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사냥 보림문학선 7
레이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매스 스태에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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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횡행했던 마녀 사냥. 한 사회에서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희생양을 찾아 마녀라고 몰아붙여 희생을 강요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것을 과거로만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양상이 약간 다르게 진행될 뿐이다.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어느 곳에서나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어떤 본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 시기 유럽에서 아무 힘이 없던 한 아이의 눈으로 마녀 사냥의 현장이 생생히 전해진다. 바로 에스벤에 의해. 내 기준으로 보기에 에스벤은 정말 운이 없는 불행한 아이다. 엄마가 그동안 도와주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았고 결국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뒤로 하고 그 마을을 떠났으니까. 게다가 에스벤을 이해해주고 받아주었던 한스 박사마저 엄마와 똑같은 길로 떠났으니 그야말로 가장 불행한 경우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스를 만난 것이 에스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다. 두려움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중에는 살아가는 힘과 희망을 주었잖은가. 한스는 자신도 마녀 사냥의 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에스벤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즉 한없이 선한 모습만 보여줬던 것에서 폭력도 불사하며 에스벤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인간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제 에스벤은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며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을 것이다. 한스와 함께 지내는 동안 모든 것을 알려줬으니까. 꼭 말로 한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그런데 현재도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이런 식의 마녀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마을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중 한 사람을 '찍어서' 평생을 가둬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찍히는 대상은 힘이 없는 노약자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당연하다. 언제나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약한 것이 악의 속성이니까. 하긴 사례를 찾아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식의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한스가 에스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것이 나에게 대입되어서. 만약 마녀 사냥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 마음 편할까, 아니면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 마음 편할까. 글쎄, 정답은 알겠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자못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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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의 논리 여행 - 초등 저학년을 위한 논리 첫걸음
한기호 지음, 세영 그림 / 해냄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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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논리력이 생기는 시기가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는 물론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개인차가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책은 아홉 살에게 읽히는 논리 책이란다. 부제에는 저학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10살이 되기 전을 강조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논술이 기승을 부리는 시류에 편승해서 아이들을 너무 일찍 논술이라는 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든다. 우선 이야기가 동물을 등장시켜서 재미있게 풀어간다. 저학년이 읽어도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고 웅녀와 환웅이 나와서 아주 생소하지도 않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큰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 이야기가 한 주제로 떨어져 있다. 게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생활 속에서'라는 코너를 두고 논리적인 것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 이야기들 또한 어렵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문제들을 예로 들며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게 열여섯 개의 코너를 읽으면 기본적인 논리력은 갖추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 번 읽어서 모두 이해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논리라는 것이 그렇게 한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부제인 논리 첫걸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또한 각 이야기가 끝나면 간단한 문제가 나오는데 논술을 배웠고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에 의하면 이런 문제를 뽑아 내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문제가 그것도 핵심을 찌르는 것에서부터 생각을 유도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으니 당장 아이들과 책을 읽고 생각해 보아도 좋겠다. 다만 지나치게 논리, 논술에 촛점을 맞춰서 아이를 교육시키다 보면 그 또한 결국 지루한 공부로 다가오면 어쩌나 걱정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문제는 건너 뛰고 이야기만 읽는다. 당연하지. 그러다 시간이 좀 나면 문제를 보고 쓰지는 않더라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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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요원 알렉스와 페니 미국 서부 개척시대 편 - 세 번째 임무 - 인디언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자다 프란차 지음, 고정아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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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봤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미국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볼 만한 역사적 건축물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부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그들이 나라를 세우게 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인디언들에게는 가슴 아픈 것이 되겠지만 말이다.

미국 서부개척시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당연히 서부영화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수에 찬 모습, 번쩍이는 보안관 뱃지를 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멋진 모습... 그러나 서부개척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보안관은 실제로 없었다고 한다. 정해진 법률보다 상황에 따른 판단을 했다나. 그럼 뭐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그러니 자연히 공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도 많았단다. 하긴 언제 어디서나 영화처럼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긴 하다. 예전에는 그저 영화를 보며 서부개척시대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으나 상황을 알고 미국이 인디언들에게 했던 일들을 알게 되면서 그런 동경은 사라졌다. 

