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많이 보다 보면 그림작가 이름을 모르고 책장을 넘겼더라도 그림을 보는 순간 어느 작가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아이가 '이거 무슨 책하고 그림이 비슷해.'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것을 작가만의 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한 가지 방식으로 가는 것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통 사회복지회관에서 작가 강연회를 한다기에 오랜만에 가봤다. 전에 그곳에서 책 읽어 주기를 할 때에는 수시로 드나들었던 곳이건만 특별한 일이 없으니 잘 안 가게 된다. 사서 선생님도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시던지... 이번 작가 강연 주인공은 바로 이억배 선생님이다. 수수하게 생기신 외모에 맞게 말솜씨로 좌중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엔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작가의 그림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 작가 소개 >>
이억배(1960~ )
1960년 용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주로 목판화로 작품 활동을 해 오다가 최근에는 어린이 그림책을 만드는 데 전력하고 있다.『솔이의 추석 이야기』,『개구쟁이 ㄱㄴㄷ』,『잘잘잘 1 2 3』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반쪽이』, 『도구의 발견』,『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등의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그림으로 '97 BIB(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 선정되었고,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로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주관 '1998 어린이문화대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아내이자 동료인 일러스트레이터 정유정 씨와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두고 안성에서 살고 있다.
(예스24에서 발췌)
 
<< 작품 소개 >>
1. 솔이의 추석 이야기 
작가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추석 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책. 얼마전에 <모던보이 알렝>이라는 프랑스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보며 솔직히 그들의 역사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책에 빠져들 수는 없었지만 그 나라 사람이라면 참 많이 공감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난민생활을 하며 후손들에게 자기 마을의 모든 곳과 사람에 대한 것을 글로 남겨서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즉 그렇게 일반인들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두 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도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을 무엇인가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물론 이책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서 말이다.
 
작가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하는 추석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단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단행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가 커 가는데 읽힐 만한 책이 없음을 깨닫고 직접 책을 만들기로 했단다. 물론 안양에서 그림책의 지평을 연 사람들과 문화운동을 하기도 했으니 아무런 고민없이 시작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었으나 처음엔 비전공자라는 원인도 있었고 처음 쓴 책이아서 쉽게 출판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 큰 출판사들은 우리 작가를 발굴하기 보다는 외국의 책을 들여와 쉽게 장사하려고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우리 그림책 시장이 침체기라고 하지 않던가. 어찌 되었든 작가는 짤막한 글로 우리의 명절 추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니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 봐야겠다.
 

가로수가 면을 분할하고 있고 그 안에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너도나도 바쁘다. 그러나 글은 딱 한 줄씩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그림책의 맛이다. 글은 달랑 한 줄이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 온 식구가 집을 나선다. 스케치 그림은 나무도 건물도 명확한 선이 아니라 흐릿하게 보였다. 작가가 지금 보면 그 정도의 그림으로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얼핏 한다. 지금이야 많은 시도들이 있으니까 그런 그림도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에 그런 불분명한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면 글쎄, 사람들 반응이 어땠을까 잠시 궁금하기도 했다. 강연회에서는 이렇듯 작가의 작업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더 생생한 것이다.
 

줄 서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 신경써서 그렸다고 한다. 똑같은 사람도 없고 대충 얼버무린 사람도 없다. 모두들 각자가 살아 있고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기에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고.
 

이거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낭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행렬이다. 이런데도 모두들 나선다. 과연 계속 이런 모습으로 이어질까. 어느 때부터는 '옛날에는 이랬대.'라는 말로 치환되지는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이 책의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차례 음식을 만들고 성묘를 하고 농악 놀이도 구경하는 모든 장면을 뒤로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루 벽에 보면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있다. 이게 바로 작가의 할아버지란다. 이런 식으로 사적인 장치를 넣기도 한단다. 그리고 여기서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에서는 주인공으로 등극한다고.
 

