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지 두어 달이 지나면 그 때부터 근질근질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올해부터는 여행을 포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평일에 체험학습을 내고 다녔는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그러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면 갔다오기로 잠정 합의를 했던 터다. 

사실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목적과 직접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그래서 주로 역사나 체험을 위주로 가게 되었고 자연히 아이들은 그다지 반겨하지 않았다. 큰 아이는 잠을 푹 잘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불만으로 여기며 투덜댄다. 가끔 무작정 떠나서 순수하게 놀다오기라도 하면 둘째는 무척 좋아할 정도였다.  

헌데 요즘은 큰 아이가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허탈하다며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한다. 전 같으면 마지못해 따라나서던 아이가 아니던가. 이제 여행이 습관이 된 것일까. 그래서 몇 달 어딘가를 갔다오지 않으면 뭔가가 허전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모처럼 여행을 가자고 먼저 제안한 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시험이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원래는 1박을 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당일로 잡았다. 장소는 책에서 보았었고 주간지 특별부록에서도 보았던 농다리가 있는 진천으로 잡았다. 

일전에 아우라지에 있는 섶다리를 보고 참 특이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들어진 지 천 년이 다 된 돌다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우선 이 책에 나오는 정보를 보며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좋고 유익한 곳을 소개하는 책이라서 그런지 내 취지와 딱 맞는다. 마침 여기에 진천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을 보았던 참이다. 작년에 이 책을 구입했는데 책을 보며 상당 부분 우리가 갔던 곳이라서 반갑기도 했고 우리도 참 많이 돌아다녔구나를 새삼 느끼기도 했었다. 여기서 추천하는 코스인 종박물관과 농다리, 보탑사, 이원아트빌리지를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날 큰 아이가 묻는다.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워낙 미리 준비하는 딸인지라 출발 시각을 알아야 준비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8시 출발, 7시 20분 아침식사라고 했더니 아무말 없이 알았단다. 전 같으면 쉬는 날인데 너무 일찍 일어난다고 투덜댈텐데... 오히려 쉽게 대답하는 딸을 보며 우리 부부가 의아했다. 대신 둘째가 난리다. 그렇잖아도 1박2일로 갯벌을 갔다온 뒤라 피곤하다는 거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의 의견은 무시.(이러면 안 되는데...)

주말이면 영동고속도로가 막히기 때문에 국도로 향했다. 아는 길을 먼저 가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르지도 않는다. 만약 네비게이션이 생각이 있는 사물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다. '지들 맘대로 갈 거면서 나한테 왜 물어 봐!'라고.
 
종박물관 주차장에 들어서니 한산하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겠다.  


밖에는 이처럼 성덕대왕 신종 모형을 만들어 놓아서 마음껏 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웅장한 소리를 들으며 종에 손도 대보았다. 박물관 안에는 음통과 움통에 대한 자세한 설명 뿐만 아니라 음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소리를 직접 들으며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음통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성으로 잡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바닥에 움푹 파인 것을 움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리를 반사해서 여운이 길도록 해준다. 박물관 안에는 시기별로 종을 배치해 놓아 각 시대별 특성과 차이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음통이 없기도 하고 가운데 선을 그었으며 모양도 투박한 것을 알 수 있다. 승아는 왜 안 좋은 것을 받아들이냐고 반문한다. 글쎄, 그게 꼭 안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전통적인 우리의 방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당시의 유행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패션의 역사도 지나고 보면 무척 촌스러운 것도 당시는 대단한 유행이었다는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2005년에 개관해서 아직 주변이 어수선하고 규모도 그다지 큰 것은 아니지만 종의 세세한 부분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농다리로 향했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니 거의 천 년을 저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천 년 전의 사람들이 다녔던 곳을 지금 나도 건넜다니. 다리를 물의 흐름에 맞게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모양이라 농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걸쳐 있는 돌은 커다란 하나의 돌인데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천 년을 버텨왔다니 그야말로 기우겠지. 


농다리를 왔다갔다 하면 건강하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원래 다리밟기도 그런 의미니 거기서 유래된 것일까. 저 길을 건너서 올라가면 산책길이 있다. 지금도 정비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깔끔하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저수지가 나온다.

