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 혼돈의 시대가 낳은 위험한 영웅 아이세움 역사 인물 12
브렌다 하우겐 지음, 이남석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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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어린이책에서 '인물' 이야기라함은 큰일을 이룬 사람을 말한다. 그 '큰일'이라는 것도 좋은 의미의 큰일이지 인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배제되곤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는 증거일까. 요즘은 그런 구분이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다.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취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반대로 나쁜 점을 알아서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다양한 인물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요즘의 추세가 반갑다. 

흔히 알고 있듯이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고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으며 연설을 잘해서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아마 시대가 그런 인물을 키웠고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여기서는 대체로 히틀러의 어린 시절보다는 군대 가서 자살하기까지의 과정이 주를 이룬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엄한 아버지와 오냐오냐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며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보통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거나 옳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려서 받은 훈육이나 가정환경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히틀러의 경우는 좀 의외였다. 적어도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얘기가 되므로. 

이 책에서는 히틀러가 어떻게 총통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2차 대전을 전후한 부분에 많은 것을 할애한다. 그러나 사실들의 나열이라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어린이들이라면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뒷부분에 있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좋아하는 부분인 역사 마주보기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역사 마주보기에서는 지나치게 훈육적인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이 그렇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오로지 경제에만 치중했던 우리의 독재정권 시절이 떠올랐다. 뒤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자유와 먹고 사는 문제(좁은 의미의 경제)는 참 중요하면서도 완벽하게 함께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상반되는 문제만도 아니다. 요즘 공공연하게 히틀러를 찬양하는 스킨헤드족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그 옛날 누구처럼 자유를 억압해서라도 무조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자유의 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맛을 결코 저당잡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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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의 전쟁 2 - 제1부 늑대족의 피
마이떼 까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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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단숨에 끝내버렸다. 이런 소설들의 결론이야 뻔한데도 왜 한번 잡으면 손을 놓지 못하는 걸까. 그러나 이 책에는 정말 예측불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가면을 쓰고 있었음이 발각되고 어느 순간에 벌을 받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착한 면을 보여주는 올라브. 공허한 세계에서 오디시인 살마로부터 구해준 것이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인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아나이드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포옹으로 순순히 물러나는 것을 보며 정체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라니 다른 이야기에서 그 정체가 밝혀지겠지. 마지막에 셀레네가 하는 말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또 이모할머니는 어떤가. 처음에는 아나이드가 오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두 종족의 존재를 위해 셀레네를 없애기로 합의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또 잘못짚었구나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다시 작가에게 한방 먹었다. 결국 아나이드와 셀레나를 위해 살마를 속이고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원래는 후계자일 정도로 정의를 위하고 똑똑한 오마르였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극적인 반전은 바로 선지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다. 어쩜 두 권을 읽는 동안 독자는 감쪽같이 속을 수가 있을까. 아나이드가 지나가는 곳이나 보는 물건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무심코 지나치면 나중에 '아하!'라는 감탄사를 내야만 한다.

대개의 환타지 소설에서 남자가 주인공인데 여기서는 남자가 전적으로 배제된다. 그래서 엘레나가 내리 아들만 여덟을 낳는 것을 그토록 아쉬워하는 것이다. 내용중에도 오디시와 오마르가 대립하는 틈을 타서 남성들이 권력을 잡고 여성을 교육도 시키지 않고 여성을 차별했다고 이야기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구성이다. 적어도 여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러기에 지금까지 나온 환타지 소설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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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왕자 (양장) 푸른도서관 15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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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보기,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역사 제대로 보기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각 나라가 망할 때에는 다른 원인보다 왕의 폭정과 사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배웠으나 점점 여러 사실을 알아갈수록 그것은 잘못된 주장임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지금 아이들은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 다행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해에 경주 일대를 갔을 때 해설사의 설명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그렇다. 이 책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를 모델로 쓰여진 소설이다. 오래 전에 나왔기 때문에 읽지는 않았어도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이제야 읽게 된 것이 조금 그렇기는 하다. 

주로 막내 왕자인 선의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촛점은 태자인 선의 큰형에게 집중되어 있다. 오로지 신라만을 사랑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씩씩하고 늠름한 형을 바라보는 선은 마찬가지로 형에게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역사책에 기록되었다시피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신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바침으로써 천년 동안 이어온 나라가 사라져 버리고, 태자는 산으로 들어가 평생 삼베로 된 옷을 입고 살아서 사람들에게 마의 태자로 불린다지. 그러나 선을 비롯한 나머지 왕자들은 아버지를 따라 개성으로 가서 몸만은 편하게 여생을 산다. 이제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선은 불가에 귀의를 하고 형을 못 잊고 신라를 그리워하며 경주를 찾아간다. 형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경주로...

선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경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월성을 돌아보며 지금은 석빙고와 넓은 터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궁궐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아마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경주와 남산 일대를 얼마나 헤매고 돌아다녔을까. 세세한 배경 묘사를 위해 돌도 또 돌아다니지는 않았으려나. 누군가의 독백처럼 잔잔하게 읽힌다. 그러나 요즘 내가 너무 사건 전개가 빠른 책만 읽어서일까, 아니면 결과만을 향해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일까. 지나치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딱딱하고 정확한(아니 정갈한?) 문장이 겉도는 느낌이었다. 이런 서사를 아이들이 참아줄런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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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의 전쟁 1 - 제1부 늑대족의 피
마이떼 까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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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방학만 되면 개봉하는 환타지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그 세계로 흠뻑 빠져들곤 한다. 어린 아이든 청소년이든 심지어는 어른이든 상관이 없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그림이 없는 글로 된 책은 어떨까. 이미 영화로 나오고 책으로 나온 책들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전례를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에는 장애물이 없나보다.

