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새는 들소 몸에서 기생충을 청소해요 - 둥지공생 공생과 기생 6
브리지트 자일스 지음, 김승태 옮김 / 다섯수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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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생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나마 이 시리즈의 책을 보고 공생에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지 새롭게 알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흔히 공생은 좋은 것이고 기생은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나만 그런가?) 종류가 다른 두 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 모두 공생이라고 부른단다. 따라서 기생도 공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긴 사람도 혼자는 살아갈 수 없듯이 생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법이지. 그렇다면 공생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책에서는 공생 중 동거동물, 호텔 식물, 청소동물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생명체는 어쩜 이렇게 기발한 방법으로 살아가는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영화 <니모>로 잘 알려진 흰동가리와 말미잘은 동거동물이란다. 이럴 때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니까 상리공생이라고 할 수 있겠지. 브로멜리애드라는 식물은 잎그릇에 물을 저장해 놓는데 그곳에서 새끼를 키우는 게도 있단다. 아주 작은 웅덩이인 셈인데 그곳에도 생명체가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딸기독화살개구리는 자신의 올챙이를 그 웅덩이로 옮기기 위해 등에 태우고 나무로 올라간다. 특히 브로멜리애드는 자체가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이 아니라 줄기에 붙어 사는 착생식물인데 거기에 또 붙어 사는 동물이 있는 셈이다. 이러니 어찌 자연이 신비롭지 않을까.

아이들은 생생한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에 흠뻑 빠진다. 글이 좀 많다 싶을 때는 사진을 보며 거기에 있는 설명을 보아도 충분히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여기에 나오는 동식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암튼 아이들 책 보며 어른인 나도 많은 것을 배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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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씨 주니어 원정대 ˝초등 600 영단어˝
(주)행복한바오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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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배가 온 날부터 하고 싶다고 했으나 그동안 애들 둘이 감기 때문에 아프기도 했고 서로 바쁜 일이 있어서 미루다가 드디어 인심 한번 썼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나서 거실 바닥에 판을 벌였다. 그냥 잉글리씨 원정대는 단어가 어려워서 아이들이 힘들어 했는데 이건 주니어라 그런지 쉽다. 아이들도 따로 외우지 않고 그냥 시작을 하잔다. 우선 날씨를 하겠다고 해서 커버에 판을 끼웠다. 전에는 커버가 없어서 단어 가림판을 올려 놓으면 살짝만 건드려도 흐트러져서 불편했는데 이렇게 하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어 했던 연호가 단어를 열심히 가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은 이렇게 가리거나 판을 보면서 단어를 외우고 있었단다. 알고 있는 단어가 많아서 '도전'을 외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첫 판을 시작하며 보석을 제일 조금 얻은 사람이 설거지 하자고 했더니 모두 안된단다. 그래서 첫 판은 그냥 연습게임으로 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판은 진짜 설거지를 걸고 시작했다. 

첫 판에 설렁설렁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단어 암기장을 활용하겠단다. 그러더니 아이들 특유의 폼인 저 폼을 해가지고 알쏭달쏭한 단어를 열심히 적는다. 역시 내기가 무섭다. 그런데 연호의 단어 암기장을 보니 dessert의 마지막 t가 어째 d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설마했더니 결국 게임 도중에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연호의 말이 마침 후식에 멈췄는데 'desserd'로 적는 것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승아와 내가 바로 '도전'을 외쳤다. 우리는 이럴 때 봐주는 것 절대 없다. 연호가 나중에 무척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두 번째 판은 마지막까지 말이 남아 있는 단어를 비켜가서 주사위를 열심히 던져야 했다.(중간에 한창 게임에 몰두하느라 사진 찍는 걸 깜빡했다.) 게임이 끝나고 보석 갯수를 알아보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셋이 모두 동일한 것이다. 결국 설거지는 원래의 임자에게 돌아갔다. 바로 나.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과 단어 맞추기를 조금 더했다. 단어판이 주제별로 되어 있어서 그것만 가지고 게임을 해도 되겠다. 몇 번만 게임을 더 하면 600단어는 금방 외우겠다. 주니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쉬우면서도 주제별로 되어 있어 기억에 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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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장난 -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8
이경화 지음 / 대교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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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주제가 비슷한 일본 작가의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일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차, 이건 우리 아이들이야기지. 왜냐하면 일본 작가의 책(단편이지만 서로 인물이 연결되는 구조였다.)은 왕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 보다 친구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약간은 끝이 행복하게 끝났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다른 책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결말을 걱정스러워하며 읽었다. 뒷부분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흔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왕따는 그럴만한 행동을 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떤 때는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맞게 사건을 보고자 하고 거기에 맞는 것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하긴 이것이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는 일단 반대의 경우도 가정을 하고 들어야 나중에 (부모가)받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대다수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아이들도 영악해져서 어른이 알지 못하도록 교묘히 눈가림을 한다. 가해자의 주모자인 강민이 부모가 자신의 아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절대로 먼저 폭력을 쓰지 않는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부모를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하다가도 그것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좌절감마저 든다.

