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도망쳤다! 미래의 고전 19
백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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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 해도 방학 즈음이면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았다. 이제는 좀 컸다고 유치하단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어떤 것에 대해 생각을 할 때 그동안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특히 동화를 보거나 책토론을 할 때 애니메이션을 종종 인용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컸다고 안 보면 혼자라도 봐야하나 고민중이다. 

이 책을 보니 <몬스터 하우스>가 생각난다. 비록 유령집이긴 했지만 집에 생명을 부여한 방식이 이 책의 내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독 집에 애착을 많이 갖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것이지 특정한 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전 우리네 부모 세대만 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곳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산다. 그래서 집에 대한 애착도 사라지고 오로지 소유의 개념, 재산의 개념만이 남아 있다. 이 책에서 배꽃 아줌마와 같은 유목민은 집이 하나 정해지만 평생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에게 집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여하튼 재민이와 원호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떡집에서 무지무지 맛있는 떡꼬치를 사먹다가 못된 범수에게 쫓긴다. 그러다 재민이가 어떤 집에 들어갔는데 그만 집이 도망가 버린다. 집이 도망가다니. 보통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뭐, 동화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니 별로 놀라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집중한다. 그리고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곤 한다. 여기서도 유목민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씨앗을 하나 받는데 그게 결국 자신의 집이 되며 심장 부분에 작은 싹이 수액을 품고 있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유목민들의 집은 어머니 나무와 연결되어 있단다. 즉 원천은 자연이라는 얘기다. 문득 영화 <아바타>의 신령스러운 하얀 나무가 생각났다. 

원호와 범수가 사라진 재민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범수의 아픔이 나타나고 결국 범수도 평범한 열세 살짜리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원호도 부쩍 성장한다. 이렇듯 동화에는 어떤 사건을 겪든 그 안에서 인물들의 성장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재민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줄 알았는데 집에 잡혀가고 중간은 이름만 가끔 언급될 뿐이다. 오히려 원호와 범수가 서로 친구가 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하긴 범수가 원호의 돈을 빼앗은 게 사건의 발단이니 둘이 풀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집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벽지도 바꾸고 집안의 장식물도 바꾼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기 바빴다. 망가지면 어느 정도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집. 이런 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배꽃 아줌마와 친한 친구지만 못된 마음을 갖고 나쁜 일을 꾸미는 왕빛나의 대립은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조다. 그러한 기본 구성은 너무 뻔해서 나중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기발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영화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작가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공부했다던데 역시 그랬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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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의 약속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2
박경태 글, 김세현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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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요즘 아이들은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졌다고 말한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읽는 것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 또한 읽는 것에 대해 그렇게 변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특히 이런 책을 읽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현실의 아이들이 싸우듯이 생활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반면 이처럼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나도 자극적인 이야기에 길들여진 게 확실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뭔가 허전함을 느끼기 전에 나의 습성을 탓해야겠다. 

10편의 이야기는 모두 힘겹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특히 표제작은 마음 아픈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한쪽은 딸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한쪽은 부모가 없는 고아라는 설정만 봐도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거기까지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는다. 유독 자기네 배추밭에만 애벌레가 많아 살충제를 준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제초제를 주는 바람에 배추가 죽은 이야기는 또 어떻고. 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고집스럽게 농사짓는 아버지가 선후에게는 바보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고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읽는 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모든 이야기가 잔잔하고 감동적이라서 그런지 여기서는 나쁜 사람이 없다. 비록 삶 자체는 힘들지 몰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따스하고 정겹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네 고유의 감성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하도 각박하니까 지금처럼 변한 것은 아닐런지. 작가가 이 책을 처음 낸 것이 1999년이라니까 변할만도 하다. 시대에 따라 글을 쓰는 방식이나 소재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자연의 모습을 서술하며 끝맺는 모습은 마치 카메라 앵글이 인물이 아닌 주변의 사물을 비추며 끝맺는 것과 비슷하다. 사는 것이 강퍅한 요즘, 이런 따스한 동화를 만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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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소설 (최신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류대성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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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에 아무래도 지금까지 읽었던 종류의 책과는 다른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단편집을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은 만나기 어려웠다. 괜찮다 싶으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읽기 힘들다고 하고 어떤 것은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해 주고 있어서 스스로 생각할 기회마저 빼앗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일단 출판사 인지도가 있으니 믿음이 갔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단편을 읽을 때는 그 참맛을 잘 몰랐던 듯하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어느 순간순간에 그 때 읽었던 것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 단편이 얼마나 좋은 작품이었던가를. 그래서 딸에게도 그런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말이 너무 어렵단다. 또 한 가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에서 읽으려니 당췌 재미가 없단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건대 아무리 그래도 읽어두면 두고두고 마음의 양식이 된다는 걸 알기에 읽으라고 강력히 권한다. 

올해부터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23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 얘기는 실린 작품의 편수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어느 교과서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접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꼭 모든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그래도 많이 읽어서 손해볼 일은 없으니 이 책이 반가울 수밖에.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부터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각 소설을 읽고 활동할 수 있는 활동지를 첨부하고 있는데, 책 읽기조차 공부로 접근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또 그걸 보고 도움받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쪽만 보고 판단할 건 못된다. 

