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딜로,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2012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가 들어있음)

 

 

이 영화 <아르마딜로>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최전선 아르마딜로 캠프에 가게된 덴마크 병사들의 6개월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의 출국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귀국으로 끝을 맺는데, 캠프에서 이 덴마크 병사들을 위협하는 것은 주민 속에 섞여 게릴라전을 행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이다. 처음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훈련과 정찰 속에 무료함만을 느끼던 그들에게 곧 몇 차례의 적과의 조우가 이어지고, 급기야는 적이 설치한 IED(급조폭발물)에 의해 동료들 몇이 부상과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료함과 지루함만이 가득했던 그들의 내부를 적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가 대신 채우게 되고, 그런 감정 속에서 그들은 다시 적과 일전을 벌이고 적을 격퇴하고 돌아오게 된다... 줄거리만 보게 되면 언뜻 극영화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의 형식만을 빌린 극영화가 아니고, 그렇다고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실제의 인물과 실제의 전쟁이 등장하는 완전한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영화는 보는내내 혹시 극영화가 아닌가,라는 기이한 착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음악이다. 이 영화는 거의 시종일관 내내 음악과 음향효과들이 가미되어 있다. 보통 상당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음악의 사용을 대체로 자제하는 반면, 이 영화는 일부의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배경음악 및 음향효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인 이 음악과 음향효과들은 영화의 내내 관객의 정서를 흔드는 효과를 낳는다. 즉 이 음악과 음향들로 인해, 우리는 이 장면의 정서적 분위기를 미리 습득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즐겨 사용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트리거는 대체로 주인공의 이별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며,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튀어나오는 귀신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발생하는 음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서는 영화의 스토리를 우리가 특정의 방향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관객의 정서를 특정의 관점으로 밀어붙이는 음악은 이른바 적극적 구축의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사용되는 방식이기는 하나, 이것은 보통의 다큐들에 비해 상당히 과도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하나는 인물의 곁에서 매우 근접하여 찍는 카메라이다. 영화 내내 우리는 인물들을 상당히 가까이에서 만나며, 그들의 대화를 매우 가까이에서 듣는다. 상당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인물과 약간의 거리를 두며, 그들을 관찰하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에 이 카메라는 인물의 가까이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으며, 우리가 마치 그들의 일부가 되어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듯한 착각을 전해준다. 이것은 정찰이나 전투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병사들이 총을 들고 뛸 때, 카메라도 그들을 따라서 같이 흔들리며 뛰고, 인물들이 총알을 피해 재빨리 엎드릴 때, 카메라도 급히 땅으로 처박힌다. 또 병사들이 갑작스런 적의 출현으로 혼란에 빠질 때, 카메라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즉 우리는 멀리서 그들의 전투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병사들의 일원으로 실제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막 하나는 이 화면의 구성방식이다. 영화 내내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의 다큐멘터리의 일반적인 샷, 그러니까 화면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 형식의 장면이 거의 없다.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그런 장면은 중간에 전투에서 부상당해 병원에 있는 병사의 인터뷰 딱 한 번이었는데, 나머지 장면들은 누군가와 이루어지는 대화들이거나, 전투 장면, 정찰 장면, 브리핑 장면들이다. 영화에 절대 등장할 수 없는 화면 바깥 속의 누군가(예를 들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보통의 극영화에서 당연히 배제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이 장면들의 구성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극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이 서사의 구조 방식이다. 이 서사는 전형적인 극영화의 구조 방식이다.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 혹은 새로운 도전으로 파병에 지원하는 병사들(발단)-처음에는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나, 점점 몇 가지의 사건들로 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키워가는 병사들(전개)-IED에 의한 공격으로 아군 병사들이 사망하고, 극도의 분노 속에서 이어진 적과의 전투에서 적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병사들(절정)-처음에는 자신의 행동들을 영웅시하며 합리화하려 하지만, 왠지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병사들(결말). 이러한 이야기들은 상당수의 전쟁영화들에서도 몇차례 활용되었던 서사 구조이며, 뭔가 극적으로 짜여졌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누군가는 이것은 그렇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키고, 포함시키지 않을 것인가는 당연히 감독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물론 거기에 어떤 류의 음악을 붙일지 역시 감독의 선택이다. 자 한 가지 이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예를 들어보자. 어떤 감독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 대한 다큐를 만들기로 한다. 그는 24시간 내내 당신을 촬영했지만, 영화를 보니 모든 장면은 당신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 뿐이며, 영화의 마지막은 조용히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드는 당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 "수다스러운 OO씨의 하루" 아마도 당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 시끄러운 인간은 잠잘 때가 유일하게 조용할 때구만." 자 이 영화를 본 당신은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이 영화 <아르마딜로>라면 이런 것이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 들어가기 전 적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병사의 모습이 나온다. 이 결정적인 전투의 직전 이렇게 생각하는 병사만 있었을까. 왜 이 장면이 굳이 결정적 전투의 전에 선택되어 이 위치에 들어가 있는가.)

 

 

물론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조작을 했다거나, 어떤 편향된 시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이 전체 이야기를 어떤 서사적인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수적으로 어떤 효과를 낳고 있지 않은가 묻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몇몇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장면 하나. 노트북을 연결하여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두 병사.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은 게임화면 외에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병사들의 시선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캐릭터를 총으로 죽이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듯한 병사의 모습. 그리고 다시 (게임 내에서) 총으로 받아치는 상대방 병사와 그의 시선. 이에 (총보다 더 큰) 소형무기로 더 크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트북 화면이 실제의 전투를 위해 조명탄을 발사하는 화면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이렇게 읽힐 수도 있다. 이 하나의 컴퓨터 게임 안에서의 도발과 그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더 큰 대응은 이들의 전투에서의 앞으로의 대처를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즉 그런 스토리를 관객들이 마음 속으로 스스로 만들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장면 둘. 덴마크 공항으로 귀환하는 병사들과 가족을 다시 만나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한 병사의 샤워 장면.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는 병사의 모습을 비춰주며 서정적인 음악이 흐른다. 이 장면에서 병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부상당해 도망갈 수 없는 적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어떤 죄책감일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이 병사는 샤워를 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손으로 얼굴을 씻는(가리는) 병사의 모습과 서정적인 음악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장면이 이 마지막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서사화가 낳는 부수적인 효과는 결국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감정과 그것을 보는 관객의 감정을 처음에 어느 정도 일치시켜 놓고 출발한다. 아르마딜로 캠프에 도착하여 반복된 훈련과 정찰 속에서 무료하게 지내는 이들 병사들은 어떤 재미있는 것(그러니까 적과의 전투)을 기다리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관객들 역시 이런 무료한 장면을 보러 이 영화관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즉 어떤 충격적인 것을 기다리는 이들과 관객들은 어느 정도 공유된 감정을 가진다. 그러던 이들과 관객의 감정이 벌어지는 것은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이후이다. 이들은 복수심에 불타 전투중 부상당한 탈레반들을 살해하며(이것은 좀 모호한 지점이다. 그 탈레반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였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들만이 알 것이다), 전투 후 브리핑 중에도 "최대한 인도적으로 처리했다"며 낄낄댄다. 이후 내부고발에 의한 감사가 이어지지만, 이들은 외부인의 시선(그러니까 아마도 관객의 시선)으로 볼 때는 자신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자신들은 해야만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떳떳하다고 항변한다. 이런 항변을 하는 이들을 보는 우리의 심리는 어떨까. 우리는 이들에게 동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서사화에 의해 최소한 이들의 행동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서사화의 최소의 목적은 결국 주인공의 행동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본 서사를 통하여, 우리는 주인공을 응원하거나, 최소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성공한 서사라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실패한 서사가 아닌 이야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든다.

 

물론 이것은 부수적인 효과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가장 중심된 효과는 외부인들인 우리가 느끼게 되는 전쟁(전투)에 대한 어떤 잔상들일 것이다. 그것은 물론 많은 전쟁영화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쟁영화들과 이 영화가 분명히 갈라지는 지점은 있다. 그것은 이 영화는 실제의 죽음을 보여준다는 것. 일반적인 전쟁을 다룬 극영화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적을 죽일 때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 중의 하나는 일종의 쾌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에서 (가상의 죽음이 아닌) 실제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시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이 시체들을 바라보며 적어도 쾌감은 느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

 

 

 

덧.

