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방정환 산하인물이야기 1
고정욱 글, 양상용 그림 / 산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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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였을 때 어린이날을 맞으며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방정환. 어린이날을 만들었고, 어린이를 위해 글을 썼으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가끔 너무 많이 들어보았기에 마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방정환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람이 이제서야 방정환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그만큼 많이 알려져서 그랬다는 변명을 해본다. 

방정환이 어린이를 위해 애쓰던 때가 단순히 일제 식민지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관심을 안 가진 것은 아닐 게다. 어디서나 어린이를 단순히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순간일 뿐 처음부터 어른과는 다른 객체로 보아야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그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방정환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 방정환이 있었기에 그 시기를 앞당겼다고 볼 수 있으니까. 

방정환은 어린 시절 잠시 유복하게 지내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이 하고 싶으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모든 열정을 쏟는다. 짧은 생을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방정환의 삶을 대략적으로 보여주기에 그가 어떤 고민을 어떻게 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린이를 위해 모든 삶을 바쳤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고정욱 작가 특유의 문체(부드럽고 좀 교훈적인)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그래도 방정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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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다면 살아난다
최은영 지음,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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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룬 어린이 책은 주로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그린다. 상실의 고통을 나누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대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주인공이 누군가의 죽음을 감내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반해 이 책은 딱히 누가 주인공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여럿의 무게가 비슷하다. 그래도 굳이 주인공을 뽑으라고 한다면 근호와 동우라고 할 수 있다. 곧 죽음을 맞는 근호가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 자체가 기존의 동화와 다른 점이다. 

한 명은 가슴에 원망을 품고 삶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인물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너무 살고 싶지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런 둘이 우연히 한 병원에 있게 되면서 동생 동우와 이상한 할머니를 매개로 둘을 둘러싼 가족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약간 특이한 소재를 사용해서. 바로 혼과 이야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주는 할머니를 등장시킨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영화 '사랑과 영혼'가 생각났다. 혼이 되어 돌아다니는 근호가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혹시 그 영화에서처럼 어떤 방법이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다른 방법을 썼다. 

근호네 가족은 함께 살지만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언제나 못마땅하게 근호와 근호 엄마를 바라보는 할머니,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고 문제를 맞서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아빠, 오로지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 거기다 자신의 생각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공부만 하는 근호. 어쩜 이렇게 문제 종합선물세트 같은 구성원만 모아 놓았을까. 하긴 이 모든 것이 원인은 하나다. 서로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바로 근호의 죽음이었다. 근호를 생각하면 얻는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너무 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잠깐 물러나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호 가족이 화목하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형우가 새 심장을 받았고 다른 여러 사람이 장기를 받았으며 동우의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아야 하고 가능할 때 많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존의 죽음을 다룬 동화와는 확실히 다른 맛을 느꼈다. 다만 왜 결말에 가서는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목하게 잘 살았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열린 결말이 당장은 답답하고 먹먹할지라도 오히려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혼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설정의 허구성보다 근호의 온 가족이 너무 착하게 변한 것이 더 허구 같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약간의 불평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훌쩍였고 괜찮은 책을 만났다는 뿌듯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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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걸음 내딛다 보름달문고 33
은이정 글, 안희건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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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집이 많은가 보다. 어린이 책에서 많이 다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모와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하긴 그게 어디 한 가정에서만 그런가. 현재 모든 곳에서 소통 부재를 탄식하는 걸 보면 가정이 작은 단위의 사회라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가정에서부터 소통이 안되니 점차 단위가 큰 사회로 갈수록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이런 곳에서까지 이론을 확인하게 되다니 참 씁쓸하다. 

처음부터 소통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시 흥분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가족끼리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며 또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희영이네 가족은 겉으로 보면 그냥 보통의 가정이다. 두 남매를 키우며 맞벌이 하는 부모님. 엄마는 직장에 다니지만 집에 오면 가정일에 충실하다. 사실 희영이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 장을 봐와서 바로 옷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뭔가 올라왔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집에 오자마자 밥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왜 누구는 밥 하고 집안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이건 뭐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과 똑같잖아. 하지만 현재 맞벌이 하는 집의 풍경이 대부분 이렇지 않을런지. 그나마 요즘은 남자들도 많이 깨달아서 함께 도와준다지만 아직도 남자는 '도와주는' 개념이지 '함께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본다. 왜 희영이 엄마는 남편에게 그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여기서는 전의 상황은 나오지 않고 그저 둘이 냉랭한 상태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희영이 엄마는 지금 몹시 불만이 가득찬 상태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답게 아이들을 위해서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이야기하고 웃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표정이 싹 바뀌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아이들도 어느 정도 눈치 채는 것은 물론이요, 불안해서 눈치만 볼 것이다. 

희영이도 그런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다가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면서 소녀 시절 엄마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그동안 엄마에게 자신의 속마음 뿐만 아니라 의견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던 희영이가 갑자기 엄마를 위로하고 조언을 한다는 부분이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소통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용기를 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딸로 인해 엄마가 진정한 자신을 찾고 모두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잠시 헷갈렸다. 대개 주인공에 대입하며 읽는데 이 책은 희영이에 대입하다가 잠깐 엄마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영이가 엄마를 보며 자신도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아이들은 줄곧 희영이에게 대입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희영이 엄마에게 대입했나 보다.  

