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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키즈 ㅣ 창비청소년문학 9
카제노 우시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창비 / 2008년 7월
평점 :
보통 책을 읽으면 저자 소개부터 시작해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모든 글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일본의 청소년 소설 작가는 잘 모르니 설렁설렁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데 앗, 서문이 없다. 다짜고짜 본문이 시작된다. 경쾌한 리듬감을 느끼며 요꼬야마의 시선을 따라가기 바쁘다. 하긴 사전 정보 하나 없이 무작정 읽기 시작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용어들이 도통 모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취주부는 대충 짐작이 가고 퍼커션은 뭘까. 근데 계속 요꼬야마와 노조미의 이야기는 줄곧 퍼커션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럴 때는 별 수 없다. 그냥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그런데 집에 온 요꼬야마를 따라가다 보면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가녀린데가 몸도 약해서 누워 있는 그런 엄마. 그렇다면 요꼬야마는 참 힘든 삶을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개 청소년 소설에서 집안 환경이 그렇다면 주인공은 엇나가니까.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런 것은 진짜 선입견이었음을 인정해야한다. 요꼬야마는 비록 아빠가 술을 많이 먹거나 도박에 빠질 때 빼고는 그래도 행복한 보통의 가정이다. 엄마는 단지 약한 데 임신을 해서 조심해야 하는 것 뿐이다.
여하튼 노조미의 권유로 취주부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기로 하고 서로 소개를 하면서 칸노 나나오를 만난다. 실은 이때부터 요꼬야마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칸노 나나오에게 은근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취주부에서 단장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여러 역할을 하고 공부도 잘하고 잘 생기고 어느 정도는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는 나나오. 요꼬야마도 말로는 겸손과는 거리다 멀다는 둥 계속 딴지를 걸지만 그건 그만큼 끌린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게 취주부에서 퍼커션을 맡기로 했다는데... 여기서 요꼬야마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린다. 물론 독자인 나도 궁금했던 것을. "저기... 퍼커션이 뭐야?" 와, 이 한 마디로 인해 그 다음엔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퍼커션이 뭐냐고? 그건 타악기란다. 나만 모르고 있던 건가.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을 뒤로 넘어가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요꼬야마 에이지의 대화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쿡쿡 대다가 웃음보를 터트리고 만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꼬야마도 칸노 나나오도. 어쩔 수 없이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요꼬야마는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약한 엄마,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병을 앓게 된 동생 때문에 자신도 힘든데 내색 한번 못한다. 아니, 위로받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그럴 엄두도 못낸다. 자신이 모두를 책임져야 하니까. 그리고 칸노 나나오는 외적으로는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입양되어 엄마의 정을 못 느끼고 자랐다. 무엇보다 정을 주지 않는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는 나나오의 말을 읽으며 괜히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더욱 나나오가 괜찮은 녀석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나나오는 보통의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 아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길을 택해서 미국으로 떠나고 요꼬야마는 새로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새로 밴드를 시작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간단하게 이렇게 둘은 각자의 길로 잘 갔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둘의 우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뿐만 아니라 요꼬야마가 자신을 드러내고 힘들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건강한 청소년으로 돌아간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나나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괴로움을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드디어 과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상냥하게 변했다고는 볼 수 없다. 대신 그것을 바라보는 요꼬야마의 마음이 변한 것이겠지. 일본에서는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