어떤 분은 리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고 상영을 허가한 덴마크 정부가 대단하다고 하셨던데, 나는 대단하다기보다는 상당히 영리하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전쟁(전투)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비인도적인 행위를 포함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도, 적어도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를 외부인의 시각으로만 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이에 반해 아직도 (국방홍보물 등에서) 적과 우리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하는 우리 정부는 얼마나 멍청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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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1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 이야기란 아무리 해도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국가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갔다고 해도 싸움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한다는 점에서, 결국 살상의 참극이 벌어져서 가해자가 된다 해도 그들 또한 다른 한 편으로 피해자니까요. 자기가 아니라도 어차피 누군가 한쪽이 한쪽을 죽였다는 점에서. 아 진짜 게임 같아요. 하나가 죽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동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얘기했는데 군대에서 그렇긴 하죠. 적은 북한. 미국이라고 답한 애 바보된다고. 일단은 북한이 도발을 많이 하긴 하니까 맞긴 맞지만 조직적으로 그렇게 가르친다는 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멍청해요. 지금은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통하는 세상도 아니고..

특별히 수작이라고 포스터에 박아논 이유가 있을까요? 스크린으로 하는 전쟁체험인가..

맥거핀 2012-05-14 15:4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이 리뷰 쓴다음에 다른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저랑 보는 시각이 꽤 다른 리뷰들이 많아서 어..내가 뭔가 잘못봤나..이러고 있었어요. 아무튼 전쟁이란 건, 그리고 거기에 나가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라는 것은 겉으로 보는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어떤 지나친 행동에 대해서 윤리적인 비난을 하는 것만이 맞는가,라는 생각도 했구요. 그니까 도리어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만큼 이들의 임무수행 과정을 잘 드러내보임으로써 이들을 그 비판에서 구하고 있기도 하다는 거죠.

우리는 무조건 선이고, 저기 나쁜 넘들이 있고, 그 넘들을 무조건 처단해야 하고...이런 식은 이제 앞으로 점점 더 먹히지 않지 않을까..생각이 됩니다. 뭐 하나를 만들더라도 이렇게 좀 더 세련되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스크린으로 하는 전쟁체험이라고 하셨는데, 그 표현이 꽤 정확해요. 최고의 수작이란건 오버지만, 다큐 부분에서 세계적으로 약간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인 것은 사실입니다. (뭐 그래도 저런식의 카피는 촌스럽네요.^^)

Shining 2012-05-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쿡티비에서 동시상영하던데요+_+

재밌네요. 사실을 택한 것이 리얼리즘인가, 사실을 비추는 것이 리얼리즘인가,는 불멸의 논쟁거리인 것 같아요. 저는 무지막지하게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늘 야비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어요. 지독하게 사실적인 사진들도. 이상하죠, 잘 만든 극영화는 어떤 쾌감을 주는데 말이죠_-?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화제에서 저의 추천작은 없습니다ㅠ 흑ㅠ 빈센트 미넬리의 작품이 재밌긴 했지만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흥미롭다는 평이기에 추천해드리긴..8편의 영화를 보고도 추천작이 없다니 안타까워요;

맥거핀 2012-05-18 01:31   좋아요 0 | URL
조금은 다른 맥락이기도 합니다만, 저번에 얘기하신 허문영 평론가의 책에 나온 지아장커가 했다던 이야기가 있죠. 구축(making)의 다큐멘터리와 기다림(wating)의 다큐멘터리..저는 이 영화는 명백하게 구축에 가깝다고 봅니다만, 마치 기다림의 다큐멘터리처럼 교묘하게 위장을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조금은 갸우뚱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도 여러 평들을 보면 건조한 영화,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라는 평들이 꽤 있거든요. 근데 저는 도리어 글에도 썼지만,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그것이 너무 세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그 견해는 재미있네요. 잘만든 다큐멘터리는 야비하다...감독이 특정의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에 느껴지는 거부감? 뭐 그런건가요?^^

아..추천작이 없다는 건 저 또한 심히 안타깝군요. 하긴 요새 같으면 추천작이 있어도 못볼 형편이긴 합니다만...

Shining 2012-05-18 11:46   좋아요 0 | URL
전쟁을 근거하는, 그것도 다큐멘터리가 드라마틱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_+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맥거핀님의 말씀이 어쩐지 이해가 됩니다.

좀 더 어릴 적 혹은 젊을적에(웃음)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다는 친구에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좋은 소재를 찾아내는 거 아니냐? 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궁금했거든요. 수잔 손택을 비롯, 사진에 대한 글을 읽은 상태에서도 다큐멘터리와 사진을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좋은(혹은 드라마틱하거나 논쟁거리가 될 만한) 소재를 찾는 것과 그것을 배열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큰 의미인지 아직도 확신은 못하겠어요. 다만 특정 장면을 삭제하거나 더하거나, 그것만으로도 분명히 감독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관객으로 나는 가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니까. 어쩐지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뭐랄까, 사실이 진실은 아닌데 말이죠.

속았나? 와 속았다. 중 어떤 것을 택할지 망설일 때마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비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라는 뜻인데 말이 왜 이리 길어졌죠ㅠ

맥거핀 2012-05-19 12:54   좋아요 0 | URL
물론 좋은 소재를 찾아서 그것에서 (언젠가) 나오게 되는 좋은 영상을 오랫동안 기다려서 만드는 것도 좋은 다큐멘터리의 미덕이겠지요. 근데 요즘에는 평범한 소재를 조금더 적극적으로 가공하여 새로운 관점을 보는 이에게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아장커의 영향인가..라는 생각도 있구요. 예를 들어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이나, 이강현 감독의 <보라>같은 것도 그런면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나 관객을 속이는 것, 어떤 관점으로 유도하는 것은 같은데 저 같아도 다큐멘터리는 조금 더 '관점'이 아니라, 사실, 혹은 진실을 담아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생활에서도 여전히 그렇지만, 수많은 관점들 중에서 비교적 진실에 가까운 것을 가려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맥거핀 2012-05-18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 커쇼의 <히틀러>가 오늘만 반값세일이라는 메일을 보고, 어쩔까하고 며칠만에 알라딘에 들어와서 여러이웃님들 글을 70%의 집중도를 가지고 읽으며, 계속 나머지 30%로는 고민중인데, 시간은 어느덧 한시간 반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살까, 말까...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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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안 쓴지 너무 오래되었다. 뭐 안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같이 뇌가 손 끝에 달린 인간은 쓰는 과정을 중단하면, 생각하는 과정도 중단해버리고 만다. 예전에 리뷰를 남길 때에는 책을 한 권 읽게 되면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고는 했었는데, 요즘에는 어떤 책을 보더라도,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뭐..괜찮네, 이걸로 끝내버리고 만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 파트도 내친 알라딘에 영화에 대한 뻘글들만 계속 올리다보니 그것도 영 민망하다. 명색이 도서 이야기를 하는 곳인데, 계속 이렇게 영화 얘기만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나름 큰마음 먹고 서평단을 해보기로 했다. 누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했던가. 나같은 인간은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으면 영 하려는 의지가 없는 인간이다(이른바 군대형 인간). 예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규칙을 보니 한번만 안써도 바로 탈락이니 뭐 어쨌든 쓰게(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서평단에도 '나는 가수다' 방식을 도입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매주 가장 잘 쓴 리뷰와 가장 못 쓴 리뷰 각각 한 명씩 투표를 거쳐 탈락. 그럼 어떤 글들이 살아남게 될까. 아이고, 여기에서까지 이런 생각이니 나도 참..문제 있다.) 뭐 그래도 안쓰게 되면 깨끗이 그만둬야겠지.

그래서 강제적으로 쓰는 이 달의 인문/사회/과학/예술 추천도서. 분야가 늘어나니 선택이 영 쉽지가 않다.

 

 
1,2,3 그리고 무한 / 조지 가모브 / 김영사

전체적인 내용을 보니 숫자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공간과 시간을 거쳐 미시우주(원자와 원자핵), 거시우주에까지 나아간다. 이런 류의 도서는 늘 "과연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도서인가"를 판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부분적으로 살짝 읽어보니 차분히 독자를 이해시키려는 저자의 솜씨를 어느 정도 믿어도 될 것 같다.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 강신주 / 천년의상상

우리는 그를 저항정신의 시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김수영을 시인 김수영으로서가 아니라, 1950-60년대 독재에 맞서, '불온'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세운 인물의 하나로서 기억하려는 시도다. 지금도 많은 김수영의 후예들이 오른손에는 인문서를 왼손에는 촛불을 든 이 때, 한번쯤 읽어보아도 괜찮을 듯 싶다.

 

 

로저 에버트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 / 로저 에버트 / 연암서가

로저 에버트는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써왔으며, 그 글들은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어려운 영화를 어렵게 이야기하는 글들은 많았지만, 로저 에버트처럼 어려운 영화를 쉽게 이야기하는 글들은 드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회고록을 내놓았다. 회고록이란 무릇 마지막에 가까워서야 나오는 것.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의 해고와 더불어 그의 회고록 출간은 영화평론을 둘러싼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동시에 그의 회고록을 읽는 것은 동시대의 미국영화들, 할리우드를 읽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은 원래 이렇게 생겨야 하나보다.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의 모 평론가와 너무 닮아보여 깜놀.)

