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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참으로 건방지게도 다른 사람, 특히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니, 않았다. 어차피 그 사람들의 인생여정을 내가 알아봐야 나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도 다 다른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은, 약간은 삐딱한 마음에서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질투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잘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머리를 가졌던가 아니면 좋은 부모를 가졌던가 그도 아니면 주변에 든든한 뒷배경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 모든 것을 갖지 못한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남들이 조금 알만한 사람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자기가 그들 무리에 속한 양 착각하고 산다. 사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그런 사람(다른 사람이 인용하는 사람)이 되길 무척 갈망했었다.
방송작가였고 책도 쓴 지인이 한겨레신문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그게 벌써 2년 전이다.)를 보고 남편에게 '내가 아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누군가에게 인용이 되기도 하는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희망을 버렸다. 자신이 없어졌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이처럼 유명한 사람은 그저 유명한 사람일 뿐 내가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겠다. 누구에게든 배울점이 있는 법인데 내가 상처받을까봐 외면했다는 것밖에 안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참 안이하게, 수동적으로 삶을 살았구나 싶다(그런데 그 순간에도 이 책을 기획하면서 인물을 선정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유학을 가고 삶의 기반을 쉽게 잡은 것을 보면 완전 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 거라는 못된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그들의 삶을 구구절절 적지 않았을 뿐이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단면을 보고 전체가 순탄했을 것이라는 우를 또 범하고 만다. 하긴 그래야 내가 지금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안이하게 사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테니까.
여기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자신을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지금의 많은 학생들은 그냥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직업을 찾고, 어른들이 정해주는 진로를 '따라'간다. 과연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렇게 평탄하게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과연 남의 고통을 돌볼 줄 알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이 구비된 환경에서 그냥 살기만 하던 사람이, 모든 것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이해할 리 없다. 그래서 지금처럼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일 게다. 문득 어떤 개그가 연상된다. '취업하면 (저절로)차 생기고 결혼하면 집 생기는 거잖아요.'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삶이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때로는 찾아오기도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어떤 삶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그냥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지만 지나고나서 보면 이런 게 운명 아니었을까 싶은 일들이 꽤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걸 보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아니면 혹시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