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별곡 푸른도서관 2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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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나무. 대관령 삼양 목장 입구에 가면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고목이 된 주목이 있다. 긴 세월을 버텼을 그 나무를 보며 참 오래 살았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우리의 역사를 전부 보고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경이로우면서도 순탄지 못한 우리네 역사가 생각나서 한편으론 안쓰럽기까지 하다. 왜 '했다'가 아니라 '하다'라는 현재형 표현을 썼냐면 그 당시에 느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서 느꼈기 때문이다.

멋스런 그림과 가을의 낙엽을 연상시키는 황토색의 표지, 게다가 뭔가 역사적인 냄새가 풍기는 제목을 보고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시로 시작을 한다. 처음에 시를 인용하는 책을 꽤 보았으니 그런 것이겠지하며 다음 장을 넘겼는데 계속 시가 나온다. 혹시나 하고 주루룩 훑어 보니 전부 시다. 그렇다면 시집인가. 원래 시와는 안 친한데 큰일이군. 그래서 일단 덮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큰 마음을 먹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다음날 다시 읽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 감동을 간직하고 싶어 바로 다음에 읽을(정확히 말하자면 읽어야 할) 책을 잠시 미뤘다.

언젠일지 모르는 궁에서 후궁의 딸로 태어난 주인공. 아마도 어느 나라가 쇠락해 가는 중이었나보다. 주인공은 호위무사와 함께 간신히 궁을 빠져나와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서 산다. 그리고 호위무사와 사랑을 하게 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 일이라고 하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호위무사는 왕을 구하러 떠나고 공주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결국 주목이 되어 다시 돌아올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백 일을 사랑하고 천 년을 기다린 셈이니 너무 가혹한 운명이다. 하지만 주목은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그 사이 새 나라가 건국되는 것도 보고 나라를 빼앗기는 것도 보았으며 전쟁이 나는 것도 본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나라의 흥망성쇠를 다 경험한 것이다.

고향인 시골에도 야트막한 산꼭대기에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나무건만 그 나무를 베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병이 나거나 죽는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잠시 들었다. 아니, 그 나무도 그랬구나라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한 동네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800년(30년 전에도 수령이 800년이라고 했다.)이 넘었다고 하니 그 나무도 그 안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겠구나. 가끔 그 나무를 보며 고려시대에 심은 나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들곤 했었다. 나는 지나쳤던 그러한 감정을 저자는 이렇게 멋진 서사시로 풀어냈다. 아, 이래서 작가는 따로 있는 거구나. 외국의 어린이책 중 뉴베리 상을 받은 <모래 폭풍이 지날 때>라는 서사시가 있다. 그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는 왜 이런 책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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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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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이 무엇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뜻일까하고 고민을 했다. 대개 제목으로 내걸 정도라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일 테니까. 그런데 스프링벅은 아프리카에 사는 어떤 양이란다. 형용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물이라니. 스피링벅이라는 양 이야기를 들으니(정확히 표현하자면 읽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문득 레밍이라는 쥐가 생각났다. 물론 레밍은 왜 달려가는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단순히 개체수를 조정하려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정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스프링벅은 풀을 뜯어먹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하니까.

창비에서 내놓는 청소년문학은 처음부터 신뢰하고 있었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지가 오래되어서일까. 요즘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생활하는구나, 선생님들은 이렇구나를 생각했다. 반면 학부모의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새로울 것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의 나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 뿐인 셈이다.

동준이가 그저 그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우연히 창제의 가출로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서서히 동준이에게로 옮겨진다. 뜻밖의 형의 죽음을 맞으면서 가정은 아슬아슬해지고 마음 붙일 곳 없는 동준은 점점 연극에 몰두한다. 아니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으로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하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동준이가 연극에서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형의 마음을 대신해서 엄마에게 퍼붓는 말이 되고 만다.

대개 청소년 소설의 경우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가 많은데 반해 이 책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많다. 이런 선생님들이라면 아이들도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현재만 생각하고 자기들 위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돌아볼 줄 알고 때론 진지하게 토론도 하는 등 그야말로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리 요즘 청소년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개인주의화 되어 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이 훨씬 많겠지라는 기대를 해본다.

사실 청소년책이나 동화책이 지나치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 나머지 현실에서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래서 폭력이나 가출, 반항 등을 아주 당연하게, 때로는 멋있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에서 그런 것을 그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어른들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지 그런 행동의 당위성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이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창작를 읽히는 것에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어른들의 잘못도 인정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른이 하고 싶은 말을 은근슬쩍 던져주고 있어 안심이 된다. 즉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하되 적절한 선을 확실하게 긋고 있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가 들어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동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간중간에 연극 대본이 들어 있어 마치 두 개의 글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화를 쓰던 작가가 첫 청소년소설을 썼다는데 오히려 동화로 만났을 때보다 더 공감이 가고 구성도 매끄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억지로 결말을 내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어차피 인생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는데 결말이란 것은 없는 법이니까. 동준이는 그렇게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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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깐뎐 푸른도서관 25
이용포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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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고민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중에 뚜깐이라는 말은 없는데 하고 말이다. '뎐'이라는 말은 '전'의 고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 앞의 두 글자의 의미만 알면 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거다. 결국 모르는 채 읽기로 했다.