어쨌든 소통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 가지 큰 줄기가 함께 간다. 하나는 재준이에 대한 희영이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와 아빠의 문제다. 두 가지가 별로 연결고리도 없는데 서로 섞이는 듯하다가 나중에 엄마 문제로 넘어가면서 재준이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마지막에 결국 엄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다시 재준이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한편으론 한 가지 이야기에만 너무 매달리면 단조롭게 느껴지기에 이처럼 주제는 같지만 소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 게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야기가 분산되고 읽고 나면 어느 하나에 빠지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는 듯하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작가의 몫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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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행복한 날 시공 청소년 문학 29
앤 파인 지음, 이주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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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며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과정으로 보면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는데 결론으로 치면 정반대였던 날. 의미상으로 보면 두 이야기가 전혀 다른데도 왜 그 책이 생각났을까. 어쩌면 현재 완변하게 행복하기 때문에 그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당장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하는 스톨을 보며 <운수 좋은 날>에서의 행복과 죽음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스톨이다. 이름도 참 특이하다.(긍정적인 의미의 특이함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의 특이함이다.) 스톨이라니. 설마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가 있을까. 역시 원래 이름은 스튜어트 테런스 올리버의 첫 글자만 따서 손수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작가의)의도가 숨어있지 싶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스톨의 친구인 이안이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성격을 가진 친구 스톨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둘은 어찌보면 전혀 반대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이안은 입양되었고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가족의 따스함을 갖고 있는 대신, 스톨은 유능한 (친)부모 덕분에 물질적인 풍요는 갖추었지만 가족의 따스함은 누리지 못하니까. 그래서 스톨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안네 집에서 보내는 것일 게다. 

사실 주제도 무겁고 사건도 보통의 사건은 아니다. 이안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스톨이 청소년기 우울증인 것은 확실하고 사고가 아니라는 것 또한 확실한 상황에서도 작가는 시종일관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학생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병실에 있는 기구의 이름과 기능을 상세한 그림과 함께 알아오고 처방된 약이나 상태를 적어보내라는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들이나, 그 숙제를 이안과 스톨의 아버지가 낑낑대며 해주는 장면 등은 웃지 않을 수 없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아들 옆에서 그림을 넣어야 된다는 둥 어디가 잘못 되었다는 둥 의논하는 두 남자 어른을 상상해 보라.  

어디 그 뿐인가. 이안과 스톨의 부모는 어찌 보면 정반대의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인데도 그것을 인정한다. 아들이 병원에 있어도 친구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자신들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톨의 부모다. 반면 이안의 부모는 서로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부모다. 때로는, 아니 자주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본다. 나 같으면 한 번 쏘아줄 법한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이안의 엄마가 차라리 스톨을 자신이 키웠어야 했다고 말할까. 그러나 작가는 스톨의 엄마가 잘못되었다거나 변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을 독자가 판단하도록 놓아준다는 것, 이 또한 우리 작품들과 다른 부분이다.

스톨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어디서나 거침없이 말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야유가 쏟아질 법한 이야기도 스톨이 말하면 진지하다. 스톨은 받아들이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사회에서 스톨과 같은 아이가있다면 그렇게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도록 내버려둘까. 아마 모르긴해도 애초에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부적응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과연 우리의 방식이 옳은지 모두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사건들이 나중에는 한데 모아지는 기분이다. 또 인물에 대한 시각이나 생각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데 나중에는 묘하게도 모든 것이 드러난다. 참 정신없는 구성인 듯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가능하고 무겁고 침울한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경쾌하고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다. 게다가 무거운 이야기 도중이라도 웃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 덕분에 시종일관 유쾌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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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선생님이 들려주는 처음 만나는 세계 문명 세상과 통하는 지식학교 3
이희수 지음, 심수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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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든 세계사든 역사와 관련된 책은 시대순으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세계사를 배울 때 고대 문명부터 배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어떻고 인더스 문명이 어떻고를 무작정 배운다. 그런데 문제는 메소포타미아가 지금의 어느 나라에 해당하는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대부분 이런 식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에서 공부로 배울 때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다가, 이제서야 진짜 알고 싶어 책을 읽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사를 다룬 책은 이렇게 문명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거의 다였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다. 물론 문명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대신 지중해 문명, 오리엔트 문명, 인더스 문명, 실크로드 문명 등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부른다. 그런데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문명권에 속한 현재의 나라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면 옛날에 바빌로니아가 지금의 어느 나라인지 대입을 못해 따로 노는 일은 없겠다. 또한 한 나라의 대표적인 도시를 중심으로 설명하며 인물과 역사, 문화, 건축까지 참 다양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것만 봐도 단순히 아이들에게 '세계사'를 가르치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문화 여행을 추구하는 저자가 30년간 직접 여러 나라를 다니며 느낀 것을 토대로 쓴 책이란다. 특히 한국인 최초로 이스탄불 대학교 유학생이었단다. 이 책은 또 다른 문화를 단순히 학문으로만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곳에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과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풍부한 역사 지식과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세계사 책이라기 보다 여행서라는 편이 더 맞겠다.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여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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