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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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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이름은조진주 소설집 현대문학 남아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

 

남중국해와 오키나와沖縄에 걸쳐있던 장마전선이 북상했다. 오랫동안 오키나와를 할퀴었던 장마전선은 일본 열도를 할퀴고 한반도로 올라왔다. 이번 주말부터 작년보다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길고 긴 장마로 많은 피해가 났는데, 올해 장마는 또 얼마나 삶과 세상을 파괴할까? 전선戰線의 군단軍團처럼 저벅저벅 몰려오는 장마전선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처럼 읽힌다. 장마에 삶과 세상은 밑바닥까지 젖는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조진주의 다시 나의 이름은이라는 소설집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9개 단편소설에 삶의 슬픔과 고통이 소용돌이친다. 삶의 슬픔과 고통은 장마전선처럼 피할 수 없는 어둠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어둠 속에 떨고 있다. 어둠 속에서 작가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밑바닥까지 겪고 들여다본다. 왜냐하면 작가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고, 그것들을 글로 써야하기 때문이다. 조진주 작가는 그 슬픔과 고통을 담담하게 겪고 단단한 문장으로 연주했다.

 

란딩구바안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정옥은 할머니 배달원이다. 추운 겨울날 그녀는 지하철에 올라 강남의 한 맞춤형 케이크를 중랑구 가정집까지 배달한다. 하지만 두 정거장을 앞두고 지하철이 고장 나서 정옥은 추위에 떨며 걸어서 배달한다. 좁은 길로 들어선 정옥에게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들 중에 갈색 머리가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혹시 불 없어요. ?”

정옥은 못 들은 척 그 옆을 지나려 했다.

할머니, 왜 내 말 무시해요? 혹시 불 없어요?”

조용히 좀 해, 병신아.”

아니, 할머니가 내 말을 씹으시잖아. 할머니, 그거 들고 가는 거 케이크 맞죠? 요즘은 케이크 팔 때 성냥 같이 안 주나?”

미친 새끼.”

덩치 큰 남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정옥은 케이크 상자를 슬며시 몸 옆쪽으로 감추고는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 할머니. 내 말 안 들려요? 혹시 귀가 먹으신 건가?”

시끄러워, 새꺄.”

아니, 왜 다 나를 무시하냐? 이제 늙은 년도 나를 무시하네.”

 

삶은 이토록 너절하고 추하다. 살면서 누구나 이런 어두운 상황을 겪는다. 이런 어둠이 가속적으로 몰려온다. 정옥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 출판사를 그만두고 번역 일을 맡아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그녀는 생활비를 벌면서 아들을 키웠다. 남편과 사별 후 정옥은 30여 년 동안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며 생활을 꾸려 아들을 장가까지 보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삶이 좁은 길에서 모욕당했다.

 

나의 이름은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직업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삶을 말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소리를 하며 명창을 꿈꾸던 주화영은 국악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소리는 취미 정도로 하고 무난한 삶을 원하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명창이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주화영은 기울기 시작한 집안 사정과 맞물려 대학을 포기한다. 그녀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화영이라는 이름은 레나로 바뀐다. 어느 중소기획 소속사에 들어가 펑키파니라는 혼성 크로스오버 밴드 보컬로 활동하게 된 주화영은 레나라는 활동명을 얻는다. 그룹이 해체되자 레나는 오디션을 보고 트로트 가수가 된다. 트로트 가수로서 얻은 이름이 연주황이다. 바뀌는 이름이 삶의 어둠처럼 읽힌다. 이제 남아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 이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처음 이름을 얻었던 곳으로 간다.

 

단지 의문을 품었을 뿐입니다. 어째서 누군가는 그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는 자기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조차 알릴 수 없게 되는지요. 다른 이가 아닌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하는 정당한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그 명분을 얻기 위해 유일하고 불가변한 이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나를 지칭했던 많은 이름들은 바다로 떨어진 빗방울처럼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쉽게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이름들을 거치는 동안, 나는 점점 텅 비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내가 처음 이름을 얻었던 강원도로 떠났던 것이었습니다.”

 

연주황은 답을 구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녀가 탄 버스가 집중호우로 갑자기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실종된 연주황은 결국 죽음을 당했다. 이름을 바꾸어가며 견디었던 삶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처음 이름을 얻었던 곳으로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 되고 말았다.