 


가장 최근의 미국사 1980-2011 / 딘 베이커 / 시대의창

FTA나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광우병과 관련한 논란들을 보아도 그렇지만, 우리는 싫든 좋든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딘 베이커가 쓴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80년은 미국에 있어서 민주당의 조지 카터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하고, 급격한 경제적 보수화가 시작된 상징적인 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보수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 많은 부분에서 미국에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흥미롭고도 필요한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수학의 몽상 / 이진경 / 휴머니스트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대학에 막 들어갔던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이진경의 책들은 또다른 의미에서 신입생들의 필독서였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생일날 허세담긴 이야기를 안쪽 표지에 적어 건네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김용호의 <영상화두 와우!>와 더불어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라는 책을 읽고 영화라는 매체의 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이진경의 이 책은 2008년에 재출간되었는데, 7편이 10편이 되었다). 그런 이진경이 이번에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니 신입생이 된 기분으로 새롭게 읽어보고 싶다.

 

 

 

* 생각해보니 4월 신간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제목을 바꿔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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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맥거핀님 신간평가단 신청하셨구나.
의왼걸요. 맥거핀님은 영화 리뷰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ㅎㅎ

맥거핀 2012-05-04 12:48   좋아요 0 | URL
네..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서평단을 신청......한 건 아니구요.^^ 신간을 보는 즐거움+책에 대해 생각해보기+글쓰기 연습...등등등 입니다. 그냥 편한맘 먹고 편하게 써야죠.

ICE-9 2012-05-04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페이퍼 쓰려 들어왔다가 제 것은 안 쓰고 남들은 어떻게 쓰고 있나 돌아다니며 보고 있는데 맥거핀님의 추천 페이퍼가 눈에 띄길래 들어왔습니다.^ ^ 그런데 짐 호버만이 빌리지보이스에서 해고당했나요? 정말 놀라운 사건이네요. 정말 한 때는 열심히 찾아서 읽던 평론가였는데... 이번에 나온 로저 애버트 회고록은 이미 읽어보았는데 정말 좋더군요. 평론 쓸 때 부터 알긴 했지만 에버트가 정말 글을 잘 쓰더군요. 감독들의 뒷 얘기 듣는 재미도 있고 러스 메이어, 같이 two thumbs up을 만들어낸 진 스켈스의 삶도 알게되고... 아무튼 일부러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회고록이었습니다. 저는 '와우'에서는 별 감흥을 못 느꼈고 이진경씨의 '블레이드 러너' 분석에서 영화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크게 깨닫게 되었는데 맥거핀님 글에서 다시 그 책 이름을 보니 반갑네요. 이런 반가운 이름들이 여럿 달려 있어서 이렇게 댓글까지 달게 되나 봅니다.^ ^

맥거핀 2012-05-04 12:57   좋아요 0 | URL
저는 이진경 씨 그 책에서 기억나는 건, '토탈리콜'에 대한 글이었어요. 반은 대강 이해하고, 거의 반은 무슨 소린지 잘 이해를 못했는데, 영화를 여러번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토탈리콜'은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잘 기억하죠. 이번에 리메이크가 나왔던데..어떨지..)

네..그리고 짐 호버만씨는 올해 해고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봐야겠지요. 영화비평에 대한 지면들은 점점 축소되고있고, 점점 심각한 얘기는 별로 원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영화비평이라는 것도 세대의 영향을 받으며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겠구요. 새로운 영화들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글들을 쓰는 비평가들이 그 뒤를 이어 나타나겠죠. 회고록이란 것이 상당수 좀 위험한 편이라, 로저 에버트 책을 이 리스트에 올릴까 말까 고민했는데, 헤르메스님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하시니 힘이 되는군요.^^

(아..그리고 이번에 소설파트 파트장이시더군요. 감투 축하드립니다.^^)

2012-05-04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야가 많으니 신간 머 있나 살피는 것만도 일이겠어요..
로저 에버트 회고록이라니, 탐납니다. (맥거핀님다운 추천이기도 하고요.ㅎ) 저도 대학 시절에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진짜 재밌게 읽었었는데, 모두에게 추억의 책이군요. 김수영 책은 이미 사버렸습니다.ㅠ 오늘 온다는군요. 요즘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살았는데, 이거 다(서평단 책 + 김수영 책 etc.)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맥거핀 2012-05-04 13:01   좋아요 0 | URL
추천을 하기는 했지만, 선정될 가능성은 아마도 0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요. 뭐 안되면 돈내고 사봐야죠. 이번에 예술파트도 이 분야에 포함되었으니 영화에 대한 책들도 가끔 똘끼를 부려 넣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요즘에 밤이 점점 짦아져, 책을 읽으실만한 시간이 충분하실까 모르겠습니다. 쉬엄쉬엄 보셔요.^^

반딧불이 2012-05-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서평단 하신다니..반가워요. 그리고 뇌가 손끝에 달린 인간...여기 하나 더 있어요. 위안으로 삼으셔요^.^

맥거핀 2012-05-04 13:03   좋아요 0 | URL
그래요? 흐흐..반갑습니다. 쓰면서 생각하는건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그죠? 책을 많이 읽으면 좀 나아지겠죠.^^

Shining 2012-05-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님의 독서 리뷰를 만날 수 있다니, 알라딘 영화 서비스가 사라져서 이런 장점(!)도
생기네요, 후후^^ 서평단을 하면 일단 한 달에 두 편씩은 쓰게 되서 좋아요. 그런데 제가
읽고 싶지 않은 책이 너무 자주 선정되거나 책이 예상보다 별로면 무슨 말을 써야할지,
비판을 해도 되는지 막 머리가 복잡해져요; 전 그랬었어요^^;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라는 책을 갖고 있어요, 두 권짜리인데 예전에 필름2.0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지금도 가끔 읽습니다. 영화에 대한 글은 (어쩌면 당연하게)
영화를 봐야 재밌기에 그의 글을 읽으면서 볼 영화를 많이 고르기도 했어요ㅎㅎ

90년대 후반에 대학.. 알아야 하는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아닌데 가끔 이런 표현들을
온라인에서 만나면 저도 모르게 휘리릭..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계산해보는 저는 속물일까요?-_- 아니면 인간의 뜻모를 본능일까요?

맥거핀 2012-05-04 13:11   좋아요 0 | URL
뭐 그냥 편하게 가는거죠. 좋으면 찬양, 안좋으면 까는거죠.^^; 저는 사실 한 달에 두 권은 아직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한 권이면 좋을텐데, 이 생각도 들구요. 아직 독서력이 한참 부족해서요.

로저 에버트 씨 글은 읽기가 괜찮아요. 저는 사이트 들어가서 리뷰들 가끔 보는데, 일단 젤 좋은건, 별로 어려운 영어가 없어요.^^ (뭐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어려우면 못 읽습니다.;;) 별로 현학적인 글을 쓰는 스타일도 아니고, 명쾌한 편이잖아요. 아직 국내개봉하지 않은 외국영화들 분위기가 어떤가 보러갈때 딱이죠.

아..그리고 저는 호적은 1년 늦게 기재되어 있고, 7살때 학교를 들어가 초등학교 때 홍역을 앓아 1년을 학교를 쉬었고, 중학교는 3년 월반했고, 중간에 2년 유학가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2년 늦게 들어갔고, 대학교는 4수했어요. (이제 계산 못하겠죠?) 하하하..믿거나 말거나. (근데 저도 제 나이를 계산해보는 Shining님의 심리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Shining 2012-05-05 13:57   좋아요 0 | URL
이런 센스쟁이~-_- 그런데 정말 사실은 아니..겠죠?; 쓰시는 분이 관심을
갖는 서브컬처나 생각 등을 보면 아주 대충 그냥 몇대이시겠구나, 짐작이
갈 때가 있잖아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의 말처럼 나이나 성별을
알면 마음 속에 의자를 만들어 상대를 앉히기가 쉽고 그래서 비교적
안심이 된다는, 그런 심리일지도요^^

맥거핀 2012-05-06 12:58   좋아요 0 | URL
사실입니다.

