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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청소년 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판타지였다는 것을. 마침 지난 해 어린이 청소년 책의 출판경향을 분석한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지적한 것 중 하나가 어린이 책에는 판타지가 많은데 청소년 책에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책은 판타지도 상당히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책 중에는 정말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책을 읽었다. 그것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상당히 들어가 있는 청소년 책을 말이다. 아, 이제 조금씩 청소년 책도 판타지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것일까. 모처럼 한 권 읽었다고 확대해석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겠지.
이 책의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어디를 보나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든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주인공 본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새어머니의 냉대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태도를 보며 그래도 언젠가는 바뀌겠지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의 어린이 책에서는 그렇게 되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낭만적인 세계를 꿈꾸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비록 위저드 베이커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이 아닌 세계라고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가감하지 않은 현실 그 자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현실일지라도 솔직히 과연 이것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부모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꽤 있었다. 현실은 아름다운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이에게 그러한 현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커다란 오해를 끌어안고 집에서 도망쳐 나온 주인공은 매일 빵을 사 먹었던 빵집으로 가고 그곳에서 오븐 속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를 비춘다. 하지만 이곳은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은 세계가 아니라는 여러 정황들 때문에 판타지 세계라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도 없다. 어떻게든 현실세계와 연결이 되어 있고 때로는 현실이 되기 때문에 정말 판타지 세계가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븐 속의 세계에서는 새로 변하지만(물론 공간이 원인이 아니라 시간이 원인이지만) 빵집 계단대에서는 사람으로 변해있는 것을 보면 분명 판타지 세계가 맞다.
주인공이 학교도 안 가고 그 곳에서 잠시 생활하는 동안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맞춤형 빵과 쿠키를 포장하는 일을 맡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참 많은 일을 겪는다. 또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의 힘을 기르기도 하고 세상과 마주서는 연습을 조금씩 한다. 그리고 결국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아주 귀한 선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바로 타임 리와인더. 딱 한 번만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려 준다는, 누구든지 한 번쯤 꿈 꿔봤을 법한 그런 기계다. 그리고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주인공이 타임 리와인더를 본인이 돌리고 싶어하는 시간대(즉 배 선생을 새엄마로 받아들이지 않는 때.)로 돌아갔을 경우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주했을 때의 경우다. 후자의 경우 비록 어려운 시간은 거쳤지만 견뎌냈다.
그리고 작가는 마법사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만약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고 해도 과연 지금의 상황과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있는가하고 말이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렸다면 그 이후의 기억을 지우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동일한 선택을 했을 때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시간을 되돌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나도 가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줄어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현재를 열심히 살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전에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먼 어떤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현재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래서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현실을 회피하기만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