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와 완전한 세계 높새바람 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받아들고 두께에 놀랐다. 아니, 이렇게 두껍단 말이야? 게다가 높새바람이라면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인데... 약간 두려움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 오히려 읽는 도중에는 두껍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로써 두께로 책 읽는 대상을 결정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사는데 어른이 되면서 차차 그 환상이 깨져서인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작가들은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나보다. 그러니 이런 환상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은 어떤 매개체나 통로를 통해서 환상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나온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를 따르고 있다. 나니아 이야기 중 하나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옷장을 통해서 환상 세계로 들어갔고,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책을 펼쳐 읽으면서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도 어찌보면 <끝없는 이야기>구조랑 비슷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어떤 책을 빼들고 거기에 박혀 있는 브로치를 꽂으면서 모험은 시작되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정작 아로가 책을 읽는 장면은 마지막에 잠깐 언급될 뿐이다. 왜냐하면 독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아로를 통해 읽었으니까.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라지만 무조건 그 세계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아로도 처음에 얼떨결에 어떤 세계로 갔다가 다시 나왔잖은가. 그러다가 결국 그것을 못 잊고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진짜 모험을 한다. 그 통로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아로는 이쪽의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저쪽의 도서관으로 나온다. 그냥 궁금해서 다시 찾은 곳이었지만 이제는 거기서 쉽게 현실 세계로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로 자신이 드나들 수 있는 매개체를 잃어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쪽 세계의 위기를 보았고 아로 자신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을 그들은 완전한 세계라고 부른다고 했다. 완전한 세계라. 완전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처음에는 완전하다는 것을 완벽하다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는 싸움도 없고 욕심도 없고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역시나 사람이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싸움과 시기와 욕심, 그리고 전쟁까지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어찌보면 완전하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막혀 있는 세계라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완전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 특히 현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 나라로 이루어진 완전한 세계에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약간 받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다른 사람을 도와준 아로는 이제 더이상 어리고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볼 줄도 알고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으며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항상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기만 하던 막내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마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성장을 한 것이리라. 이쪽 불완전한 세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켜야 했을 작가가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아이들 2013-04-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아동청소년문학 전문출판사 바람의아이들입니다.
2013년 4월,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시리즈 4탄 『열두째 나라』가 출간 예정에 있습니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를 사랑해주시고, 온라인 서평을 작성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출간 전 가장 먼저 『열두째 나라』를 읽어보실 수 있는 사전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사전 서평단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바람의아이들 메일로 책을 받으실 주소, 연락처, 성함, 메일 주소를 전달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이 메일: windchild04@hanmail.net tel. 02-3142-0495
 
공상 과학의 창시자 쥘 베른 - 세상에 빛이 된 사람들 16 세상에 빛이 된 사람들 16
조르디 카브레 지음, 박숙희 옮김, 빅토르 에스칸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 때였던가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를 읽으며 네모 함장의 냉정하고 때론 섬세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떠나라고 하며 자신은 노틸러스호에서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읽은 후로 다시 읽지도 않았는데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꽤나 인상깊게 읽었었나보다. 그러나 그 책을 지은 작가가 쥘 베른이라는 것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작가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아니, 추리소설 작가들은 줄줄이 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잠수함에서의 생활이나 바다속 깊은 곳의 모습이겠지만 잠수함이 나오기도 전에 쥘 베른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하다. 작가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서 생각하는 능력 즉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상상했던 것들이 후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놀랍다. 사실 전에는 그냥 우연히 어찌어찌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다 그만한 노력을 했음을 알았다. 지리학,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과 같은 과학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기에 그러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발명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쥘 베른은 단순히 상상으로만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연구를 했고 직접 배우기도 했으며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단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 탄탄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쥘 베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주로 작가(쥘 베른)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작품에 대한 내용인지 쥘 베른 자신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작품을 위주로 설명을 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쥘 베른이 지나치게 뭔가를 알려주려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다.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고 글이 많지도 않아서 인물의 개략적인 활동을 알아보기에는 적당하다. '공상 과학의 창시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쥘 베른의 이야기를 읽으니 갑자기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아이들도 쥘 베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그가 쓴 소설을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깔 속에 숨은 세상 이야기 아이세움 열린꿈터 2
박영란.최유성 지음, 송효정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에 남편이 운동회를 할 때는 예나 지금이나 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도 뭐, 특별히 왜 그런지 알 턱이 없어서 그냥 궁금해 하며 넘어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게 그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궁금증이 아주 우연한 기회에 풀렸다. 바로 이 책. 그래서 그 부분을 읽자마자 남편에게 달려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속으로 어찌나 뿌듯하던지. 흔히 어린이책은 아이들만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느끼는 건데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반 이상은 어린이책을 읽고 알게 된 것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말 다했지.

처음에 얘기했던 청군과 백군 이야기 먼저 마무리 짓자면 예로부터 동과 서로 나누어서 경기를 하곤 했는데 동쪽을 나타내는 색이 파란색이고 서쪽을 나타내는 색이 흰색이기 때문에 청과 백으로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수원화성을 돌다보면 어느 순간 깃발의 색이 바뀌게 되는데 그 이유 또한 방위에 따라 정해진 색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깃발의 색이 운동회의 청군과 백군에까지 연결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햇다. 알고 나면 이렇게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통의 사람이라면 색깔과 무관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아니 심지어는 꿈에서도 색깔이 나타난다.) 마주치게 되는 온갖 색들. 이제는 아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오히려 점점 더 현란한 색을 찾아헤매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색깔 속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고 숨겨져 있다니 재미있고도 놀랍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호등 색깔이나 의사의 하얀 가운과 수술실의 초록색 가운 등에 대한 것은 이제 당연하게 생각되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받아들였던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다시 신기하게 여겨지는 새로운 사실이 자리를 차지한다. 예를 들자면 힌두교는 파란색으로 신을 나타내고 이슬람교는 초록으로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를 믿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기에 초록색을 사용한단다. 

