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안의 물고기 미래아이문고 12
제임스 멩크 지음, 배블링 북스 옮김, 루이자 바우어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느낌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자연적이며 부드러운 것이 파스텔 같다고나 할까. 동물들이 서로 도우며 릴리안의 선물인 물고기를 찾아가는 장면이나 자연에서 뛰어노는 남매들을 상상하니 한없이 평화롭다. <샬롯의 거미줄>이 생각나고 <곰돌이 푸우>도 생각난다. 아마도 평화로운 자연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아이들이 연상되어 그런가 보다. 맨 앞에 있는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릴리안의 가족은 특별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여섯 번째 생일에 애완동물을 선물하는 것.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틈만 나면 졸라대는 아이들이라면 이 부분을 가장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우리는 그토록 고대하던 강아지를 키우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다. 하긴 그런데도 외할머니네 있는 고양이에 눈독을 들이긴 한다. 강아지도 좋지만 고양이가 더 좋다나. 만약 이 책을 읽고 엄마에게 릴리안네 이야기를 들이대며 얘네는 각자 애완동물이 하나씩 있는데(그것도 아이가 여덟이니 애완동물도 여덟 종류다.) 한 마리도 안 돼냐고 하소연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부모는 뭐라고 할까. 분명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얘네는 밖에서 키우는 거잖아. 우린 아파트라 안 돼. 나중에 주택에서 살면 키우자." 이게 가장 많이 써 먹는 수법 중 하나다. 정말이지 릴리안네는 드넓은 초원에서 사는 것 같다. 요즘에도 이러고 살 수 있나(게다가 아이를 여덟이나 낳다니!) 의아해하기도 했는데 시작을 옛이야기처럼 한다. 먼 옛날, 아득히 먼 곳에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성적인 이야기가 발랄하게 펼쳐진다. 여덟 남매는 거의 싸우지도 않고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고 동물들도 그렇다. 요즘 아이들이 읽으면 얼마나 공감하거나 몰입할지 모르겠지만 감수성은 키울 수 있겠다. 대신 이런 책을 선택할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것이 의문이긴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워낙 자극적이고 전개가 빠른 것을 좋아하니까. 작가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하던데 현재의 어린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모두 현재의 어린이를 이야기하는 책만 있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이런 책도 있다는 게 다양성 면에서는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의미 처음 만나는 철학 5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이주희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 생각하다 만나는 지점이 철학의 부재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예전에는 철학은 거창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부터 제대로 된 철학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주입식으로 외우는 것만이 공부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살다보니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말해준다. 물론 아이들은 잔소리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아예 그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을 보고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역시 '처음 만나는 철학'책이란다. 그림책으로 되어 있으니 철학적이어 봤자 얼마나 심오한 이야기가 들어있겠냐 싶은, 약간은 무시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어라, 꽤 심오하다. 어떤 사람은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바쁠 때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차분하게 돌아볼 때 의미있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어떤 축에 속할까. 그 밖에도 하는 말마다 어쩜 그렇게 맞는 말만 하는지 모든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란 거창하게 정의내려야하는 학문이 아니다. 각자가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자신의 철학적 기반에 바탕을 둔다. 그러기에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의식주가 급했던 시절이었기에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이제 조금씩 관심 가져도 될 만큼 사회가 성숙했으니 아이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초등학생이나 유아들과 나누기엔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철학의 매력 중 하나가 아무리 어린 아이와도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 아닐런지. 또래 아이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만큼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보고 생각난 게 중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그만큼 이 책은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하지만 그림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폐아와 친구해요 - 자폐 세상을 바꾸는 어린이 4
엘렌 사빈, 최윤미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보니 둘째 어렸을 때 품앗이 모임 친구 중 한 아이가 생각난다. 당시 세 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아이는 길을 가도 무조건 앞으로만 갔다. 그것도 엄마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무조건 뛰다시피 가기 때문에 그 아이 엄마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또 자동차를 엄청 좋아했는데(이건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한 줄로 세워 놓고 놀았는데 그걸 누가 건드리면 아주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항상 혼자 놀았다. 당시 자폐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엄마에게 차마 그 단어를 말하진 못했다. 나중에 만났을 때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녔고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또 엄마와의 아주 작은 상호작용에 좋아했던 그 엄마도 생각난다. 당시는 아이들이 어려서 친구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당연히 둘째는 그 친구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자기와 관심사가 비슷해서인지 장난감 차가 많았던 친구 정도로만 기억한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전 세계적으로 자폐아는 꽤 많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아이는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아니, 그냥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괜찮은데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특히 자녀와 같은 반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수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환영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봐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반에 그런 친구가 있다고 해서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도와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어찌보면 어른들이 지레 걱정해서 문제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보통 사람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자폐아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들려준다. 그래서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자폐아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읽지 못하며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볼 수도 있다는 등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폐아 친구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의사소통 방식과 자폐아의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색상이 너무 현란해서 정신이 없다. 한 장에 하나의 색을 썼더라면 통일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두 번씩 하기 때문에 아까 한 이야기를 또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상황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더라도 다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아이들은 동일한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으로 생각해 대충 넘기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어린이에게 자폐아와 친구가 되도록 하는 것보다 자폐아를 자녀 친구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먼저가 아닐런지. 그래서 이런 책은 어린이보다는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자기 유령 스텔라 3 - 결혼식 대소동 보자기 유령 스텔라 3