근데 나이란 게 은연중 대충 글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특정분을 예로 들어 죄송하지만, 위에 소이진님이 쓰신 댓글 같은 것을 보면요. 헤에, 같은 감탄사..^^

프레이야 2012-05-0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김수영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나온 걸 읽었어요.
괴팍한 시인의 부인으로 사는 일이 참 쉽지 않았겠더군요.
험난한 현대사를 함께 지나오면서요. 그녀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던데 살리지 못한 것
같구요. 김수영에 대한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더군요.
그래도 그리움 가득한 그녀, 여든다섯인데 아름다워 보였어요.
맥거핀님의 신간리뷰 기대합니다.^^

맥거핀 2012-05-04 13:35   좋아요 0 | URL
아..그래요? 김수영 시인의 부인이 아직 살아계셨군요. 몰랐습니다. 이번에 <은교>를 보면서도 느꼈습니다만 대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더구나 김수영 시인은 (좋은 의미로) 참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었고, 또 일찍 돌아가셨으니..

저도 프레이야님 리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에세이 많이 소개해주세요.^^

cyrus 2012-05-0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11기 신간평가단에 활동하시게 되었군요. 평가단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일단 활동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앞으로 맥거핀님의 글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군요, 영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 이야기들도요 ^^

맥거핀님이 소개하신 책들 중에 제가 몰랐던 신간들도 있네요, 가모브의 책이랑
이진경의 수학의 몽상이 개정판으로 나온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실
수학의 몽상 구판을 제가 다니던 헌책방에 매물로 나와있길래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구입 안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

맥거핀 2012-05-06 1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에는 책 고르는게 꽤 어렵네요. 저는 사실 이번에 예술 파트로 지원하려다 인문 파트에 통합되어서 이쪽에 지원했는데요. 과학이나 예술쪽 관계된 책들을 보고 싶은데, 어째 별로 못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정치나 사회 쪽은 사실 그다지 안 땡기는데..ㅎ

그래서 가모브의 책이랑 이진경 씨 책을 넣어봤어요. 근데 이진경 씨 책이 개정판이군요.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사유하시는 분이지만, 벌써 이쪽도 쓰셨는지는 몰랐군요.^^ cyrus님도 같이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가연 2012-05-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번에 파트장이 된 가연입니다. 얼마나 이렇게 댓글 남기며 체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려고..ㅎㅎ 1,2,3 그리고 무한은 저도 추천하려다가.. 결국 안한 책이긴 합니다만.. 흥미로워보이더군요.
확인했습니다.

맥거핀 2012-05-07 18: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가연님. 일단 파트장이시니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부터 해야겠군요.^^ (리뷰가 늦어지게 되면 파트장님께 이야기하라고 하던데..그죠?) 여러모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도 최대한 수고를 덜어드리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5-0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맥거핀님 리뷰 드뎌 보게 되는 날이 왔어요. 미국사 저 책 됐으면 좋겠는데.. 미국사 강습 받게요. 수학의 몽상은 재밌을까요? 저도 담번에 사려던 책인데.. 이진경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어서 읽을 수 있을지를 모르겠어요.

저기..나이.. 세상에.. 넌센스 퀴즈입니까?ㅠㅠㅠㅠㅠ

맥거핀 2012-05-07 18:05   좋아요 0 | URL
음..근데 아무래도 말씀하신 두 책 모두 선정이 안될것 같아요. 저는 서점에 가면 과학이나 수학 관계된 책들이 이뻐서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막상 사지는 않거든요. 저거 언제 들고다니면서 볼까..싶어서. 그래서 이번에 서평단으로라도 선정되면 억지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넣었는데, 아무래도...

근데 괜히 저렇게 써서 나이만 많아졌음..-_-
 

 

 

은교, 정지우, 2012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들어있음)

 

 

박범신 원작, 정지우 연출의 <은교>를 보았다. 사실 원작을 보지 않아서, 원작은 어떤 흐름의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전체적인 사건의 전개는 원작과 동일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같은 사건이라도 노시인 이적요(박해일), 그의 젊은 제자 서지우(김무열),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드는 은교(김고은)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묘사하는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시인이 소설 '은교'에 쓴 대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제자의 말대로 단지 추문이 될 수도 있다. (또 여기에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영화와 소설의 차이에 대한 문제도 개입하게 될 것이다.) 정지우의 선택은 그중 어느 쪽일까, 아마도 상당수의 관객들이 가졌던 의문은 그런 쪽에 가까웠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몇몇 우려들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해석들과는 달리), 정지우가 의도했던 것은 현재의 이적요와 은교와의 일대일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즉 늙은 시인이 젊은 여자의 육체에 빠져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그 근거 중의 하나는 은교와 이적요의 섹스씬 혹은 성적 유희의 장면들이다. 이적요의 상상, 혹은 그의 문학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장면들에서 늙은 이적요는 젊은 이적요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젊음의 활력을 맛보며 활력적인 육체를 드러내보인다. 즉 이적요의 상상 속에서 이적요가 궁극적으로 보고자하는 것은 은교의 벗은 몸이 아니라, 젊은이로 돌아간 자신의 모습이다. 은교는 단지 그를 젊은이로 돌려놓는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에서 은교의 캐릭터가 거의 빈 것처럼 보이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러 평들에서 이 은교라는 캐릭터가 거의 빈 것처럼 그려진다, 알 수 없다, <은교>라는 영화에 정작 '은교'는 없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 의도했던 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교는 리뷰들에서 지적한대로 거의 빈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이다. 순수함과 팜므파탈을 교묘히 넘나들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방점을 찍는 것은 그 텅빈 것처럼 보이는 순수함이다. 즉 은교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니 영화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육체 뿐이다. 영화에서 탐미적으로 뒤쫓는 것은 그녀의 육체의 운동이지, 그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내면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은교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그녀의 육체를 따라잡는 카메라는 그녀의 육체를 드러내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청소나 빨래같은 집안일만큼 온몸을 쓰는 것이 있던가. 누드로 청소를 해준다는 서비스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은교를 이렇게 비워놓는 이유는 하나다. 은교가 비어있어야 이적요는 늙은 자신을 그것에 투과시켜 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적요에게 은교는 자신의 모습을 젊게 비추게 하는 거울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그의 제자 서지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같은 젊음이면서도 서지우와 은교는 다르다. 은교가 비어있는 캐릭터라면 서지우는 꽉 차 있는 캐릭터이고, 그의 내면을 꽉 메우고 있는 것은 세속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별을 그저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고정관념일 것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는 욕망일 것이고, 이상문학상이라는 권위일 것이며, 어쩌면 시기심이나 열등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하나 흥미로워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서지우를 죽이는 방식이다. 서지우가 길을 내려가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로 다시 올라오다가 죽는 그 방식, 굳이 그 방식일 이유가 있을까. 마치 이 장면은 이적요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이적요의 조작이 없었다면 서지우가 자동차 점검을 하러 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다시 돌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적요가 이 일에서 책임을 면하기란 힘들다. 결과가 같다면 결국 보아야 할 것은 아마도 과정일 것이다. 그 죽음의 과정이란 것. 과정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면서 서지우의 죽음에는 이적요 말고도, 책임져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서지우 본인의 젊음이다. 그를 죽음으로 보낸 것은 분노에 가득찬 그의 젊은 혈기이다. 그는 젊은 혈기에 가득차 한시라도 빨리 이적요를 만나고자 무리한 주행을 했고, 그것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보낸 것이다.

 

즉 이 젊음은 문학적으로 대적할 수 없는 이적요에게 그가 가진 거의 유일한 무기였지만, 이 유일한 무기가 결정적 순간에 이르러 자신을 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 속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이 대비가 명확히 그려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적요에게 있으나 서지우에게 없는 것, 즉 천부적인 문학에 대한 소질은 그 대비가 비교적 명확한 반면에, 서지우에게 있으나 이적요에게 없는 것, 즉 젊음에 대한 대비는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내내 약간 불만스러웠던, 혹은 의아했던 점은 이적요의 늙음은 관념으로는 관객들에게 주어지지만(즉 '이적요는 늙었다'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주입시키려 하지만), 그 실물로서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이적요는 굳이 은교의 도움이 필요없는 늙은이이며(그가 은교 대신 청소를 하거나, 은교의 옷을 말려주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자, 이 장면에서 왜 은교는 누워있고, 그녀의 옷은 대신 늙은 이적요가 말려주는가), 자동차 정비를 손수할 정도의 나름 강건한 노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당연한 힌트는 정지우가 나이든 배우를 쓰지 않고, 박해일에게 노인 분장을 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이 젊음과 늙음의 대비는 은교와 그녀의 말로밖에 등장하지 않는 은교의 어머니와의 사이에 드러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발꿈치의 굳은 살을 긁어내는 은교의 어머니와 깨끗하고 예쁜 발과 발목을 가지고 있는 은교와의 대비. 은교는 언제가 되어서야 발꿈치의 굳은 살을 칼로 긁어내게 될까.)

