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8
박연철 글.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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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망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도 망태 할아버지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아이에게 괜한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끔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협박 좀 할 걸 그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어떤 아이들은 새장에 갇혀 있고 어떤 아이들은 올빼미가 되어 거꾸로 서 있다. 바닥에 있는 아이들도 성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엔 뭔지 몰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입을 꿰맨 모습이다. 아이에게 예쁜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첫 장부터 뜨악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어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장에서는 망태 할아버지가 나쁜 아이들을 모두 잡아다가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들어 돌려 보낸단다. 마치 착한 아이를 만드는 공장처럼 품질검사를 해서 합격 도장을 쾅 찍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합격 도장을 받기 전의 발랄하고 생기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장을 받는 순간 사라진다. 하나같이 경직되고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어른이 원하는 임무를 잘 수행할 아이로 포장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깡통 소년>에서 콘라드가 통조림에서 나올 때 모든 부문에서 합격점을 받고 품질 인증을 받은 아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 후로는 사사건건 아이와 엄마의 대립이 그려진다. 엄마는 수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아이의 상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몰아부친다. 또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많은 것을 제쳐 두고 밥을 먹으라고 채근한다. 엄마는 밥을 안 먹으면서 말이다. 그러기에 엄마가 맛있게 차려 놓은 밥상이 아이가 앉는 순간 생명력이 없는 무채색으로 바뀌는 것일 게다. 그래도 아이는 말한다. 어쨌든 망태 할어버지는 무섭다고. 이것은 절대 권력을 가진 엄마 앞에서의 무력감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급기야 엄마의 권력에 도전을 하고 결국은 망태 할아버지에게 잡아가라고 한다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는다. 이 상황까지 되면 아이는 힘이 없다. 그저 엄마가 밉다는 최대의 무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그렇게 엄마에게 반기를 들다 쫓겨들어간 방에서 아이는 공포에 떤다. 마치 금방이라도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들어올 것만 같아서.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는 순간 엄마가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 미안하다며 '화해'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러나 이런 식으로 당연하게 끝나면 재미없지. 마지막에 엄마의 등을 보니 품질검사 표시가 찍혀 있다. 어, 이건 언제 찍은 거지.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시 두어 장을 넘겨 본다. 그러고보니 망태 할아버지가 바로 엄마에게 손을 쓴 것이다. 원래 아이가 문제행동을 한다면 그 원인은 주로 어른에게 있다고 한다. 양육자가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준다면 아이 또한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고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지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지난번 <어처구니 이야기>를 보며 처음 보는 작가인데도 재미있게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보았다. 어딘가 느낌이 비슷하다 싶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책을 내는 작가라 무척 반갑다. 박연철, 이름을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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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동왕자 (반양장) 책읽는 가족 12
강숙인 글,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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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한 가지 사건이 있으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 매스컴에서 유명한 사람(주로 정치인이다.)이 어떤 말을 하면 과연 그 이면에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말이라는 것이 고도의 계산에 의한 것이지 나처럼 방금 떠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야 단순히 이야기 자체에 의미를 두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로 여러 각도에서 보는 법을 서서히 터득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주몽이 부여 궁에서 도망칠 때 자라와 물고기들이 다리를 만들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도 내가 순수하게 생각하고 발전시킨 것들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이기에. 아마 그래서 난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랬대라고 받아들였던 것일 게다. 그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숙인이라는 작가는 달랐다. 역시... 그동안 워낙 많은 역사동화를 쓰긴 했지만 남들은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로 흘려 버릴 수 있는 것을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다니 놀랍다. 단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을 커다란 틀 안에 넣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로 다시 만들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등등. 작가는 중학교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공주가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지금까지 내가 느끼고 있던)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던 것이 흔들리는 사건이었다고. 당시 작가가 느꼈을 충격을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런 느낌이니까.

호동이 낙랑 국으로 가서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결혼까지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위해 공주를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둘의 사랑은 끝나고 만다. 그러면서도 정작 호동 자신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호동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보다는 국가가 먼저라고, 남자의 큰 뜻을 위해서 즉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은 희생해도 된다는 당시의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원하던 것을 쥐고 있을 때 이야기다.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들어왔던 것이 아닐까. 만약 호동이 세자로 책봉되었다면 예희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까. 뭐, 그랬다면 이런 이야기가 탄생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 성인책은 역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대세였다. 이런 동화가 계속 나온다면  어린이책도 역사동화가 대세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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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된 흔적 똥화석 테마 사이언스 6
제이콥 버코위츠 지음, 스티브 맥 그림, 이충호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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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음산한 아침, 커피를 타서 분위기 잡으며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아무리 똥에 관한 책이라지만 화석이 주된 이야기일 텐데 뭐 어떻겠나하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도저히 커피를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커피를 다 마시고 읽기로 했다. 그런데 리뷰를 쓰는 이 시간도 하필이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그래도 읽을 때보다는 강도가 덜 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피하지 않으련다.

