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 Bleak Nigh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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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이 영화 <파수꾼>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그 자체의 어떤 것 보다는,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다른 것을 환기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들, 낡고 끊어지고, 바래져 가는 기억들, 혹은 무의식적으로 밑바닥에 밀어넣어 두었던 기억들의 일부를 아주 조심스레 끄집어내게 만든다. 물론 그것들의 거의 대다수는 영화 속의 어떤 일들처럼 저런 극적인 사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비슷한 기억들이 있다. 다른 어떤 것들에 밀려 잊고 있었던 것들, 이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의 좋았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지금 기준으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옛날의 (친구와 멀어지게 된) 사건들. 예를 들어 영화 속 기태(이제훈)의 모습은 옛날 학교 가던 길에 나에게 갑자기 이단옆차기를 날렸던 어떤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것이 어떤 것 때문이었는지는 세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건의 중요한 몇몇 부분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상당수는 그런 시간을 살아왔다. 어떤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또 어떤 것은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동시에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은 기억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잊으면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어떤 심리학적인 디테일한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 의미가 있다해도, 그것을 또 애써 설명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지 않을까. 기태는 자신에게 왜 그랬는지 설명해 보라는 동윤(서준영)의 요구에 항변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 이 부분은 상황을 무마하려 넘어가려는 기태의 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기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설명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그것 자체가 정당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기태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기본 구조가 아들이 자살한 이유를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질문들로 이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아들이 왜 죽었을까. 반복되는 질문들 속에 답은 없다. 아니, 답은 있지만, 그 답이 설명될 수 없는 것임을 동윤이나 희준(박정민)이나 알고 있다. 애써 설명한다고 해도, 그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설명과 그 설명이 결국 말해주는 것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 때의 우리들에게는 그것만이 가능한 관계의 전부였으니까. 그 관계들만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중요해져 버린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니,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어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청소년들의 어떤 미성숙성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기태와 동윤과 희준의 이러한 관계는 청소년기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관계는 언제 어느 때에나 누구에게나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지금도 우리 주위에 살짝 가로놓여져 있다. 다만, 그것이 파국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다른 중요해진 것들이,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는 파국에 이르지 못한다. 단단해져야만 깨질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청소년기의 비극이란, 그러한 관계들이 필연적으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아무 것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시기에 우리는 대부분 한두 가지에 모든 것을 걸고, 그것을 단단하게 만들려고 한다(타인이 보기에는 약해보여도, 자신들은 단단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 때의 우리에게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그것이 깨지지 않도록 지켜봐주는 파수꾼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벼랑 너머로 누군가 떨어지려고 하면, 붙잡아주려고 했던 것처럼. 혹은 기차가 지나가려고 할 때 지켜보며, 종소리를 울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처럼. 마지막 기차길에서의 동윤의 회한은 그래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파수꾼이 되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다른 파수꾼들이란 없었으니까.
.............................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 이 어려운 작업을 가능케 하고, 이것에 힘이 느껴지는 원동력 중에 하나는 독특한 서사구조와 그것을 화면에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던져놓고, 그것을 지연시킴으로써 이야기에 긴장을 불어넣는 방식도 그렇거니와, 대과거와 과거, 현재를 독특하게 붙이는 리듬이 훌륭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 동윤이 울다가 나와서 기태를 만나고, 기태와 대화를 하고(이 장면에서 기태와 동윤은 분절되어 있다. 거울을 기민하게 활용하여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되, 감정은 분리시킨다.), 다시 기태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잇는 것을 보거나, 기태가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과 기태 아버지가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을 비슷한 구도로 만들어내는 장면 등을 보면, 이는 감독의 탁월한 감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여기에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결합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 영화 <파수꾼>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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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4-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요즘 상영한 건가요? 생소해서요.
맞아요. 청소년기엔 파수꾼이 필요하죠. 님 말씀처럼 깨지지 않도록 멀리서 지켜봐주는 파수꾼. 부모의 역할일듯.

