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XX - 2집 Coexist
The XX(더 엑스엑스) 노래 / 강앤뮤직 (Kang & Music)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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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2집 발매. 덜어내고 또 덜어내야만 완성되는 그들의 음악. 가벼워져야만 공존(coexist)할 수 있다. 1집보다 2% 더 덜어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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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김기덕, 2012

 

 

(전체적으로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부가 들어있습니다.)

 

  

 

화제의 중심에 올라있는 김기덕의 <피에타>를 보았다. 사실 그간 김기덕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김기덕의 예전작들을 보아온 관객이라면 무엇인가 약간은 낯설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어떤 가시적인 부분에서라기보다는 비가시적인 어떤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야기의 측면으로 봐서는 여러 평자들이 지적했듯 박찬욱이나 봉준호의 그림자를 언뜻언뜻 보게 되는데, 예를 들어 이 <피에타>의 이야기를, <마더>의 어머니가 <친절한 금자씨>의 공간으로 들어와 금자씨가 된다면, 혹은 <복수는 나의 것>의 공간으로 들어와 동진이 된다면 벌어질 일들을 김기덕 식으로 풀어낸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즉 김기덕의 이 이상한, 그러나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뜻 봉준호의 냄새나 박찬욱의 향취를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김기덕 고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박찬욱이나 봉준호의 영화에서는 우리는 종종 영화 바깥에 머물러 있다. 즉,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그 고통을 내부에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때로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되며, 그 증거 중의 하나로 우리는 그 영화의 위계와 구조를 분석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 김기덕의 영화는 관객을 가장 가까이에 데려다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며(물론 관객이 원할 경우에 한해서), 일단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때로 '불가해' 그 자체, 끔찍스러운 이물의 어떤 것으로 남았다(우리는 고래의 뱃속을 빠져나가야만 비로서 그곳이 고래의 뱃속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것이 뒤섞여 있다. 처음 관객을 압도하면서 시작했던 이 영화는 중간 부분에 이르러 그 전체의 구도를 보여주는 듯 하다가, 다시 관객을 몰아붙이며 끝낸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그 종교성을 드러내는데, 성모가 죽은 아들(예수)을 안고 있는 '피에타'라는 이 제목과 (그리고 포스터는) 어떤 종교적인 심상 몇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이 전체 이야기를 단테의 <신곡>에 느슨하게 빗대어 볼 수도 있는데, 처음 강도(이정진)의 악행은 <신곡>의 '지옥편'이다. <신곡>의 9층으로 이루어진 지옥, 그리고 청계천의 나뉘어진 수많은 지옥들. 이 지옥들에는 죄를 지은 자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죄'라고 명명되는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자들, 혹은 갚을 마음이 없는 자들'이 각각의 공간에 숨어 있다. 그리고 이 곳을 단테, 아니 강도가 차례로 방문한다. 그러나 물론 강도는 단테가 아니다. 강도의 악행은 그 이름대로 차라리 '강도'짓을 하는 게 더 나아보일 정도인데, 그는 이 지옥의 마지막에서 엄마(조민수)를 만나고 '연옥'으로 들어선다. 속죄자들이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단테의 <신곡> '연옥편'처럼 강도는 거부하던 엄마를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갑자기 존대말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급기야는 돈을 받아내는 일을 포기하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그럼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천국을 인도했던 것처럼, 강도에게 엄마가 속죄와 천국의 길을 인도할 것인가. 그러나 이야기는 새로운 측면으로 나아가고, 그는 연옥에서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지옥과 비슷하지만 다른 공간, 이번에는 누구나 그를 증오하는 지옥. 불에 타 죽어버려라, 제발, 이 인간백정아.

 