운니 린델 지음, 손화수 옮김, 프레드릭 스카블란 그림 / 을파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시리즈 첫번째 책을 읽었을 때 판타지인데도 그 안에 철학이 들어 있어 놀라워했던기억이 난다. 출간 2주 만에 해리포터를 제칠 정도로 북유럽에서는 인기가 많았다는 띠지 설명과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느낌을 견주어 보았을 때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을 어른인 내가 읽어서 그럴까하는 생각도 들고,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내 감성이 너무 메말랐나 싶기도 하고, 여하튼 복잡한 심정이었다. 아니면 두 번째 이야기를 건너뛴 채 세 번째를 읽어서 연결이 잘 안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판타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그렇다고 하거나 억지로 읽는데, 판타지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읽었든 우리 책에서 만나기 힘든 판타지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아니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옷이 있으니까) 보자기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우리는 대개 판타지라 해도 주인공이나 동물이 판타지 세계로 가는 걸 생각하니까. 게다가 그런 보자기가 펼치는 에피소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나 가치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거기에 큰 의의를 두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안에 가치가 들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은연중에 그런 걸 깨닫게 하기 때문에 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차이를 좁힐 수는 없었다. 헥토르는 왜 한때는 부인이었던 피네우스의 엄마를 잡아가두려는 것인지, 또 피네우스의 엄마인 밀레나는 어떻게 음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서커스 단장과 헥토르와 무시무시한 음모가 있다는데 설명으로 봐서는 무시무시하다고 할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항상 우리 동화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설명을 많이 한다고 불평을 했는데 여기서 그 과정을 생략하니 또 불평을 한다. 문득 작가들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면 저렇지 않다고 불평하고 저렇게 하면 이렇지 않다고 불평하는 독자들 때문에. 사실 여기서 헥토르 뮈삭과 박쥐 부인의 대화를 보면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말을 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들만이 아니다. 스텔라가 궁전 안에 사는, 예전에 음악가와 무용가였던 유령들과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피네우스와 그웨니와 대화할 때도 그렇다. 위트가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비록 동화라도 집중해야 한다. 안 그러면 글자만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읽으면서 만약 영화라면 어떤 장면일까를 상상하곤 했다. 자동차 파리(영화 <카>)라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영화를 보며 그 상상력에 놀랐듯이 보자기들이 날아다니며 벌이는 일을 상상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주류보다 비주류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내가 비주류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일에는 하나의 원인만 존재하진 않을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뒤집어 보는 역사'라는 타이틀과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라는 부제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글쎄,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모호하다는 생각과 깊이가 없었다는 생각(남편도 동의했다.)이 든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윤색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여기서 말하는 홍길동이나 임꺽정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붓뚜껍에 목화씨를 몰래 가지고 와서 백성들의 겨우살이에 큰 보탬이 되었다는 문익점에 대한 이야기조차 후대에서 '약간' 과장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는 마당에 홍길동이 그냥 도적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의 홍길동과 소설 속의 홍길동을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임꺽정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두 인물을 분석한 이야기는 그닥 새로운 것도 없었다.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인물의 실제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정확히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호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가장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홍경래와 박지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혁명가라고 평하는 홍경래가 사실은 사회적 욕구가 강한,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평하는데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 매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자신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상태에서 사회의 불합리한 현상을 개탄하고 개혁하려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은 정반합의 형태로 점차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결국 합의를 이루고 다시 거기에 불만인 사람이 나타나 바꾸다 보면 점차 나아지는 것 아닐까. 따라서 홍경래가 중앙 정계에서 소외된 향촌 세력의 유력자라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기 보다 어쨌든 당시의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고자 일어난 것이라고 본다. 비록 확실한 사상적 근거가 없었고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고 해도 지배층에게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자체가 의미있다고 본다. 꼭 성공해야 의미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박지원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내가 박지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재야의 인물로 꿋꿋하게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출세욕이 하나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어쨌든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를 신분해방론자라고 대개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내가 박지원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양반전>에서 자신'도' 속한 양반을 풍자하고 비꼬는 그런 넉넉함이 좋아서다. 적어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고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솔직히 난 그를 신분해방론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보았다. 조선시대에 지배층이 말하는(흔히 사극에서 회의할 때 들먹이는) '백성'은 우리가 생각하듯 흰 옷 입은 백성이 아니라 보통의 '양반'을 뜻한다고. 당시는 아무리 진보적인 시각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신분을 완전히 평등하게 하는 것에까지 나아간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것을 가지고 단지 양반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를 바라는 특권 체제 옹호자였다고 단정짓는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양반전>에서 돈을 주고 양반을 산 천한 부자가 양반이 누릴 수 있는 특혜를 듣더니 양반은 순 도둑이라며 달아났다는 부분이 저자의 해석처럼 천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조롱함과 동시에 학문을 닦은 선비만이 양반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일까. 그보다는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천한 부자도 도둑질은 하지 않는데 하물며 양반이라는 자가 사실은 도둑보다 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은근슬쩍 꼬집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사회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힘들다고 생각한다. 즉 연암의 경우도 비록 양반의 일부 특권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의 모습이 허구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모든 면에서 진보적일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연암은 당시 사고의 틀을 벗어난 사람이었다. 성군이라고 불리는 정조의 많은 개혁정책조차 한편에서는 단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시대적 상황은 배제한 채 완벽하게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연암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다. 

객관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사실에 입각해서 설명을 하고 있으나 간혹 주관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다양한 면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했다. 어차피 역사를 해석하는 방법은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