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거울

   三鑒(삼감)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없다. 통치자는 자신의 잘잘못을 백성들을 통해 비추어 보아야 한다. 또한 과거 역사를 거울로 삼아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흔히 동감(銅鑒), 인감(人鑒), 사감(史鑒, 또는 고감古鑒)삼감이라 한다. 신당서(新唐書) 위징전에 보면 당 태종은 동으로 만든 거울로는 의관을 반듯하게 잡고, 과거의 거울로는 왕조의 흥망과 교체를 알고, 사람 거울로는 자신의 잘잘못을 밝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징이 죽자 자신의 잘잘못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슬퍼했다. 삼감은 삼경’(三鏡)이라고도 쓰는데, 어느 경우나 이 세 거울을 나라를 다스리고 심신을 바로잡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지난 역사와 백성을 통해 통치의 득실과 잘잘못을 비춰 보는 리더만이 성공한 리더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상서(尙書) 주고(酒誥)

 

 

 

 

 

중국사의 오늘 :

1980225

중국 북경과 미국 뉴욕시가 자매결연을 했다. 같은 날 신화사는 중국의 석탄 매장량이 6,000억 톤 이상으로 500년 동안 채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食車(식차)

   밥 수레

 

영화나 드라마를 야외에서 찍을 때는 출연진과 스태프의 식사를 위한 밥차가 따라다닌다. 이 밥차를 한자어로 하면 식차’(食車)가 될 것이다. 옛 기록에서 식차의 내용은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인 자치통감수나라 양제(煬帝)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위진남북조라는 대분열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다시 통일한 수나라는 2대 황제인 양제의 황음무도한 통치 때문에 망국의 길을 걷는다. 양제는 강남 강도(江都)로 놀러 가길 좋아했는데 한번 행차할 때마다 엄청난 수행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다. 그리고 양제가 지나는 500리 이내의 주와 현에서 먹을 것을 갖다 바쳤는데 많으면 한 주에서 500대 이상의 수레에 먹을 것을 싣고 왔다고 한다. 여기서 밥 수레, 즉 밥차를 의미하는 식차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후 식차는 무지막지하게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징물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자치통감(資治通鑒) 수기(隋紀) 180 ‘양제 대업 원년

 

 

 

 

 

중국사의 오늘 :

144224(동한 순제 건강 원년 정월 신축)

동한 정부에서는 농서, 한양, 장액, 북지, 무위, 무도 등 오늘날 감숙성 지역에서 143년 가을 이후 180차례의 지진이 발생하여 산과 계곡이 무너지고 성과 사찰이 붕괴되었으며 백성들이 죽는 등 큰 피해가 났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지진이 난 경우는 세계사적으로 드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든 사람이 칭송하다.

   有口皆碑(유구개비)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한입으로 칭찬하는 것이 마치 죽은 사람을 위해 세운 비석 같다는 말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비석의 비문은 대체로 그 사람이 생전에 잘한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이런 칭찬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구비’(口碑)로 줄여서 쓰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여론 또는 입을 통한 평가를 가리킨다. ‘칭송의 말이 길을 가득 메우다란 뜻의 구비재도’(口碑載道)란 파생어도 있다. 서로를 헐뜯는 풍조가 만연한 지금의 세태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과 사람이 많아져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 영주태평안선사(永州太平安禪師)

 

 

 

 

중국사의 오늘 :

731223(당 현종 개원 19년 정월 임술)

현종이 고구려 사람 왕모중(王毛仲) 10여 명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이 사건 이후 환관 세력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이 끄는 수레가 이르다.

   羊車到(양차도)

 

진나라 무제는 황음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황제였는데 늘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비빈들의 처소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비빈들은 양을 자신들의 처소로 유인할 온갖 아이디어를 내 양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대나무 잎사귀를 자기 처소 앞에 꽂아 두거나 땅바닥에 소금물을 뿌려 양을 유인했다고 한다.

 

양차는 궁중에서 말이 끄는 마차보다 작고 가벼운 수레로 마차 대신 이용되기도 했다. 훗날 양차도는 제왕이 궁중의 어떤 비빈에게 행차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양차부도’(羊車不到)란 말도 생겨났는데, 양이 끄는 제왕의 수레가 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궁녀들의 원망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어느 것이 되었건 절대 권력을 가진 제왕의 기행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런 기행에 맞추기 위한 별별 기행들이 함께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

 

진서(晉書) 호귀빈전(胡貴嬪傳)

 

 

 

 

 

중국사의 오늘 :

1201222(금 장종 태화 원년 정월 기사)

이날 금나라 태부감 손복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금나라 관원은 37,000여 명인데, 그중 고위 관직자에 대한 특혜로 주는 문음관(門蔭官)3분의 2를 차지했다. 금나라 고중급 관리들이 문음 특권으로 자손대대 관직에 나감으로써 기본적으로 관료 사회를 농단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벌의 허리

   蜂腰(봉요)

 

남사』 「주홍직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주홍직은 사람이 방정하고 후덕하며 기개가 높았다. 누군가가 세 명의 주씨 중 누가 가장 나은가를 물었는데, 사람들은 벌의 허리같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세 명의 주씨란 주홍직 3형제인 주홍정(周弘正), 주홍양(周弘讓), 주홍직을 말한다. 세 형제 모두 나름 재능과 인품이 괜찮았는데, 가운데 주홍양이 반란군 장수 후경(侯景) 밑에서 벼슬을 하는 등 그 행적 때문에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3형제를 비교할 때 주홍양이 벌의 허리처럼 가운데가 쏙 들어간 것이 가장 차이가 난다고 말한 것이다. ‘봉요란 두 글자는 여러 사람들의 능력과 인품을 비교할 때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가장 뒤떨어진다는 비유어로 절묘하게 사용되고 있다.

 

 

남사(南史) 주홍직전(周弘直傳)

 

 

 

 

 

중국사의 오늘 :

1972221

미국 대통령이 닉슨이 중국 방문을 시작하여 227일에는 상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본격화되었다.

 

 

 

 

 

도판은 닉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