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동화집 나 어릴 적에 - 박완서 선생님의 옛날이 그리워지는 행복한 이야기 처음어린이 8
박완서 지음, 김재홍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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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소설가 박완서는 좋아하지만 동화작가 박완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세대차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10년 전만해도 엄청난 옛날로 생각하는데 5,60년 전 이야기는 어떨까. 아마 모르긴 해도 역사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아무리 동시대를 살더라도 생각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를 읽으며 그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놓고도 선뜻 읽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소설가의 작품인데 내가 까다롭게 보는 건 아닐까,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 혼자만 괜히 트집잡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 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너무 잘 읽었다. 읽기를 아주 잘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글이라 그런지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연륜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참 이상하지. 분명 동화를 읽을 때는 못 느꼈는데. 그러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런 작가들(박완서 할머니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여러 편의 동화를 쓴 동화작가이기도 하다.)은 괜히 현재를 배경으로, 현재의 아이들을 그리는 이야기를 쓸 것이 아니라(그건 요즘 젊은 동화작가에게 맡겨도 된다.) 예전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게 훨씬 낫겠다는 것이다. 역사란 뭐 별건가. 이처럼 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인 게 바로 역사지.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던 작가가 교육열 높은 엄마의 뜻에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가서 생활하는 과정을 정말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잔잔하다고 해서 지루한 것은 아니다. 박완서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어린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내 경우는 박완서의 어린 시절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궁핍한 셋방에서의 생활과 사대문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지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시 서울 풍경이 그려지는 듯하다. 물론 거기에는 김재홍의 멋진 그림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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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
줄리어스 레스터 지음, 김중철 옮김, 김세희 그림 / 검둥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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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보는 순간 알았다. 앗, 이 작가는 인권 문제, 특히 흑인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책을 주로 썼던 작가잖아. 그렇다. 전작인 <자유의 길>에서도 <인종 이야기를 해볼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천착하는 문제는 바로 인권이었다. 인종이 다르다고 본질까지 다르진 않다는 것을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비록 아직도 완전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더라도. 

이 책은 어린이 책에서는 드물게(사실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시나리오로 되어 있다. 다른 면에서는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나도 이런 부분에서는 보수적이 된다. 주로 보았던 소설 형식이 아니라서 선뜻 내용에 빠져들지 못할 것 같았다는 얘기다. 새로운 형식을 일단 배척하는 보수적인 생각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웬걸. 읽으면서 대사는 그냥 일반 소설(동화)의 대화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인물의 입으로 서술되는 부분이 있어 극본이라는 생각이 훨씬 덜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그냥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노예 경매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면도 그렇고 일일이 사건을 나열하는 부분에서도 그랬다. 뒤에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이 1859년에 있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노예 경매를 기록한 논문이나 책에서 상당부분 차용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가 혼합되어 있지만 주요 인물은 사실에 가깝다.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것들보다 뒤에 작가의 말이 더 흥미진진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엠마는 비교적 마음씨가 좋았던 주인 덕분에 고생을 덜 하며 지냈지만 예고도 없이 주인이 자신을 팔아버리고 만다. 덕분에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엠마가 캐나다로 도망 가서 정착한 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손녀에게 들려준 것이 바로 버틀러 농장의 노예 이야기다. 노예 제도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제도지만 당시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제도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나중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었다고 회고될 만한 일은 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거기까지 생각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작가가 원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다시(종종 들었던 생각인데 리뷰를 쓸 때는 까맣게 잊곤 했다.) 든다. 유럽의 소설들, 그러니까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지배계급의 이야기다. 그 당시에 그들에게 수많은 하인들이 있었지만 하인들의 고뇌를 다루거나 힘든 삶을 다룬 이야기가 있었던가 싶다. 그들의 책 속에는 하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단순히 자신들의 삶을 지속시켜 주는 하나의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비록 미국에 있었던 노예와 유럽에 있었던 하인을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럽인들에게서 피지배계급의 고통을 외면한 자신들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직 못 만났다(그래서 톨스토이가 더 위대해 보인다. 톨스토이는 비록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피지배계급의 힘든 삶을 보여주긴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존재하지만(당연히 그럴 것이다!) 협소한 내 지식의 한계 때문에 못 만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동안 서구의 고전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이 문득 생각나서 연관 없는 리뷰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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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간직했던 이름 안중근
주경희 엮음, 권오현 그림, 한아름 / 처음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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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0년이 되었던 지난 해(사실은 아직 2010년에 적응이 안 되어 올해라고 쓸 뻔했다.)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 이 책은 뮤지컬 <영웅>을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각색한 것이다. 