나도 전쟁이나 일제 수탈기를 겪지 않았다는 점은 요즘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쓴 이야기는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란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아들의 다리 한 쪽이 없는 걸 보고 몹시 실망하지만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수난 이대>)은 여타의 경험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애달픈 역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래서 우리 단편을 읽으라는가 보다. 이런 걸 청소년들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아니,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느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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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치고 싶은 것 미래의 고전 20
이종선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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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학교에는 팬시점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것을 자랑삼아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 한단다. 한번은 걸려서 문제가 되기도 했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도대체 그 부모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서 그럴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재미로, 군중 심리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지 몰라도 그러다 습관으로 굳어질까 걱정된다. 도대체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 걸까. 아니,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이 책의 주인공 여진이는 훔치는 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그나마 극복할 가능성이라도 있었지 그런 자각조차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제목에서 드러났듯이 도벽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또래 집단에서 친구 맺기의 어려움과 가족간의 사랑을 줄곧 다룬다. 그러니까 매개체가 도벽인 셈이다. 그러면서 각자의 성장을 빼놓지 않는다. 여진이와 선주는 단짝이다. 그런데 선주가 양궁선수로 나가는 바람에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진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갖춘 민서와 민서 때문에 상처를 받아 위선적인 여경이가 동시에 여진이에게 접근하면서 일은 시작된다. 여진이가 어떤 게 둘의 본모습인지 몰라 힘들어할 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엄마였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 바빠서 여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짬이 없다. 여진이는 바로 그런 허기진 마음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채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훔친 게 아니라 주인이 없는 물건일 때만 훔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한다. 그러나 민서의 물감인 줄 뻔히 알면서도 훔치면서 마음 고생이 시작된다. 

사춘기라고 삐딱하게 굴기만 하던 언니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진이에게 큰 힘을 주는 모습은 뭉클하지만 마치 정해진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하필이면 엄마가 있는 날 모든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마무리 되는 모습도 그렇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여경이와 민서 사이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여진이의 모습은 6학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 그 또래는 대개 이 친구의 말에 쏠렸다가 다시 저 친구의 말에 쏠리는데 여진이는 진실을 판단하려고 애쓰니 말이다. 도벽이 있을 정도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데도 말이다. 뭐, 꼭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냉정을 유지해서 오히려 여진이에게 빠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선주의 이야기는-비록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표가 났지만-이 책을 읽는 어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동화란 어린 독자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니 이처럼 의미 있는 메시지를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전 같으면 작가의 의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도 그것을 읽는 어린 독자는 번쩍하는 뭔가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경이가 얄미웠다. 의도적으로 친구를 곤경에 처하게 하고 남 앞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처럼 위선 떠는 행동이 싫었다. 그래서 민서가 여경이의 잘못을 현장에서 잡았을 때 통쾌했다. 그런데 문득 <교환 학생>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 아주 얄미운 친구가 있는데 속으로 그 친구의 본모습이 드러나길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작가는 그 친구에 대해 별다른 고자질 없이 다른 친구들이 그녀를 이해하도록 자연스럽게 풀어갔다. 우리는 이처럼 잘잘못을 따져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게 대부분인데 외국 작가는 그렇지 않다. 우리 작가의 이런 이야기 방식이 통쾌할지는 모르나 여운은 확실히 덜하다. 여경이가 들킨 모습이 통쾌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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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얼굴 창비아동문고 256
안미란 외 6인 지음, 원종찬 엮음, 이고은 그림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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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이다. 그런데 옛이야기라면 모를까 동화에서 무서운 이야기는 그닥 많지 않다. 아무래도 동화라는 성격상 어린이들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그들의 갈등을 다루기 때문인 듯하다. 무서운 이야기에는 으레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는데 동화에는 판타지 동화가 아예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러동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나는 것만 언급하자면 <귀신새 우는 밤>과 <금이 간 거울> 정도가 있다. 특히 <금이 간 거울>의 경우 이 책 <하얀 얼굴>에도 글을 쓴 방미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위의 동화를 읽으며 오싹한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 그렇지만 무작정 오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잘 집어냈다는 감탄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뒷표지에 호러 동화라고 표현한 이 책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처음 이야기부터 심상치 않다. 재건축 때문에 거의 이사를 가고 난 썰렁한 아파트라는 배경도 공포 이야기에 어울린다. 게다가 아무도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특별한 층에서, 그것도 진태가 탈 때만 멈춘다는 것도 공포 이야기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단순히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우와 진태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와 떠난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들어 있다.  

그 밖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앞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한다. 어디 그 뿐인가. 도시 소시민의 힘겨운 삶에 끼어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두 공포 요소가 들어 있다는 점이 호러 동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매일 누군가가 채니의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바꿔놓는다는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귀신이 들어와서 채니의 방을 몰래 바꿔놓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의 반전이란.  

이처럼 모든 이야기는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고민과 친구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들어 있다. 물론 때로는 정말 오싹하다. 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무서운 이야기가 총출동되어 그 중에서 비슷한 것을 골라내느라 바쁘다. 그러나 만약 이런 무서움만 있었다면 그저 그런 여름날의 심심풀이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고민이 들어 있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비판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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