겉표지에 나와 있는 선물 목록.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셨다. 그림책에서는 이처럼 겉표지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
 
2. 반쪽이 
요즘 세계 여러나라의 옛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파되었다기 보다 비슷한 이야기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은 환경에 상관없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동양화에 깊은 매력을 느껴서 주로 그런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한편으론 느낌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서양의 그림 방식을 모방하고 숭상할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림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운치있다고 강조하신다.
 

우물에서 잉어 세 마리를 잡아다 구워 먹는데 반쪽은 그만 고양이에게 빼앗긴다. 이럼으로써 후에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셋째 아들이 그만 반쪽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생선을 나누어 먹은 고양이도 반쪽이 고양이를 낳았다. 사실 글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없고 후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살짝 그림으로 보여주니 독자는 웃을 수밖에 없다.
 
3.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글 작가는 장인어른을 생각하며 썼다고 하는데 그림 작가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가부장적인 면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게 또 우리네 부모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한때는 이처럼 굉장한 위용을 과시하는 수탉이었으나 세월 앞에서는 당해낼 게 하나도 없다. 좌절하지만 결국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는 이야기. 작가의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기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무용담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수탉의 한창 때 모습 중에서 두 페이지에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는데 지금 책이 없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그림에서는 하나의 천막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병이 쌓이는 모습으로... 그러나 음주 캠페인은 절대 아니라고 농담을 하신다.
 
4.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한때 모임에서 이 책을 보며 부엌 살림의 모양이 이상하다고 지적하자 누군가가 이건 조선족의 모습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땅한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어느 시골에서 조선족 할머니 집에서 숙박을 하며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식들이 떠나고 찾아오지도 않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강연에서는 그 할머니의 사진과 집 둘레의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는데 그것을 여기에 옮길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귀한 자료들을 찍지도 못했으니...
 

할머니가 만두소를 버무리기 위해 커다란 그릇을 짊어지고 가는 이 장면도 처음에는 동물들과 다함께 끌고 가는, 약간은 소극적인 모습으로 그렸었단다. 손 큰 할머니라서 처음엔 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려보기도 했다고.
 

모닥불 모습도 처음엔 훨씬 크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큰 것 같아 줄인 것이 이 정도다. 그런데 작가가 직접 시골에서 가마솥에 불을 때 보니 이것도 탈 정도의 세기란다. 모닥불이 훨씬 큰 그림도 채색까지 완전히 마친 하나의 그림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그린다고 한다. 그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비슷한 장면을 여러 장 그릴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 장도 벅찰 텐데.
 

질문 시간에 누군가가 다른 동물들은 모두 노는데 왜 소는 외양간에서 묶여 있냐고 아이가 물어봤다면서 이유를 묻는다. 사실 작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나보다. 그저 앞 부분에서 소는 만두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외양간이 있으니까 소를 그린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예리하게 관찰했던 것이다. 이래서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5. 모기와 황소 
황소가 살아 있는 듯한 그림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소를 그리기 위해, 그리고 옛날 모습을 한 외양간을 그리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다가 충북 영동의 어느 시골에서 간신히 발견했다고 한다. 소의 모습과 모기, 파리를 그리기 위해 단순히 겉모습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절 모습까지, 거의 해부학적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순히 겉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구나하고. 그처럼 관절까지 모두 그려봐야 움직임이라던가 생물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이토록 안타까울 수가 없다.
 
구멍 뚫린 나무를 그리기 위해 산을 찾아다니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 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와 노력이 들어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노력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감탄을 하고 마음을 담아가며 책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작가는 특히 동양화에 매력을 느껴 화선지에 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 작업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그래도 그것만 할 마음인가 보다. 18세기에 활동했던 변상벽이라는 화가의 동물 그림을 보여주며 서양의 그림만 좋다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우리 정서에 맞는 훌륭한 그림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신다. 그 말에 괜히 나도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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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귀중한 자료가 숨어 있었네요.
이거 출처 밝히고 옮겨가도 될까요? 어머니독서회 카페로~~ 허락하시면 복사해 갈게요.^^

봄햇살 2008-09-03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세요. 잘 지내시죠?
 