앞으로는(사진으로 보면 오른쪽) 중부고속도로가 있어서 좀 시끄럽다. 그동안 중부고속도로를 수없이 다녔지만 이런 다리가 있는 줄 전혀 몰랐으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보탑사다. 원래 길 떠나면 먹는 것이 가장 문제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편이 아니라서(우리의 여행 목적은 먹는 것이 아니기에) 지나가며 괜찮다 싶은 곳을 들어가곤 한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이 마침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맛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고추장삼결살이라는, 둘째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라서 연호는 아주 맛나게 먹는다. 그리고 나올 때 개업선물도 두 개 받아왔다. 식당 가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보탑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길이 워낙 좁아서 앞에서 차가 오나 안 오나 잘 살펴봐야 한다. 잘못하면 오도가도 못할 수가 있으니.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하는 것도 있다. 차가 오면 미리 넓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과연 이렇게 산골에 있는 절에 사람이 올까라며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웬걸, 차가 무척 많다.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절 유명한가 보다."

보탑사는 탑과 본당이 같은 특이한 절이다. 즉 저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탑이자 부처를 모신 불전이다. 탑은 목탑이며 더욱 특이한 것은 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면 삼층이지만 안으로 가면 중간에 층이 하나씩 더 있어서 총 5층이다. 올라가면서 딸꾹질을 하던 승아는 사람들이 절을 하는 조용한 1층에 발을 내딛는 순간 딸꾹질을 크게 해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탑 주변은 야생화를 어찌나 잘 가꾸어 놓았던지 사람들이 모두 그 꽃을 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비석이 있는데 비문이 하나도 없다. 설명서에 비문이 없다고 하니 알았지 안 그랬으면 비석을 보고도 모를 뻔했다. 그래서 이 비석을 '무자비'라고도 한단다.  

보탑사를 나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이원아트빌리지로 향했다. 이월성당 사진을 보자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이다. 아, 이렇게 서로 모르던 것들이 연결되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의 기쁨이란.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서 두 권의 책을 챙겼던 터다. 안 그랬으면 낭패볼 뻔했다.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에 씌어 있기를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이원아트빌리지'란다. 그 말이 뭔 말인지 실감했다. 이원아트빌리지는 고사하고 우리 내비게이션에는 미잠리라는 마을 조차도 안 뜬다. 간신히 쌍호교를 지나면 바로 있다는 <베스트 여행지>의 글을 읽고 쌍호교를 목적지로 찾아갔다. 다행히 쌍호교는 나온다. 참고로 우리 내비는 미오다. 아무래도 업데이트 좀 해야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이원아트빌리지. 이 미술관은 원대연이라는 건축가가 지은 곳이란다. 건축가들이 손에 꼽는 이월성당의 설계자라지. 잘 나가던 사무실을 접고 이곳으로 와서 미술관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니 참 안타깝다. 마침 이철수 판화전도 하고 사진전도 해서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두 남자는 어딘가로 휘리릭 가 버리고 승아랑 천천히 둘러보았다. 혹 빠진 것이 있나 꼼꼼히 둘러보는 승아를 보며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든 것일까. 비록 둘 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딸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미술관을 둘러보는 그 기분이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곳은 개방하는 공간이 3천 평이란다. 건물이 많고 길도 미로처럼 되어 있지만 어디로 가든 모두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다. 어느 곳에는 이렇게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뭇가지로 만든 자전거도 놓여 있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수레도 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갖가지 꽃은 또 어찌나 예쁘던지.


한쪽에는 색이 칠해진 돌이 놓여 있다. 가만 보아하니 관람객이 가지고 놀라고 해 놓은 것 같다. 연호는 아예 자리잡고 앉아서 자기 이름을 쓰겠단다. 그런데 한 글자 쓰더니 너무 힘들다며 그만둔다. 자그만한 전시관이 곳곳에 있어 발길 닿는대로 가서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한쪽 벽에는 이런 인형도 놓여 있다. 