물론 성모마리아와 아들 예수를 표현한 '피에타'가 그렇듯이 <피에타>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아버지는 없었다. 아니 종종 있기도 했지만, 그건 아버지라기보다는 아버지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에 가까웠고, 그 아버지들은 종종 아들에게 잡혀먹혔다. 그래서 늘 어머니와 아들만 남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하나 특이한 점은 이 세계 역시 아버지들은 이미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세계라는 점이다. (아니 유일하게 직접적인 부자 관계가 나오기는 한다. 연필을 손에 든 소년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소년은 불구 아버지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 아버지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강도와 엄마, 엄마와 그녀의 죽은 아들, 그리고 또다른 늙은 엄마와 불구가 된 아들. 그럼 아버지들은 어디 갔을까. 극 중 한 아버지는 '보험금을 받는 게 복잡해진다'는 만류에도 옥상으로 올라가고(이렇게 표현하는 게 온당할까 싶다. 올라가는 아버지와 내려가는 강도를 잡는 이 씬은 인상적이다), 다른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자마자 아들을 위해 두 손을 기꺼이 잘라서 먹이려 한다. 그러므로 옥상으로, 혹은 프레스기계 밑으로 아버지를 밀어넣은 강도는 동정심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그곳으로 아버지 세대를 밀어넣는 것은 자신이 아니니까. 주의 영광, 할레루야 따위의 구호가 붙어 있는 이 청계천 공간 어디에도 주의 영광 같은 것은 없다. 아니 없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어디에도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누군가가 없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새건물을 지으려고, 이들에게 건물을 비워주고 나갈 것을 요구하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싸움이 어려워지는 것은, 그 적이 거대해지거나 더 무서워지기 때문이 아니다. 도대체 그 적이 누구인지 점점 알 수가 없게 되어가기 때문이다. 적이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누구와 싸워야한다는 말인가? 일주일만에 10배를 받아내려 하는 사채업자, 200원에 물건을 만들어내라는 전화 속 누군가, 그들이 적인가? 아니면, 그 10배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가해주는 그 누군가, 아니면 200원에 만들어낸 부속물들을 사가서 그것으로 더 반질반질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누군가, 그들이 적인가? 아니면 그들을 이렇게 만드는 소위 '시스템'이 적인가? 알 수가 없어진 세상.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이 온다. 다시 단테의 <신곡>. <신곡>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이끌려 마지막 천국을 본다. 그는 그 곳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새롭게 배운다. 즉 이 '사랑을 배운다'라는 것. 영화 <피에타>에서 강도는 뒤늦게 나타난 엄마에게 무엇인가, 그러니까 뭐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무엇인가를 배운다. 영화 속에서 엄마가 강도의 악행에 대해 변명하듯이 반복하는 말들이 있다. 그건 얘의 잘못이 아니예요.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일찍 이 아이를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즉, 강도의 악행은 어떤 근원적인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이 엄마의, 그리고 이 영화의 논리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풍선을 가지고 노는 강도의 천진난만함이나, 보다 더 근원적으로 마치 문명 자체를 배우지 못한 늑대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칠게 거의 생식에 가까운 육식을 하고, 닭을 직접 잡는 그의 모습. 왜 그는 손질된 닭을 사지 않는 것일까. 손질된 닭이라는 것을 판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농담이다.) 혹은, 엄마에게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라고 되묻는 모습일 수도 있다. 아무튼 간에 그래서 이 엄마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강도가 불쌍하다. 왜냐하면 무엇이 어찌되었건 간에, 이 강도에게는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그 누군가가 없었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시 어머니 성모와 아들 예수의 '피에타'. 그렇다면 우리는 강도를 죄를 대속하고 떠난 예수로 볼 수도 있을까. 예수와 강도의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어떤 것, 오로지 그것만을 알고 있던 존재였다는 점이다. 악마의 기원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자들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가르쳐준 자들. 그래서 선과 악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자들. 그러나 예수는 이의 반대편에서 하나만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이해되지 않는 말들, 예를 들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밀라는 식의 말을 한다. 그것은 너무 많이 아는 자들에게는 바보 같은 말일 뿐이다. 내 오른뺨을 1대 때리면 네 왼뺨을 10대 때리라고, 그것이 악마의 논리이다. (그러고보면 이 인물의 이름 '강도'도 심상치 않음이 사실이다. 예수 대신 풀렸던 자도 강도이고, 예수와 같이 못박혔던 자들도 강도였다.) 그래서 (물론 기독교식으로 볼 때) 유일하게 아는 사랑으로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같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강도가 유일하게 엄마에게 배운 것, 혹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바로 그것이 강도를 속죄의 길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마도 그 마지막의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줄일 것이다. 그것은 강도의 피가 아니니까. (예수의 마지막에 기적이 있었던 것처럼, 이 마지막에도 기적이 있다. 고속도로에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피의 선은 기적의 현장이다.) 그것은 아마도 강도에게 빼앗겼던 모든 사람의 피, 아니 보이지 않는 적과 계속 싸워야만 했던 사람들의 피니까. 김기덕이 늘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 참혹함을 기억해달라, 그 피를 기억해달라는 것. 그 피는 실제의 피니까. 실제의 청계천이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아직 나는 마지막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속죄로 볼 수 있을까. 솔직히 정말 잘 모르겠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늘 육체의 고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늘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게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자해를 하거나,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육체의 고통을 가하곤 했다. 그것이 정신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아니까. 이 마지막도 사실 그런 비슷한 것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복수가 완성되려면 이 마지막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는 아무 것도 몰라야 했고, 살아 있는 채로 더 고통스러워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여자의 차 밑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녀가 이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고 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더 큰 고통에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안다. (남자가 숨긴 것.) 영화 속에는 불길한 이미지들이 떠돌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은 그 공간들이다. 강도가 텅빈 눈으로 들여다보는 흐릿한 창 안쪽의 공간들. 강도가 올까봐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숨어 있는 그 이상한 작은 지옥들, 그리고 그 작은 지옥이 합쳐진 거대한 지옥 청계천이 있다. 강도가 사라졌어도 그 수많은 지옥과 지옥에서 만들어지는 증오들은 여전히 건재하고(그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죄많은 인간들의 죄를 모두 다 떠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지 2000년 가까이 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수많은 증오들로 가득하니까.) 김기덕은 기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했던 것은 예수의 부활과 샤방샤방한 천국이 아니라, 예수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흘리던 그 피였다. 그 피를 기억하라.