<걱정쟁이 열세 살>을 읽으며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이렇게 톡톡 튀면서 현재의 아이들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해 내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 후로 이 작가의 작품을 몇 번 더 보았고(우연히) 급기야 만나고 싶은 작가 일순위에 올랐다. 결국 강력히 주장해서 회보에 실을 작가로 결정!!

막상 만나고 보니 여린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책을 읽으며 그렸던 작가의 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건 비단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같이 갔던 모든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구먼.

<<< 작가 소개 >>>

최나미

동화 작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겨레작가학교’를 졸업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손녀와 할아버지의 관계,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게 이야기한 『바람이 울다 잠든 숲』(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들의 관계 맺기와 상처 치유하기를 섬세하게 그린 『진휘 바이러스』를 펴냈다. 최나미의 두 번째 창작집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선정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스24에서 발췌. 인터넷에는 아무리 뒤져도 정보가 제대로 없다.)

최나미 작가는 유난히 열세 살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현재 나와 있는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열세 살이다. 왜 하필이면 열세 살일까. 지금 내 딸도 열세 살인데. 마침 최나미 작가의 책들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 <창비어린이> 봄호에 그에 관한 글(신인 평론)이 실렸다. 요즘 나오는 책들을 살펴보면 열세 살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장수 만세>도 열세 살이 주인공이고 김리리 작가의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주인공도 열세 살, 6학년이다. 

초등학교에서 최고 학년이 되어 자아도 생기고 사춘기를 한창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그 때문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그 이유도 있지만 일종의 마지막 몸부림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최고 학년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최저 학년이 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점도 있지만 그 때는 대입이나 앞날에 대한 생각과 어느 정도 머리도 컸기 때문에 무작정 기분이 들뜨는 상태는 조절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그럴 여유도 없을 테고.

평론에서는 열세 살을 주인공으론 한 동화의 포문을 연 작품이 최나미 작가의 <진휘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어른의 입장에서 계도를 목적으로 한 그런 동화가 아니라 철저히 아이들 입장에서 현재의 아이들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구나. 독자는 자신에게 맞는 책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니까.

<<< 작품 소개 >>>
1. 바람이 울다 잠든 숲
작가의 첫 번째 책.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이 후의 책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즉 기존의 잔잔한 어린이책을 연상하면 된단다. 작가학교를 다니면서 썼던 작품이라고 한다. 대개 작가들이 처음 등단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반해 최나미 작가는 위기철 선생님 덕분에(당시 청년사에 계셨다고) 쉽게 첫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학교에서 동화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썼던 작품이기에 색이 달랐던 게 아닐까싶다.

 
2. 진휘 바이러스

평론가가 이 책을 계기로 우리의 동화에서 열세 살이 주목을 받았고 활개를 치게 되었다(이건 내 표현이다. 평론가는 열세 살 바이러스를 퍼트렸다고 표현했다.)고 평한 바로 그 책이다.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친구들과의 소통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단편단편마다 주인공은 모두 열세 살이다. 작가는 주로 친구 문제에 천착한다. 따지고 보면 그 즈음이면 가장 중요한 게 친구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현재 아이들의 고민을 정확히 간파한 셈이다. 

