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꼬리를 무는 좋은 생각 짧은 동화 - 마음을 키워주는 책 3
이규경 글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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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시집(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을 읽으며 어쩜 내 마음과 이처럼 똑같을까 감탄하며 읽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 책이 시로서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처럼 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 때가 생각났다. 왜? 그 때처럼 어쩜 이렇게 상황을 잘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에. 비밀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고기 굽는 냄새에 비유하고 막을 수 없으므로 재채기에 비유한 것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요즘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전에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접했을 때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읽으면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마음이 순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런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른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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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바둑돌 파랑새 사과문고 67
김종렬 지음, 최정인 그림 / 파랑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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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닐 때 바둑부에 들었었다. 집에서 누가 바둑을 두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바둑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도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오목만 두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던 바둑. 남편은 바둑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 성격 상 그걸 배웠다가는 집안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바둑만 둘 것 같아 아예 접었다. 

그런 바둑이 주로 나오는 동화. 간혹 동화를 읽다가 거기에 나오는 바둑 설명을 뚫어져라 보며 이해하려 애쓰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주노와 함께 바둑을 배우는 입장이 된 것처럼 말이다. 동화책에서 바둑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이한 책이다. 바둑은 그저 학원 종류의 하나로만 인식될 뿐인데 여기서는 바둑이 가족을 이해하는 매개체가 된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바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노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아이다. 엄마는 잔소리가 많고 알뜰하게 살림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에 아빠는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 그러나 회사를 지나치게 열심히 다니는 것이 문제다. 보통의 아버지처럼 아들과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런 아빠가 바로 주노의 아빠다. 그래서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도 그다지 슬픈 줄도 모른다. 오히려 슬픔에 빠진 엄마 때문에 슬프다. 그러다가 아빠의 영혼으로부터 바둑을 배우며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아빠의 부재가 슬픔으로 다가온다. 

바둑이라면 질색을 했던 주노가 결국 바둑의 묘미를 알게 되고 더불어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이 자칫 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주노의 입을 통해 들었던 아빠의 평소 행동은 그렇게 쉽게 이해받을 것이 못된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는 바둑이다. 그래서 툭 하면 주노와의 약속도 잊는다. 그런데도 주노는 밤마다 아빠(의 영혼)에게 바둑을 배우며 결국 아빠를 이해하다니. 핏줄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5학년짜리 아이에게 어른의 이해심을 기대한 것이던가. 어른인 나는 충분히 주노를 이해하고 아빠를 이해하지만 과연 책을 읽는 진짜 독자인 어린이들은 둘을 이해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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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사삭 땅 속으로 들어가봐 초록콩알 과학 그림책 7
김순한 지음 / 대교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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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땅 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람이 입체적으로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개미집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구멍은 아주 작지만 속으로는 무척 많은 방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걸 보기 위해 개미를 키우는 교구도 생긴 것 아닌가. 그만큼 직접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만약 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도 땅 위에서처럼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면. 아마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땅이가 땅 속으로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만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개미의 집도 구경하고 땅강아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집도 구경한다. 예전에는 땅강아지가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외할아버지 덕분에 보았다고 한다. 들에서 일을 하시다가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나 특이한 것이 있으면 잡아가지고 와서 꼭 보여주시곤 한다. 대신 보고 나서는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하튼 땅이는 땅 속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마지막에는 길게 펼쳐놓고 볼 수 있도록 여러 면에 걸쳐 땅 속을 보여준다. 그래서 막연히 '이런 것이 있을거야'가 아니라 '이런 것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전체적으로 색이 진해서 생물이 드러나지 않는다. 땅 색을 표현한 것은 알겠지만 다른 것과의 조화를 생각해서 색을 조절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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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92
올리비에 탈레크 글, 나딘 브룅코슴 그림, 이주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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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문화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형성된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생활이기 때문에 못 느끼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프랑스 영화나 책은 뭔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건 프랑스 책이구나'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읽어도 여타의 책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곤 한다. 

그림책을 한창 볼 때는 작가를 먼저 살폈다. 당시는 아이들도 그림책을 보는 연령이기도 했고 모임에서도 그림책을 주로 보았기에 웬만한 그림책은 다 보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래도 예전처럼 많이 보지 않기에 작가소개보다는 내용부터 읽는다. 다른 정보를 먼저 접하게 되면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무작정 본문부터 읽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왜 작은 늑대는 큰 늑대에게 나뭇잎을 따 달라고 하는 걸까. 둘이 친구라면서. 조금 있으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큰 늑대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다고 판단된다. 게다가 키도 훨씬 커서 친구라는 말이 없으면 형제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겨울이 되어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자 큰 늑대가 직접 따기로 하고 올라가는 장면은 조마조마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러면 작은 늑대가 죄책감에 시달릴텐데라는 괜한 걱정도 해가면서 말이다. 결론은 두 친구 모두 만족했고 더욱 친하게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내용이 상당히 정적이며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사건조차도 잔잔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느낌도 들고, 확실히 다른 나라의 책과는 다르다는 느낌도 든다. 비록 나는 책 속에 푹 빠질 수 없었지만 잔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늑대가 별처럼 부서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함께 감탄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나도 거기서는 조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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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금 징금 징금이 우리시 그림책 14
일노래.윤정주 그림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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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한켠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그림 작가가 알아서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시가 '시 그림책'으로 태어날 때는 기존의 시와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넉 점 반>을 보고나서였다. 만약 내가 그 시만 읽었다면 그림 작가가 들려준(보여줬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줬다고 표현해도 맞을 정도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생각을 스스로 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시어가 나타내는 그 이상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후부터 시 그림책을 눈여겨 보고 있던 터다. 물론 항상 감탄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냥 시를 그대로 쫓아가는 그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시리즈다. 

시 그림책을 볼 때마다 내가 시를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는다. 어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시가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이 시에서 나오는 징금이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강아지똥>에 나오는 똥 같기도 하고 외국책에 나오는 진저브레드맨 같기도 한 징금이가 나오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이상한 형상은 계속 다니며 돈을 갚으라고만 한다. 그러면 옆에서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팔아서라도 돈을 갚겠단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사실 머리통을 떼내고 눈알을 빼낸다는 표현이 섬칫했다. 또 그림은 어떻고. 시에 나오는 내용대로 그림을 그려서 좀 부담스러웠다. 평소에 어린이 책이란 아름다운 것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조금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어떤 것을 사달라고 하면 엄마가 '엄마를 팔아서 사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줄 수가 없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가 더 어렵던 시절에 지독하게 돈만 밝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면 느낌이 달라진다. 돈이 없어 못 갚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돈 내놓으라고 닥달한다면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욕심이 많을 뿐 한편 귀엽고 순박하던 징금이가 자기 욕심에 먹혀 징거미가 된' 유래담이 바로 이 시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설명이 없었다면 이 시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림도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물론 마지막에 징금이가 징거미가 되었다는 글이 나오지만 처음에 나왔던 그 이상한 징금이가 못된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러면 뭔가 살짝 어긋난 느낌이 든다. 뒷부분에 시의 원문이 나오는데 솔직히 내 경우 그냥 이 시를 읽는 것이 더 다가왔다. 권정생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 시가 풍자의 최고봉이라고 했단다. 원래의 시를 읽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읽을 때는 그 정도까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시를 이해하느라 바쁜데 그림도 보느라 힘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넉 점 반>이나 <영이의 비닐 우산>처럼 그림에서 뭔가 읽으려고 너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여하튼 그림 잘못이 아니라 시를 알지 못하는 내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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