맥거핀 2011-04-11 14:10   좋아요 0 | URL
네..상영한지 한 달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상영관은 몇 군데 없지만요. 기회되신다면 꼭 보세요. (가능하면, 찾아가서 보시라고도 권하고 싶구요.) 분명히 만족하실 겁니다.^^;
부모가 파수꾼의 역할을 맡는 것이 맞기는 한데,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의 이야기는 부모가 맡을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아버지에게 끝내 만족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겠지요.

2011-04-18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1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1-05-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3대천왕 독립영화중 이 영화만 안봤네요^^

맥거핀 2011-05-04 01:21   좋아요 0 | URL
<혜화, 동>하고 <무산일기>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는 아직 그 두 영화 모두 못봤습니다. 이 <파수꾼>도 참 어렵게 봤네요..;; <무산일기> 보러가야 하는데요..
 
<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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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에는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말그대로 사람없이 혼자 연주하는) 자동피아노가 나온다. 그 자동피아노는 긴 두루마리에 일련의 천공(穿孔)을 가진 악보로 연주되는데, 바흐의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악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흰종이에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인데, 그 구멍들의 놀라운 대칭적인 배열이란. 이 책 <대칭>을 보면서 그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았다. 바흐의 음악에서 수학적인 대칭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이 책 <대칭>은 그 대칭의 세계를 수학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차분히 들려준다.

우리가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수학의 세계는 일종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집합과 명제로부터 시작하는 고등학교 수학 과정은 그렇게 짜여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수학에서는 전 단계를 모르고서는 다음의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인수분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다음의 이차방정식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점핑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아주 일부의 천재에게는 허용된다). 갑자기 책의 중간을 펴서 그것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수학의 세계에서는 당연히 낙오자들이 생긴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지만) 어느 순간 수학의 끈을 놓아버린다. 수학은 일종의 마라톤 랠리와 같다. 가장 기본적이고 정석적인 인내심을 요구한다. 수학은 지름길을 보여주지도 않고, 중간에 자동차를 타고 다음의 코스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완주의 환호를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뛰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논의를 보면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처음 가장 기본적인 회전 대칭과 반사 대칭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알람브라 궁전의 17개의 서로 다른 대칭을 거쳐, 고차방정식의 해들과 그 속에 담겨진 대칭들,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수들과 기하와의 환상적인 연결을 지나, 마침내 가장 근본적인 대칭의 언어인 군(group)으로 대칭을 말하고, 그 대칭의 지도에 셀 수도 없는 큰 대칭을 가진 몬스터 대칭을 그려넣기까지의 여정은 일종의 작은 마라톤 게임을 닮았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이 마라톤은 별로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수학 선생님의 인솔 하에 몇 명이 낙오되어도 상관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가는 그런 서바이벌 마라톤 게임은 아니다.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때로 잠깐 앉아서 휴식을 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뛰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주위의 풍경에 집중하게 하면서 독자들을 마지막 도착점까지 끝까지 데리고 간다. 아니, 아예 뛰고 싶지 않은 독자는 뛰지 않아도 된다. 중간중간 뛰어야만 하는 부분들을 건너 뛰고도, 즉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 풍경만 둘러보아도 볼 것은 아주 많다. 그 속에는 그간 힘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수학자들의 드라마가 있고, 수학적 논의보다 기차시간표에 열광하고, 술의 도수에서도 소수를 찾는 유머가 있고, 바흐의 음악이 있고, 에셔의 그림이 있다. 밑의 인용문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 몇 가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 부분이 뒤얽혀 있기 때문에, 이 책 전체의 재미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현재로서는 설사 그 논문에 어떤 오류나 결함이 남아 있더라도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스미스는 '증명의 신뢰성은, 증명의 많은 부분들이 극도로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추리 소설 같은 것에서 논리적 결함이 나오면 작품의 전체 구조가 완전히 망가지는 일과는 다른 문제다.'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증명은 수많은 실들로 뒤얽혀 있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뽑아낸다 해서 전체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p. 433)
 
   

 

