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영어 팝니다 처음어린이 3
서석영 지음, M.제아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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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어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우연한 기회에 취업설명회 비슷한 것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거기 가 보니까 초등학교 때 영어로 들썩이는 것은 차라리 애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야 당장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단계니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일 뿐이지만 사회생활을 앞둔 대학생들은 정말 코 앞에 닥친 일이다. 그러니 나중에 닥칠 일을 생각해서 미리부터 준비하기 위해 지금 이러는 것이겠지. 하지만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나만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인공인 지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아이다. 가정도 평범하고 지수 부모도 보통 사람들이다. 자식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잘 키우기 위해 애쓰며 여기저기 정보를 캐고 다니는 지수 엄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엄마다. 나는 그러지 않으니 지수 엄마를 보면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아이 인생에 간섭을 할까 싶지만 실제로 그 보다 더한 사람도 많으니 평범하다고 할 수밖에. 

어쩌면 이 책은 지수 이야기라기 보다 지수 엄마 이야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마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야기는 지수가 이끌어가지만 상당 부분 엄마가 옆에 있다. 그래서인지 분명 지수의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 꽤 있어도 엄마에게 가려진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해 아빠는 주변에서 바라보다가 결정적인 때에 끼어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빠 모습이다. 

지수는 영어와 싸우기로 하고 영어로 된 것은 아예 가까이 하려하지 않다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즐겁게 배우기로 합의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지수는 터득한 셈이다. 어찌보면 부모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기까지는 한글을 모르던 일 층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그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도록 지수 엄마가 도와주면서 지수도 할머니와 친해지고 둘은 서로 각자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지극히 이상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하긴 이 상황에서 다른 결론을 내기도 힘들 것이다.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면 불가능하다고 여길 테니까. 

그런데 제목으로 사용된 착한 영어 가게가 어떤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는데 딱 한 번 나오고 만다. 마치 착한 영어 가게가 지수나 지수 엄마를 변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할머니가 변하게 만들었다. 제목만 보면 괜찮지만 내용과는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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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팽 - 파랑새 클래식 3
잭 런던 지음, 이원주 옮김, 에드 영 그림 / 파랑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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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클래식 시리즈의 책 몇 권을 보면서 든 생각. 첫째, 모두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둘째, 클래식이라는 말답게 지금이 아닌 꽤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펴낼 만큼 꽤 알려진 책이지만 정작 난 처음 보는 책들이다. 사실 마지막 특징이 나를 가장 뻘쭘하게 했다. 그래도 나름 어린이 책을 꽤 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볼 게 이렇게 많은가하는 두려움까지 들 정도다.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고 위안을 삼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부분을 읽을 때 어찌나 답답하던지. 시대를 알 수 없었기에 한편으론 설마하면서 한편으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꿈꾸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북극의 황야라지만 이리도 척박할 수 있을까. 밤이면 늑대가 둘러싸고 조금씩 좁혀들어온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아무렴, 주변에 어떤 건물이라도 있겠지, 내지는 조금만 가면 인가가 나오겠지라는 기대를 무색하게 하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인간이 동물보다 훨씬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그렇게 도입부가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늑대가 등장하는 시점에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완전한 야생 늑대가 아니라 개의 속성도 조금 갖고 있는 화이트팽이 다양한 인간을 만나며 겪는 이야기가 참으로 길게 이어진다. 숲으로 달아나려다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 화이트팽 내면에서는 야생의 본성과 개의 속성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특히 투견으로 길러질 때 화이트팽의 모습은 안스럽기까지 하다.(지금도 투견이 길러지고 있다. 그 개들을 보면 여전히 안스럽다.) 나중에는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을 알고 인간과 교류를 하게 되니 다행이다. 

작가는 이 긴 이야기를 어쩌면 이처럼 대화가 거의 없이 서술과 묘사로만 썼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읽는 이도 참 숨가빴다. 늑대개 화이트팽이 인간을 신이라고 묘사하며 엄청난 능력이 있다고 하는 부분은 상당부분 작가의 입김이 느껴진다. 또한 오로지 백인만이 동물에게 아량을 베풀고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는 듯한 인상도 풍긴다. 이는 물론 작품 이해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지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작품 경향과 너무 달라 과연 아이들이 읽을지 걱정이다. 확실히 이 책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깊은 생각을 요하지 않으며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는 요즘의 책들과는 다른, 깊은 맛이 느껴진다.(솔직히 묘사가 이처럼 긴 책은 처음이다. 그래서 버겁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얼마나 읽힐지는 모르겠다. 진득하게 앉아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감각적인 것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또래보다 조숙한 아이라면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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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별명 꿀꿀이 - 올레졸레 북녘동화 올망졸망 남녘동화 사계절 저학년문고 43
지홍길 외 지음, 김성민 그림 / 사계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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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던 때가 생각난다. 통역 없이 두 정상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그때만큼 실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북한의 어린이책 작가가 쓴 옛이야기를 읽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과 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옛이야기의 경우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다던가 못된 짓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들어있어 원래부터 전해오던 남쪽 이야기를 읽는 듯했다. 아주 가끔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나와서 뜻을 알아볼 뿐이었다. 그나마도 문맥상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돼지가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왜 꿀꿀거리며 우는지에 대한 유래가 담겨있는 이야기와 일하기 싫어한 너구리가 도깨비 감투를 이용해서 남의 음식을 몰래 빼앗으려다 혼난 이야기, 숲 속에서 울어버린 알람 시계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이야기,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모두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것들이다. 