여기서는 서부개척시대에 촛점을 맞춘 만큼 그들과 인디언의 삶을 많이 보여준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해서 대평원을 거쳐 로키 산맥까지 가는 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인디언들의 생활도 만나고 개척민들의 생활도 만날 수 있다. 물론 인디언들이 받은 고통도 잠깐 언급이 되긴 한다. 그러나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그랜드 캐니언을 비롯한 장엄한 자연을 담은 사진이다. 다른 곳에서도 본 사진이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또한 메사 베르데 유적도 볼 수 있다. 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엘로스톤 공원도 만날 수 있다. 언제나 이런 자연현상을 만나면 신비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진에 감탄하다 보니 알렉스와 페니가 왜 서부개척시대로 떠나게 되었는지 잊어버렸네. 그래도 아무튼 임무를 잘 완성했다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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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6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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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사랑과 성이라. 우선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은 글씨로 씌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 부모라면 가장 많은 걱정을 하는 부분이 바로 사랑과 성이기 때문에 그렇겠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만약 잊어버리는 기능이 없다면 아마 제대로 살아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내게는 다행인 설명과 함께. 너무 잘 잊어버려서 아이들에게도 '찍혀버린' 엄마이니 그게 다행이라고 하는 말이 왜 안 반갑겠는가. 그렇다. 인간은 망각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그 망각이 아주 해가 될 때가 있다. 많은 어른들이 본인도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자식들에게는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왜? 자신이 그랬던 것은 잊어버렸으니까.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작가들은 이렇게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까. 그것도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만 골라서.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도 모두 그렇다. 어느 작가는 청소년인 아이를 키우고 있기도 하니 분명 그 자녀들은 어른인 부모가 모두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러니 그네들은 얼마나 행복한 청소년인가.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은 모두 똑같다고 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청소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쓰지 않는 보통의 부모들과는 분명 다르겠지.

집에 청소년들이 읽는 단편집이 몇 편 있는데 이 책과 작가가 겹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각 작가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름을 보지 않고 글을 먼저 읽어도 대충 어느 작가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읽으면서 느낀 것 하나는 주로 여자 작가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남자 작가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이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자 작가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쓰는 글과 여자 작가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쓰는 글은 약간 맛이 다르다. 아무래도 남자 작가는 직접 지나온 길이기에 그런 것 아닐까싶다. 

일곱 편의 이야기가 소재도 골고루 주인공도 골고루, 서술 방식도 골고루다. 그래서 각각을 읽는 재미가 있다.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것을 보면 지금 여기 있는 아이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분명 내가 청소년기일 때도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다만 잊어버려서 그렇지. 뭐, 나야 학교와 집 밖에 몰랐으니 별다른 고민을 할 일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좋아해줬으면 하는 생각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딸에게서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과연 내가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때는 내가 보냈던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재만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지 않으려고 이렇게 청소년 책을 읽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청소년 책에 나온 인간유형을 보면 대개 비슷비슷하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가출을 하는데, 공부는 별로지만 성격이 좋은 게다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 패턴이 있다. 즉 공부는 잘하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 공부는 별로지만 성격이 좋은 아이. 그리고 공부 잘 하는 아이 뒤에는 꼭 모든 것을 조종하는 부모가 있다. 또 다른 패턴은 쿨한 여자아이다. 그런 아이는 환경이 어렵지만 오히려 구김살이 없다. 또 남학생을 다루는 패턴도 비슷한데 내 아이가 딸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이렇게 결국은 이기적인 나를 드러낸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아이들을 등장인물로 하는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여기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없거나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많은 다양한 경우를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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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 수희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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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책 예찬론자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러니까 내가 좋아서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알았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으며 그래서 결국은 어린이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읽혀줄 목적으로 그림책을 보게 되었지만 지금은 내가 볼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좋은 그림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사는 것이 사실이니까.

책의 중반부를 넘을 때까지 작가가 여자라고 생각했다. 저자에 대한 소개를 읽고 시작을 했는데 당연히 여자라며 그에 맞춰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 상황에서 현실로 쉽게 돌아오지 못하는 이가 '엄마'라고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착각이었으며, 그림책을 접하고 거기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은 당연히 '여자'가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두 번째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남자라는 것을 안 순간 다시 소개를 봤다. 그때는 남자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모순이라니.

어쨌든 우연히 그림책의 매력에 빠진 후로 그림책을 알리는 역할을 자임했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인용한 그림책 대부분이 번역이 안 된 일본 그림책이어서 답답했다. 그러면서 이런 걸 왜 우리가 읽어야하지라는 괜한 심통도 났다. 물론 그 저변에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걸까라는 아쉬움이 더 컸겠지만 말이다. 어린이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보고 그림책에 빠져들 기회가 될 확률은 얼마 없어 보인다. 그만큼 보편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그저 그림책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읽으며 공감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야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 나도 그림책의 매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책 읽어주기를 했었고 그림자극도 했었기에 더욱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림자극이라는 것을 여간해서는 구경하기 힘든데 그것을 우리 모임에서는 벌써 4년인지 5년인지를 공연한다. 물론 행사 때만 해서 좀 아쉽지는 하지만. 그리고 그림책이라는 것을 유아나 저학년(사실 저학년들도 그림책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들이나 보는 것으로 생각해서 고학년이 되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 하고 있던 내 마음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그래서 지난 해 2학년에게 책 읽어주기를 하면서 고집스럽게 그림책을 선정했다. 물론 아이들 모두 너무 좋아했다. 이 좋은 그림책을 왜 유아들만 본다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안타깝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 중에서 진작 사고 싶었는데 미루었던 그림책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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