인용한 문장에서 말하는 그 논문이란, '아틀라스'라고 불리는 대칭군들을 기록한 거대한 지도가 이제 완결된 것임을 말하는 논문을 말한다.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 지도에 새로운 대칭군들을 추가하기 위하여 애썼다. 그리고 새로운 대칭군이 발견되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지도에 기록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이는 마치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것과 닮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거대한 별의 지도에 그것을 추가하였다. 별은 거기에 이미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대칭군도 거기에 이미 있었다. 수학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루한 계산들로 그것을 끄집어내기 전까지 그저 묻혀 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수학자들은 그 지도에 이제 새롭게 더 추가할 대칭군이 없음을 밝히려 한다. 그러나 이 책 <대칭>의 마지막 한 장까지 이 논의는 완결되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언제 어디서 새로운 군이 추가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더 추가될 수 없음을 증명한 논문에 오류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어느 순간 우주의 반대편에서 외계인이 날아올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이 책에 가장 인상을 받은 순간은, 대칭을 둘러싼 전체적인 논의보다도, 수학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이다. 대칭군을 분류하는 것이 이제 거의 끝났음을, 그 분류의 지도(아틀라스)에 더 이상 기록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놓는 앞의 태도도 그러하지만,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의 자신의 연구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대칭의 한 부분을 파고드는 저자의 연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점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지만, 그는 그 난점을 인정하고, 그대로 그 연구를 발표하려 한다. 저자가 말했듯이 모든 수학자들은 자신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놓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영광은 아주 극소수의 수학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갈루아와 아벨 등의 많은 수학자들의 드라마에서 말해지듯이, 한 사람의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일종의 완결을 이루기를 꿈꾸지만, 그것은 완결로 가는 하나의 여정일 뿐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시작에 가깝다. 완벽함이란 불가능하다. 어떤 증명은, 그 증명 자체로는 완벽할 수 있어도, 수학이라는 거대한 지도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그 완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어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책 <대칭>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곳에는 완벽하지 않은, 아니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조금 인용하자면, 페르시아의 직공은 완벽한 대칭 문양을 가진 직물을 만들면서도 한 부분을 무너뜨려 그것이 완벽해지지 않도록 했다. 일본의 건축가들은 대칭된 건물을 축조하면서도, 한 곳은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두었다. 완벽함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전한 대칭은 도리어 공포의 대상이 된다. 바이러스는 완전한 대칭의 모양을 가진다. 그것이 에너지를 최소화시켜 바이러스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영화 <올드보이>를 생각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오대수가 갇혀 있던 방의 벽지에는 대칭적인 문양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비밀이 밝혀지는 마법의 상자에도 대칭적인 문양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인간은 완벽한 대칭을 꿈꾸지만, 완벽한 대칭은 도리어 사람을 불안하고, 무섭게 만든다. 대칭의 요소를 담으면서도, 일종의 창의적 변형을 남겨두었던 바흐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완벽한 대칭을 가진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은 듣기에 거북한 면이 있다. 그래서 영화 <블랙스완>에서 완벽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변형과 결여를 실행한다.

그래서 아마도, 완벽한 대칭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 <대칭>은 완벽함을 끝내 이야기하지 않고, 일종의 미스테리를 남겨둔 채로 이야기를 끝맺음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1장에서 12장이라는 12면체의 구조로 목차가 이루어져 있지만, 1월에서 12월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8월에서 시작하여, 다음해 7월에 끝난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해로서) 완결되지 않고, 다음의 8월 이후의 이야기를 남겨놓고 있다.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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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3-2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전 양해는 구했지만, 그래도 늦으니 양심에 찔리는군요.;;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읽고나서 에셔에 관심이 생겼는데, 혹시 [M.C.에셔, 무한의 공간]이라는 책, 저에게 넘기실 분 없나요? 출판사에까지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완전히 절판이고, 더 책을 찍을 계획도 없다는 절망적인 답변이..

