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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핀 연꽃
곤살로 모우레 지음, 김정하 옮김 / 소담주니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읽는 순간부터(글자가 작아서) 마지막까지 이건 어린이 대상이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의 책이라는 생각을 줄곧 했다. '소담주니어'라는 출판사 이름만 생각하고 당연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표지에 있는 '청소년 교양서'라는 문구를 보았다. 어쩜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는지.
화자인 마르코스는 시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열아홉 살의 현재에서 육 년 전인 열세 살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전생인 강셍의 삶까지 이야기 하니 정신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아니 다 읽고 나면 하나씩 정리가 되며 그림이 그려진다. 아, 그랬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고나 할까.
티벳이라는 나라(중국은 절대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자치구일 뿐이다.)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서, 그러니까 작가의 사회 참여 의식에 따라 태어난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티벳인들의 상황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통을 잠시 이야기 하며 그들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이야기할 뿐이다. 거기다가 약간의 동양적 신비감을 가미하는 바람에 읽고 나서 몽롱한 상태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등반을 갔다가 눈 속에 고립된 마르코스의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근처에서 만난 본 아르스 세 사람이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독자는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아르스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마르코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그리고 마르코스의 신비한 능력에 놀라며 아르스가 무언가를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는 게 뭘까 궁금하다 못해 답답하다. 그러나 마르코스의 말로 설명이 안 되는 행동들을 길게 해명하지 않는다. 그냥 어린이의 영감 정도로 넘긴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가는데 설명이 없으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러다 나중에야 알았다. 마르코스가 어떻게 눈 속에 있는 오두막을 보았는지, 어째서 아르스를 보았을 때 낯설지 않았으며 어떻게 그가 눈 속에 있는 지점을 정확히 알 수 있었는지 모두 설명이 된다. 그리고 캄파족의 강셍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티벳의 문화와 그들이 당한 설움을 슬쩍 들려준다. 어린 꼬마지만 꿋꿋한 정신으로 총을 든 중국 하사관을 굴복시킨 강셍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듯한' 문체로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 일부러 세세하게 서술하지 않고 자기 주변의 것만 짤막하게 이야기함으로써 화자가 곧 작가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가의 티벳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들의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티벳. '그들'에 나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