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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금 징금 징금이 ㅣ 우리시 그림책 14
일노래.윤정주 그림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창비의 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한켠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그림 작가가 알아서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시가 '시 그림책'으로 태어날 때는 기존의 시와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넉 점 반>을 보고나서였다. 만약 내가 그 시만 읽었다면 그림 작가가 들려준(보여줬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줬다고 표현해도 맞을 정도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생각을 스스로 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시어가 나타내는 그 이상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후부터 시 그림책을 눈여겨 보고 있던 터다. 물론 항상 감탄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냥 시를 그대로 쫓아가는 그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시리즈다.
시 그림책을 볼 때마다 내가 시를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는다. 어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시가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이 시에서 나오는 징금이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강아지똥>에 나오는 똥 같기도 하고 외국책에 나오는 진저브레드맨 같기도 한 징금이가 나오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이상한 형상은 계속 다니며 돈을 갚으라고만 한다. 그러면 옆에서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팔아서라도 돈을 갚겠단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사실 머리통을 떼내고 눈알을 빼낸다는 표현이 섬칫했다. 또 그림은 어떻고. 시에 나오는 내용대로 그림을 그려서 좀 부담스러웠다. 평소에 어린이 책이란 아름다운 것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조금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어떤 것을 사달라고 하면 엄마가 '엄마를 팔아서 사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줄 수가 없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가 더 어렵던 시절에 지독하게 돈만 밝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면 느낌이 달라진다. 돈이 없어 못 갚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돈 내놓으라고 닥달한다면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욕심이 많을 뿐 한편 귀엽고 순박하던 징금이가 자기 욕심에 먹혀 징거미가 된' 유래담이 바로 이 시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설명이 없었다면 이 시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림도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물론 마지막에 징금이가 징거미가 되었다는 글이 나오지만 처음에 나왔던 그 이상한 징금이가 못된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러면 뭔가 살짝 어긋난 느낌이 든다. 뒷부분에 시의 원문이 나오는데 솔직히 내 경우 그냥 이 시를 읽는 것이 더 다가왔다. 권정생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 시가 풍자의 최고봉이라고 했단다. 원래의 시를 읽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읽을 때는 그 정도까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시를 이해하느라 바쁜데 그림도 보느라 힘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넉 점 반>이나 <영이의 비닐 우산>처럼 그림에서 뭔가 읽으려고 너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여하튼 그림 잘못이 아니라 시를 알지 못하는 내가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