셜록 2011-03-30 12:10   좋아요 0 | URL
<에셔, 무한의 공간> 저 작년에 어렵게 구했는데...이제는 출판사에도 없나봐요. 근데 영문판, 일본어판은 아직 구입할 수 있는거 같아요. ^^그리고 번역이 별로긴 하지만, 까치글방에서 나온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역시 꽤 흥미롭습니다.
저도 아직 <대칭> 리뷰 못 썼는데, 악!! 대체 이런 무시무시한 수학책을 누가 선정한거임!!!괴로워하는 중입니다 ㅜ.ㅜ
확실히 맥거핀님의 리뷰는, 저의 저질 리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흑. 역시 열심히 내공을 갈고닦아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cyrus 2011-03-30 13:44   좋아요 0 | URL
헉,, 저도 그 책 구하고 싶었는데,, 절판이군요,, ㅠ_ㅠ
교고쿠도님이 소개한 호프스태터의 책을 기회가 있으면 읽어봐야겠습니다,

맥거핀 2011-03-30 18:04   좋아요 0 | URL
교고쿠도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어차피 그림 보는게 목적이었으니 일본어판이나 영문판이라도 구해봐야할까봐요. (그래도 일본어는 아예 독해를 못하니, 영문판이 낫겠네요.) 출판사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이런 전화 너무 많이 받았다는 투로 능숙하게 절판임을 알려주셔서, 절망하던 참이었습니다.
에셔에 대한 검색어를 넣어보니, 그 책하고, 말씀하신 <괴델, 에셔, 바흐>가 나오더라구요. 이 책은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분석이 위주가 된 것 같아서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도전해서 읽어보려고요.^^
교고쿠도님의 악!!소리를 들으니, 저 역시 이 선정에 일조(?)한 사람으로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네요. 뭐 그래도 잘 리뷰 쓰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재미있지 않았나요..;;

셜록 2011-03-30 18:57   좋아요 0 | URL
다시 검색해보니까...<에셔, 무한의 공간>의 영문판은 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810924145 인 것 같고 일본어판은 <無限を求めて―エッシャ-、自作を語る> 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4022596023 인듯해요.
맥거핀님이 대칭 선정하셨군요. herenow님과 더불어 과학화의 원흉(?)일지도...으핫

맥거핀 2011-03-30 23:07   좋아요 0 | URL
아니..이렇게 검색까지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 검색능력보다 한수 위시네요..; 외국판은 또 어디서사나..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책선정에 따른 양심의 가책에 무게가 더해졌네요. 아무튼 정말 감사드립니다. 잘 찾아서 볼께요.^^

반딧불이 2011-03-30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무관심 했던 대칭에 대한 책을 읽고나니까 도수 잘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보이는게 많아졌어요. 맥거핀님의 리뷰 읽으면 늘 재정리 하는 기분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1-03-30 18:07   좋아요 0 | URL
네..저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대칭에 대한 관심이 좀 생겨서 화장실의 타일문양도 괜히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했습니다. 이거에는 몇 가지의 대칭이 있을까 하구요. 암튼 대칭이라는 것이 그렇게 여러 의미가 있는 줄 몰랐어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리뷰에 대해서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오 2011-03-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칭이라~ 그런데 좋아하는 구절의 인용은 책 읽다가 밑줄치시나봐요? 항상 인용을 잘하시던데 문구도 멋있구요~ 참 잘뽑아내시는 것 같아요 <바흐이전의 침묵>, <올드보이>,<블랙스완>영화도 그렇구요~ 이런건 책을 읽어도 잘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인데여~

아참~ 저 인문.사회 서평단의 뽑혔어여^^v(사실 긴가민가 했는데 절 선택하시더리구요ㅋ) 여기글 참조해서 글쓸려구요 ㅋㅋ(사실 여기글 많이 도움받았죠^^)

맥거핀 2011-03-30 18:13   좋아요 0 | URL
제가 책에 대해서는 약간의 결벽증(?)이 있어서, 줄 긋고, 접고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용문에 대해서는 사실 읽을 때에는 별 생각을 안하고, 다 읽은 후에 기억나는 문장이나, 괜찮았던 문장들을 한 두개 찾아보고는 합니다.(물론 그래서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느라 고생을 하지요.) 말씀하신 영화들은 최근에 본 영화라, 그저 한번 엮어본 것이구요. 뒤로 넘어지다가 쥐잡은 격이지요..
다만, 예를 들어 저번 도스토예프스끼 리뷰같은 경우에는 책을 읽다보니 좋은 문장이 워낙 많아서 인용을 많이 넣어야겠다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했고, 중간중간 읽으면서 괜찮은 문장의 쪽수를 휴대폰에 기록해뒀어요. 리뷰에 대한 강박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좀 있네요. 언젠가는 인용으로만 이루어진 리뷰를 써보는게 개인적인 소원입니다.^^;
아..그리고 이번 서평단에 뽑히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뭐 평소에도 워낙 글을 잘 쓰시니, 좋은 리뷰 잘 쓰실거예요. (저는 지금 하고 있지만) 서평단을 하신다니, 그래도 부럽네요~ 어떤 책을 추천하실지 기대해봅니다.

