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지방 소는 달을 보면 가쁜 숨을 내쉰다.

   吳牛喘月(오우천월)

 

()나라 사람 만분(滿奮)은 바람을 싫어했다. 하루는 진 무제와 자리를 같이했는데 유리로 된 북쪽 창문을 본 만분은 그쪽이 뻥 뚫려 있는 줄 알고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진 무제가 웃으며 까닭은 물으니 만분은 자신은 물소가 달을 보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만분이 이야기한 물소가 달을 보면 헐떡거린다는 것은 태평어람에 기록된 오() 지역 소에 관한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오 지방의 소는 더위를 싫어해서 달을 보고도 태양인 줄 착각하고 숨을 헐떡거린다는 것이다. 이후 이 단어는 지독한 더위를 비유할 때 주로 사용되었지만 풍토로 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비유하기도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중국사의 오늘 :

1142127(남송 고종 소흥 1112월 계사)

남송의 황제 고종과 간신 진회(秦檜)가 민족영웅 악비(岳飛)에게 혹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수유’(莫須有)라는 죄목을 붙여 그 아들 악운과 함께 처형했다. 이로써 남송의 군사력은 더욱 약화되었고 조정은 무기력에 빠졌다.

 

* 도판은 악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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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의 집

   子雲宅(자운택) 또는 子雲居(자운거)

 

자운은 한나라 때의 유명한 학자로 논어를 모방한 법언(法言)이란 저술을 남긴 양웅의 자다. 양웅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다른 집안과 원한 관계 때문에 사천 민산(岷山)으로 이사하였고, 이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 집에 돈도 없고 하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자운의 집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양웅택’(揚雄宅), ‘양자택’(揚子宅), ‘양자거’(揚子居) 등으로도 쓰인다). 집에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어 찾아오는 사람 없는 한적한 집이란 뜻이다. 하지만 양웅은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유유자적 시와 문장을 지으며 술과 더불어 즐겁게 살았다. 후대 시와 문장에서는 늘 지식인의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때로는 촉, 즉 지금의 사천성 지역을 가리키기도 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가 훌륭하긴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정말 오르기 힘든 경지이기도 하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

 

 

 

 

 

중국사의 오늘 :

1291(원 세조 지원 28)

원 세조 쿠빌라이가 수리 전문가 곽수경(郭守敬)에게 남북 대운하의 북단인 통혜하(通惠河) 개착을 명령했다. 이 공사는 만 2년 만인 1293년에 완공되었다. 통혜하는 통주(지금의 북경 통현)에서 대도 적수담(積水潭, 지금의 북경 십찰해)에 이르는 대운하 최북단이다. 대도와 통혜하의 수원을 해결하기 위해 길이 30킬로미터의 백부언(白浮堰)도 축조한 엄청난 수리 공정이었다. 이로써 대도에서 항주까지 해하, 황하, 회하, 장강, 전당강의 5대 수계를 연결하는 남북 대운하가 형성되었고, 이로써 남북 경제와 문화의 연계를 강화하는 유일한 수운 교통이 완성되었다.

 

 

* 도판은 〈통혜하조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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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랑이 뒤돌아보다.

   周郞顧(주랑고)

 

주랑식곡’(周郞識曲)이라고도 하는 이 고사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인 주유와 관련된 것이다. 주유는 젊어서부터 음악에 조예가 대단하여 연주에 조금만 문제가 있거나 틀려도 반드시 알아듣고는 고개를 돌려 연주자를 보았다고 한다. 여기서 주랑이 뒤돌아보다또는 주랑이 곡을 알다는 성어가 비롯된 것이다. 정사 삼국지에도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주유가 음악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루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이 밖에 음악에 깊은 조예를 보이는 경지나 사람을 지음(知音)이라고도 하는데, 친구가 연주하는 음악만 듣고도 친구의 심경을 헤아리는 우정의 최고 경지를 가리키거나 둘도 없는 친구를 의미할 때 쓴다. 음악을 아는 주유 같은 멋지고 차원 높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가는 시절이다.

 

삼국지(三國志) 오서주유전(吳書周瑜傳)

 

 

 

 

 

중국사의 오늘 :

649125(당 태종 정관 22년 윤12월 계미)

신라의 김춘추와 그 아들 인문이 입당하여 당 태종을 만났다. 태종은 김춘추를 특진으로 삼고 인문을 좌무위장군으로 삼았다. 김춘추가 복장을 중국식으로 고치겠다고 요청하니 특별히 궁중의 동복을 찾아 주었다. 신라의 노골적인 친당 외교가 본격화되면서 3국간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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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을 품고 나라의 대업을 중흥시킬 뛰어난 인재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을까?

   經綸中興業, 何代無長才(경륜중흥업, 하대무장재)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옛날 회고하는 세 편의 시중에서 이렇게 읊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시대라도 인재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위정자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해 쓰지 못할 때이다. 그러면서 두보는 한 고조의 유방의 공업(功業)은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에서 나오지 않았냐고 말한다. 이 시는 대개 유능한 인재들을 제대로 쓸 줄 몰랐던 당시의 황제 숙종에 대한 풍자의 성격이 강하다. 천리마가 없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천리마를 가려내는 백락(伯樂)과 같은 눈을 가진 리더와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를 걱정할 일이다.

 

술고삼수(述古三首)

 

 

 

 

 

 

 

 

 

 

 

 

 

 

 

 

 

 

 

 

 

 

 

 

 

 

 

 

* 도판은 두보상.

 

 

 

 

 

중국사의 오늘 :

1988124

곤명(昆明)에서 상해(上海)로 향하던 곤명(昆明)-귀양(貴陽) 선을 운행하던 80차 특쾌(特快) 열차가 차오(且午)-등가촌(鄧家村) 사이에서 전복 사고를 당해 88명이 죽고 66명이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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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말은 믿기 어렵고, 돌고 돌아 전해진 말에는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

   訛言難信, 轉聞多失(와언난신, 전문다실)

 

당나라 때의 역사 평론가인 유지기(劉知幾)는 자신이 대표적인 저서 사통에서 효자로 이름난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거나, 제갈량이 아직도 살아 있다거나 하는 허구의 말들은 모두 길에서 주워들어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유지기의 말은 마치 SNS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 자못 폐부를 찌른다. 문제는 진실과 허구를 가려서 듣고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과 귀를 갖추지 못한 우리의 천박한 인식일 것이다. 이 점에서는 많이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사통(史通) 채찬(采撰)

 

 

 

 

 

중국사의 오늘 :

446123(남조 송 문제 원가 2212월 을미)

중국의 관찬 사서로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후한서(120)를 편찬한 범엽(范曄)이 모반죄를 범해 처형되었다(398~446). 범엽은 벼슬길에서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해 늘 불만을 품고 살다가 모반에 연루되면서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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