너무 흔하게 둘러싸여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해석하고 자세히 생각해 보니 다 이유가 있다. 주변에 있는 색들이 왜 그 색일 수밖에 없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겠다. 별 것 아니라고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는 이런 책을 읽다보면 상식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호기심도 왕창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홍바늘꽃 카르페디엠 15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전쟁 또는 내전과 관련된 동화책을 몇 편 읽었다. 대개는 가해자의 입장이거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미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아니면 적어도 전쟁의 참상을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한 것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여타의 책들과는 약간 다른 듯하다. 뭐랄까. 전에 읽었던 책들이 의식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고 치면 이것은 순수한 인간 문제를 다룬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정확히 표현을 못하겠으나 그런 비슷한 느낌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이 있던 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과 소녀의 생존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사랑도 있었지만 편안한 세상에서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그 어떤 것이리라. 그랬다. 어차피 고모네 집에서 아빠와 더부살이를 해야 했던 빌에게 집이란 그저 구속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쟁 중에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피난시키라는 지시에 따르는 고모를 원망하며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혼자 떠돌게 된다. 그러면서 차라리 어른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음을 줄리를 만나고 난 후 자신에게 말하기도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듯한 줄리를 만나지만 전쟁터에서, 그것도 보호자가 없이 떠도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빌이나 줄리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빌이 줄리를 보호하는 입장이 된다. 전적으로 빌에게 의지하는 줄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빌의 모습은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보호자가 없을 때까지만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줄리의 보호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다. 

공습으로 폐허가 된 줄리 이모의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던 빌과 줄리는 비록 힘들지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빌이 우유를 구하러 떠난 날 그나마 서 있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지하실도 사라지고 만다. 그 와중에도 빌은 오로지 줄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그렇게 간신히 구한 줄리에게서,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살아있는 줄리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말 때문에 줄리에게서 떠나고 만다. 아니 어쩌면 줄리 주위에 있어 봤자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그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건물은 무너지고 불탔지만 거기에도 어김없이 잡초들은 싹을 틔운다. 특히 불이 났던 곳에서 자란다는, 평소에는 보기 힘들다는 분홍바늘꽃이 자라는 것을 보며 빌은 자신의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사실 읽는 내내 왜 제목이 분홍바늘꽃일까 궁금했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러다가 마지막에서야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그 간단한 설명이 지금까지의 빌의 마음을 너무나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비록 전쟁의 참혹함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상대편에게 잡혀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변한 일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심하며 읽을 수 있었던 점은 적어도 빌은 죽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빌이 화자로 등장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아버지는 1학년
에마뉘엘 부르디에 글, 엘렌 조르주 그림,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의 고정관념이란 이런 것일까. 제목을 보면서 당연히 '우리'의 의미가 들어가는 줄 알았다. 즉 손주와 할아버지가 함께 1학년 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대개의 그림책은 아이들과의 생활이 함께 나와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은 전적으로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며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일흔다섯의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에 '다시' 들어가게 된 피에르 할아버지는 원래의 여덟살짜리 1학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배추를 싫어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피에르 할아버지는 전에 그러니까 다시 1학년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기술자였다. 충분히 자기 삶에 만족한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우산이 된 기분'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것은 노인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 아닐까. 노년이 되었는데 직업도 없고 특별히 할 일도 없다면 누구든지 느끼는 감정이지 싶다. 그래서 피에르는 자신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과연 언제가 가장 즐거웠을까. 어디서 가장 즐거운 시절을 보냈을까. 그랬더니 그건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고 한다. 글쎄. 난 아직 그 나이가 아니라서 그럴까. 전혀 동감이 안 되니 말이다. 아마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시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랬기에 다시 학교에 가지 전날 밤 그 옛날처럼 마음이 설레었던 것이겠지.

그렇게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서부터 할아버지는 생기를 되찾는다. 이제 더 이상 쓸모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수업 시간 중에 옛날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은 그렇다쳐도 몸까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몸은 말을 안 듣고 날아오는 공도 잘 안 보이고 틈만 나면 잠에 빠져든다. 1학년짜리 아이들이 이가 하나씩 빠지듯이 할아버지 이도 하나씩 빠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새 이가 나온다는 희망이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몸은 나이를 속일 수 없겠지만 마음은 여느 1학년과 다를 바 없다. 같은 반에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는데 그 아이를 사랑하기까지 하니까. 예순일곱 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그렇게 할아버지는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 처음 1학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매스컴에서 나오지만 막연하게 생각되었다. 당장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피에르 할아버지의 한 마디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건 나이와는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테니까. 정말 노년을 이렇게 알차고 생기 있게 생활할 무슨 방법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무기력하게 아무 희망없이 그저 하루를 '보내는 생활'이 아니라 정말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 그런데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이야기를 과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주로 유아들이 읽는다는 그림책인데. 물론 어려서부터 노인을 이해할 기회로써의 역할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