 

 

덧.

마지막으로 이 얘기는 덧붙이고 싶다. 김기덕의 영화에서 봉준호나 박찬욱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은 사실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단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김기덕이 봉준호나 박찬욱 식이 된다면 김기덕은 어디에 있지?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간 김기덕 영화를 둘러싸고 있던 불가해한 '무언가'가 이 영화에서는 한결 약해진 느낌이고, 그것은 어떤 장점을 드러내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동시에 그 '불가해함'에 가려져 있던 김기덕 영화의 단점들을 도드라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라면 거친 감정선 같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강도는 너무 빨리 엄마와 가까워지고,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식이 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교의 도마 위에 스스로 오르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즉 이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두 가지의 영화가 있다. 보는 이를 버티게 하는 영화와 버티게 하지 못하게 하는 영화. 김기덕의 예전 영화들과 <피에타>가 다른 점은 텐션을 끌어올리기는 하지만, 이 <피에타>는 결정적인 순간에 숨쉴 공간을 남겨놓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 숨쉴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려고 그간 김기덕의 영화를 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결국 김기덕 영화의 매력이었으니까. 인간은 불가해한 것에 대해서는 무서워하거나, 경외하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곧 관심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니까. 다음 영화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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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9-1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 누나가 피에타를 보시고 무슨 감상을 이야기하실지 기다리고 있음.

넙치 2012-09-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맥거핀님! 글 좋네요^^

맥거핀 2012-09-15 13: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넙치님 피에타 글도 잘 읽었습니다.^^

카스피 2012-09-1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영화 리뷰시네요^^

맥거핀 2012-09-15 13:18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용.^^

프레이야 2012-09-1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역시 맥거핀님^^ 다시 많은 걸 생각나게하네요.

맥거핀 2012-09-15 13:19   좋아요 0 | URL
요새 많은 영화가 그렇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영화인듯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꽃도둑 2012-09-15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도 많이 보지도 않지만 피에타 예고편 보고는 막 설레었어요.꼭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맥거핀님의 리뷰라니...너무 근사해요,,^^

맥거핀 2012-09-17 23:40   좋아요 0 | URL
아직 안 보셨으면 챙겨보세요. 김기덕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도, 그리고 싫어했던 관객이라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2012-09-16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잘 쓰셨다는..ㅋ 한 번 보고 이런 글이 써져요?! 여튼 영화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맥거핀 2012-09-17 23:43   좋아요 0 | URL
좋게 읽으셨다면 저야 기쁘구요. 좋은 영화는 늘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hining 2012-09-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인터넷 기사를 읽었는데, 피에타가 현재 관객수 30만명을 넘긴 것도, 손익분기점이 25만명이라는 것도 놀랍군요.

저도 마지막 말씀에 공감합니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의아했고 봉준호/박찬욱의 느낌이 들었어요. 딱 꼬집어 어디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옅은 기시감이... 단테의 <신곡>에 비유하는 부분이 정말 흥미롭군요.

...못됐어요, 이렇게 글을 잘 쓰면 다른 사람은 어쩌라는 겁니까!!
제가 피에타 리뷰 안 쓰는 건 맥거핀님 때문이에요(저도 배웠어요, 떠넘기는 게 진리ㅋㅋ)_-

맥거핀 2012-09-17 23:51   좋아요 0 | URL
관객수 얼마나 예상하세요? 언론에서는 <나쁜 남자>의 기록을 깰 수도 있다고 하던데. 나쁜 남자가 70만인가..라고 그러던데요, 저는 개봉관 사정이 좀 받춰준다면, 그 이상도 갈 수 있으리라고 봐요. (근데 '광해'가 개봉을 앞당기면서... 좀 양아치 짓을 하긴 했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보고 오긴 했습니다만, 영화 자체로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서 꽤 관객이 들겠다 싶기는 하더군요.)