언제나 일반화 된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처음 제기될 때는 많은 비판과 비웃음을 산다. 지금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한때는 하찮게 여겨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똥화석도 그 중 하나다. 보통의 화석은 처음부터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똥화석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처음부터 거기에 주목하고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른들은 질색을 하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주제인 똥.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시기를 연구하고 생활을 유추하는 하나의 학문임을 당당히 밝힌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이미 다 알고 있는)이야기를 펼쳐갈 거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몰랐던 내용이다. 즉 똥화석을 점잖은 말로 표현하면 분석(糞石)이란다. 한자를 보니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주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똥화석을 비롯해 발자국이나 알 같은 것은 흔적 화석이라고 한단다. 이렇게 처음부터 예상을 빗나간 내용으로 흥미를 끌었다.

여기서는 똥화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똥화석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설명도 한다. 게다가 각 장의 끝에는 똥화석 전문가를 한 명씩 소개하고 있어서 귀한 정보가 되었다. 사실 똥화석이 있으면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건만 이렇게 똥화석 전문가라고 이름붙일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하긴 고기생충학자도 있다는데, 뭐. 이런 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많은 것을 즐기고 누리는 것일 게다. 여하튼 너무 당연한 생리적 결과물인 똥화석을 통해 이렇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주변에 무심히 지나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상식'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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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햇살 2008-01-0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오죽하면 커피를 못 마셨겠어요.ㅋㅋㅋ
 
모비 딕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5
허먼 멜빌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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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이란 어떤 것일까를 자주 고민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어렸을 때는(내지는 청소년기에는) 지금처럼 책이 다양하지 않고 접할 기회도 없어서 그저 읽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많은 출판사들이 좋은책을 앞다투어 내기 때문에 쫓아가기도 벅차다. 그래서 나름으로 기준을 세우는 부모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다이제스트 판이 아닌 완역으로 된 책을 읽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난해한 책들을 꼭 완역본으로 읽히며 고문을 해야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들이 과연 완역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감동하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남아있지 않던가. 그래서 약간 수정을 했다. 이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온 책을 환영하기로.

사실 내가 청소년기에 이 책을 안 읽었기에 무척 궁금했었다. 지난번에 어떤 작가가 강연회에서 아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기에 마음 속으로 찜하고 있었던 책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고래. 동물 중 가장 크고 포유류이면서도 물 속에서 사는 신기한 고래. 지금이야 함부로 고래 잡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래잡이는 흔했었다. 이 책은 화자인 이스마엘이 고래잡이를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고래잡이 배를 타고 항해 하면서 겪었던 일을 술회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은 허먼 멜빌이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가 탄생 100주년,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되었단다. 사후에 빛을 보는 예술가가 어디 멜빌 뿐이겠냐만은 그래도 안타깝다. 자신의 소설이, 당시의 보편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책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에 힘을 얻어 더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야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분명 뭔가 다르긴 한데 딱히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러다 해설을 보면서 알아챘다. 이건 누구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확실한 주인공이 있어서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식이 아닌,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는가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그러나 읽으며 열심히 누구를 중심으로, 즉 누구에게 나를 대입하며 읽을까 열심히 궁리하지만 결국에는 덧없는 짓이 되고 만다. 왜? 이스마엘과 모비 딕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지니까. 그제서야 허탈감이 밀려온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에게 동화되어 읽기도 하고 때론 비록 복수심에 눈이 멀어 정신이상자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종의 측은지심 때문에 멋지다(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간혹 보이는 내면과의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아하브에 동화되기도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제서야 독자는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것이 바로 고전이라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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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가문의 수치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9
아르노 카트린 지음, 한지선 그림, 김주경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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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재미있다.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수치라니. 게다가 표지그림은 또 얼마나 웃기던지. 처음에 그림만 보고는 주인공이 여자라고 생각했다. 레이스가 달리고 퍼프가 달린 옷은 여자가 입는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외국 동화에서 왕자들이 이런 옷을 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어쨌든 주인공 마르탱은 이제 막 열한 살 생일이 지났으니 우리 나이로 하면 열두 살, 딸과 똑같은 나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이들의 행동을 딸 친구들과 견주어 가며 읽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스스로를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걸까. 알고 봤더니 열한 살 씩이나 되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보통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룰 때는 뭔가 은근하게 감추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도 하는데 이건 뭐랄까, 굉장히 통통 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경쾌하면서도 진지할 만한 것은 다 들어 있다. 게다가 마르탱은 이 시기 아이들이 그렇듯 어떤 사실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 버린다. 예를 들면 삼촌이 다른 나라로 떠난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도 마르탱이 보기에는 결혼을 못해서 아마존 같은 곳으로 쫓겨 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위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별별 걱정을 다 한다.

그래도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친구의 마음을 배려하는 모습이 예쁘다. 우연히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여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니 말이다. 초등 저학년들이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뭣한 반면 마르탱의 사랑은 풋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사랑이다. 그렇다고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어른들을 흉내낸 사랑도 아닌 그야말로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마르탱이 처음 찾아 온 사랑을 포기하는 결말임에도 책을 덮고 나서 훈훈함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춘기 아이들이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고민하는 여타의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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