언제나 선과 악의 대결은 재미있다. 비록 그것이 뻔한 내용에 예견된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해도 말이다. 거기다가 마녀들까지 등장한다면? 문득 중세 시대에 마녀 사냥을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한 허상이었으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혹시 정말 그랬던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 속에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 오마르들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며 살아가는 오디시들. 이 사실은 처음에 나오는 계보를 보며 알아낸 사실이다. 처음 이야기는 열네 살이지만 열살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나이드가 엄마의 실종 사건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록 종잡을 수 없고 덜렁대고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어린 아나이드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인 엄마가 밤중에 흔적도 없이 사람만 사라진 것이다. 모든 물건은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그러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심지어는  더 정신없는 이모할머니까지 아나이드를 돕겠단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두 마녀였다. 착한 마녀인 오마르들. 

결국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어떤 사실을 직감하고 심지어는 날기까지 하면서 아나이드도 마녀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엄마가 마녀들의 홀을 가질 수 있는 선지자이며 나쁜 마녀들에게 잡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후로 아나이드는 독학하면서 굉장한 지식을 쌓는다. 원래부터 아나이드는 한 번 읽은 것은 잊지 않고 한 번 들은 것도 절대 잊지 않는 굉장히 똑똑한 아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말 이런 두뇌를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어린애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아나이드는 때때로 그런 자신이 원망스럽다. 아무리 틀리려고 해도 틀릴 수가 없다나. 에고 부러워라. 결국 아무도 엄마를 구하러 가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혼자 무슨 일이든 하러 그리스로 떠난다. 아, 혼자는 아니다. 나중에 극적으로 이모할머니가 동행한다.

이렇게 1권은 여기서 끝난다. 아마 이 시점에 오면 독자들은 모든 일을 전폐하고 2권을 집어들지 않을까. 사실 1권을 읽는 중간에도 몇 번 작가에게 배신을 당했다. 내가 예측한 것들이 어김없이 빗나갔으니... 너무 친절한 올라브가 나중에 엄마를 대신해서 무언가 해줄줄 알았는데 오디시였단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오마르가 착한 마녀인지 나쁜 마녀인지 헷갈려서 계보를 자꾸 찾아봐야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끝났단다. 이러니 아나이드의 그런 능력이 안 부러울 수가 있나. 

시간적 배경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 종잡을 수 없는 반면 그 세계에 완전히 빠질 수 있다. 그나저나 책 속에서는 주변에 온통 마녀들이다. 하긴 마녀들의 세계를 그린 책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혹시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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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 2007-10-2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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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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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는 나이였을 때는 그림책에 빠져서 그처럼 재미있고 의미가 깊은 작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고학년 동화나 청소년 책을 보면서 그때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가슴 후련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청소년 책의 경우 거의 어른이 사용하는 은유와 유머 그리고 언어유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재미를 하나 발견한 셈이다. 그렇다고 그림책을 낮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구덩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짐작을 하지 못했다. 다만 루이스 새커라는 이름 있는 작가가 썼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이라니까 내용은 보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역시나 그 기대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낮에는 여전히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에 읽어서인지 스탠리와 제로의 갈증과 더위에 지친 모습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현실의 스탠리 이야기와 고조할아버지 이야기가 별 연결고리 없이 이어지고 있어서 어리둥절했다. 하긴 그래도 이건 어느 정도 연결고리가 있긴 하다. 고조할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후손인 스탠리 아버지는 물론 어린 스탠리까지도 곤경에 처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100여년 전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흑인 쌤과 마을의 유일한 선생님이었던 케이트 바로우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지금 소년원에서 힘들게 구덩이를 파고 있는 스탠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그러고보면 그 당시는 인종차별이 있던 때인가보다. 여하튼 세 개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별다른 설명없이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기 초록호수 캠프인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이야기다.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가 강도를 만나는 곳도 이곳 초록호수이며 케이트 바로우가 사랑하고 죽었던 곳도 바로 여기 지금의 스탠리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반 이후까지 읽은 후에야 고개를 끄덕일 수가 있으니까. 눈치 빠른 사람이야 더 빨리 알아차릴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각자 떠돌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정교하게 맞아떨어질 때마다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정교함은 끝까지 이어진다. 사실 마지막에 책을 덮을 때까지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제로와 스탠리의 관계를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스탠리가 처음에 구덩이에서 K.B라는 이니셜이 씌어진 뚜껑을 발견했을 때 케이트 바로우를 암시한다는 것까지는 유추했는데, 안타깝다. 뭐, 내가 이렇게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어디 그것 뿐인가. 도마뱀 소굴에 있었는데도 어째서 도마뱀들이 제로와 스탠리를 물지 않았을까라는 점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둘이 움직이지 않고 조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읽고 나서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소년원에서 아이들이 개과천선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가 조금 지나서는 그들의 우정을 다루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스탠리의 용기나 행운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고 다음에는 어른들의 욕심과 위선에 대한 고발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딱 이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책이다. 모두 다 들어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여기에 나오는 사건이나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괜한 것은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읽는다면 나처럼 나중에 '아, 이거였구나!'라고 허탈해 하는 경우는 조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쩜 그렇게 모든 사건의 아귀가 딱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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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할만한 책인것 같습니다. 정말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