근데 아무튼 김기덕은 봉준호나 박찬욱이 될 수는 없어요. 김기덕을 폄하해서 하는 발언도 아니고, 봉준호나 박찬욱을 낮게 보는 것도 아니구요. 김기덕은 봉준호나 박찬욱이 가질 수 없는 장점들이 있어요. 그걸 더 극대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근데 이미 좋은 리뷰를 쓰셨던데요.^^

Shining 2012-09-18 12:15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25만명이라는데 사실 좀 놀랐거든요; 근데 보니까 제작비는 1억 5천, 7억 여원이 마케팅비라고 하네요(역시나). 지금 분위기 타서.. 잘만 하면 70만명은 넘을것 같군요, 다만 일시적 관심일 가능성이 높아서 슬리퍼 무비가 되기엔 약간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광해 보셨군요. 이병헌도 광해군도 팩션도 관심이 없는데 이상하게 이 영화는 보고 싶더군요. 이야기는 뻔한데 독특한 아우라 같은게 있더군요.

그럼요, 김기덕이 봉준호나 박찬욱이 되서는 안 되죠. 저도 폄하의 의사는 없구요ㅎㅎ 반대로 봉준호나 박찬욱이 김기덕이 되는 것도 반대입니다.

하하하하. 무슨 말씀을. 맥거핀님 덕분에 알라딘에 더 이상 피에타 리뷰가 안 올라오는 거 아시죠?(근거없이 음해하는 중....)

덧) 그런데 <나쁜 남자> 관객수가 70만이에요? 이것도 쇼킹한데요_-

맥거핀 2012-09-19 00:57   좋아요 0 | URL
음..근데 사실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광해 외에는 그리 막강하다고 할만한 영화가 없어서 피에타로서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 같습니다. 저도 아무튼 피에타에 관객이 꽤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김기덕 감독이 의욕이 생겨서 계속 영화를 찍을 것 같으니..

광해는 뭐 볼만해요. 괜찮아요. 아무튼 이병헌 씨가 연기를 잘해요.

허허허. 서평단 책 리뷰도 써야하고, CINDI 기록 2도 써야하고, 몇 개 글감도 있는데, 다 귀찮아서 이러고 있네요. 그러니 음해 마세요. 허허허.^^
 

 

무인지대 (No Man's Zone), 후지와라 토시, 2011
동경공원 (Tokyo Koen), 아오야마 신지, 2011

 

 



영화는 거의 완전히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후쿠시마의 해변을 길고 느리게 패닝하며 시작한다. 거기에 애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시설물들, 그것은 거의 복구의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부러진 목재들과 콘크리트들, 여러가지 잡동사니들, 자동차들, 부러진 잔해들, 그리고...그 밑의 어딘가에 아직 있을지도 모를 시체들. 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은 좀 흥미로운 구조다. 화면은 재앙이 일어난 후 거의 텅빈 후쿠시마를 비추고 있지만, 화면의 현장음은 거의 배제되어 있고, 두 가지의 다른 음성이 깔린다. 하나는 감독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어 나레이션이다. 이 영화 <무인지대>의 감독 후지와라 토시는 할 말이 무척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심지어 이례적으로 영화 시작전 발언을 자청해 관객에게 이 영화를 '이런이런 식으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나레이션은 매우 직접적이고, 좀 많은 편이며, 더구나 중언부언하는 경향마저 있다. 다른 하나는 이 화면을 보는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보다보면 이 목소리는 감독이 찍은 이 영상을 뒤늦게 (대피소 같은 곳에서) 보고 있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것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의 발언은 "아..저기는 이게 있었는데..", "저것은 누구의 집이 있던 자리였는데.."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 중간에 (감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나레이션과 맞물려 어떤 효과를 낸다. 나레이션은 말한다. 이것을 어떤 '스펙터클', '파괴의 현장'으로 보지 말 것. 그보다는 그 파괴 전에 있었던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볼 것. 즉 우리는 재난을 대부분 어떤 거대한 파괴, 가공할만한 힘, 거대한 비극의 현장으로만 받아들인다. 아마도 후쿠시마의 해변을 패닝하는 첫 장면을 대부분의 관객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참 쓰나미란 무서운 거구나, 저런 엄청난 파괴를 불러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란 게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구나. 그런데 흥미롭게도 후쿠시마의 무인지대의 공간들에 주민들의 목소리를 오버랩해서 보여주던 감독은 다시 영화의 중반부, 그러니까 굳이 나누자면 1부가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처음의 그 패닝 장면을 붙인다. 이것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처음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중간에 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완벽한 파괴의 공간, 깡그리 사라져버린 듯한 무의 공간에서도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저긴 뭐가 있던 자리인데, 누군가가 살던 공간인데.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짧은 패닝의 과정에서, 그 엄청난 잔해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내게, 상상하게 된다. 저 자리는 뭐가 있었던 자리 같은데, 라고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2부로(영화 상에서 명확하게 1, 2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넘어가 이타야 같은 후쿠시마 주변지역, 다시 말해서 소거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어디에도 갈만한 곳이 없으며, 갑자기 자신의 생활터전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에 담겨 있는 질문은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직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들,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무대책한 주장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곳에서 만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곳에서 만난 한 어민은 그런 주장들이 대부분 말도 안되는 것임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정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조업을 금지했으나, 그 곳에서 불과 몇 백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물고기를 잡아도 된다고 허가했고, 이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당연히 우리의 입장에서도) 웃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닷물에 어떤 구획선이 그어져 있지 않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의 주장을 인간의 경우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후쿠시마는 사고 직후 출입이 제한되었고, 근방 몇 킬로미터의 주민들에게 모두 소거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 곳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타야 같은 곳에서는 살아도 된다? 이것은 산 자에게 물을 수도 있지만, 죽은 자에게 물을 수도 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후쿠시마는 사고 직후 출입이 통제되어 75일 만에 구조와 복구 활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혹시라도 운이 좋게 살아 있었을 어떤 사람들은 무려 75일 간이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아마 두 가지 정도를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후쿠시마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우리 자신의 능력에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와 같은 것에서 전적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전혀 콘트롤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의 대응은 거의 무대책에 가까웠고, 그것은 일본 정부가 유달리 무능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 사고에 대한 대응 자체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사고 이후에 이어질 일들도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인간이 정말 무서운 점은 그것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떤 일을 시작해버린다, 만들어버린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영화(필름)의 임무 중의 하나는 기록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이 있었던 일이라는 점을 후세의 누군가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레이션에도 나오지만, 거의 후쿠시마와 비견될 정도의 참혹한 재해들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것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즉 기록되지 않은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며 때로는 조작된다. 예를 들어 어쩌면 광주민주화운동이 실재했었다고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몇 개의 희미한 기록필름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록은 두 가지의 임무를 가진다. 하나는 그 기록된 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 기록되지 않은 나머지, 혹은 기록의 이면에 있는 것을 상상하게 할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되풀이되지 않게 할 것. 그것을 어떻게든 기록함으로써.