왕따문제에 있어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가해자도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강민이처럼 어렸을 때 자신이 받았던 수모를 잊기 위해서 내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힘만이 제일이라는 비뚤어진 사고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신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기서 강민도 일종의 그런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고 많은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그 상황을 즐기는 대다수의 아이들 또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많은 아이들이 속으로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언제 자신이 피해자로 돌변할지 모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만약 내 아이가 방관자 입장이라면 어떻게 대처하라고 일러줄까. 나서서 그 친구를 도와주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그냥 그 상황을 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가해자가 되는 것도 싫지만 그로 인해 내 아이가 어떤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일 게다. 마치 이 책 속의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언젠가는 양심이 승리할 희망이 있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부디 이런 상황이 보편적인 일이 아니길 빌 따름이다. 그리고 피해자를 측은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기 전에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잘 가르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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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최승렬 동시집
최승렬 지음 / 재미마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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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쓴다. 마찬가지로 딸은 책을 고를 때도 내용보다는 표지를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내용이 좋다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끌리지 않으면 선뜻 집어들지 않는다. 만약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이 책은 어떨까. 분명 옛날 것 같다고 하겠지. 사실 나도 요즘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에 길들여졌는지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참 낯설었다. 글씨체도 요즘은 얼마나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 많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몇 십 년 전의 책을 연상케 하는 표지와 글씨체에 판형도 그렇다. 

그러나 항상 딸에게 하는 말이 있다. 외적인 것 보다는 내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라고. 마찬가지로 이 책도 겉표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시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되도록이면 시인의 글 그대로 실어서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게다가 이 시집은 1955년의 초간본을 기본으로 했다니 의미가 있다.

시를 잘 모르는, 그리고 시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그냥 마음을 비우고 읽는다. 간혹 잘 모르는 단어가 있고 지금은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될 만한 표현이 있지만 그것은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해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메마른 내 마음이 그런 표현을 부담스러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서문에 적힌 글을 보니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면서 시들이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언제나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다닐 수 있도록(시란 그렇게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꺼내 보는 것이라고 한다.) 작고 가볍다. 부디 표지가 요즘의 그것들과 다르다고 외면당하는 일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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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한정주 지음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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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이 시작할 당시 그 회오리 안에 있었던 인물, 그러나 결코 어느 한 쪽에 깊이 가담하지 않았던 인물인 율곡. 정치적 입장이나 인맥으로 보자면 서인에 속했지만 당파적 입장보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인물이었기에 율곡이 세상을 뜨고 나서 당파 싸움이 심해졌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율곡에 대해 <자경문>을 기본으로 해서 그의 삶의 철학을 살펴보는 기회가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대개 알고 있는 이이의 업적이나 생활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특히 그가 평생의 철학으로 삼았다는 <자경문> 뿐만 아니라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과 함께 살펴본다.

'입지'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장인 '정의'장까지 총 7개의 장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정치란, 그리고 세상이란 결국 비슷한 틀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율곡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율곡이 하고자 하는 말들이 당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일까. 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고 저자가 훈계하는 듯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때로는 마음에 콕 박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뻔한 이야기를 다시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마치 별 마음에도 없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듯했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집어들면서 기대했던 것(율곡에 대해 자세히 알고 동시에 그 시대의 역사적 지식도 넓히는 것)과 약간은 다른 방향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적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많이 나온다. 어떤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할테니까.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저자의 견해가 들어간 사실이 전부일 거라고 기대했던 것 뿐이다.

전제군주제든 대통령제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리더가 잘나서 모든 것을 혼자만 이끌어간다면 그것은 자칫 독재에 빠질 염려가 있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독선과 오만에 빠질 수가 있다. 차라리 진짜 잘나서 그런다면 그건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잘나지 않았는데 잘났다고 착각하는 리더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능력있는 인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자 덕목이다. 아니, 어쩌면 요즘처럼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하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을런지.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약 이이가 선조가 아닌 다른 임금을 만났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선조가 현명했는지는 모르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율곡이 그처럼 개혁을 부르짖으며 잘못을 일러줘도 계속 미루기만 하거나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까. 그리고 비록 율곡이 죽은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대처한 것을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이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이럴 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면서 일종의 희망을 품을 수 있고, 그러면서 그것을 현실에 대입해서 잘못을 투영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만약 그때 선조가 이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고 개혁을 했다면. 아니면 이이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다면... 저자는 이이의 삶을 통해 진정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을 텐데 난 또 이렇게 '현실'에 투영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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