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 미워하기 좋은책어린이문고 9
로빈 클레인 글, 백지원 그림, 신혜경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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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주변에 에리카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굉장히 얄밉지 않았을까. 흔히 '공부 잘 하는 아이들'하면 그 무리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꼬고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고 바라보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 인상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요즘은 아이들이 모두 영악해서 그런 행동을 하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혹시 나도 그러지 않았나 잠시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의 내 모습이 주변에 녹아들 생각을 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에리카는 현재의 상황을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는, 그야말로 조숙한 아이다. 워낙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고 주변에는 모두 형편없는 사람들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러기에 애초부터 자신과 바링가 이스트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다른 부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도도하게 잘 나가던 에리카에게 드디어 위기가 닥친다. 바로 완벽한 앨리슨 애슐리가 전학을 오면서다. 설상가상 앨리슨은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동네에 사는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일반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반 친구들은 아무도 앨리슨이 어디에 사는지 옷을 어떻게 입고 오는지 전혀 신경을 안 쓰는데 유독 에리카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종의 열등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최고였는데 그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운 것도 아니고 이미 전학 온 첫날부터 빼앗겼으니까. 앨리슨은 모든지 완벽하다. 옷 입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공부도 잘 하고 예의도 바르다. 그러니 말썽꾸러기 학생들만 보던 선생님들도 얼마나 앨리슨을 예뻐하겠는가 말이다. 에리카는 속으로는 앨리슨을 동경하고, 앨리슨과 친구하고 싶어도 자존심 때문에 속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앨리슨에게 쌀쌀맞게 대하고 사사건건 안 좋게 보다가 트집을 잡기도 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앨리슨을 미워할수록 에리카에게 느는 것은 변명(좋게 말해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거짓말이다.)과 자괴감 뿐이다. 어쩜 그렇게 모든 것에서 거짓말이 그렇게 술술 잘도 나올까. 내가 만약 선생님이었다면 엄하게 혼을 내줄 것 같은데 그 학교 선생님들은 이해심도 많다. 계속 그냥 들어주다가 나중에서야 변명을 못 들어주겠으니 그만하라고 하니 말이다.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상대방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느껴지면 거부감이 이는 것은 똑같은가 보다. 에리카도 그렇게 앨리슨을 미워하다가(물론 속으로는 안 그랬지만) 나중에 앨리슨도 힘들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니까. 마찬가지로 앨리슨도 에리카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야 행동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에리카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게 된 것은 가족간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자신은 부류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얕잡아 보던 주변 사람들이 사실은 굉장히 마음이 따뜻하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앨리슨과 비교하면서 깨닫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화책이라면 앨리슨의 엄마가 너무 신경을 안 쓰자 그것을 보고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다정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구조를 갖는데(그러면서 친구에게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신 앨리슨을 에리카 가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제 에리카가 말도 안되는 거짓말 하는 버릇을 뉘우칠까 내심 기다렸는데 작가는 끝까지 어린이 편이다. 그런 것은 절대 보여주지 않으니까. 아니 오히려 앨리슨의 입을 통해 독창적이라며 칭찬을 하지 않던가. 그런 문화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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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 다 봤대요 사계절 중학년문고 8
유미희 지음, 이광익 그림 / 사계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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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해서는 동시를 읽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와 아이가 무척 재미있게 읽은 동시집이다. 그동안 어른들의 작위적인 동시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주로 아이들이 지은 어린이시를 주로 봤었다. 물론 임길택, 권태응, 김용택 선생님 등의 동시는 좋아하지만 말이다. 사실 동화책이나 그림책 등과 비교했을 때 동시를 읽는 비율은 5%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 보면 시가 참 많이도 나오건만 쉽게 다가가질 못하겠다.0

그런데 모처럼 '재미있다'고 할 만한 동시집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시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내가 공감하는 내용도 있었고 간혹 우리 아이 모습이 그려져서 웃음짓기도 했으며 때로는 보편적인 아이들 모습이 떠올라서 맞장구쳤다. 

'휴가'라는 동시를 읽으며 정말이네를 연발했다. 아이에게 들려 주니 아이도 동감한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것, 또는 그 뒤에 있는 어떤 것을 보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는 것인가 보다. 우리는(적어도 나는)휴가라는 것을 자주 가면서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저 앞으로 갈 곳만 생각했지 집에 남아 있을 것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또 '매미껍질'이라는 시를 읽으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아이를 다시 불러 놓고 너와 똑같지 않냐며 은근히 반성하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아이도 눈치가 있는지라 얼른 시인한다. 그러면서 그림을 보고 다시 한번 웃는다. 그렇잖아도 아침에 아빠에게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는다고 한 소리 들은 후였으니 얼마나 마음에 와 닿았을까.