꽃도둑 2011-03-3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칭군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많네요...^^
맥거핀 님은 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편인것 같아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그래야겠지요. 자기화한 작업이(?) 느껴져요. 저는 이런 리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건지... 읽으면서도 기분 좋네요.

맥거핀 2011-03-30 18:17   좋아요 0 | URL
늘 과찬해주셔서, 그저 감사드린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더구나 항상 좋은 글 보여주시는 꽃도둑님의 칭찬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근데, 솔직히 아직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한고비(?)를 넘기니 만만치 않은 마지막 책들이 기다리고 있군요. 에고, 받기도 전에 걱정입니다.


cyrus 2011-03-3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그 낙오자 중의 1人입니다 ^^;; 다시 수학 공부하라면 못할거 같아요ㅋㅋ
하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이해하고 제대로 공부한다면,, 좋은 성적 나올거라고
스스로 자기위로해봅니다. ^^;;

맥거핀 2011-03-30 18:21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중간에 왜 그 행렬 나오잖아요. 근데, 도대체 이 행렬이 의미하는 바가 뭐더라..하고 한참 생각했어요. 그래도 간만에 책을 보면서 수학적 머리를 조금 썼더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옛날보다는 많이 맛이 갔지만, 아주 가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3년 동안에 배우는 수학의 범위랄까..그런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 공식같은 것에만 치우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구요. 다른 분이 리뷰에서 이 책을 고등학생들에게 읽혀도 괜찮겠다고 썼던데, 제 생각도 이런 책을 읽히는 것도 괜찮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정석책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사진, 강을 기억하다
강제욱 외 사진, 이미지프레시안 기획 / 아카이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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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장의 사진만 봐도, '아..이명박 XXX'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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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3-2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여기서의 XXX는 당연히(!) '대통령'입니다. 지도자의 호칭을 함부로 쓰지 않는 고래(古來)의 전통을 따랐을 뿐입니다.

네오 2011-03-29 21:45   좋아요 0 | URL
허걱 이런 깊은 뜻이~
주여~ 우리 위대하신 이명박 xxx 무슨행동을 하는지 (아호)예전에(譽前恚)이명박 xxx도 모릅니다^^

맥거핀 2011-03-30 01:19   좋아요 0 | URL
정말 우리 명박님은 XXX입니다. 본인 대에서 망가뜨리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앞으로 최소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은 영향을 줄 일들을 하고 있군요..참 맨날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한나라당인데, 우리는 앞으로 몇 년을 잃어버려야 할지..