........................................

 

다음으로 본 영화는 기다렸던 아오야마 신지의 <동경공원>. 사실 솔직히 말해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은 평범하다는 인상이 짙었지만, 사실 아오야마 신지에 대해서 가지는 인상은 그의 <헬프리스>, <유레카>, <새드 배케이션>의 이른바 '가족 3부작'을 보고 가지게 된 것이 전부이고 그의 그 가족 3부작이 워낙 수작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흔한 일본식 청춘물의 외피를 두르고, 그 안의 과육을 보여줄듯 말듯 하다가 결국 안보여주고 끝나는 듯한 느낌인데 전체적으로는 느린 호흡으로 차분히 관조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제목에도 있는 '공원'이라는 공간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은 조금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공원이란 사실 현대의 도시 공간에서 거의 유일하게 출입자격을 묻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출입료를 받는 어떤 빌어먹을 공원들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공간들은 사실 제각각의 출입의 자격과 지위를 규정하고 있고, 때로는 물리적으로, 때로는 묵시적으로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공원은 거의 유일하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며, 따라서 누구나 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료한 할아버지들이 주로 드나드는 탑골공원이나, 실직자들이 공원에 가는 당연한 클리세를 떠올려보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원이 무질서의 공간이나, 아무런 규칙도 없는 곳은 아니다. 모든 공원에는 암묵적으로 따라야할 규정들이 있으며, 그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자유롭긴 하나 어느정도 제한된 자유만을 허한다.

아마도 이러한 공원과 같은 것이 하나의 비유로서 등장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영화 중간에 한 남자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마치 이 공원과 같은 사회가 되는 것이 아오야마 신지가 믿는 현대 사회가 지향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전작 <새드 배케이션>에 그려졌던 '마미야 월드'의 명맥을 잇는 것으로,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는 공간, 최소한도의 규칙만 지키면 서로를 보호하며 터치하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공원이자 사회의 모습이다. 즉 딱딱한 건물 안에만 있다가 넓은 공원에 가면 모두들 약간은 정신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처럼, 사회는 조금 더 말랑말랑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공원은 아니 사회는 그런 다양한 인물을 감싸 안아야만 한다. 영화 <동경공원>은 그런만큼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내는데, 여기에는 아내를 의심하는 의처증환자이자 치과의사, 바를 운영하는 게이, 모든 것을 영화로 비유하는 영화광, 서로를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는 의붓남매, 심지어는 죽었는데도 이승에 머물고 있는 유령마저 포함된다. 이들은 때로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힘들어하지만, 감독이 결국 이들 손에 쥐어주는 것은 작은 카메라 뿐이다.

