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1 생각이 자라는 나무 16
강혜원 외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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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가 잘 되어 있다.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서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읽는 것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면 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훨씬 더 넓어지리라 본다. 그런데 만약 그 정보에 관련된 것만 모아 놓았다면 어떨까. 한편으론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떠먹여 주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책을 모두 읽었다는 전제하에)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바로 얼마 전에 딸과 함께 <제인 에어>를 읽었던 터라 이 책의 목차에서 그 제목을 발견하는 순간 괜히 반가웠다. 물론 전에 읽었던 책에서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읽었지만 이렇게 따로 나올 정도라면 더 자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뭐,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충족시켜준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는 좀 뻔하다 싶게 저자(고전의 원저자가 아니라 국어 선생님들)의 주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를 거론한다. 

고전이라고 일컫는 책들은 오랜시간 동안 읽히며 인정받아 온 책들이다. 따라서 단편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종종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작가에 대한 것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작품과 작가, 그리고 시대상황까지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에 원래의 고전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내 경우도 읽었던 책에 대한 것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책에 대한 설명을 읽는 것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빠른 시간 내에 고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확장된 지식을 넓히는 도구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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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화딱지 중앙문고 92
만프레드 마이 글, 레오나르드 엘브루흐 그림, 문성원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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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반면 둘째는 속으로 삭힌다. 게다가 큰 아이는 여자라서 말을 조리있게 하기 때문에 항상 누나에게 밀린다. 그러니 속으로는 얼마나 화가 날까. 그래서 둘째가 가끔은 화가 너무 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걸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아주 가끔은 화를 너무 참지 말라고 이야기할까. 화를 지나치게 내는 것도 문제지만 항상 참는 것도 문제라는 게 평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며 둘째가 생각났다. 알렉산더가 화는 나는데 제대로 이야기 한번 못하는 모습이 둘째와 비슷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여동생이 얄미운 짓을 하는데도 엄마가 알렉산더만 야단치니 얼마나 억울할까. 학교에서는 또 어떻고. 그런데 알렉산더가 화를 못 참고 이상한 괴물을 그려서 그 괴물이 살아 움직이면서 알렉산더에게 변화가 생긴다. 화딱지라고 하는 괴물은 알렉산더가 화를 내면 낼수록 몸집이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알렉산더의 화가 풀어지면 다시 작아진다. 와, 이 얼마나 그럴 듯한 발상인가. 정말이지 가끔은 마음 속에 뭔가가 있어서 화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화딱지는 알렉산더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그래서 가끔은 통쾌하기도 하다. 특히 그동안 모두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수학 선생님에게 적나라하게 말하는 모습은 아주 통쾌했다. 게다가 수학 선생님이 변하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피한다는 것이다. 가끔 잘대해주는 친구도 있지만 그것은 단지 화딱지가 무섭기 때문이다. 만약 알렉산더가 계속 화딱지를 옆에 두게 된다면 점점 외로워질 것이다. 물론 알렉산더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해결책이 금방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 

알렉산더가 화내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화가 날 때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준다. 특히 그런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고 알렉산더가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노숙자 아마데우스다.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은 결코 아니다. 다만 화를 어떻게 내는가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화를 무조건 참으로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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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자전거 날쌘돌이
다바타 세이이치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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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자전거를 엄청 잘 탄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경사가 급해서 못 타게 하지만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친구와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봄부터 매일 타고 다녀서 얼굴이 새까매질 정도였다.  

그런데 둘째 만큼이나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지 자전거 이야기 책이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자전거를 타는 아이가 주인공이 아니라 정말로 자전거가 주인공이다. 바로 날쌘돌이라는 자전거인데 워낙 망가져서 버려진 자전거다. 자신은 쓰레기가 아니라 더 달릴 수 있다고 항변하지만 누가 봐도 많이 망가진 자전거의 모습이다. 그러나 유끼짱을 만나 겐지 할아버지에게로 간 날쌘돌이는 근사한 자전거로 거듭난다. 정말로 잘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아프리카로 난 날쌘돌이는 그곳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결국 날쌘돌이는 위험한 아기를 구해서 그 소식이 유끼짱에게도 전해진다. 아무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자전거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유용하고 소중하게 쓰인 것이다. 날쌘돌이의 눈에 나타나는 표정이 재미있다. 자전거에 눈이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헌데 마지막에 작가가 당부하는 말을 읽으며 잠시 헷갈렸다. 날쌘돌이는 버려진 자전거라 유끼짱이 가지고 가서 좋은 곳으로 보내졌으나 그렇다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자전거를 가져가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책에서는 가지고 갔으면서 현실에서는 그러지 말라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글을 읽고 아무 자전거나 가지고 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어린이들은 워낙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바로 실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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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절씨구! 열두 달 일과 놀이 -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농가월령가 길벗어린이 지식 그림책 1
장진영 그림, 김은하 글, 농업박물관 감수 / 길벗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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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아이들과 시골에 갔는데 마침 고추를 심는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물론 아주 쉬운 일만 했지만. 사실 외가가 시골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농사일에 대해 잘 모른다. 시키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들은 모든 것이 놀이로 다가오기 때문인 면도 있다. 그래서 못자리를 하는 것도 언제였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 옆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었는지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하지만 아예 접해 보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뭔가를 하는 것을 보고 가끔은 함께 일하기도 했으니까. 

