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판타스틱 사생활 보름달문고 29
요안나 올레흐 지음, 이지원 옮김, 윤지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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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우리네 아이들의 고민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의아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진짜 아이들처럼 생활하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열두 살의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를 돌아보니 학원 다니고 시험 공부하고 인터넷하며 머리 식히는 게 거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무엇이든 학원을 다니면서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게다가 서울에 국제중이 몇 개 들어서면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한 공부경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하긴 지금도 모두 그렇지만.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아이들이 부러워해야 할 사항이건만 왜 내가 더 부러운지 모르겠다.

폴란드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인지 낯선 장면들도 있다. 미지오웩의 엄마가 마트에서 장을 봐 온 것을 정리하며 과소비했다고 자책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다지 과소비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어 보인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이 이미 과소비에 점령당했다는 말인가. 어쨌든 이건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니 넘어가자.

가족을 소개하는 글에서부터 톡톡 튀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동생들을 괴물로 표현해서 순간적으로 주인공이 약간 삐딱한 아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던 차에 만나는 차례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퍼즐처럼 빽빽한 낱말들이 있어서 뭘까 생각하며 들여다보면 옅은 색으로 선택된 낱말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 말을 읽으면 차례가 되는구나. 하지만 괜히 머리 아픈 것 같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본문으로 바로 넘어가도 전혀 문제될 것은 없을 테니까. 다행히 본문에서는 그다지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읽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글은 단순히 미지오웩의 생활을 나열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똑같은 하루라도 미지오웩은 유머가 넘치고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으니까.

미지오웩의 열두 살을 꼬박 들여다 보았다. 학교에 다니는 중에는 일기로 만났고 방학 중에는 캠프를 간 곳에서 주고 받은 편지로 만날 수 있었다. 얘네들은 방학이 되면 긴 캠프를 떠나고 휴가를 몇 주일씩 가는구나. 물론 우리도 캠프를 떠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정보수집 능력과 경제적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너무 많은 차이가 나니 보편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또 부러웠다. 그리고 아이들은 시험을 보더라도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지 않고 낙제를 할 위기에 처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글쎄, 이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지도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미지오웩의 두 동생은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전혀 부당하지 않을 정도로 행동한다. 아이쿠, 얘네 부모는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불평하지 않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키운다. 단순히 미지오웩의 일기와 편지를 통해 열두 살의 아이를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나라 아이들의 삶 뿐만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까지도 만났다. 이래서 책으로 간접경험을 한다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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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구 지키는 날! - 과학으로 배우는 똑똑한 환경 이야기
데니스 드리스콜.데니스 드리스콜 지음, 강은슬 옮김, 메레디스 해밀턴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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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환경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다. 분명 앞으로의 지구 환경이 낙관적이지 않으며 지금부터 뭔가 실천해야할 때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면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 자극받으며 뭔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 환경 관련 책이나마 꾸준히 읽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여기서는 지구를 이루는 것을 물과 땅, 공기로 나누어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시기도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할텐데 현대 생활은 점점 더 물을 많이 쓰도록 되어 있으니 큰일이다. 

땅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도시의 생활과 시골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교통문제와 자연의 먹이사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쓰레기 매립에 대한 것과 재활용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점점 사라져 가는 열대우림과 반대로 점점 늘어가는 사막을 대조해 놓았다. 열대림을 파괴하는 것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인간은 그것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이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공기를 다루면서 기상이변과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해, 지구 온난화 그리고 오존층의 파괴 등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직접 실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물론 다른 장에서도 동일하다. 이런 책은 목적이 분명한 책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찾아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약간 산만한 구조가 자칫 아이들이 책에서 눈을 떼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환경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할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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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함께 만들어요!
레미 사이야르 외 지음, 권지현 옮김, 이용성 감수 / 대교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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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는 사실일 수는 있어도 전부 진실은 아니다." 어떻게 편집하고 어떤 의견에 더 집중하느냐에 따라 논조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런 불신이 생긴 것일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나라도 어느 시대나 그런 왜곡은 있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위안을 삼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미디어의 속성이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초창기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매체가 있고 끈임없이 변화하기에 그에 대한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지 않으면 자칫 미디어의 노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고 이처럼 반기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속성을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뉴스란 어떤 것인가라는 것부터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지는지, 또 어떤 매체가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각 매체의 역할과 더 나아가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 같은 뉴스라도 실은 어떤 주장이 들어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이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는데 지금 아이들은 참 빠르다. 대신 나는 충격을 받고 그 후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 애쓰는데 반해 아이들은 그런 지식을 거저 얻었으니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디어의 전반적인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현실에서 사용하는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일 게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미디어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느냐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이들이 정확하고 올바른 미디어관을 갖고 자란다면 나중에 그 아이들이 커서 미디어를 이끌어 갈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기대해본다. 거기에 이 책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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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는 아이 - 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식량이 고갈된 지구에서 살아남는 법 미래아이문고 6
고정욱 지음, 이형진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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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제목을 보더니 뭐하러 텃밭을 가꾸느냐고 묻는다. 책을 읽지 않았으니 그렇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텃밭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도시에서 사는 요즘 아이들은 그런 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니까. 무엇이든 대형 할인점에 가면 살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 식품조차도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것이라고 믿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 직접 가꾸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덫을 이용해 사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 6,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그러나 민서가 족제비를 잡고 내려오며 이어지는 사연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도 공상과학이라고 단정짓지 못할, 그리고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그런 미래.

