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정원이 있다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07
케빈 헹크스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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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항상 마당 한 켠에 꽃밭을 가꾸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꽃밭은 꼭 가꾸셨다. 그냥 꽃씨만 뿌리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시시때때로 풀을 뽑아줘야 하고 계절에 맞춰, 그리고 화초의 키에 맞춰 무엇을 앞에 심고 어느 것을 뒤에 심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때로는 중간에 옮겨 심기도 해야 한다. 키가 작은 화초라도 나중에 피는 꽃을 앞쪽에 둘 수는 없으니까. 덕분에 나도 종종 풀을 뽑거나 옮겨 심는 일을 거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런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다만 바뀐 게 있다면 지금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라는 거! 나야 가끔 들른다는 핑계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구경하기만 한다. 대신 평소에 좋아하던 꽃이 있으면 열심히 사다 나른다. 매발톱이 하도 예뻐서 구해다 놓았더니 엄마도 좋으셨는지 여기저기서 씨앗을 받아다 뿌려서 지금은 온 동네에 매발톱이 퍼졌다(원래 집이 길가에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예쁜 꽃이 있으면 한 두 개씩 캐간다). 또 한때는 수선화가 좋아서 봄만 되면 알뿌리를 사다 심어서 그것도 화단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솔직히 아파트에서는 화초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는 꽃들이 있는데(특히 치자가 그렇다.) 이 경우는 꽃만 보고 엄마에게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서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꽃 내가 꿈꾸는 멋진 정원을 가꾸리라 다짐한다. 

케빈 헹크스의 그림책은 재미있다. 특히 일상에서 흔히 보는 말썽꾸러기를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해서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번에는 마음이 아름다워질 법한 정원에 눈길을 돌렸다. 엄마의 정원에서 조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자기에게 정원이 있다면 어떨까를 열심히 상상하는 모습이 화사한 그림으로 펼쳐진다. 현실에서는 토끼가 상추를 먹지 못하게 내쫓지만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토끼가 절대 상추를 먹지 않는다. 왜? 그냥 토끼가 아니라 초콜릿 토끼니까. 그래서 주인공이 토끼를 먹는단다. 사실 이 부분은 좀 걸린다. 꽃을 꺾으면 금세 다시 피어나고 꽃의 색깔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며 조가비를 심으면 조가비가 자라서 바다 소리를 듣고, 알사탕을 심어서 알사탕 나무를 키우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토끼를 먹는다니. 정확히 말하면 초콜릿 토끼라지만 다른 것과는 어감이 좀 다르다. 차라리 토끼와 신나게 뛰어논다면 훨씬 서정적인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기 전에 조가비를 정원에 심고 발로 자근자근 밟아 준다. 혹시 모르니까. 아이가 상상하는 부분은 화면 가득 화사한 그림이 펼쳐지고 현실의 모습은 동그란 틀 안에 있다. 현실이라고 해 봐야 맨 앞 한 장면과 마지막 두 장면이 전부다. 나머지는 전부 아이의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특히 현실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고 기껏해야 옆모습만 보인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의 아이는 얼굴 표정이 모두 살아있다. 웃고 뛰놀고 뽐내는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만 <내 사랑 뿌뿌>나 <웬델과 주말을 보낸다고요?> 만큼의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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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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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열을 내다가 항상 도달하는 결론이 있다. 바로 지금의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 결론이 거기에 이르면 허탈감에 빠진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니까. 게다가 언론이 정치와 사회경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언론 자체가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니 그것을 누가 견제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언론인 스스로 자신의 고유 역할을 되찾는 수밖에. 그러나 말이 쉽지 이 또한 쉬운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그래서 이처럼 작정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은이가 말하듯이 기자는 직장에 충실해야 하는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 언론인 본연의 의무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공중파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나 신문에서 하는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고' 있을 뿐이지 어떤 현상에 적용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언론에서 보여주는 범위를 벗어나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나도 뉴스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일지언정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아니, 솔직히 그 전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적극적인 운동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계열에서 그 정도면 운동권이라고 할 만한 선배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번쩍하는 느낌이었다. 뉴스에서는 말 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언론사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고 누구를 어느 방향에서 인터뷰하느냐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제 일반상식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왜'라는 의문을 갖고 언론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전에는 기자나 아나운서의 의견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뉴스에서 어떻게 그 언론사의 논조가 드러날 수 있는지 의아해했으나,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안다. 특히 이념에 따라 보는 시각이 확연히 차이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를 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가만히 있으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의심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보인다. 즉 개인이 똑똑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지은이가 기자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 변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조차 현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듯한 이야기를 해서 뜨악하기도 했다. 