이 책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그다지 신기해 하지도 재미있어 하지도 않는다. 오직 냇가에서 고기 잡으며 노는 아이들 그림을 보며 재미있겠다는 둥 이런 그림(작은 사람이 많이 나오는 그림-큰 아이가 그림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은 그리기가 어렵다는 둥 내가 기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림을 보며 잠시나마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 마을을 기준으로 그 마을의 일 년을 파노라마처럼 비춰준다. 한 동네를 전부 보여줄 수는 없기에 가끔은 집 위주로 보여주기도 하고 가끔은 들을 더 많이 보여주기도 한다. 봄이 되면서 짓기 시작하던 집은 어느 새 이엉을 얹고 나중에 보니 벌써 사람이 살고 있다. 이렇듯 차근차근 살펴보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전부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글로 이러쿵 저러쿵 설명하지 않는다.(물론 뒤에서는 한꺼번에 설명해 준다.)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것이 다른 그런 책이다. 

이번에는 둘째가 시험기간이라 큰 아이와 활동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예쁜 책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큰 아이와 하는 것이 깔끔할 것 같아서였다. 


책 앞부분에 있는 절기표를 보더니 봄인데 이월령이냐고 묻는다. 아마도 정월령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테니까. 월령은 음력으로 표기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을 해주자 살짝 헷갈려 한다. 아이들은 지금도 양력과 음력을 헷갈려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생일은 음력으로 하기 때문에 외우질 못하겠단다.

어쨌든 각 계절에 해당하는 절기를 따로 떼어내서 정리했다. 이 중에 얼마나 아느냐고 하자 그래도 몇 개는 들어봤단다. 하긴 나도 정확히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나마도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이다.

만들어서 접어 놓은 모습이다. 여미는 부분은 자석으로 되어 있다.

자석을 붙여서 닫아 놓은 모습. 짝지 접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모양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 

펼친 뒷모습은 이렇다. 사실 만드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이렇게 구상하는 것이 어려웠겠다. 모처럼 근사한 책만들기를 해놓고 딸과 무척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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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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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학부모 영어 교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딱히 떠오르는 작가가 없었다. 특별히 작가를 염두에 두고 읽지 않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어린이 책이라면 훤히 꿰고 있어서 대답하기 쉬울 텐데). 그러다가 문득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올랐다. 예전에 그에게 영향을 받았거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 책을 조사하면서 덩달아 소로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월든>을 읽었고 많은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지식이 협소해서인지 <월든>에서 인용하는 수많은 책을 알지 못하기에 내겐 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대신 소로의 그런 삶을 동경했고 그의 자연주의적이며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사실 소로가 에머슨과 절친하게 지냈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에머슨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여기서는 소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에 에머슨에 대해 많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래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소로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였기에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초의 제목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시민 불복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는 그 원문과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지금 수많은 미국인들이 소로라는 인물을 추앙하고 있지만 한동안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니 놀랍다. 고집스럽게 살다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소로.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에서 그를 인용하고 서로 자신의 주장에 끼워맞추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소로가 원인제공을 한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단다. 명확한 길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인용한다는 이야기다. 워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또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조금씩 알고 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약간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월든> 때문인지 자연주의자라는 생각이 더 강했는데 이제 비로소 소로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것 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마틴 루터 킹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만 보아도 소로가 단순히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푸념하듯 꺼내 놓은 것이 아니며,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주의적인 상념에만 사로잡혀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 그는 수많은 지식을 흡수하며 그것을 서로 연결시켜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했던 것은 아닐런지. 그러기에 세태에 대충 안주하며 살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는 어떤가. 마지막 부분에서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봐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조하는 요즘의 내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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