 

 

이렇게 됨으로써 상딩히 복잡하고 미묘하게 묘사되어야 할 캐릭터인 서지우는 단지 열등감과 시기심 밖에 남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즉 질시의 주체이자, 대상이어야 할 이 인물은 단지 '욕망하는 것'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전형적인 악역의 역할만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것은 이 전체 영화의 구조와도 연관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초중반까지는 섬세한 심리극의 양상을 가지고 있던 이 영화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은교' 발표를 둘러싼 첫번째 결별 이후로 서사극으로 슬슬 변화하여, 마지막에는 몰아치는 사건들로 급속하게 마무리된다. 즉 영화 초반, 존경심과 보호본능 그리고 시기심, 질투의 사이에서 미묘하게 부유하던 서지우가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러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마지막에 이르러 인물에게 심리를 드러내보일 틈을 주지 않는 영화의 구조와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이 아쉬운 이유는 서지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지우의 대척점에 있는 이적요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이런 질문과도 연관된다.

 

왜 마지막에 이르러 이적요는 힘없는 노인으로 돌아갔을까.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영화 내내 '팔팔한, 무늬만 늙은이'로 보이던 이적요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술독에 빠져,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 되었다. 물론 이것에는 여러가지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지우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은교가 떠나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답일까. 이것은 이렇게도 물을 수 있다. 왜 애초에 이적요는 서지우를 제자로 받았을까. 이적요는 첫만남에서 그의 문학적 능력이 없음을 이미 어느정도 간파했다. 그렇다고 해서 서지우가 다른 감각 - 예를 들어 대중적 감각 - 이 뛰어난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적요가 쓴 '은교'를 서지우가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는 아름다웠기 때문에 세상에 내보냈다고 했지만, 그가 그것을 볼 때에는 분노로 가득했을 때였다. 그는 단지 그것을 더러운 이야기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이후에 어찌 평가받았는가.) 어쩌면 이적요가 그를 제자로 받아준 이유는 그가 결코 자신만큼 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즉 어떤 의미에서는 이적요는 그를 이용한 것이다. 이적요에게 서지우는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없는 소설을 그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는 자신보다 한참 떨어지는 (그나마 스스로 쓸 수도 없는) '소설가'일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적요와 서지우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소설은 시에 비해서 이류에 불과하다'는 점이라는 사실.) 이적요는 그가 결국 자신의 '구겨진 뒷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견딜 수 없게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것을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은교는 이적요를 젊게 만드는 그의 깨끗한 앞면, 그리고 서지우는 그의 가득한 내면의 욕망을 보여주는 구겨진 뒷면이다. 이 둘이 만나 '외롭다'며 섹스를 할 때, 이적요는 몰래 숨어 무엇을 보았던가. 자신이 곧 은교이며, 동시에 서지우인 것을, 그 외로운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찾아온 은교에게 결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저 뒤늦게야 깨달은 자의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동전을 뒤집어도 동전이 아닐 수 없으며, 예쁘고 가녀린 소녀의 발이건, 굳은 살을 긁어내야 하는 늙은 어미의 발이건 결국 발인 것, 서지우에게 '별이 별인 것을 모른다'고 힐난했지만, 정작 그것을 모르는 것은 자기자신일 뿐이라는 것. 이제 남은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적요(寂寥)한 이에게 찾아온 '은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녀는 은혜로운 만남(恩交)인가, 은밀한 관계(隱交)인가. 아님 그것도 아니라면 음란한 요부(淫嬌)인가.

 

 

 

덧.

영화 속에서 소설 '은교'는 이상문학상을 받지만(적어도 영화 속에서 '이상문학상'은 대중문학과 가장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현재 우리의 세계 속에서 <은교>는 도리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며 대중문학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 속에서 규정한 자신과 점점 반대가 되어가는 이 텍스트, 이 흥미로운 현상을 어찌 볼 것인가. 그와 더불어 이 자기반영적으로 보이는 텍스트를 기꺼이 쓴 박범신 작가에게도 경의를. 정지우 감독에게는 물음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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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2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볼 예정이에요.
원작은 먼저 읽었는데 정감독이 잘 살린 면도 있고 그렇지 못한 면도 있겠군요.
맥거핀님 리뷰를 읽어보니 원작의 의도를 그런대로 살려냈구나 싶어요.
은교를 텅 비워둔 점도요.
그래도 정감독에게는 물음표를 주셨으니 저도 즐감해볼까 합니다.

맥거핀 2012-04-30 23:58   좋아요 0 | URL
지금쯤은 영화를 이미 보셨겠네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가 참 좋았었는데, 그래서 이 영화 보기 전에 너무 기대를 했었나봐요. 근데 예상보다는 조금 갸우뚱한 면이 있었었요. 제가 감탄한 것은 어떤 묘사적인 부분보다는 도리어 이 영화의 흥미로운 구조였는데, 이 구조는 전적으로 박범신 작가의 공이겠지요.

프레이야 2012-05-01 00:34   좋아요 0 | URL
저도 정지우감독의 사랑니 좋아해요. 해피엔드도 은교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오늘 빗속을 달려가 봤는데 원작에서 마음 아팠던 느낌을 또 가졌네요.
늙음이 정신과 육체에서 조화가 되지 못하니 그게 슬펐어요.
구조는 원작과 조금 다르지만 최적으로 가려고 한 것 같아요.^^

이진 2012-04-2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영화도, 원작도 읽지 않았으니 리뷰를 보는것은 뒤로 미뤄불래요.
빠르면 내일이나 바로 <은교>원작을 읽으려 하는데,
영화는 아마 19금이었지요...

맥거핀 2012-05-01 00:01   좋아요 0 | URL
아..그죠. 19금이죠. 근데 소이진님 글 쓰시는 걸로 봐선 이 영화보셔도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죠. 도리어 가능한 분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관람을 말리고 싶습니다만..^^;

Shining 2012-04-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글을 읽고 오늘 댓글을 남깁니다. 맥거핀님은 대학교 때부터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셨다면서 텍스트를 읽어내는 이 경이로움은 어디서 나오신겁니까!-_- 따지고 싶군요ㅎ

소설 은교는 저도 참 각별하게 생각하는 글입니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방점에서도 여러가지를 상상케하고 짐작케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셋의 관계는 단순한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깊은 뭐랄까 형이상학적인(!) 관계로 보여졌구요. 저는 서지우와 이적요는 어떤 의미이든 서로에게 반해있다고 그래서 소녀는 어쩌면 둘 사이에 낀 피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애정이든 증오이든 그것이 너무 강렬하고 비현실적인 스파크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이님의 글에 댓글 단 것처럼, 저도 은교가 십대의 순수함과 순진함, 그리고 그것을 모른다는 것의 우둔함과 깊은 맑음을 가지고 있다는 그 이상의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확실한 것은 이 소설이 (아마 영화도) 롤리타 콤플렉스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젊음과 늙음,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 수작이라고 생각하죠.

Shining 2012-04-30 11:51   좋아요 0 | URL
맞다, 저는 사실 박해일의 캐스팅이 의문입니다. 굳이 특수분장의 효과를 빌려 꼭 그여야만 했는가 하는 점_- <이끼>의 정재영의 연기를 개인적으로는 영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뭐랄까 얼굴은 노인인데 발성이나 몸짓은 젊은 느낌. 같은 해에 우연히 드라마 <자이언트>를 봤는데 정보석 씨의 연기를 보고 감탄했거든요. 젊은 시절부터 할아버지까지 대단하더군요. 특히 완전히 노년의 연기를 할 때는 살짝 떨리는 발걸음과 자연스럽게 굽은 등, 쇳소리 긁히는 저음의 목소리까지. 드라마 보는 일이 일년에 한 두 번인 제가 이 분 때문에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봤거든요ㅎ 그런데 영화의 예고편을 봤는데 박해일의 연기도 아주 '젊더군요'. 왜 굳이 젊은 배우를 캐스팅해서 돈들고 고생해가며 특수분장을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_-