네오 2011-03-30 08:22   좋아요 0 | URL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디 타큐멘타리 페스티발에서 <꿈의 공장>을 봤어요~
콜텍노동자들의 투쟁도 자기대에서 끝나지 않을거란 불길한 운명을 예언하시더라구여~ 버티는자가 이겨내는자라고 하지만은 몇 백년까지 간다면 흠~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 오만한 말이 용서될 수 있다면, 그의 평전을 읽고 도스또예프스끼에 드는 솔직한 감상은 '연민'이다. 물론 이 대작가의 삶에 내가 이러한 감상을 말한다는 것의 근저에 있는 여러가지를 모두 고려한다면, 이런 말은 웃기지도 않은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E. H. 카의 몇몇 문장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멈출 도리가 없다. "극단적인 쾌활함과 극단적인 침울, 익살맞은 허풍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자기 비하가 거듭되는 이러한 그의 정신적 증세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바보스러운 행위를 범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 행위의 근저를 눈치채고, 그 어리석은 행위와 거의 동시에 후회를 하게 되는, 그는 이런 불행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p.42)""도스또예프스끼의 비애는 자신이 자제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찬가지의 명석함을 가지고 그 원인도 분석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p.43)"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위의 문장들에서 보여지듯이, 일견 차가워보인다. 카는 도스또예프스끼와 시종일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에 대해 공정한 기술을 하기 위해 애쓴다. 여러 자료들은 조심스럽게 취사선택되고, 몇몇 의심스러운 자료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에 대한 반박이나 해명을 시도한다. 또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자료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을 인용하면서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아마도 이는 이 책의 어떤 야심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이 평전이 가지는 야심 또는 함의는 도스또예프스끼라는 한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것을 넘는다. 저자의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삶이라기보다는, 그의 문학에 담긴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스또예프스끼라는 한 개인의 문학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 카의 궁극적인 관심은 (영국인으로써)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 대변하는 '러시아적인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카는 러시아인들의 어떤 특질을 잘 나타내는 도스또예프스끼라는 한 개인의 삶과 그의 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러시아라는 세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나 그의 사상 못지않게,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나 당시의 어떤 분위기를 때로 필요 이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 그리고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은 카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즉 도스또예프스끼는 카에 있어서는 러시아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현미경이었고, 카는 그 현미경이 가지는 특징적인 왜곡에 휘둘리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평전의 약간은 독특한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제목들을 살펴보면 이 책이 가지는 어떤 특징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이 평전은 크게 네 개의 구분으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을 나누고 있다. 성장기, 격동기, 창조기, 결실기. 제목들에 드러나듯이 이것은 그의 문학을 염두에 둔 구분이다. 즉 성장기, 격동기, 창조기, 결실기라는 이 제목들은 그의 삶의 성장이나 어떤 힘들었던 부분이나 좋았던 부분을 염두에 둔 구분이 아니라, 그의 문학이 성숙되는 시기, 흔들리는 시기, 꽃피우는 시기, 그리고 가장 문학적 최고의 정점에 오른 시기의 구분이다. 일례로 성장기와 격동기를 가르는 구분을 들 수 있다. 그의 삶으로 보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집필하는 시기는 그의 삶의 격동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의 문학을 중심에 둔 구분으로 보면, 이는 그의 문학의 기반을 성장시켜 준 성장기에 해당한다. 그의 문학적 격동기는 (카의 구분대로라면) 시베리아 유형이 끝나고 저널리즘에 몰두하며 상대적으로 좋은 작품을 써내지 못했던 <죄와 벌> 집필 이전까지를 의미한다. 즉 이 네 가지의 챕터는 그의 삶의 흐름보다는 그의 문학의 어떤 흐름을 생각하도록 한다. 그의 문학적 삶은 초기의 급격한 문학적 성장에 뒤이어, 일종의 침체기를 겪다가 폭발적인 창조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그것의 최정점에서 그는 급작스럽게 운명을 다하였다. 이런 문학 중심적인 평전의 구조를 반영하듯이, 평전의 구성으로는 특이하게도 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그의 대표작 <죄와 벌>, <백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에 대해 각각 하나의 챕터를 할애하여 거의 평론에 가까운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이 평론은 한편으로는 너무 인물중심적인 비평으로 흐르고 있어, 온전한 비평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그 외의 챕터들도 어떤 시간의 흐름으로 나누어져 있기 보다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각각의 챕터들은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지만, 어떤 특정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으며, 그 중심적인 이미지들은 읽는 사람들에게 그 시기에 대한 특징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러므로 이 평전을 읽고나면, 도스또예프스끼 개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불안정하고도 복잡한 면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과 그에 따르는 일종의 연민 혹은 안타까움이라는 복잡한 인상을 가지게 되지만, 그의 문학과 그 기저에 깔린 것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윤리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는 <죄와 벌>에서 윤리의 이상, 정치를 다루는 <백치>, <악령>으로의 발전, 그리고 죄와 수난이라는 종교적 도그마를 담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까지 궁극적으로 이르는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의 사상적 흐름과 그것들에 공통적으로 깔린 '러시아적인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그 대표적인 것들이란 이 책에서 러시아적인 것으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러시아인들의 마음에는 하나의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 그것에서 나타날 어떤 실제적인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p. 228)""우리는 감정과 의견에는 관대하지만 행위에는 관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뒤늦게 회개하는 탕자의 방탕이 큰아들의 질투보다 왜 더 용서받을 만한 것이며 참회하는 한 사람의 죄인이 죄짓지 않은 99명의 존경받는 시민들보다 더 격려받고, 예수의 발 앞에 앉아 묵상하는 마리아가 식사를 차리는 마르따보다 더 사랑받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감정에 치중하고 행위에 냉담한 러시아인들은 그 이유를 이해하며, 미쉬낀은 바로 이 정신의 체현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의 규율에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p.253)"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에 깔린 이러한 러시아적인 것은 뚜르게네프나 똘스또이, 그리고 그가 초기에 영향을 받았던 고골에서 보여지는 러시아성과 다른 그만의 특징적인 것이다. 마지막 챕터 '에필로그'에서 카는 이러한 도스또예프스끼 문학만이 갖는 특질을 소설의 등장인물이 전형을 벗어나는 것, 부조리한 인간에 대한 묘사,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그러므로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천착, 그러면서도 거기에 내재된 신학적인 힘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전세대나 동시대 문학들의 특징을 뛰어넘는 것이며. 그 후의 전세계의 작가들에 크게 영향을 미친 요소이다. 카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뿌쉬낀의 생애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시기가 시작하고 있음을, 도스또예프스끼의 죽음은 그 시기가 끝나고 있음을 표지해 주었다.(p.374)" 즉 그는 기꺼이 한 시기를 닫았고, 새로운 시기의 기틀을 만들어주었다. 그 후의 많은 소설들에서 도스또예프스끼적인 인간은 빈번하게 등장하였고, 라스꼴리니꼬프 같은 인간, 혹은 이반 까라마조프 같은 인간은 일종의 원형이 되었다.