그것이 자연재해라기 보다 인재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낸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아예 꿈도 못 꾸고 쌀도 없어서 밥을 구경하기도 힘든 미래의 어느 날. 마치 오래전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그러나 미래의 생활은 더욱 암담하다. 열심히 농사라도 지어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장에서 구하려고만 하니까. 최신형 노트북보다 쌀이 훨씬 더 가치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민서네가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산속에서 숨어지내며 농사를 짓는 장면은 전혀 미래의 모습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가롭다. 농사 일이라고는 구경해 보지도 못한 엄마와 민서가 아빠를 도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인간이 욕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그것도 산적들에게 빼앗겨서 물거품이 되고 말지만... 

그렇게 숨가쁘게, 때로는 현재 벌어지는 상황에 한탄하면서(식량안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도 정부에서는 농지를 줄이려고만 하는 상황이 한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수입해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지.) 읽다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민서의 꿈이라는 이야기에 맥이 빠진다. 그냥 미래의 어느날 정도로 끝냈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주로 장애를 다루던 고정욱 작가가 이번에는 사회성 짙은 식량문제를 꺼냈다는 생각에 흐뭇했는데 마지막이 조금 아쉽다. 이러면 아이들은 '훈계하려 드는 것'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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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노루 밤비 - 파랑새 클래식 2
펠릭스 잘텐 지음, 김영진 옮김, 윤봉선 그림 / 파랑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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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라는 제목을 보며 '당연히' 사슴을 생각했다. 디즈니 애니매이션에 나오는 하얀점이 박힌 사슴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데 시작부터 노루가 태어났단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그 밤비가 아닌가? 나중에 보니 제목에도 분명 노루라고 되어 있다. 밤비라는 말에 다른 것은 주의깊게 보지도 않고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그 이야기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후기에 나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 후기를 읽어보니 역시 그 밤비가 맞았다. 미국에는 노루가 없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할 때 사슴으로 번역을 했고 그것을 기초로 디즈니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슴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잠시 옆길이긴 하지만 언어라는 것은 이처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때로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게 디즈니가 영화로 만든 덕분에 밤비는 지금까지 많은 어린이들에게 잊혀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너무 상업적이며 미국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디즈니사지만 이때만 해도 밤비에 나오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직접 키우며 관찰했다고 한다. 뭐, 지금도 만화 만드는 기술은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숲속에서 엄마와 함께 평화롭게 지내는 밤비를 상상하면 한없이 아늑하다. 그러나 어디에나 영원한 평화란 없다. 그리고 어느 동물이건 산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어차피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니까. 밤비는 풀을 먹기에 누구를 해치지는 않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먹힐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숲 속의 동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가끔 총을 메고 나타나 숲을 온통 긴장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 동물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전지전능한 무서운 존재로 각인된다. 동물들이 인간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은 이것이 철학동화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하다.

엄마와 떨어진 밤비가 늙은 노루(그가 결국 밤비의 아버지였다!)의 보살핌 덕분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훨씬 늠름한 노루가 되지만 보통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노루처럼 현재의 재미와 흥미를 좇는 것이 아니라 혼자 생활하면서 조금은 속세를 떠난 듯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마치 늙은 노루가 그랬던 것처럼. 밤비는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디즈니 만화를 하도 오래전에 봐서 가물가물 하지만 그걸 보며 과연 이런 느낌을 받았던가. 철학적이면서 초월적인 어떤 것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밤비가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밤비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며 완성해 나가는 것에 숙연함 마저 느낀다. 읽는 동안은 존 골즈워디가 사냥꾼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말에 공감하고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모든 인간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빠르게 돌아가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영상매체보다 이런 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가치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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