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매 2 - 고우영 원작 동화
고우영 지음, 박신식 엮음, 이관수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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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일지매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벼슬아치들의 양심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그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살려 놓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끝까지 겁만 주고 죽이지는 않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영의정 김자점이다. 

청나라와 손을 잡고 전쟁을 일으켜서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다음 권력을 계속 유지할 꿍꿍이를 갖고 있는 김자점에게 하는 말은 아마도 고우영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야말로 과거를 끌어와서 현대를 비트는 것이라고나 할까. 

사건을 일직선으로 서술만 하고 있어서 특유의 비틀기를 맛보는 데는 조금 약한 면이 있으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일지매가 주목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지금의 이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이러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은 아닐런지.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의적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여하튼 일지매의 활약과 고뇌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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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 1 - 고우영 원작 동화
고우영 지음, 박신식 엮음, 이관수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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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식당(비록 시골학교지만 급식을 줬기에 식당이 따로 있었다.)에서 영사기 돌려가며 상영해 주던 영화 일지매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하얀 복장을 하고 다녔던가 그랬다. 책에서는 검은 복장을 했다는데 내 기억 속에는 하얀 복장이다. 어쨌든 그렇게 일지매는 책으로 만나지는 못했어도 그냥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고우영의 일지매를 이번에는 동화로 펴냈다. 드라마로도 나왔지만 예전의 그 기억 때문인지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예전에 만난 이후로 최근에는 처음 만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이러한 의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지매가 활약하는 시기도 정세도 어지럽고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힘겨운 시대다.  양반집 서자로 태어났지만 체면을 위해 버려진 아이 일지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무예도 배운다. 뛰어난 무예 실력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힘을 휘드르기도 하지만 스승인 열공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이러한 이야기가 그렇듯이 신출귀몰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이지만 중간중간 과연 개인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지금이야 더욱 더 통용되지 않는 법 질서 차원에서는 일지매가 분명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지만 서민의 처지에서 보자면 통쾌하다. 

그러나 만화로 된 것을 동화로 옮겨서 그런지 그냥 사건을 시간에 따라 설명해 주고 있어서, 마음 졸이면서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힘은 없는 듯하다. 사건을 단순하게 서술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긴 다른 구성을 취한다면 재창작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언제 기회가 되면 만화로 된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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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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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 <나그네의 선물>이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한참 전에 모임에서 그 책을 이야기하자 한 명이 마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야기랑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때는 그 이야기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비슷하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무엇이 비슷한지 금방 이해가 갔다. 이렇듯 고전은 단순히 과거에 씌어진 작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물론 그 작가가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이어내려오는 것인가 보다.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집에서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온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 기억력.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읽으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시 읽어도 완전히 새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어쨌든 읽었던 작품도 있고 처음 읽는 작품도 있는 이 단편집을 읽으며 현재를 생각했다. 솔직히 예전에 톨스토이의 생가 사진을 보고, 또 그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읽고 선입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부유하니까 아무 걱정없이 글을 쓸 수 있었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책상에만 앉아서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있는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현재를 대입하며 읽었다. 이 글이 씌어진 것이 언제인데. 그렇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지고 한숨이 나온다. 특히 <지옥의 붕괴와 부흥>이라는 이야기는 어쩜 현재와 그리도 똑같은지. 그 글을 읽는 순간에는 현재의 작가가 현재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기독교적인 사상이 그 이야기에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다뤄진다. 물론 사상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아주 신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비판한다. 

솔직히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종교적이라서 처음엔 그다지 빨려들지 않지만 조금만 읽다 보면 톨스토이의 작품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특히 그가 말로만 민중을 외치지 않고 실천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그럴 것이다. 비록 현실의 벽에 막혀서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치 성화를 보는 듯한 그림은 몇 점 안 되지만 정성이 느껴진다. 적어도 삽화라고 대충 그리지 않은 것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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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특별 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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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다윈전에 갔는데 함께 간 선생님이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하셨다. 물론 선생님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무조건 믿기에는 뭔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또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기에 그와 연결해서 생각하다 보니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과연 최초에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또 한 생명체에서 지금처럼 다양한 생명체로 분화될 수 있을까 등 생각하면 할수록 더 모호함에 빠져드는 것 같다. 

이처럼 지금을 기준으로 봤을 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하나씩 하나씩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인 이 책은 참 흥미롭다. 주로 과학, 그것도 지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미 많은 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해도 다시 읽으니 새롭다. 그것은 아마도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 나이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림으로 보는'이라는 제목답게 커다란 판형에 선명한 그림이 들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다만 가끔씩 친근한 문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 낯설기도 하다. 대부분의 어린이 책은 살가운 문체를 쓰는데 반해 이 책은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약간은 딱딱한 느낌이 든다. 주로 어른 책에서 보는 그런 식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원자에 대한 내용 중에 우리가 죽으면 원자는 다시 흩어졌다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다면서.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했더니 기분이 묘하단다. 실은 나도 그랬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쓰면서도 그렇게까지는 생각지 않았는데 말이다. 당연한 것인데 미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과학적 지식 책과는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것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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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임응식 -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예술가 이야기 3
권태균 지음 / 나무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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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학생 중에 장래희망이 사진가라며 DSLR 카메라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구체적인 장래희망을 정하지 않았거나 대충 장난처럼 이야기하던 것에 비해 정말 진지하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비록 다른 아이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속이 깊은 아이로 남아있다. 이 책을 보고 그 학생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좀 아는 사이였다면 이 책을 선물로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냥 스치듯이 만난 학생이었기에 그냥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한때는 작은 디카가 유행이다시피 하더니 요즘에는 약간은 전문가적인 냄새가 풍기는 DSLR 카메라가 (속된 말로)대세다. 그러고 보면 이제 사진은 누구나가 즐기는 레저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프로는 아니어도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문득 작년 겨울에 눈 오는 날 융건릉엘 간 기억이 난다. 융건릉의 백설이 하도 유명하다기에 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볼 요량으로 디카를 들고 갔다. 그런데 주차 관리하시는 분이 사진 찍으러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카메라가 안 보여서'라고 말씀하신다. 내 카메라는 가방 안에 있건만.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안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커다란 렌즈를 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동호회에서 온 듯했다. 거기서 얼른 사진만 몇 장 찍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만큼 이제는 사진 찍는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자 때로는 예술로 여겨질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신 예술로 여기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 생각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임응식이 사진을 예술이라고 생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뀌었단다. 그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 게다. 그러나 임응식은 그러거나 말거나 렌즈에 수많은 사실들을 담아냄으로써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임응식은 부산에서 일제강점기부터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는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특히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찍는 사진은 더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다른 책(경성, 사진에 박히다)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창작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임응식은 마음대로 촬영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단다. 결국 그것을 피해 강릉으로 이사를 갔으나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중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오로지 사진만을 한평생의 업으로 삼고 죽기 직전까지 셔터를 눌렀다는 임응식. 그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담은 예술이어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전쟁의 폐허를 찍은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사진을 보니 마치 알고 있었던 사람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이 얼마나 예술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여하튼 사진가들에게 임응식은 아마도 추앙받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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