카는 마지막에 어떤 예언을 덧붙인다. 앞으로 백년 후(이 책의 출간년도는 1931년이다)가 되어서만이 그의 작품의 진정한 비중이 드러날 것이라는 점, 그리고 20세기 초의 논쟁으로부터 벗어난 후세대만이 그 예술의 전모를 생각할 것이라는 점. 이 예언은 맞을까. 20세기의 혼돈을 넘어, 21세기에 이른 지금, 우리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도스또예프스끼적인 세계를 맞고 있다. 그러나 카가 말한 바대로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전제는 받아들였지만, 그의 결론은 거부하였다(혹은 거부되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마지막에 러시아정교의 세계로 달려갔지만, 우리가 달려갈 곳은 없다. 거의 모든 종교는 해체되거나, 혹은 자체의 모순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고, 현대인은 내재된 분열과 이중성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견딘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 위안은 우리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을 일종의 심리적 치유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카의 예언은 이어진다. "현대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심리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를 도와준다기보다 오히려 훼방한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을 예술적으로는 부적절한 쪽으로 기울게 하고, 흔히 우리의 예술적 인식을 왜곡시킨다.(p.385)"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들을 새롭게 읽어봐야겠다. 분열을 견디며. 예술적으로 생각하도록 애쓰면서.

리뷰에 인용한 부분 외에 흥미를 끈 문장들.

   
  안티테제를 제거해 버리면 인간은 결코 완전한 진테제에 도달할 수 없다. 죄악감을 없애 버리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다. (p.307)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든다>라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한 인물은 말한다.(p.77)

그는, 그의 신관과 떨어진 그의 인간관이 불가피하게도 오늘날 함몰되고 있는 도덕적 무정부 상태, 불모성, 비관주의로 인간을 몰고 가게 된다는 것을 인정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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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3-2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또예프스끼의 이름은 그의 삶 만큼이나 꽤나 복잡하다. 시프트를 3번이나 눌러야 한다...그건 그렇고 이 책의 번역은 약간 미심쩍다. 어딘지모르게 종종 이상한 문장이 있다. 오타도 좀 있는 편이고...