즉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들, 이들을 넓은 공원에서 맨눈으로 넓게 보면 좋겠지만, 그렇게 도저히 할 수 없으면 작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 작은 사각의 창안에 담긴 피사체로 이들을 볼 것. 왜냐하면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가진 그 작은 사각의 창안에 담긴 피사체에는 애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드넓은 공원 속에서 모든 인물을 우리는 우리의 맨눈으로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인물들부터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할 것. 작은 카메라는 먼 곳을 찍으라고 발명된 물건이 아니다. 먼 곳에 초점을 맞추면 가까운 데는 흐려지게 마련.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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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9-1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도쿄공원]을 전에 봤는데요. 유령 너무 귀여웠어요. [유레카]를 만든 감독이란 건 몰랐고 여배우를 좋아해서 그냥 보기 시작했는데, 계속 공원에 있는 여자를 감시(?)하는 남자애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끈 것 같은데, 저 감독이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무인지대]라는 영화는 일본이 만들 수 있는 다큐영화를 짐작케하는 정점처럼 느껴지네요, 이 나라는(제가 일본영화광은 아니지만) 늘 무언가의 가해자 입장이 훨씬 강하다보니까 어떤 기록영화를 만들어도 타국의 관객 입장에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 듯한데, 저만 그런가요..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어떤 지점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는데 완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아요. 왜 일본 것만 두개예요, 기록 2탄도 있는 거겠죠? :)

맥거핀 2012-09-13 00:32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도쿄공원>은 너무 부드럽게 끝나버려서 약간 어리둥절했어요. 뭔가 좀 더 센 얘기를 기대했었던 모양. 여배우는 그 영화광으로 나온 배우 말인가요, 아님 그 남주 누나? 그 남주 누나로 나온 배우는 예전에 '춤추는 대수사선'보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얼굴봐서 반가웠어요.; 암튼 일본 영화는 뭔가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한국인이니 느끼는 거겠죠.

뭐 근데 아무튼 거대한 재난이 일본에서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분명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죠. 이 영화는 우리가 피해자다, 도와달라는 식이 아니라, 이 일을 기록해둔다, 하나의 본보기로 해둔다는 느낌이 강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요새 원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보면, 이렇게 큰 경고가 있는데도 재앙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는 모양. 위에도 썼지만, 재앙이 일어나면 이는 '대책' 따위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일인데도요.

2탄도 조만간 써야죠.:)
 

 

 

 

이것이 90년대 레트로~! 금요일 오후의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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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9-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가위!

Arch 2012-09-07 21:00   좋아요 0 | URL
금요일인데 저는 아직 회사에요. 내일 쉰다는 것만으로 무척 달뜨는 금요일이에요.

맥거핀 2012-09-08 23:51   좋아요 0 | URL
금요일인데 그렇게 늦게까지 잡아두는 회사는 참 안좋군요. 잘 쉬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며칠 전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는 날 이사를 했다. 오기로 했던 포장이사 업체에서는 늦었고, 예정했던 인원보다 사람이 덜 왔으며, 그래서 그랬는지 일을 대충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책짐에는 신경을 써달라고 얘기했으나 책의 상당부분이 물에 젖고 말았다. 며칠동안 책의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정리하자니 짜증도 나고, 포장이사 업체 사람들에게 (속으로) 욕도 퍼부었는데, 계속 정리하면서 주섬주섬 책을 읽다보니 다 부질없는 화처럼 느껴진다. 책으로 인해 화가 나고, 책으로 인해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은 가라앉았는데, 날씨는 여전히 흐릿하다. 날씨든 뭐든 흐릿한 날들이 지나야 맑은 날이 오는 법.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 서경식 / 반비

 

이 책은 그간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꾸준히 얘기해온 서경식 선생이 일제강점기 이후 재일 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책은 먼저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부터 정확히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에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어떤 편견들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문제, 친일과 극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득한 한일관계의 문제 외에도 조선족 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에도 다른 의미에서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서경식 선생의 책이라는 점에서도 닥추.

 

 

탐욕과 생존 - 영화, 분쟁을 말하다 / 김용성 / 책보세

 

영화는 작은 카메라로 오랫동안 거대한 것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 중 하나는 거대한 분쟁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많은 전쟁영화들은 전쟁 그 자체의 스펙타클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 전쟁의 특정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폭력에 맞서서 자신과 주위사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으로써 모든 전쟁을 다루는 영화, 분쟁을 다루는 영화는 (편파적인) 특정의 관점을 담기 마련인데, 각 영화에 담긴 특정의 관점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도 흥미로울 것 같다.

