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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한정주 지음 / 예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당쟁이 시작할 당시 그 회오리 안에 있었던 인물, 그러나 결코 어느 한 쪽에 깊이 가담하지 않았던 인물인 율곡. 정치적 입장이나 인맥으로 보자면 서인에 속했지만 당파적 입장보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인물이었기에 율곡이 세상을 뜨고 나서 당파 싸움이 심해졌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율곡에 대해 <자경문>을 기본으로 해서 그의 삶의 철학을 살펴보는 기회가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대개 알고 있는 이이의 업적이나 생활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특히 그가 평생의 철학으로 삼았다는 <자경문> 뿐만 아니라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과 함께 살펴본다.
'입지'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장인 '정의'장까지 총 7개의 장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정치란, 그리고 세상이란 결국 비슷한 틀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율곡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율곡이 하고자 하는 말들이 당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일까. 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고 저자가 훈계하는 듯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때로는 마음에 콕 박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뻔한 이야기를 다시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마치 별 마음에도 없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듯했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집어들면서 기대했던 것(율곡에 대해 자세히 알고 동시에 그 시대의 역사적 지식도 넓히는 것)과 약간은 다른 방향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적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많이 나온다. 어떤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할테니까.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저자의 견해가 들어간 사실이 전부일 거라고 기대했던 것 뿐이다.
전제군주제든 대통령제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리더가 잘나서 모든 것을 혼자만 이끌어간다면 그것은 자칫 독재에 빠질 염려가 있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독선과 오만에 빠질 수가 있다. 차라리 진짜 잘나서 그런다면 그건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잘나지 않았는데 잘났다고 착각하는 리더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능력있는 인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자 덕목이다. 아니, 어쩌면 요즘처럼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을런지.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약 이이가 선조가 아닌 다른 임금을 만났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선조가 현명했는지는 모르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율곡이 그처럼 개혁을 부르짖으며 잘못을 일러줘도 계속 미루기만 하거나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까. 그리고 비록 율곡이 죽은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대처한 것을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이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이럴 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면서 일종의 희망을 품을 수 있고, 그러면서 그것을 현실에 대입해서 잘못을 투영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만약 그때 선조가 이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고 개혁을 했다면. 아니면 이이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다면... 저자는 이이의 삶을 통해 진정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을 텐데 난 또 이렇게 '현실'에 투영시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