꽃도둑 2011-03-2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게 쓰셨네요...아직 다 읽지 못한 저로서는 기한안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카가 쓴 평전을 읽어내기가 조금 까다롭더군요. 뭐랄까, 집중을 해서 읽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자꾸 문맥의 뜻을 놓치곤 했거든요.
그의 업적과 일생을 기리는 사실보다 거의 평론에 가까운 글쓰기여서 그런걸까요? 역사가다운!
잘 읽고 갑니다..^^

맥거핀 2011-03-26 21:14   좋아요 0 | URL
저는 <대칭>을 지금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해서, 기한 내에 리뷰를 올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뭐 꼭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러시아 사람들 이름이 너무 복잡해요. 읽다보면 자꾸 어지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참 안타까웠어요.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부양해야 하는 대목을 읽다보면 더 그렇구요. 카의 글쓰기는 전체적으로 싸늘해보이는 면도 있지만, 대작가에 대한 경의를 끝내 놓지 않는 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꽃도둑 님의 리뷰도 올라오면 읽으러 갈께요.

cyrus 2011-03-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죄와 벌><백치><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사실 소설 내용이 언급되는 부분의 내용을 읽는데 힘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책의 서술 자체도 딱딱한데 말이죠,, 리처드 에번스라는 사학자가 말하기를
E.H. 카가 연구한 역사적 주제가 독자들의 관심이 끌기에 충분한 흥미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자제는 무미건조하다고 평가할 정도죠.

그리고 맥거핀님의 말씀대로 인쇄상 실수로 인한 오타도 있었구요,, ^^;;

맥거핀 2011-03-29 01:42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하신 책들 중에서 딱 한 권만 봤습니다. 그것도 고딩 때. 그러니 지금 읽으면 그 때와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가지게 되겠지요.
카는 참 재미있는 문장들을 많이 쓰더군요. 문장 자체가 유머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의 아니게 느껴지는 유머랄까요. 즉, 본인은 전혀 웃길 의도가 없는데, 읽는 이는 쓴웃음을 짓게 하는 그런 문장들.
꽤나 딱딱할 줄 알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네오 2011-03-2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또예프스끼의 이름은 그의 삶 만큼이나 꽤나 복잡하다'라는 대목을 읽고 ㅋㅋ
성장기, 격동기, 창조기, 결실기의 네가지의 스텝이 있군여~ 전 그냥 계속 이분 생각하면 그냥 격동기만 생각나는데요ㅠㅠ 연민스러운 도스트예프스키의 삶은 그래도 지금은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부럽네요^^

맥거핀 2011-03-29 22:55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작가의 좋은(혹은 나쁜) 점이겠지요. 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남으니까요. 도스또예프스끼의 삶으로만 보면, 그의 삶이 격동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어요. 물론 그 격동의 상당 부분은 본인이 자초한 것이지만..

꽃도둑 2011-04-2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이달의 당선작이라....드뎌 결실을 보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맥거핀 2011-04-26 15: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 - Red Riding Hoo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작과 크게 관계없는 새로운 빨간망토 이야기. 추리물로써 나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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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1-03-2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과 다루군여~ 원작소설도 이미 출판되거 하며 이 영화 홍보 많이 하더라구여~

맥거핀 2011-03-29 22:56   좋아요 0 | URL
네..거의 하이틴 로맨스물입니다. 뭐 그래도 머리 비우고 보니까, 나름 재미는 있던데요. 캐서린 하드윅이 그래도 옛날 가락이 좀 남아 있는듯..

네오 2011-03-30 08:23   좋아요 0 | URL
캐서린 하드윅~ 배우인줄 알았다는 ㅠㅠ(검색해서 알았져ㅋㅋ)
<트와일라잇> 전 재미있게 봤어요~ 극장에서 본 건 아니구요(이런 영화가 있는줄 잘 몰라서요) 케이블 방송할때 봤어요~ 그다음 크리스틴 스튜어드 팬 됐습니다~ 모든게 착하잖아요^^

맥거핀 2011-03-30 18:23   좋아요 0 | URL
옛날에 홀리 헌터 나오는 13살의 어쩌구인가 하는 영화는 좋았어요. 지금은 거의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 전문 감독(?)이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