 

 

20세기의 매체철학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 심혜련 / 그린비

 

20세기는 또한 '매체'의 시대이기도 했다. 마셜 맥루한이 말했듯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종말하며, 20세기에는 온갖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였으며, 21세기는 그보다 인간에게 밀착된 다른 매체들이 출현을 대기중이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의 최소 50% 이상이 타인이나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손안의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때, 인간이 매체를 벗어날 수 있는가, 혹은 가상과 실재를 구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은 거의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곧 새로운 매체들의 공습이 시작될 이 때, 지나간 20세기의 매체들을 둘러싼 질문들을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올 우리의 고민들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영화 이론 - 1945~1995년의 영화 이론 / 프란체스코 카세티 / 한국문화사

 

사실 지난 50년 동안의 영화에 대한 이론들을 한 권에 몰아넣는 것은 무모한 시도에 가깝다. (그 앞과 뒤를 충분히 덜어냈는데도 그렇다.) 영화는 흔히 얘기하듯이 종합예술로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예술과 그 예술의 이론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중예술로서 철학이나 심리학, 사회학 등과도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더 무모한 시도는 이 책을 추천도서에 집어넣는 것일 것이다.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나무 / 이동혁 / 이비락

 

현대인의 삭막한 눈에는 사실 모든 나무가 그게 그걸로 보이기는 한다. 이 책은 사계절에 걸쳐 우리나라에 주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판과 함께 일별한 책이다. 저 멀리에 있는 자동차는 어디 회사의 몇년식인지 잘도 구분하고, 옷과 가방은 어디 메이커의 이월상품인지 아닌지도 잘도 찾아내면서 우리는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깝다. 이제 가을이니 나무도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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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토요일에 대구미술관에 하는 서경식씨의 강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맨 처음 소개된 서경식 씨의 신간이 반갑네요. ^^

맥거핀 2012-09-04 16:3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저도 서경식 씨 책이 나오면 늘 읽었었는데(예전에 cyrus님께도 한 권 받았었죠..^^), 강연에 참석해보면 좋겠네요. 이제 cyrus님 개학이시니 또 바빠지시겠어요.

2012-09-0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 씨의 글은 서늘해서 좋아요. (<소년의 눈물>하고 <나의 서양미술 순례> 두권만 읽어봤지만..)이제 영화 관련 책 막 추천하는군요.ㅎㅎ 여튼 추천 책의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요~.
그나저나 책을 적시다니, 그거 포장이사 변상 대상이 아닌가요? ㅠ.ㅜ

맥거핀 2012-09-06 00:06   좋아요 0 | URL
네..얼마 안남았으니까 그냥 이것저것 재지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 막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뭐 문제가 생겨도 참 보상받을려고 해도 귀찮은 일이라..다만 사람이 덜 온 부분은 확실한 계약 위반이라, 그 부분만 조금 돈을 적게 주는 걸로 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프레이야 2012-09-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태풍 온 날 이사하시게 됐군요. 일자가 정해져 있어 변경하기도 어려우셨을테고요.ㅠㅠ 책이 젖어 어째요.ㅠ 책을 제일 싫어하더라고요, 포장이사업체 사람들이요. 두 가지 책을 담아갑니다. ^^

맥거핀 2012-09-06 00:08   좋아요 0 | URL
이사라는 게 한 번 날짜가 정해지면 여러 가지가 걸려있어서 그냥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죠. 아마 이사업체 사람들로서도 비오는 날씨에 책도 많고 해서 여러모로 짜증이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러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죠.^^ (덕분에 재정리하면서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을 다시 챙기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실 만한 책이 있다니 좋군요.

Shining 2012-09-0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님 말씀에 공감. 책이 젖으면 보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음, 저는 그래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은데_- 책이 젖다니! 이건 재앙이잖아요!

눈이 오는 날 이사해본 적은 있는데 태풍이라니; 고생 많으셨습니다(꾸벅).

아, 맥거핀님. 저 영화책 좀 추천해주세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소개해주시는 마음으로 부탁드릴게요 :)

맥거핀 2012-09-06 00: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원래 일기예보에는 볼라벤이 지나가고 다음이라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태풍 하나가 따라올라 오더군요. 일이 뭐 안되려면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죠. 암튼 위로 감사합니다.^^