[진휘 바이러스]는 딸 친구-친하지도 말고 눈밖에 나지도 말기를 바라는 그런 친구-를 모티브로 했단다. 또한 [청소함 옆자리]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란다. 나머지 한 이야기 [턱수염]은 두 개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3. 걱정쟁이 열세 살
딸이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광고하고 다녔던 책이다. 주인공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딸은 상우의 누나에 자신을 대입하며 읽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MBTI 성격유형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격을 결정한단다. 즉 상우는 무엇이든 계획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쓰는 전형적인 ISTJ형으로 설정하고 엄마는 감성적인 NF형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누나는 짐작컨대 ESTP가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상우는 아빠가 자신의 길을 찾아 가족을 떠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빠가 돌아와야 그제서야 '정상적인' 가정이 된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마당의 감나무를 보며 울 수밖에 없다. 물론 누나는 자기 마음대로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J형인 상우가 보기에 P형인 누나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 여기서 잠깐 작가의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자세한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J형과 P형의 인식차이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둘의 성격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4.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흔히 나이 마흔을 고비라고 이야기한다. 난 아직 마흔이 안 되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불안하고 뭔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마흔과 종잡을 수 없는 열세 살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한 지인은 벌써부터 걱정한다. 자신의 나이 마흔이 될 때 아이가 열세 살이 된다며.

둘째 연호네 반에 한 여자 아이가 있는데 축구를 잘 한다고 한다. 남자 아이들과 같이 매일 점심 때 축구를 하나보다. 이 책의 주인공 가영이도 그런 아이다. 그러나 정작 시합에는 나갈 수가 없단다. 왜? 여자니까. 나이 마흔에 자신의 삶을 찾고 싶어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온 식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가영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계기로 조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의견이 분분했다. 엄마는 꼭 그렇게 식구들에게 설득이나 설명도 없이 집을 나갔어야만 했을까. 작가는 대답한다. 우리나라 남자들, 그리고 어른들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차라리 그냥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고. 어느 정도 공감은 간다. 사실 여성문제라는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시종일관 경쾌한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그다지 무겁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게 바로 최나미 작가의 특성이자 매력이다.

5. 셋 둘 하나
세 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두 이야기는 친구와의 문제를 다루고 하나는 성장을 다룬다. 여자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친구와 붙어 다닌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표제작의 경우 단짝이 셋이라서 불편한 경우가 생기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즉 필요에 의해 왕따인 한 친구를 끼워주면서 일어나는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쩜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현실과 똑같을까. 나중에 (어찌보면)경계인이었던 은혜가 셋에게 퍼붓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성장을 다룬 [마술모자]의 경우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효주를 주인공으로 한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중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며 '멋있는 친구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만약 우리 아이라면을 대입하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도 어른인 나는 모든 것을 아이들 입장에서 보려 '노력'하지만 그 기저에는 결국 부모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일 게다.

위에서 살펴본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른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를 양육하거나 보조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기존의 동화에서 보여줬던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고 뒷마무리를 하거나 결말에 가서 급하게 봉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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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신화와 전설 2
베르나르 브리애 외 지음, 마르셀 라베르데 외 그림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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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연말 즈음부터 지금까지 각 나라나 대륙별로 신화를 읽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의지로 읽는 것이라면 중도에 포기했겠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라서 아직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잠깐씩 건너 뛴 것도 있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런 책들은 언젠간 꼭 읽어보리라 생각중이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보니 마치 뭔가 운명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원래 뭔가에 관심을 가지면 그와 관련된 것들이 주변에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 않던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단다. 물론 그 많은 신화와 전설을 두 권으로 묶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선택하면 가능할 듯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보통의 책보다 훨씬 두꺼우니까. 뭐, 두껍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어린이책인만큼 줄 간격이 넓은데다 그림이 많아서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

대개 신화나 전설이 나라별로 묶여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첫 번째는 용에 대한 이야기들을 묶어 놓고 두 번째는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묶어 놓고 마지막 장은 상상 속의 동물들로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이렇게 묶어 놓으니 각 나라마다 비교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계속 읽다보면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정리가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묶어 놓은 점이 신선했다.

