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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훌륭한 소설을 만났다. 이 책은 그저 간단하게 "재밌었다"로 끝나기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싶을 정도로 엄청난 소설이다. 나오키상을 충분히 받을만한 책! 초대형 화제작임을 입증하는 책이다.
나는 클래식을 매우 좋아한다. 라디오도 항상 93.1을 즐겨 듣고 실제 해박한 지식은 없고 막귀더라도 클래식을 사랑하는 1인이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갈증 나는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로 힘들어했을 무렵 아파트 라운지에 있던 하얀 그랜드피아노에 앉아 잘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 연주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어찌 보면 나에게 피아노는 큰 위로를 주었으며 상처치유 그리고 유년기에 엄한 길로 안 갈수 있도록 나를 붙잡아준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 피아노를 5세부터 가르쳤다. 혹 나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 피아노가, 음악이 우리 아이에게도 많은 힘이 되어 주길 기대하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 아들의 가정교사를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대 피아노학과 졸업생, 졸업하며 독일로 유학을 떠나 아들과 이별을 했던 키 176cm에 순박한 여대생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피아노 연주 중 단연 그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 연주가. 같은 곡을 치더라도 어쩜 이렇게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심지어 우리집 거실에서. 하물며 정말 소리가 좋지도 않은 디지털 피아노에서 그런 연주를 하는 그녀를 하염없이 넋을 놓고 바라봤던, 그래서 아들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연주만 해주고 가면 레슨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녀가 독일 유학을 준비하며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머님, 아드님이 피아노를 사랑해도 절대 피아니스트는 시키지 마셔요. 피아니스트는 타고난 재능과 천재성이 있어도 성공을 할까 말까 해요. 0.000000001 퍼센트의 피아니스트만 성공할 수 있어요.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능가할 순 없어요~" 우리 어여뿐 피아노 선생님은 유학생활을 잘 하고 계시려나..?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그녀는 혹 이 책을 읽어봤을까? 란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숨이 가파지고 머리가 아찔해지며 상상의 음악을 들으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정말 희한하다. 작가의 필력이 실로 대단하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다니. 글을 읽고 있으면 나에게도 멜로디가 그 웅장하고 때로는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온다 리쿠 작가도 정말 대단하지만 이 책의 번역을 한 김선영 씨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며 번역하시는 분에 대한 존경심 마저 들었다.
700pg 의 엄청난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고 싶은 책! 가독성도 있고 문장력이 뛰어난, 군더더기 하나 없어 읽는 내내 "이렇게 훌륭한 책을 만나게 되다니.."를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더불어 음악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는데 읽으면서 음악이 들리는 듯, 함께 느끼게 되는... 소름이 같이 끼치게 되는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라 하겠다.
일본의 한 도시 요시가에에서 3년마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린다. 양봉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떠도는 피아노 천재 소년이자 유지 폰 호프만의 추천서를 받은 '자가마 진', 그리고 그의 이름의 의미도 특이하게 'dust', 주니어 대회에서 석권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지만 어머님의 죽음으로 무대 위를 도망치게 된 '에이덴 아야', 다양한 인종의 피가 섞인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음악가의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 아이의 아빠로 살아오다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다카시마 아카시', 1차, 2차, 3차 예선에 본선까지, 그들의 피아노 이야기가 펼쳐진다. 흥미진진, 가슴 쫄깃, 대박 공감 그리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며 이 책에 흠뻑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음악은 진정 세계 언어라는 말이 너무나도 공감되고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연주가들이 연주하는 음악들을 찾아보며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미 아는 노래인데 제목을 모르는 음악들도 많이 만나보아 좋았다. 나는 사실 음악에 대해 깊은 견해가 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유지 폰 호프만"같은 분이 실제 존재한다면 누구일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피아노 관련 책, 영화, 드라마, 지인들을 회상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는, 그리고 클래식을 더욱더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는 비록 피아노의 천재성은 없지만, 오디션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씨의 마음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마음에 한 표를 던진다. 음악은 특출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언어이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음악을 통해 삶의 애잔함, 고단함, 슬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기쁨을 맛볼 수 있길 바란다.
이 아이는 음악의 신에게 사랑받고 있다. pg110
미아 군이 내는 소리는 바다 같아. 새파란 하늘 밑에서, 아득히 넓은 바다에서 파도가 철썩 다가오는 것 같아. 갈매기가 날다가 이따금 파도 위에 내려앉아 참방거리는 거야. 마아 군의 바다니까 갈매기도 안심하고 쉴 수 있어. pg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