상촌미술관이 있는 이원아트빌리지 입구. 건축가 원대연의 그림도 있는데 역시 건축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월성당 이야기를 하자면 원대연 건축가가 지어준 성당이란다. 건축가들은 그곳을 군더더기를 빼고 자연과 어우러진 편한 건축으로 손에 꼽는단다.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의 저자 이용재의 표현에 따르자면 '어두움과 밝음만 있는 명품'이란다. 그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그냥 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면서 남편도 승아의 변한 모습에 놀랐단다. 이제야 그동안 우리가 저희에게 했던 교육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일까. 며칠 전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내게 큰 고통을 안겨준 기억마저 좋은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집에 오는 중에 수학 문제집을 꼭 사야한다기에 서점을 간신히 찾아갔다. 어차피 큰 기대하지 않는 교내수학경시대회니 그냥 보랬더니 안 된단다. 명색이 반에서 몇 명만 보는 거라 은근히 부담이 되나 보다. 이거 우리집은 부모와 자식이 반대다.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딸의 변한 모습을 '확인'한 뿌듯하고 감동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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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바늘 -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
김경임 지음 / 홍익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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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외국에 산재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때론 화가 나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특히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라고 하는 직지심경마저도 불법 유출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구매해 간 것이기 때문에 그저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당시 사람들을 탓할 뿐이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약탈 문화재가 많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어느 정도는 체념한다. 게다가 한일협정에서 이미 문화재 반환에 대한 합의는 종결지었으므로 국가 대 국가로는 방법이 없다고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역사라고 위안을 할 수밖에. 하긴 후세에 지금을 돌이켜볼 때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일례로 종군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문화재 약탈과 반환 문제가 비단 우리의 문제 만이 아니다. 당연한 일일테지만 미처 다른 나라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 게다. 인류는 지금까지 계속 전쟁을 했으므로 전쟁 중에 문화재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일이 지속되었음은 당연하다. 특히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때 유럽 열강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시아 일부와 아프리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문화재 약탈에 대한 다른 나라의 상황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질 계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던 차에 이 책을 보니 새로운 관심 분야를 발견한 듯하다.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시대를 망라해 중요한 문화재의 약탈사를 다루고 있는 정보의 집합체다. 게다가 단순히 문화재에 대한 정보만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재와 연결된 역사까지 다루고 있어 세계사를 읽는 듯하다. 그것도 기원전부터 근현대사까지 시대를 막론하기에 처음에는 고대란 내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시대였는데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고대도 (내가 생각하는)역사의 범주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화재 약탈을 다루면서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과 같은 약탈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문화재란 인류 보편의 자산이라고 이야기하면서(그래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행태를 보면 화가 난다. 그야말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만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약탈되었거나 유출 경로가 정확하지 않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국가에서 직접 나서기는 어렵기 때문에 민간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외국에서 반환이 이루어진 사례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토대로 우리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간혹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세계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자료와 사례를 보여주고 우리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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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피웠어요 - 정일근 시인의 우리 곁의 이야기 2 좋은 그림동화 18
정일근 지음, 정혜정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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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실용적인 면에서 보자면 꽃다발은 그야말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꽃다발 보다는 실용적인 선물이 더 좋아지긴 했지만 가끔 꽃을 사다가 꽂아 놓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에서 꺾어 놓은 것보다 직접 나무에 있는 꽃을 보는 게 훨씬 아름답다. 특히 집에서 직접 키우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면 더 감동적이겠지. 그것도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면 말이다. 이른 봄이면 먼저 꽃 소식을 전해주는 꽃 중 하나인 목련. 하지만 봄에 꽃이 지고 나면 목련나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봄에 잠깐 꽃을 피우고 나머지 여름과 가을은 그저 커다란 잎만 있으니 별로 주목 받지 못한다. 하긴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다. 

하나 집으로 강아지 두나와 함께 이사를 왔지만 모두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목련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잔잔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그려진다. 아직 어린 나무였기 때문에 꽃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자신이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결국 별을 나무에 얹어 놓은 것 같은 꽃을 피웠다. 그동안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 나무는 행복하겠지. 그토록 바라던 꽃을 피웠으니까. 그다지 특별하거나(사실 처음부터 결말이 예상됐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짤막한 문장은 마치 시를 읽는 듯했다. 