용에 대한 인식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주로 나쁜 역할로 나오며 꼭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나오는 반면 동양에서는 사람을 도와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는 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의 동물들만 따로 묶어 놓아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원래 신화나 전설이 그렇다고 하지만-이야기가 애매하게 끝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 신나게 시작하다가도 나중에는 '이거 뭐야'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너무 알려주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대개 지금의 모습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래서 그렇게 되었대요'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밝혀 주었으면 훨씬 재미있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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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2
리영희 외 지음, 박상환 엮음 / 철수와영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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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든 국회의원이 바뀌든 여당과 야당이 바뀌든 간에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누가 정권을 잡든 누가 여당이 되든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큰 틀에서는 바뀌는 게 거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어떤 지식인이 했다는 "세상에 좌파 정부란 없다."라는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보수주의자들(물론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이 좌파라고 이야기하는 노무현 정부조차 유렵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우파라는데 우리는 극구 좌파라고 우긴다. 만약 이번 쇠고기 파동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보수(수구)세력들이 판을 치고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들이 서서히 늘어났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런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뭐,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아직도 그들이 판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7인의 발언록. 그러나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 것이 아니라 주로 각각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라 그런지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가끔 '그래 바로 이거야'라며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면서 말이다. 얼마전이 연평해전 발발일이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어난 교전 때문에 사망한 군인도 있고 부상당한 군인도 있다(아마 예전 같았으면 이걸 갖고도 엄청나게 반공교육 시키지 않았을까.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위로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북방한계선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쪽으로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선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이승만 정권에서 위로 올라가려다 문제가 불거져 생긴 선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앞으로는 국민이라는 말을 쓰는 대신 '민주주의적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겠다. 리영희 교수가 말한 것을 들으니 지금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였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상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15p)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오로지 경제 하나 때문에 현재의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손호철 교수는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경제를 지해할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나친 시장 중심주의 정책과 경쟁 때문에 지금의 우리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경제가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장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뒤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경제만을 부르짖으니 한심하다. 지금 우리는 누가 봐도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출총제 폐지나 완화를 준비하고 있다. 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주변에 전문가가 없는 나도 지금은 성장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분배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들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무엇을 듣는 것일까. 이럴 때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출세해! 하지만 그건 다분히 패배주의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넋두리일지라도 내 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대로 최대한 이야기할 것이다, 앞으로도.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자면 끝이 없다.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야겠다. 현재 과거사청산 문제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정권에서 활발하게 논의했으나 야당의 강력한 저지로 주춤하다가 이젠 아예 어찌되는 건지 이야기가 없다. 안병욱 교수의 주장처럼 친일을 했다는 것을 밝혀내서 어떤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실만은 알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 만약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그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 그네들 선조들의 친일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후퇴하지 않고 나아간다고 하는데 요즘의 현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간신히 독립성을 되찾으려던 사법부가 다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할 것 같은 분위기도 감지되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은근슬쩍 재벌들의 밥그릇을 늘려줄 정책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 7명의 저자들이 다시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지금 다시 강의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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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
안체 담 지음 / 보림큐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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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면서 내 상상력과 창의력에 대단히 의문(아니 의심)을 품었다.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로 시작해서 난 왜 이런 생각을 전혀 못할까로 방향전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저 독자일 뿐이고 안테 담은 작가라며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저자는 원래 건축학을 공부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다가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린이 책을 썼단다.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너는 누구니'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그 옆에는 변하기 전의 물체가 나온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면 내 창의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물체가 나온다. 당근이 나오면 당근으로 토끼 귀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토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이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 털실 뭉치가 놓여 있으면 복슬복슬한 양의 몸통을 만들고 종이로 양을 그려 놓는다(요건 표지에 있으니 쉽게 짐작 가능하다). 또 단추 네 개를 놓고는 돼지를 그려 넣는다. 참 이상하지. 단추로 만든 코가 놓인 돼지 그림을 보고 앞장의 단추를 보면 돼지가 어른거리는데 단추 먼저 보면 절대 돼지가 어른거리지 않으니 말이다.

계속 이어지는 너는 누구니에 이어서 상상을 뛰어 넘는 기발한 그림과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절로 키워질 것 같다. 아니 꼭 이 책을 보고 대단한 효과가 없더라도 하나의 사물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어딘가. 유아들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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