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간 귀 토끼 ㅣ 미래그림책 89
에르나 쿠익 지음, 김라합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책에서 토끼의 귀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표지를 보며 생각한다. 아마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거나 다름을 인정하는 이야기 일거야. 그런데 내용은 의외의 이야기다. 나누는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처음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뒷부분까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나중에서야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에 아이와 읽었을 때는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혼자 찬찬히 읽어보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한 번 읽어서는 그 책의 진가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의 하나인가.
어쨌든 책장을 펼치면 시원시원하면서도 꽌 찬 듯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바스티안도 보이고. 어린 토낀데 신문을 읽고 있네. 그런데 신문을 읽고 있는 건 아니란다. 다만 예전에 읽었던 것이라 그냥 들여다보고 있는 것 뿐이라고. 여하튼 읽은 건 읽은 거네. 신문을 북 찢어서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 바로 자화상을. 아시다시피 자화상은 거울을 보며 그려야 한다. 그런데 바스티안이 갖고 있는 거울은 너무 작아서 귀까지 다 보이질 않는다. 보이는 곳까지 그리고 보니 뭔가 허전하다. 당연하지. 귀가 빠졌으니까.
바스티안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해 있을 때 친구들은 싫증이 났는지 숨바꼭질을 하러 밖으로 나간다. 결국 그렇게 혼자서 귀를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느끼는대로 그린 다음 다시 느낌이 이끄는대로 빨갛게 칠한다. 이쯤에서 혼자 떨어진 바스티안이 외로워하거나 속상해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대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은 친구를 멀리하기도 했다가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하게 지내니 이 책도 그런 내용일거야.
하지만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아무래도 내가 아이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순수하고 베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말이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놀이를 개발하는 아이의 멋진 창의력과 친구들과 나눌 때의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