특히 요즘처럼 방송 대부분을 G20에 맞추는 것을 보며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전에 원전수주 때도 좀 심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뒷이야기가 있었단다. 여기서는 주로 경제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는데 외국 언론은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의 원전수주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그 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사안들은 부풀려서 보도하던 언론들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방문과 시기를 같이 해서 발표하기 위해, 즉 대통령의 업적인 것처럼 보여지게 하고 싶어 그랬다는 얘기다. 당시에도 원전수주를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보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서는 마치 이 정권이기에 가능한 치적인 양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지은이가 지적하기를 이것은 기자들이 정부나 기업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좀 더 호기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어가려는 기자본성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어디 그러한 적이 한두번인가 싶어 허탈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일간지의 신뢰도가 워낙 떨어져서 일간지 대신 인터넷에서 본 뉴스를 인용하며 마치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포털에서 본 뉴스가 바로 일간지가 내보내는 뉴스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사실은 간과한 채 인터넷이라는 형식에만 집착한 결과다. 외국에서 주목하는 오마이뉴스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전 정권과 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 정권에 밉보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시민의식이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상당부분 내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에 속 시원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나와 반대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차분히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감정적으로 비판만 하는 어조라서 반대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귀기울여 들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조선일보를 아예 한 단계 접고 대하는 것처럼. 그 부분이 아쉬웠다.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하고.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어느 선까지는 안다는 전제하에, 아니 당연히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전제하에 흥분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도 종종 남편으로부터 현실은 외면한 채 이상만 추구한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또 하나, 정치나 사회뉴스에 대한 이면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경제를 주로 이야기해서 약간 아쉬웠다. 그나저나 지은이가 작정하고 썼다는데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과연 이 기자는 복직하고 계속 남아있을 수 있으려나. 이처럼 신랄하게 본인의 회사를 비판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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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만나는 우리 역사 1 - 삼국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문화로 만나는 우리 역사 1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청년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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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읽을 만한 역사책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정작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내 입장에서 좋겠다 싶으면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가 책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이는 무조건 재미있기를 바라고 부모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 보다는 지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역사를 무조건 지식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아마 너무 딱딱해서 재미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이 꽤 많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권은 대개 삼국 이전 시대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바로 삼국부터 시작한다. 사실 삼국 이전은 현재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잘 들어오지 않아서 아이들이 역사책을 읽자마자 흥미를 잃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부분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바로 삼국으로 넘어가서 지루한 부분을 덜었다. 그렇다고 삼국 이전 시대를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을 각각 따로 설명하는 것과 주제별로 묶어서 설명하는 방식 중 이 책은 후자를 택했다. 가끔 아이들이 각각의 나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시대적으로 연결된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방식의 서술은 그런 걱정을 덜 수 있다. 그야말로 역사를 지식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끔 서술 방식에서 추측형 어미를 사용해서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역사라고 해서 모두 확실한 사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에 의한 추측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추측을 함으로써 객관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화를 중심으로 시대를 이야기하는 좋은 방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글투가 그다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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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길 다행이야! -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힘 인성교육 보물창고 11
제임스 스티븐슨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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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책을 펼쳤는데 그림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그제서야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에 작가 소개를 봤다. '100권 이상의 어린이책을 지었으며 유머와 어린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카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다'고 되어 있다. 어쩐지 어딘가 모르게 그림이 재미있을 것 같더라니. 