이번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낸 '올레졸레 북녘동화 올망졸망 남녘동화'는 총 7편이다. 짐작했겠지만 올레졸레와 올망졸망은 같은 뜻의 다른 말이다. 언어란 자꾸 사용해야 없어지지 않고 서로 교류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서로 교류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면 그 시간에 비례해 공유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달라진 말이 꽤 있는데 시간이 더 흐른다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간다. 그러기에 이 책을 반갑게 맞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을 펴낸 의도에 더 마음이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다. 게다가 그림도 한 권 한 권 어찌나 정성을 들였던지 각 권마다 그림 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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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껜 아이들 푸른도서관 3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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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네껜이 뭘까. 몇 년 전에 멕시코 이주민의 삶을 다룬 방송이 있었다는데 그걸 보지 못했기에 에네껜의 뜻을 몰랐다. 원래 에네껜은 용설란에 속하는 식물인데 멕시코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겉표지에 있는 사진 속 식물이 바로 에네껜인가 보다. 마치 알로에처럼 생겼다. 가시에 찍혀서 상처투성이였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책에서는 에네껜이라는 말이 잠깐 나오다가 줄곧 어저귀로 나온다.) 

살고 있는 땅에서는 희망이 없어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이민. 그렇게 떠난 이민이 장밋빛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그것도 속아서 떠난 이민이라면 더욱 더 비참할 것이다. 그럴 듯한 광고에 속아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뱃삯을 마련해서 떠나지만 노예나 다름없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팔려가다시피 했다는 것조차 현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하긴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기에 걸맞는 속임수를 썼으니 꼭 글을 몰라서 당했다고 볼 수는 없겠다.

이렇듯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멕시코에서의 비참한 생활이 시작된다. 새벽 네 시부터 밤 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다. 아니, 버는 건 고사하고 빚이나 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떠나올 때 이런저런 경비가 빚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단 100여년 전에만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이 현지(즉 우리나라)에서 겪는 고통 또한 그 옛날의 그것과 비슷하다.

역사는 과거를 거울 삼아 조금씩 나아간다고 했던가. 만약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것에 대해서 억울해하고 안타까워 하면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결코 제대로 역사를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작가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저귀 농장에서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하나가 되어 서로 도우며 살았다는 점이다. 못된 로페즈 감독에게 대항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할 때 혹 누군가가 배신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다. 대개 그런 경우도 많으니까. 만주나 간도 쪽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여기서는 원주민인 마야인과도 잘 지내서 마음이 놓였다. 

조선에서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던 덕배 아버지가 그곳에서는 솔선수범하고 모든 일을 이끄는 반면 조선에서는 황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모두가 굽신거렸던 옥당대감이 거기서는 너무 무기력하다.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오히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더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윤재도 그토록 무시했던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책을 읽고 에네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상당부분 일치했다. 즉 등장인물의 세세한 부분은 작가가 창작했더라도 큰 줄기는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동화는 조선 이전 시기에 여기서 있었던 일을 다루거나 아니면 아예 현대를 다루는데 이 책은 그 사이를 다루고 있다. 열강들에 의해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기 전 그 불안정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가 아닌, 만주나 간도도 아닌 아주 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 모두가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았던 곳에서 살았던, 그리고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룬다는 사실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한 책이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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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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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도 가끔 중요한 약속에 늦는 꿈을 꾼다. 운전하기 전에는 버스가 안 온다던가 놓치는 꿈이었는데, 운전을 한 뒤로는 차를 안 가지고 한참 가다가 다시 차를 가지러 돌아오는 꿈이다. 꿈꾸는 중에 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과 전혀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약속에 늦는 꿈은 대개 후자다. 그러니 깨고 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찜찜함이 남는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문득 꿈 생각이 났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묘한 내용과 분위기 때문에 아이가 이상하다고 한다. 악몽을 꾸면 어쩌냐고 했더니 그런 건 아니란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일어난 아이가 악몽을 꿨단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악몽이었다지만 아무래도 모종의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소풍 전날이면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판국에 버스를 놓칠 걱정은 단연 가장 큰 걱정일 것이다. 다만 요즘 도시 초등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버스를 놓친다는 걸 이해 못해서 그렇지. 어쨌든 주인공 남자 아이는 소풍날인데 버스를 놓쳤다. 그래서 급한 김에 다음에 금방 오는 버스를 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가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아 바로 내린 곳이 바로 민들레 아이들이 걷고 있는 '모르는 마을'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이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암시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책은 참 특이하게도 겉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만, 속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책은 봤어도 이처럼 겉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책은 본 기억이 없다. 역시 일본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어린이 책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다.  

처음에 무심코 겉표지의 제목만 보고 속표지의 글을 읽었다면 버스를 놓친 일이 그다지 애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버스를 놓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다음 차를 타고 가면 되니까. 늦으면 선생님께 조금 혼나겠지. 그러나 나중에 겉표지에 있는 '오늘은 소풍'이라는 글을 읽고 버스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내가 괜히 안타깝고 애석하다. 게다가 그림도 거무스름한 것이 분위기가 음울하다. 

모르는 마을은 온통 의문투성이들로 가득찼다. 밭에 소랑 돼지랑 물고기가 자라질 않나, 가로수가 개로 되어 있질 않나 물속에서 바나나랑 망고가 헤엄치는 그야말로 희안한 마을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위치가 바뀌었다고나 할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민들레는 생물이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니까. 아무튼 마지막 민들레 레스토랑에서의 일은 단연 압권이다. 그러니 어찌 악몽을 꾸지 않겠나. 

집으로 돌아오면 뭔가 해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없다. 꿈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다행이다. 뒤에 있는 속표지를 보니 민들레가 길따라 총총히 줄지어 서있다. 아까 그? 가로수 나무들도 마치 모르는 마을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하다. 작가의 의도가 뭘까 괜히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뭐, 거창한 의도를 모르더라도 이처럼 묘한 분위기의 책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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