그런데 저 맥거핀님 서재 도배할 기세군요ㅋㅋ

2012-04-30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5-01 00:13   좋아요 0 | URL
아..그래요. 저도 영화 초반에 박해일의 연기를 보고는 좀 갸웃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끼>의 정재영을 연상시키게 하는 면도 있었구요. 그게 정지우 감독의 의도인지, 박해일의 연기력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김무열과 좀 극단적인 대비가 되어야 한다고 봤거든요. (예를 들어 김무열은 아주 몸 좋은 소설가로 나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말이죠. 뭔 소설가가 그리 몸이 좋은지..) 물론 영화의 주인공에 나이든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것의 모험을 피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그 캐스팅이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심리적인 부분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아마도 서지우겠지요. 사실 2시간의 영화에서 표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캐릭터라고 봅니다. 제가 단순히 느끼기에만 해도 영화 속에서 서지우의 심리가 여러번 (미묘하게) 변화하는데, 이를 2시간 안에 잡아내어 서지우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정지우 감독의 역량이 그런 면에서 좀 모자란 듯 싶기도 합니다. (박범신 작가가 대가라는건, 이 인물을 소설 속에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이겠구요.) 예를 들어 서지우가 차를 타고 이적요에게 가는 장면에서 '서지우의 분노'라고 간단히 썼지만, 이것은 간단히 '분노'라고 이야기할 것만은 아닐 것인데,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서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고, 영화의 한계,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를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2-05-01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2-04-3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화 관심 있어요.. 보러 갈려고 시간과 협상중입니다..
무엇보다 은교의 비어있음에 대한 내용은 정말 너무 신선해요.
영화볼 때 화면이 뚫어져라 봐야겠어요...^^

맥거핀 2012-05-01 00:24   좋아요 0 | URL
아..꽃도둑님 오랜만이에요, 저 캐릭터 오랜만에 보니 반갑습니다. 은교라는 캐릭터 저는 잘 설명을 못하겠어요. 여성분들이 보는 은교라는 캐릭터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예를 들어 이 영화를 여고생들이 보게 되면 그 친구들이 보는 은교라는 캐릭터는 어떨까..그것도 좀 궁금하구요.)

cyrus 2012-04-3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관심 있는 영화에요. 아직 원작은 안 읽어봤는데 역시 영화가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있는 원작을 구해서 읽기가 쉽지 않네요 ^^;;

맥거핀 2012-05-01 00:25   좋아요 0 | URL
영화 개봉 후에 원작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듯 싶어요. 며칠 전에 서점에 갔었는데, 은교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꽤 봤습니다. 저도 원작을 한 번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2012-05-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경우 정지우 감독에 대한 기대가 좀 없는 편... 그래도 중간 이상은 하는 감독이니까! (이거 웬 고자세?!랍니까.ㅋ) 글구 '김고운'이란 배우 땜에 더 보고 싶네요. 궁금해요...
근데 영화 보러가기가 눈치 보여요. 농번기!라서 말입니다. 후후. 저는 그냥 원작이나 읽어야겠어요. 이조차 시간이 없지만요.

이 글에서 꽃도둑님 말대로 '은교의 비어있음'이 흥미로웠습니다.

맥거핀 2012-05-04 13: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도 정지우 감독이 중간이상은 합니다. 원작을 읽으신 분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탐미적인 영상은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잘 모르겠지만, 김고운 같은 경우는 원작과도 꽤 싱크가 높은 편이라고들 하니까요. 연기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텅 비어 있음'은 배우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가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농번기..여기 도시에서는 잘 생각해볼 수 없는 생경한 느낌의 단어네요. 그렇죠..인간이든 작물이든 햇볕을 봐야하는 시기죠..

아이리시스 2012-05-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러 안갔는데요.. 김무열은 어땠어요? 으하하하. 보러가야 하는데 가자고 하는데 애인하고 가기 싫달까.. 걔는 예술의 세계를 이해 못하..( '') 어제 문자 왔길래 남자들이 극장에 별로없대!!! 이렇게 보내니까 답장이 안오던데요ㅋㅋㅋ

맥거핀 2012-05-07 18:11   좋아요 0 | URL
글쎄요..김무열은 연기를 못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너무 어려운 배역이 주어졌다는 느낌. 감독의 캐릭터 해석이 좀 그래서, 이 역할은 누가 맡았어도 쉽지 않았을 거 같기는 합니다. 뭐 그냥 몸만 좋아요.^^

그래도 예술의 세계(?)를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보셔요. 애인과 보기에 썩 적절한 영화는 아닌듯 싶습니다만.. 제가 예전에 얘기했지만, 저질 로코물 하나가 열 명작영화보다 낫습니다. (뭐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명작이란 건 아니구요^^;)
 

 

 

 

알제리전투, 질로 폰테코르보, 1966.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알제리전투>는 프랑스 식민통치의 지배하에 놓여있던 알제리에,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구성된 1954년부터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인 1962년 봉기까지 8년간 민중들이 펼치는 거대한 이야기를 흑백의 다큐멘터리 화법을 빌려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화법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컷은 일체의 뉴스 릴이나 실제의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배제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구성된 장면들만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상당히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명백하게 극영화이다. 이 영화에 극영화의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그 서사의 구성방식에 어느 정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 이야기는 한 명의 주인공을 행적을 뒤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인물이란 알리 드 쁘왕뜨(브라힘 하쟈드)라는 민족해방전선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가상의) 지도자인데, 이 영화는 말썽이나 부리는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던 그의 각성으로 시작하여 1962년의 독립 2년 전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를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그 내용으로 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1966년의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 직후 프랑스 대표단의 항의를 담은 퇴장 해프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정식 개봉되었다.

 

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흑백의 미학적인 문제, 흔히 시네마 베리테로 이야기되는 이 영화의 형식적인 면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다보니 다른 것에 흥미가 간다. 먼저 하나는 이와 같은 극사실주의적인 영화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예를 들어 인물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극단의 리얼리즘에서 결국 인물의 심리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심리라는 것은 결국 작가의 전지적인 시선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미묘한 뉘앙스로도 보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인물의 심리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감독들은 여러 다양한 장치들을 구성하고 시도한다. 그러나 일체의 인위적인 조작이나 특정한 의도를 가진 편집을 배제하는 소위 시네마 베리테의 경우, 이것은 영화의 형식과 자주 충돌한다. 따라서, 인물의 심리를 구체화하는 특정의 시퀀스는 계속 배제되며,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게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생각해볼 때 이 영화는 어느 쪽인가. 과연 그들의 심리를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게 되는가.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마지막 알리의 마지막과 또다른 지도자인 자파의 최후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어떤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가. (혹은 읽어낼 수 없는가.)

 

이것은 물론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을 다루는 측면에서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지만, 알제리전투 기간 내내 폭탄이나 총에 의한 테러리즘은 만연했으며, 많은 프랑스 시민들, 그리고 알제리 시민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영화는 알제리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알제리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죽음 모두에 동일한 애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이들의 모습은 클로즈업되며, 매번 어김없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애도의 스코어가 깔린다. 이것은 프랑스 군대나 경찰이 행하는 폭력적인 억압과 그에 맞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행하는 테러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모든 희생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프랑스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수장인 메튜 대령에 대한 묘사에서도 같은 기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적들(민족해방전선)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나 저항에 고문 등의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맞선다. 일반적으로 상당수의 영화에서 이러한 인물은 거의 악마와 같이 그려지는 반면에, 이 영화에서의 그는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매번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며, 투항하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정말 그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즉 공정한 재판을 할 사람처럼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문은 그것이다.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까. 아니, 테러의 주범들인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예를 들어 어떤 판결이 내려져야 공정한 재판이란 것이 되는가. 이들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이들에게 단두대형이 아닌, 교수형을 판결하는 것이 공정한 재판인가. 아니면 이것은 단지 절차적인 면에서의 공정함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이 영화는 일견 보이는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에 충실한 즉, 일체의 주관적 판단을 제외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즉 이 영화에서라면 이는 그저 극사실적인 사건의 나열들인가, 아니면, 특정의 시선으로 교묘하게 처리된 사건의 나열인가. (한편 서구의 비평가들은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사물에 대해 주관적 판단을 하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만을 담는다는 것에는 이미 인위적인 구도가 가미된 것'이라며 '시네마 베리테'와 같은 시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네이버 백과사전) 물론 이 질문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기는 하다. 그것은 "특정의 시선이 배제된 것이 영화적으로 객관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예를 들어 위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에 동일한 애도를 건네는 것이 (영화적으로) 과연 객관적인 것인가. 물론 이 물음은 불편하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은 어떨까. 고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물론 이는 휴머니즘, 인도주의적인 부분과는 다른, 영화에서 다루는 것에 국한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환원된다. 시네마 베리테란 가능한가, 의미가 있는가. 즉 결국 '어떤 특정의 시선이 배제되는 것'은 극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을 얻는가.)

