 쓸 당시는 1985년이 미래였지만 지금은 과거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 번역되었으니 미래를 이야기한 책이 우리에게는 한참 지난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제목이 나오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읽는 순간 앞에서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장에서 10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으니까.
순식간에 사라진 북아메리카 대륙 표면을 조금씩 파보니 클로버 모양의 검은 줄이 나타났단다. 이것은 하늘에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그래야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데 바로 신에게 보내는 암호문이거나 외계 비행선 활주로였을 거라는 주장을 실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다. 이건 우리가 흔히 미스터리 서클이라고 하는 것에 붙이는 글 아니던가. 이건 분명 현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속도로 교차로인데.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래서 미스터리하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쩜 현대 문명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 그저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할 뿐이다. 건물 대부분이 묻히고 꼭대기만 조금 드러난 것을 보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정글에 세워진 건축물이라 하고, 뛰어난 건축 기술에 감탄한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그리고 하워드 카슨이 우연히 어딘가로 떨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고대 무덤이어서 그곳을 발굴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여기서도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물건이 어떻게 둔갑하는지 알게 되면 다시 한번 놀란다. 이건 웃음이 아니라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파라오의 저주'로 알려진 투탕카멘 유적 발굴 일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하워드 카슨이 일하고 있는 작업실 그림의 일부에서 투탕카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모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쩜 그리 교묘하게 피라미드 발굴 모습과 대조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성스러운 목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있는 그림에서는 배꼽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다. 변기 뚜껑과 커다란 칫솔이 무엇으로 변신했는지, 욕조 마개는 또 무엇으로 변용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감탄사와 함께 폭소가 터져 나온다. 게다가 뒷부분에서 보물과 기념품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들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아이가 그럼 우리도 피라미드에서 나온 유물을 이처럼 잘못 해석한 것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글쎄, 설마.
비록 공간적 배경이 북아메리카라서 그곳의 건물이나 문화가 많이 나와 세세한 느낌은 놓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석으로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대략적인 것은 알 수 있다. 또한 어느 것을 이야기하고자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지 못해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파라오의 저주, 투탕카멘 무덤을 이런 식으로 차용해서 이야기를 만들다니 그저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