영화책은 뭐 저도 많이 모르기는 한데, 요 옆에 '마이리스트' 눌러보시면 예전에 '씨네21'에서 영화책 추천한 것을 제가 리스트로 만들어둔게 있어요. 거기에 책을 저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 같은 것은 필수적으로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책은 하스미 시게히코 외에 몇몇 사람들이 쓴 <나루세 미키오> 같은 것들 좋았구요. 이 책이 들어가 있는 '한나래 씨네마' 시리즈도 괜찮은데, 그 중에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는 정말 재미있고, 영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상당히 길러주는 책이라고 봅니다. 정말 기존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구요..(근데 문제는 이 책이 절판이고, 상당히 구하기 어렵다는 점..저도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최근에 봤던 책으로는 <필름메이커의 눈> 같은 책들이 여러 촬영기법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맥스무비에서인가 나온 씨네마톡 모아놓은 책도 재미있었고요. 근데 뭐 이미 이 책들 거의 보시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제가 괜히 쓸데없이 긴 말 늘어놓지 않았나 싶네요. 추천이라기 보다는 그냥 제가 재미있게 읽었다, 그 얘깁니다.^^;

Shining 2012-09-06 11: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를 과대평가 하고 계시군요(후후후후후). 말씀하신 책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자랑은 아닌데...) 영화책은 예전에만 좀 읽은데다 요새는 거의 특정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책만 읽은 것 같습니다. 마이리스트에 목록은 전에 본 적 있습니다. 말씀 안 드리고 몰래 컨닝했어요*-_-*

제가 다니는 도서관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예술분야 책이 너무 적어요. 수요가 없어서 공급도 없는 식인데 뭐, 수요가 없으니 책 상태만은 엄청 좋지만요^^

추천, 이라는 말은 좀 막연하고 짜증스러운 표현이라 사실 쓰고 좀 갸우뚱했는데(소심합니다 저) 좋았던 거, 골라주시니 좋군요. 또 생각나는 거 있음 말씀해주세요 :)

맥거핀 2012-09-06 22:00   좋아요 0 | URL
아..저는 이사오기 전에는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는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 살았었는데, 이사오고 난 후에는 상당히 도서관이 멀어서, 예전처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네요. 근데 서울의 큰 도서관의 책들은 대체로 상태가 그다지 좋지가 않아요. 말씀드렸던 <히치콕과의 대화> 그 책도, 특정 영화에 대한 부분이 다 누가 뜯어갔더군요.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책이 없으니, 생각나면 또 말씀드릴께요. 근데 사실 영화에 대해서는 고전에 대한 글들도 좋지만, 최신 영화잡지 같은 것에 실린 따끈따끈한 글들을 죽 읽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기는 해요. 시간나시면 도서관 잡지 코너에서 <씨네21>이나 <무비위크>, 혹은 <영화평론>의 평론글들만 죽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키노>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아..매년 나오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시리즈도 있어요.^^;) 소설도 단행본으로 나온 것보다 계간지에 실린 소설들 중에 진짜 좋은 것들 많지 않나요..

아이리시스 2012-09-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 저도 저거랑 저거..저는 그냥 제가 사서.. 서경식..맨날 들었다놨다 하다가 이젠 좀 읽어보려고요. 근데 이번 책은 시작하기에 뭔가 심하게 학술적인데.. 제가 하는 게 다 그렇죠 뭐.

p.s. 조만간 두 분 영화평론 등단하는 겁니까? (좋겠다 좋겠다)
그러면 저도 마이리스트 훔쳐보러-_-;;

맥거핀 2012-09-06 22:26   좋아요 0 | URL
열심히 훔쳐보고 계심? (저는 아니고, 아무래도 Shining님이 등단욕심이 있으신 모양...;;)

근데 서경식 선생님 책 저거는 제목만 저렇지 그렇게 학술적이지는 않을거에요. 아마도. 어렵고 무거운 얘기를 상당히 쉽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라,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

Shining 2012-09-07 01:16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아이님, 맥거핀님이 은근슬쩍 저한테 떠넘기고 계세요~(이른다ㅋ)

등단욕심, 가당치도 않으십니다-_ㅠ 필름 2.0폐간 후엔 가끔씩 씨네21만 읽는데 (이상하게) 성에 차진 않아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이 시리즈 재밌죠ㅋ 저도 도서관서 몰아서 읽었어요 :)

키노, 진짜 그리운 이름이네요.

맥거핀 2012-09-07 03:00   좋아요 0 | URL
네..자고로 뭐든지 일단 떠넘기는 게 진리라고, 어떤 직장선배가 몰래 가르쳐줘서 열심히 실천중입니다..; (물론 가르치면서 그가 나에게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기'라는 걸 떠넘기기는 했습니다만..)

뭐 사실 씨네21은 요새는 거의 문화잡지 비스무리하게 되버려서, 영화에 대한 좋은 글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전영객잔은 그래도 쓸만해요. 김혜리 씨나 정한석 씨 글도 좋고..저는 사실 이상하게 필름 2.0에는 그다지 정을 못 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