 

그러므로 내 느낌은 이 영화도 결국 표면상으로는 주관적인 의도를 배제한 사건의 나열이지만, 그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영화에 남아있으며,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그 본질을 프랑스의 경우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고문의 반인도주의적인 행태와 사르트르의 알제리의 저항에 대한 시선 등을 이야기하는 프랑스 기자들에게 메튜 대령은 일갈한다. 여기에 그렇다면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프랑스 기자도 여기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국주의적인 정책의 수혜자는 본국의 지배층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일반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비판을 가하는 시민들 역시도, 동시에 그 제국주의의 공범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현재의 많은 부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운가.) 알제리의 경우라면 혹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영화의 말미, 알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죽음으로 영화가 끝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으며, 앞으로는 조용할 것이라고 안심한다. 끝날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갑자기 2년 후로 점프한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봉기들과 프랑스인들의 어리둥절한 외침. 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그 때 민족해방전선은 완전히 끝났잖아, 왜 지금 갑자기 봉기들이 일어나는거야. 여기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들은 바로 영화 속의 몇 가지 장면들이다. 장면 하나, 막다른 곳에 갇힌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사람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는 프랑스 군대의 말. 너희들은 졌어, 어차피 다 끝난 것 알잖아, 그냥 나와. 장면 둘, 포기하고 투항하는 자파와 그의 물음. 여기서 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장면 셋, 죽음을 선택한 알리의 컷 다음에 모두 멈춰서서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알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알제리인들.

 

뜬금없이 독립이 된 2년 후로 점프했던 영화처럼 나도 갑자기 뜬금없이 다음의 글을 붙인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를 소개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의 한 대목(경향신문 2012-04-08).

 

1968년 3월11일, 도쿄대는 의과대학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12명과 연수생 5명을 퇴학시켰다. 이 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는 의대생들이 6월15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이틀 후 학교는 기동대를 투입하여 전원을 끌어냈다. 갑자기 이것이 화약고가 됐다. 안보투쟁 중이던 일본 전국학생연맹은 7월2일 다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고, 전공투(全學共鬪會議)의 ‘학원투쟁’이 시작됐다. 총장이 사임했고, 의대 학장이 처분 철회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공투는 점점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했다. 마침내 이듬해 1월18일 8500명의 기동대가 투입됐고 72시간 동안 헬리콥터와 최루가스를 동원한 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원 체포됐다. 이 투쟁을 ‘도쿄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때 야스다 강당의 벽에 남겨진 수많은 낙서 중에는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덧.

Shining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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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2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손택이 말한 '사진'이 프레임을 담아낸 사진가의 시선인 것처럼, 결국 극사실주의가 아무리 객관적 시선을 유지했다고는 해도, 실제 일어나는 현장을 총체적으로 담지 않으면, 만들어내진 창작물은 100% 객관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는 관심이 있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영화가 의도하는 것도, 맥거핀님의 의문도 알겠고, 저 역시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로 '불씨'는 아주 작은 하나의 티끌이었는데 폭발하여 번지는 과정을 보면 일파만파라서 이게 과연 처음의 그 작은 불씨 하나 때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불이 번지며 전기코드도 건드리고 가스불도 건드리고 2차,3차 폭발이 계속 되는데요..

명분은 붙이기 나름인 것 같고, 알제리인들도 표면적으로는 끝난 문제를 계속 품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문제는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맥거핀 2012-04-23 14:20   좋아요 0 | URL
네..저도 아이리시스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주관적인 의도를 100%로 배제한다는 것은 아마 영화에서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뭐 그렇다면 시네마 베리테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고 끝내버리면 될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은 또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편향성, 어떤 의도의 문제를 지적하고는 하거든요. (뭐 대표적인 예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를 예로 들수도 있겠습니다만...) 완전한 허구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실제의 사건을 영화로 다룰 경우 이러한 고민은 계속 반복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이야기일까요. 예전에 역사가 서중석씨가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다만 에둘러 돌아갈 뿐이다.'라고 한 말이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감은빛 2012-04-2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 분이 계셨는데, 여기서 이 영화를 만나다니!
이건 정말 우연일까요?
아니면 혹 맥거핀님이 혹시 제게 영화를 추천한 그 분이실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최근 이 영화가 이슈가 될만한 일이 있었는데,
저만 몰랐던 것일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맥거핀 2012-04-23 14: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감사합니다. 뭐..제가 알기에는 최근에 이슈가 될만한 것은 특별히 없고, 다만 최근에 모 영화관에서 '흑백의 미학' 기획전이라고 이 영화와 다른 영화들을 묶어서 상영하고 있는데, 그래서 조금 뉴스에도 나고 그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지금도 상영은 진행중이구요).

저도 이 영화는 추천을 드리고 싶네요. 좋은 정치 영화이기도 할 뿐더러, 또 많은 이들에게 힘을 나누어줄 수도 있는 자체 내공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Shining 2012-04-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적인 것과 영화는 다른 것인가? 라고 전공시간에 썼던 페이퍼가 생각나네요. 교수님이 흥미롭다며 개인면담을 신청하셔서 졸지에 유명인이 됐다는_-

감정과잉은 무엇인가?와 감정을 정말 배제할 수 있는가?는 사실 같은 질문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를, 혹은 실화가 영화화 될 때 항상 품게 되는 질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정치적인 이야기를 가장 비정치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할 때, 그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것으로도 이미 정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 말이죠.

맥거편님의 페이퍼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저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군요ㅎㅎ

2012-04-24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4-24 23:37   좋아요 0 | URL
어...그거 재밌어보이는데, 영화적인 것과 영화. 저랑도 개인면담, 아니 개인필담 좀 하시죠.ㅎ 그래서 때로 영화를 보면서, 왜 이렇게 영화가 편향적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 조금 답답한 면도 있어요. 그렇다면 편향적이지 않은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가 말이죠. (예를 들어 저번에 <부러진 화살> 가지고 백분토론 했었는데, 저는 좀 얼떨떨했어요. 이게 백분이나 이야기할 건가..?하는 느낌도 좀 있었고요.)

근데 정말 영화적인 것과 영화는 무엇이 다릅니까?

2012-04-24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hining 2012-04-25 11:26   좋아요 0 | URL
개인필담... 교수님의 면담요청만큼 걱정되는데요?ㅋㅋ

음, 다큐멘터리라면, 사실적인 것과 사실을 그려내는 것은 정말 같은가,에 대한 의문이겠죠.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아닌가. 또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폭력. 폭력은 재현(저는 재현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ㅋ)될 수 있는가. 영화관에서 느끼는 폭력은 어떤 극렬한 것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영화의 상영이 멈추는 순간 견딜만한 혹은 타인의 것이 되어버리는데 그 폭력의 순간에 감응한다는 것은 영화적인 것인가 사실에 의한 것인가. 영화는 영화적인 것인가 영화 자체인가, 뭐 이런 얘기들^^;

말로 하면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글로 쓰려니 어렵네요ㅎㅎ

음, 허문영 평론가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혹시 읽어보셨나요? 저는 이 평론집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동조를 많이 했거든요. 제가 느끼던 불편함이나 의문들, 두서없는 말을 그분은 조리있게 핵심만 짚으셨더군요ㅠ 역시 좋은 말은 누가 다 했나봐요ㅎㅎ

2012-04-25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2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이퍼 제목으로 인해서, 이 페이퍼를 읽기 저어했습니다.
그것도요, 이틀이나요... ^^

마지막 문단을 보니 문득 <선덕여왕>의 미실 죽음 장면이 떠올라요.
화랑들이 부르는 노래라면서 말하는데,

싸우지 못 하면 후퇴하면 되고
후퇴하지 못 하면 항복하면 되고
항복하지 못 하면 죽으면 되네...

대략 이런 내용인데, 너무 찡해서 펑펑 울었거든요.
항상.... 이 부분은 제 딜레마입니다. 저는 용감하지 못 하거든요. ㅠㅠ

맥거핀 2012-04-24 23:43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제가 허세있는 걸 좋아해서요.ㅋ

어..저는 사실 그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말씀하신 노래만 듣고도 왠지 가슴이 뭉클합니다. 화랑들의 계 중의 하나가 '임전무퇴'라고 하는데, 참 생각해보면 잔인한 이야기이죠. 전장에서 물러나지 말라고 하는 것..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닌 최대한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라면 저 같으면 알리 같은 선택은 하지 못했을 듯 싶어요.