안중근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사진과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총으로 저격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들어서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런 것 중 제대로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솔직히 안중근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는 얘기다. 의거 후 감옥에서의 삶과 일본의 대응, 그리고 그 후 우리 정부의 반응에 대해서는 알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 안중근'은 잘 모른다. 그냥 큰 일을 해낸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원작이 뮤지컬이라서 가상의 인물도 들어갔다. 그래서 인간 안중근을 고스란히 알기란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나오는 안중근의 고뇌와 불안을 보며 그동안 강철 같은 의지만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도 인간인데 죽음을 각오했다지만 거사를 앞두고 왜 불안하지 않았을까. 또 별다른 성과없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 것 같은 자괴감에 왜 안 빠졌겠나. 초조함과 나약함을 보며 오히려 인간적인 안중근을 만난 듯하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사랑을 끼워넣은 부분이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지만 앞-등장인물 소개-에서 가상인물이라는 것을 밝히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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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골의 겨울 초록학급문고 2
유소림 지음, 오건업 그림 / 재미마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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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끼는 감동은 당시의 기분이나 상황과 계절도 큰 몫을 한다. 특히 계절의 경우 큰 영향을 미친다. 마침 이 책을 읽을 즈음이 100년만의 폭설이 내렸다고 호들갑을 떨던 시기였다. 시골 마을은 고립되었고 도시도 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마침 아이들은 시골 외가에 가 있었으니 이 글의 내용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산골 외딴 마을(이렇게 글로 있을 때는 낭만적일지 모르나 그곳에서의 삶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그마나 자연을 좋아하는 할머니니까 그곳에서 살 수 있다.)에 노부부가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맞는 겨울 모습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곶감을 만들고 동지를 맞이하는 모습과 겨울 동안 먹을 것이 부족한 새들과 함께 지내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도시의 아파트에서 혼자만 지내던 다롱이가 친구를 만나서 활기차게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부분. 정말이지 동물도 혼자 있다 보면 사교성이 부족해서 다른 동물을 만났을 때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터였다. 하물며 동물도 그럴진대 사람은 오죽할까. 그러나 여기 나오는 할머니는 왕래하는 이웃이 없다. 우체부 아저씨만 등장할 뿐이다. 아마도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런 것일 게다. 더우기 눈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겨울이었으니까. 대신 동물들과 소통하며 기나긴 겨울을 행복하게 보낸다. 

글을 읽으며 한없이 따스하고(배경은 하얀 눈이 쌓인 겨울이지만) 정겨움을 느겼다. 특히 내가 보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지금도 그러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사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작가의 출생연도를 보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이 한 살 더 먹더니 이젠 이런 이야기가 좋아진 걸까. 물론 이런 경험을 전혀 못해 본 어린이들은 옛날 이야기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초록학급문고의 취지를 읽어보면 비록 공감 못하는 아이들이 있더라도 이런 책이 왜 있어야 하는지, 또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들인지 깨닫게 된다. 하얗게 변한 이 겨울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편의 잔잔하고 소중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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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맛 사계절 중학년문고 16
류호선 지음, 정지윤 그림 / 사계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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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전에는 사투리 쓰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사투리는 그 지역의 특색이며 심지어 사라지지 말아야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다른 지방의 사투리는 알아듣지 못해 고생하더라도 말이다. 

여수에서 서울로 전학온 철환이가 사투리 때문에 고생하지만 결국 사투리 때문에 학교에서 유명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 솔직히 사투리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이야기가 이렇게 사투리로 되어 있으면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읽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의미를 파악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새로운 말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가끔은 주변에 이런 말투를 쓰는 사람을 생각하며 읽기도 한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철환이가 마치 아나운서가 되어 말하듯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시골 마을에서는 모두 다 같이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도 작아서 철환이가 아나운서처럼 동네 소식을 전하는 걸 모두 좋아하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우선 친구들도 너무 많아서 철환이가 설 자리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사투리가 심한 철환이가 무슨 말만 하면 아이들이 웃어서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투리가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니 오죽 답답할까. 그러나 무조건 사투리를 서울말로 고치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환이도 그것을 깨달았다. 아니, 작가가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3학년 짜리가 주인공인데 중간중간 3학년짜리의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문장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동화는 간결체를 주로 쓰는데 이 책에서는 한 문장이 꽤 길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사투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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