분명 제목은 어떤 과거시대를 배경으로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미래시대가 펼쳐진다. 이미 영어공용화 정책으로 한글이 거의 쓰이지 않는 가까운 미래다. 2044년이라니까 그다지 멀지도 않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최소로 줄인 첨단시대에 살고 있다. 도대체 그런 생활과 옛날 책 같은 제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내 생각하며 읽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과거로 들어간다. 사실 미래의 어느 날을 이야기할 때는 마음이 불편하고 읽는 속도가 느렸는데 과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자 마음이 편하고 속도도 붙는다. 역시 아직은 첨단을 살 준비가 안 되었나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연산군이 왕위에 있을 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천방지축 못말리는 말썽꾸러기에 선머슴인 뚜깐의 이야기다.(물론 중반까지만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까 뚜깐이란 여자 아이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뚜깐의 뜻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똥뚜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단다. 양반의 자제였다면 그럴 듯한 이름을 붙였겠지만 어차피 천한 주막집 아이로 태어났으니 아무렇게나 붙였겠지.

남자 아이들을 거느리고 놀러 다니던 뚜깐이 우연히 주막에 손님으로 온 한 무리의 사람들로부터 한글을 배우면서 벌어지는 일이라지만 배우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뚜깐의 내면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언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한 나라의 얼이 담겨있다고 하는 언어.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기에 지금도 툭하면 영어 공용화가 어쩌고 몰입교육이 어쩌고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무조건 영어를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다. 배울 건 배우되 적어도 우리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여기 숨어 있는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 저자가 영어에 올인하는 현실에 쓴소리를 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래전에 구상하던 이야기를 지금 끄집어 냈을 뿐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읽는 것은 독자의 마음 아니겠나.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했을 때 반대하던 사람들의 말이나 지금 영어 몰입교육을 외치는 사람들의 말이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단지 중국에서 미국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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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2
막심 고리키 지음, 이강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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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결코 과격하지 않은데(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분야는 과격한 것들이다. 여기서 과격하다고 하는 것은 몸으로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고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마음은 그쪽을 향해 있는데 몸이 따르지 못해서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시작을 노동자들의 힘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으로 시작하기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참담하고 암울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닮는다고 했으니 매일 술주정이나 하고 폭력이나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파벨이 처음 술 먹고 취해 들어온 장면을 보고는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아, 제목으로 보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그럼 앞으로 아들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겠구나.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파벨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씩 길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외출해도 술을 마시지 않으며 책을 보고 어머니를 돕는다. 당시 노동자촌에서 그런 아들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내심 사랑스러우면서도 불안해한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집에서 여러 사람과 토론하는 것을 보며 불안하면서도 막연히 나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만약 어머니의 눈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그린 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해도 비슷한 많은 소설 중 하나로 그냥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기서는 어머니가 단순히 아들을 이해하고 돕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고 싶고 보람을 찾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어머니가 비로소 한 인간으로 탈피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물론 아들이 매개체가 되긴 했지만 그냥 아들을 바라봐주는 어머니로 머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띄었고 가슴 벅찼다.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특히 안드레이가 파벨에게는 따뜻한 가슴이 없다고 불평하는데 그것을 어머니가 대신 메워주었다. 

실제로 레닌과 함께 혁명 운동을 벌였던 고리키는 레닌과 절친하게 지냈으나 10월 혁명 후에는 잠시 결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고리키는 혁명에 앞서 인간을 우선시하는 것 같던데 레닌은 혁명을 우선시 했으니 둘의 견해가 갈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은 비슷해 보인다. 우리도 처음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할 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던가. 물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소설이라는 것도 잊고 어머니의 행적을 따라가기 바빴다. 하지만 시종일관 그녀가 아닌 '어머니'로 지칭하면서 이미지를 유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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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3
서머싯 몸 지음, 송무 옮김, 나현정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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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정작 난 그렇게 살질 못한다. 어떤 열정에 사로잡혔다가도 현실을 깨닫는 순간 바로 주저앉는다. 지금 나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도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주변사람들도 있으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용감했다. 가족과 부인에게 설명도 없이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정만을 간직한 채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럴 땐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그래,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가능했을 것이야.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셈이다.

지금 나이쯤에 이 책을 읽었다면 '청소년 시기에 읽고 지금 다시 읽으니'라는 말을 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청소년 시기에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읽었다는 것일 게다.

만약 서술자가 스트릭랜드 부인이었다면 분명 스트릭랜드를 이기적인 불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술자가 작가인 '나'로 되어 있고 그도 어느 순간 스트릭랜드의 매력에 빠지는 것을 보며 독자도 스트릭랜드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남의 평판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삶을 영위하는 그를 보며 어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괴롭다. 불친절하고 남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니 당연하다.

영혼을 위한 삶을 사는 달, 스트릭랜드(물론 명예를 버린 의사도 있다.)와 그 외 현실적인 삶을 사는 나머지 사람들의 생활을 대조시킴으로써 진짜 중요하고 풍요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각각 인간 부류를 대표하는 듯하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남편이 떠난 것을 알았을 때 왜라는 생각보다는 당장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더 두려워하고 남편을 증오한다. 그리나 나중에는 남편이 유명해지자 자신이 부인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를 세속적이거나 속물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대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트로브는 정작 본인은 천재의 그림을 보는 안목을 지녔음에도 과감히 현실을 떨치지 못해서 그저 그런 그림만 그린다. 아마 그에게 열정이 있었다면 스트릭랜드 못지 않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긴 능력 있는 비평가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긴 하다만. 문득 스트로브에 내 자신을 대입해 본다.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며 혹 내 결점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진 않았는지. 현실과 타협하면서 옳은 길, 잘된 길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그래서 더욱 스트로브가 제 길을 찾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고갱을 모델로 썼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적 허구를 차용했다는 <달과 6펜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시리즈는 뒷편에 나와있는 작품 해설과 다양한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가끔 내용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데 억지로 짜맞춘 듯한 팁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저나 언제 기회가 되면 타히티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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