늘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할아버지는 말도 항상 똑같은 말만 한다. 개가 소파 방석을 물어 뜯어도, 손자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고 해도, 손녀의 연이 나무에 걸려 버렸다고 해도 언제나 그만하길 다행이라고만 한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림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어린이가 놀 때는 다치기도 하고 장난감이 부서지기도 한다지만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귀찮아서 대충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꼬맹이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 할아버지가 모든 일에 시큰둥한 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드디어 할아버지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때 아이들 머리 위로 느낌표가 있다. 카툰 형식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이후로는 할아버지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큰 새가 낚아채서 산속에 떨어뜨리질 않나, 설인을 만나질 않나, 사막을 걷고 오렌지 잼 덩어리도 만난다. 이 뿐이 아니다. 물속에서도 곤경에 처하지만 거북이를 타고 빠져 나와 신문지 비행기를 타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항상 똑같은 생활을 반복할 때는 그림의 형식도 똑같다. 왼쪽엔 큰 그림에 오른쪽엔 두 컷의 그림. 그러나 할아버지가 모험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형식은 깨진다. 만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한 면에 작은 그림을 여러 개 배치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빨라진다. 이 때는 글보다는 그림에 더 눈길이 간다. 책을 다시 한번 읽을 때는 그림만 봐도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할아버지의 모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이 하는 말은 바로 그동안 할아버지가 하던 말이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깨달았던 것 아닐까. 즉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시큰둥한 게 아니라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그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직접 예를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느끼게 했다. 걱정스럽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할아버지에게 안기는 모습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아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그려졌다. 과연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그림을 보면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도 할아버지는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마음은 달라질 것이다. 긍정의 힘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과 인성교육 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작가가 인성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그렇게 분류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억지로 꿰맞춘 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책을 곱씹어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정말이지 리뷰를 쓰면서 처음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리뷰를 쓰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느끼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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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부부의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 - 떠나고 싶다면 이들처럼
이성종.손지현 지음 / 엘빅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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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을 그린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라는 동화를 읽고 한동안 자전거 여행에 대해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여기저기 여행기들을 찾아보다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지 않는데 그런 여행기를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짐했다. 비록 나는 그렇게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내 아이는 그런 여행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편하게 가만히 앉아서 정보를 얻는 여행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하는 여행을, 적어도 젊었을 때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돌아디닌 곳 중에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글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전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게다. 그래서 이들도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고 주변에서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한다. 실제로 이들이 겪은 몇 번의 문제들에 대해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는 정말 지옥을 갔다 온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책이 나왔다는 건 안전하게 잘 다녀왔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독자는 미리 알고 있으니 급박했던 상황이 덜 느껴질 것이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으니까. 

숱하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가며 많은 나라들을 지나는 동안 이들이 겪었던 모든 일들이 결코 재미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힘들지만 웃을 수 있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 때문일 게다. 될 수 있으면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그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이런 건 여행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도 현지인들이 돈을 달라고 하거나 무슨 물건이라도 얻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때론 실망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워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예전만큼 순수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믿음이 아직은 유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시간에 대한 나의 촉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이들의 일정이었다. 살라마 말라이카 고아원에서 며칠 쉬면서 봉사도 하며 지낸 날이 3주에 가깝고, 모잠비크의 한인 회장이 마련해준 휴식처에서 일주일을 쉬었단다. 처음에 휴식을 취했다길래 길어야 이틀이겠거니 했다. 대개 외국여행을 가면 길어야 일주일에서 보름이니 생각지도 않은 휴식에 일주일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이들에게서는, 아니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사람들에게서는 우리와 같은 시간 관념이 통용되지 않는가 보다. 이러니 얼마나 여유로울까. 그곳에서보다 돌아와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것 같다. 이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매일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쫓기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은 했겠지만(원래 모든 여행은 고생이다.) 그래도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다르다는 점. 

내가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휙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점이다. 그게 꼭 외국 여행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여행을 하며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하도 무서운 세상이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예전처럼 쉽진 않아도, 그래도 진심은 통히리라 생각한다. 이들처럼 해외여행을 그런 식으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꿈은 꾸고 있지만 꿈 꾼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역시 젊음은 좋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하긴 그래도 자전거 여행은 사양했을 테지만. 원래 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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