중간에 매화와 나비가 나오는 그림은 옛그림을 보는 듯하다. 동양화로 그려진 동백꽃과 참새도 그렇고. 괜히 푸근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사람과 강아지는 그림 작가만의 개성을 살렸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전체적인 바탕도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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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에피소드 6 : 오성과 한음, 우리도 싸운다 - EBS 어린이 역사드라마
EBS교육방송 기획, 김광원 지음, 김숙 그림 / 꿈꾸는사람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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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다 보니 어느새 애독자가 되었다. 어떤 때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읽곤 한다. 이번에는 오성과 한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는 차차웅 선생님의 역할이 꽤 있었는데 여기서는 거의 없다. 주인공 재복이가 친구 주용이의 처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다. 비록 팔주령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스스로 깨닫는다. 

어렸을 때 오성과 한음의 일화를 읽으며 참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그냥 재미있는 만화나 일화로만 알고 있었지 그들이 조선시대의 학자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모르긴 해도 이덕형과 이항복을 모르는 어린이라도 오성과 한음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대개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는 대단한 장난꾸러기지만 부당한 일은 지혜롭게 헤쳐나가며 우정을 다지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도 익히 들어보았음직한 일화가 나온다. 현실의 주용이 처지와 역사 속 한음이 같은 처지로 나와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아서 남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재복이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뒷부분에 나오는 정보 페이지에 오성과 한음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아쉽다. 그들이 살았던 시기가 선조 때, 즉 임진왜란 즈음이라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욕심 같아서는 이덕형과 이항복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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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선생님을 위한 비밀 선물 문원아이 11
라헐 판 코에이 지음, 강혜경 옮김, 정경희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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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나오는 책, 특히 이렇게 선생님을 직접 제목에 넣는 경우는 대개 아이들과 관계가 좋은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런데 표지에 금기시 되는 소재를 다뤘단다. 그 아래에 글귀를 보면 금기시 되는 소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 다양한 어린이 책을 보았고, 죽음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보았지만 선생님의 죽음을 다룬 책은 못 보았다. 간혹 선생님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다룬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의인화해서 표현한다. 그런데 이것은 둘러가지 않는다. 

문득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시는지 그 시간만 되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대학 시절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어렴풋이 대학 생활에을 동경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암이라고 했다. 담임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건 몰랐고 기억나지도 않지만 머리가 빠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선생님은 방학 이후에 나오지 않으셨고(아마 그만 두셨던 것 같다.)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끝까지 곁에서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몰랐다. 슬픔의 깊이를. 참 이상하다. 그 선생님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배운 것도 아니기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 선생님께 배웠다는 것조차 꿈속인 것처럼 가물거릴 정도다. 그런데 왜 그러한 이야기는 다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도 그 선생님이 무척 좋았고 그 분의 죽음이 안타까웠던가 보다. 

나는 한 학기 정도 밖에 함께 하지 않았던 선생님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4년을 함께 한 선생님이라면 어떨까. 게다가 처음 만난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오스트리아는 초등학교 다니는 4년 동안 한 선생님과 공부한단다. 한 반 아이들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이지 부모와 별다를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선생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받아들이기나 할까. 과연 아이들이 죽음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의미를 알고 있다 해도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르다. 그러기에 율리우스 엄마의 행동도 이해가 간다. 독자야 아이들과 선생님 편이기 때문에 율리우스 엄마의 행동이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되도록이면 직접 경험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심정 말이다. 

이야기는 선생님이 조만간 돌아가실 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페이지는 무슨 이야기로 이끌어 갈까 괜한 걱정도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선생님을 볼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기적을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다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선생님의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주로 율리우스를 따라가는데 그냥 평범한 4학년짜리 아이의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책을 덮고 나면 아릿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죽었다고, 혹은 죽을 것이라고 다른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 잘 표현했기 때문에. 또한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관'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슬픔을 받아들이고 곧 이겨낼 것임을 알겠다. 울지 않으려고 잘 버텼는데 결국 훌쩍이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의 행동이 수긍이 갈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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