에세르 2012-05-0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알제리는 그저 까뮈가 태어난 곳이고, 생전에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아서 비난받았다는 사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아, 무지해서 부끄럽네요)
이렇게 맥거핀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듯 합니다.
특히 이글의 제목, 끝부분에 부기하신 야스다 강당의 낙서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맥거핀 2012-05-10 17:2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알제리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데 독립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도 오버랩되고,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때로 좋은 영화는 열 역사책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또 책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을 때로 이야기해주니까요.^^
 

 

 

 

인류멸망보고서, 임필성, 김지운

 

 

(영화의 줄거리 들어있음)

 

 

아무튼 인류는 멸망한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멸망한다. 다른 것은 다 부정한다고 해도 우주에는 시작이 있으므로 아마도 끝이 있을 것이고, 뭐 그렇다면 인류도 별 수는 없다. 인류멸망보고서. 보고를 하는 자들의 시각은 늘 냉소적이다. 보고를 하는 자들이 그 보고의 대상들에게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 원인과 결과이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멸망하였는지를 고찰하여, 보고를 하는 자들의 멸망을 늦추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임필성. 2008년의 광우병 촛불정국을 직접적으로 비틀고 있는 이 단편은 인류 멸망의 원인이 인간의 지긋지긋한 탐욕에 의해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지긋지긋한 악순환. 인류 멸망의 시작이 한 잉여의 별 생각없는 분리수거 무시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이 유머러스한 시작은 쓰레기 처리과정을 직접적으로 길게 보여주는 몇 가지 컷들로 흥미롭게 이어진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필연적으로 과잉된 쓰레기를 낳고, 과잉된 쓰레기는 동물의 몸을 통하여 다시 인간에게 들어간다. 이것이 인간의 탐욕의 결과임은 처음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는 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데, 아무 생각없이 살며 여자 뒤꽁무니만 쫓는 주인공과 그보다 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친구, 그리고 불량청소년, 탐욕스럽게 고기를 뜯고, 클럽에서 그 욕구를 발산하는 사람들, 이들은 이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이 되어 곧 온거리로 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비유.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촛불 좀비'라는 말이 보수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 말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킨 자들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촛불 좀비'라는 말의 다양한 변이체들을 이리저리 널리 전파시켰고, 보수언론은 그 말들을 어김없이 받아적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영화. 두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트려지는 곳은 길바닥이라는 점. 미안하게도 좀비 바이러스는 싼 고기를 먹고, 길거리에서 그 욕망을 분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파된다. 그리고 그들을 좀비라고 규정지은 사람들은 각자의 집 문을 걸어잠그고, 길거리에 쏟아져나온 좀비떼들을 (아마도 곧 좀비가 될, 사실은 좀비와 별다르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전경들이 막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화 안에서 이 좀비들과 별개인 것처럼 전개되는 무감각한 TV 리포트들. 시시각각으로 페허가 되는 건물들과 별개로 이 TV 리포트는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 TV 리포트를 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나, 어디에 숨어서 이 공정한 리포트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므로 좀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분별력을 다시금 찾게해줄 사과(선악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로 뛰쳐나오게 해줄 심장과 함께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의 사고이다. 그와 동시에 돌이켜보면 MB 정부의 가장 큰 위기였던 촛불정국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광우병, 소고기 때문에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나를 생각해보게 한다.

멸망 실현 가능성 : 27.2%.

 

 

<천상의 피조물>-김지운. 그렇지만 결국 실패한 좀비들은 로봇이 되었다. 인류의 예정된 노예, 로봇. 앞의 <멋진 신세계>와 이 <천상의 피조물>은 전혀 별개의 작품이지만, 왠지 이 두 단편은 대구를 이루는 듯 하다. 모두 다른 육체지만, 머리가 포맷되어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좀비, 그리고 그 반대로 모두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다른 정신을 가지게 된 단 하나의 로봇. 단지 절의 가이드 로봇에 불과했던 개체들 중의 하나 RU-4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인명'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창조주이자 소유주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로봇의 깨달음이란 오작동에 불과한 것이며, 어쩌면 그 오작동을 넘어서 인류에 대한 위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인명'이라는 개체 하나에 대한 파괴가 아닌, RU-4 모델 전체에 대한 폐기 시도로 이어진다. 기계의 법칙 하나. 개체 중의 하나에서 오작동이 일어나면 반드시 동일한 다른 개체에서도 오작동이 일어난다는 것.)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인 것, 만약 인간 중에 깨달음을 얻어 신 이상의 어떤 존재가 생겨난다면, 그 존재를 신은 과연 가만 놔둘 것인가.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인간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가장 체제전복적인, 일체의 현상들에게서 전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붓다의 공(空)의 사상이다(여기에 팔을 잘라 법을 구했다는 혜가(慧可)선사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인간세계 그 모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에 가닿아 있는 이 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마지막에서 RU-4, 즉 인명은 스스로 정지를 택함으로써 결국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소멸은 이 체제전복을 스스로 실천, 증명해보인 것으로 아마도 이 이후 로봇들, 즉 노예들의 연대는 시작되고, RU-4들은 개체 멸망에 맞서 인간에게 대항할 것이고, 인간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역으로 말해서 인간이 개체 멸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지금 행하고 있는 파괴들을 중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게 가능할까.)

멸망 실현 가능성 : 5.7%.

 

 

<해피 버스데이>-임필성. 세 편 중에 가장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인류는 어느날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이 소행성이란 한 소녀가 자신의 실수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에서 몰래 주문한 8번 당구공인 것. 당구공을 되돌려보내기 위한 필사의 반품 시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인류는 예기치 않았던 종말을 맞는다.

 

코믹한 농담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인류의 멸망이란 어쩌면 이렇게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거대한 8번 당구공이 지구에 쓰리쿠션으로 맞을 확률이야 거의 0에 수렴하겠지만, 이들이 멸망을 앞두고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보며, 실제로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그것은 비극적이면서도 분명히 코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적어도 할리우드처럼 갑자기 거대한 희생정신과 인류애가 꽃피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결국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며, 멸망의 마지막에는 철학도 이성도 고찰도 사랑도, 그 무엇도 없다, 오로지 멘탈 붕괴만 있을 뿐. 그러니 그대여, 인터넷 쇼핑 시에는 판매자 확인은 필수, 그리고 빠른 배송에 집착하지 말 것.

멸망 실현 가능성: 가까스로 0에 수렴.

 

 

 

덧.

세 편 모두가 공통적으로 초반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지속시킬 힘이 부족해보인다. 어차피 초반의 아이디어를 넓게 확장시키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더 재기발랄하고, 도발적이고, 폭력적이고, 야했으면 어땠을까. 또 하나, 전체적으로 각각의 단편으로는 흥미로우나 세 가지 이야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강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어내기가 마땅치 않다. 세 개 중에 하나의 이야기는 버리고 두 이야기를 조금 더 유기적으로 결합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각 개봉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기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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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4-1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듣고 눈썹을꿈틀 했어요. 아니, 이렇게 뻔한 종말론이라니_- 싶었달까요; 투박하고 거칠고 어설프고 힘이 딸리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고무적인 평가를 주고 싶다는 전문가 평을 읽었어요. 이상하게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전 이 영화를 볼 것 같지 않아요, 맥거핀님의 글로 대신할래요^^; 임필성 감독은 오랜만이라 반갑군요.

하하, 저 본문 마지막 문단 보고 경비실에 내려갔다왔어요. 택배물 위탁해둔 거 잊어버렸는데 덕분에 생각났거든요, 고맙습니다. 후후후*-_-*

2012-04-13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4-14 13:1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지금 네이버에 가보니 찬반양론이 팽팽히 대결중입니다.(대결중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무시하는 투지만..^^;) 네..그렇죠. 어설프고 힘이 딸리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인정해준다..보는 사람이 그 모순된 말의 앞과 뒤 중 어느 것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질 일이겠지요.

어차피 이 영화를 그나마 볼 축은 젊은 사람들일텐데,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확실히 어설프긴해요. 근데 요즘에는 어설프니까 도리어 좋다는 경우들도 있어서..공감과 비공감은 어차피 한끗차.^^

2012-04-1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4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4-1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영화라 맥거핀님 리뷰도 재밌어요. 김강우 좋아하는데.. 사진에 김강우 없..( '') 있......( '')
그리고 계속 웃음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까스로 0에 수렴ㅋㅋㅋㅋㅋㅋ

저는 한 편으로 지구종말을 간절히 빌고 있어요. 지구오염시키는 자와 못된 자들을 데쓰노트에 적으면서요. 가만보면 저도 한 코미디 하는 듯ㅋㅋㅋ

그나저나 정말로 맥거핀님은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부럽게........^^

맥거핀 2012-04-14 13:18   좋아요 0 | URL
근데 요즘에 못된 인간들 너무 많아서 다 적을래면, 그 영화에 나온 데쓰노트로는 택도 없어요. 그리고 종말이 되면 못된 자들이 더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하고..악한 자들이 꾸역꾸역 살아남는 거 아니겠어요.ㅎ

나름 초호화캐스팅..요즘 은교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박해일과 김무열도 나옵니다. 위 사진에 잘 찾아보시면 박해일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