내겐 시가 어렵다. 마치 뒤에 숨어 있는 근사한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 같고 뭔가 대단한 것을 느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다보면 그런 부담은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주위에서 보고 듣고 느낄 만한 것들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좀 더 느끼기만 하면 된다. 때론 아이들의 현실을 동정하기도 하고 때론 매정한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로지 도시 모습만 그리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시골 모습만 그리는 것도 아니라서 가끔은 시골을 연상하며 읽을 수 있었고 때로는 지금 내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맨날 말로만 동시를 읽혀야 한다느니 중요하다느니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동시집(아이들이 좋아하고 공감할 만한)을 찾아 읽혀야 겠다. 아니면 밤마다 하나씩 읽어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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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이 들려주는 구운몽
최태림 지음, 경혜원 그림, 설성경 감수 / 세상모든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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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서포 김만중, 일장춘몽을 나타낸 소설이라는 기계적인 답변이다. 왜? 바로 학교 다니면서 시험을 위해 외웠던 것이니까. 그러나 정작 김만중의 생애에 대해서는 모른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치자. 그러나 구운몽의 내용도 모르고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하려면 왠지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 당시에는 읽어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했으면 엄청 쉽고 재미있게 했을 텐데 아쉽다. 하긴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이야기해 줘도 모르니 그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김만중의 생애와 구운몽을 동시에 만나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바로 이 책. 표지를 보고는 '김만중이 들려주는'이라는 부제가 왜 붙었을까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이해가 간다. 김만중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구운몽을 지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설 구운몽이 전개된다. 소설이 끝나고 나면 다시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죽은 후의 일까지도 김만중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그런데 중간에 구운몽을 읽을 때는 이게 김만중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소설 구운몽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잠시 혼동이 되기까지 한다. 그만큼 작품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서포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던 해에 태어났단다. 그 시기는 한창 당쟁이 심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서포가 태어나기 전에 강화도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김만중의 어머니는 두 형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자 어떻게든 책을 구해다 줄 정도로 자식 교육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단다. 김만중은 서인에 속해 있었기에 당시 남인이 정권을 휘두르던 때라 여러 번의 유배를 간다. 결국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만다. 

흔히들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해서 지은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보다는 당파싸움을 하기 보다는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게다가 구운몽은 바로 인현황후를 폐위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유배를 갔을 때 지은 것이기 때문에 왕을 존경하는 신하의 충정으로 이해하기도 한단다. 어찌되었든 구운몽이라는 소설 자체는 지금의 생활풍습과는 거리가 멀어서 읽는 내내 이런 나라가 있나라며 읽었지만 마지막에 성진이 꿈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우매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며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유효한 이야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초등 고학년인 딸에게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내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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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00가지 세계사 1000가지 상식 2
판도라.채근병 글, 유대수 그림, 신성곤 감수 / 세상모든책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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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 해의 출판계 화두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모임에서까지 역사를 주제로 공부했으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역사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점점 세계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중국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역사도 헤매고 있는데 남의 나라 역사까지 알기란 내 지식의 한계에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라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역사에 대한, 아니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라고 해도 될 기본적인 것에 대해 서술한 책을 읽게 되었다. 많은 것들이 들어보긴 한 것이나 내용은 가물가물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자면 '왕안석의 신법'이라는 말은 들었으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역사를 배울 때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어서 배운 것일 텐데 말이다. 또한 고사성어나 삼국지, 손자병법 등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이 꽤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중국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기본적인 줄기를 잡아서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은나라부터는 어느 정도 맥을 잡고 있으나 그 전의 나라들은 거의 모르겠다. 그나마 이렇게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조금 도움이 된다. 아마도 중국의 역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라면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 접할 때가 있는 것이니 헷갈리더라도 자꾸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맥이 잡힐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에 처음이 있는 법이니까.

지금이야 중국이 우리보다 뒤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의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더라도 예전에는 우리 문화가 훨씬 앞섰다는 자부심이 있듯이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모두 중국이 성장하는 것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단지 중국의 역사를 알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들의 역사를 알아서 예전처럼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이 큰 것 아닐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아니던가. 그런데 초등 교과에서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할 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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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1
김황 지음, 김정화 옮김, 문종인 그림, 정석환.박시룡 감수 / 우리교육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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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하다. 사실 우리 옛그림에 흔히 나오는 새가 실은 두루미가 아니라 황새라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워낙 거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냥 흘려들었다. 아직도 두루미가 황새라고 잘못 알려진 것인지 황새가 두루미로 잘못 알려진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면 말 다했지. 방금 읽었으므로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자면 두루미는 뒷발가락이 짧고 위쪽에 있어서 나뭇가지에 앉을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즉 소나무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것은 두루미가 아니라 황새라는 얘기다. 지금은 귀하게만 생각되는 황새가 원래는 텃새였단다. 

이렇듯 이 책은 사라져가는 황새에 애정을 갖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면서 쓴 것이다. 원래 작가는 사육사가 되고 싶었지만 재일동포라는 제약 때문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동물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이미 코끼리 이야기를 그린 <사쿠라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김황이라는 이름이, 친하게 지냈지만 이념 때문에 선뜻 다가설 수 없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즉 김황은 바로 그 친구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사라져가는 야생 황새를 복원하고 인간이 복원한 황새를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노력을 그린 것과 동시에 한일간에 황새를 교류한 자취를 그린 동화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따오기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황새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육사가 황새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관심을 유도해 달라고 슬쩍 흘린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이런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작가가 워낙 동물에 관심이 많고 황새를 좋아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부리가 잘린 황새 코우짱을 아이들이 맡아서 돌봐주었지만 결국은 보호소로 가게된 사연을 줄곧 따라간다.

한국 황새를 보기 위해 부모님과 심한 갈등 끝에 국적까지 바꿔야 했던 작가의 눈물나는 노력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지금도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는 그런 걸림돌이 있는 것이다. 새들은 그런 것 가리지 않고 북한도 지나고 남한도 지나서 일본으로 가는데 말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일본에서 건너 온 황새가 많이 번식해서 북한으로도 퍼져가길 바라는 것일 게다. 논픽션으로써 작가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가끔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았던 힘든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두 나라에서 책이 나오고 있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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