 

등단 후 쓴 당선 소감문에서 나는 조금 거창한 이야기를 했었다. 대충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글을 쓰면서도 의심스러웠다.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때도 지금도 내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금 아는 척을 해볼 뿐. 그러나 알아가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다시 나의 이름은이라는 소설집은 조진주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잘못된 삶에 대한 답과 남아 있는 이름을 찾아가는 험한 길이 놓여있다. 누구나 답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조진주 작가의 소설은 그 길 위에서 담대하게 견디고 싸우는 힘을 준다.

 

주말에 많은 장맛비를 뿌리고 남하했던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을 할퀴었다. 집이 무너지고 삶이 파괴되었다. 그 어둠의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분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방울이 튄다. 삶과 세상에 걸쳐있는 어두운 장마전선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물러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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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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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류정호 지음

 

K가 아침부터 외출준비를 한다. 폭설 뒤에 닥친 강추위가 K의 아픈 허리가 공격했다. K3년 전에 부러진 허리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K는 허리 통증을 견뎌내고 있다. 걸을 때 허리 통증이 무릎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이제는 다리도 아프다. K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는다. 겨울의 끝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류정호님이 쓴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당뇨병으로 신장(콩팥)이 나쁜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하며 겪은 고통을 쓴 책이다. 이 책에 있는 혼인서약을 천천히 읽었다.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수십 년을 화성과 금성에서 따로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다시 수십 년을 갈등하며 인내를 배웠고, 인내는 수행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익혀온 수행은 끝내 희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충돌과 갈등 속에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내어주고 받아들던 순간들이 35년 세월의 강을 이루었다.”

 

푸르던 5, K와 나의 결혼식 주례 선생님은 고향 중학교 은사였다. 그 분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믿고 존경하며 살아야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느덧 26년이라는 흘러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다. 우리의 혼인을 지켜보시던 은사님과 두 분 어머님 모두 이제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세월은 이토록 빠르고 허무하다. 이제 누가 우리의 남은 삶을 지켜볼까. 하나 뿐인 자식도 멀고 먼 타국에 있다. 삶은 그저 슬프다.

 

결혼 3년 만에 성조에게 당뇨병이 생겼다. 당뇨병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걸리는 부자병이고 아주 무서운 병이라고 스쳐 듣기만 했던 생소한 병명이었다. 금쪽같은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며 새벽마다 기도하던 엄마에게 막내 사위의 당뇨병 소식은 벽력과 같았다. 당뇨병은 엄마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죽을병이었다.”

 

당뇨병은 오랫동안 삶을 괴롭혔다. 혈당이 정상 수치보다 높은 당뇨병은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당뇨병으로 혈압이 높아지고, 급기야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망가진 신장으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신장 이식을 받아야만 한다. 결국 류정호님은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한다.


혈연의 관계가 아닌 부부에게는 여러 변수가 있어 이식의 절차가 순조롭지 않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식 전 1차 검사에서 혈액형에 문제가 없었고, 유전자 교차반응 검사도 음성 판정으로 이식 가능의 문을 열었다. 결혼 35년 만에 하늘이 정해준 천생연분임을 확인한 것이다. 천생연분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나. 우리 부부는 이식수술 후에 비로소 일심동체를 이룰 것이고, 끝내 동병상련의 길을 함께 걸어갈 천생연분이다.”

 

강추위를 뚫고 달려온 버스에 K와 함께 오른다. 마침 비어 있는 노약석에 K를 앉히고 엉거주춤 서서 천변을 달리는 차창을 본다. 겨울의 밑바닥을 견뎌내고 있는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 뒤로 우중충한 내부순환도로가 뻗어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 인연을 이루고, 천생연분 부부가 되었다. 세월의 세찬 강물이 삶 속으로 거칠게 흘러갔고, 삶은 늙고 병들고 말았다. 허리가 아픈 K를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차창으로 잿빛의 병원이 다가왔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한 후 류정호님은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것은 남편의 삶을 위한 죽음의 고통이다. 믿음으로 고통을 견뎌낸다. 사랑하는 남편의 병든 몸이 내 몸이기에, 신장을 이식하는 것이다. 사랑은 이 죽음을,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버스에서 내려 K의 손을 잡고 병원까지 걷는다. 매서운 바람이 삶을 후려친다. 우리의 푸르던 봄은 멀리 지나갔다. 이제는 눈보라치는 삶의 겨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병원 안은 따뜻했다. 물리치료실까지 K를 데려다주고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우리에게 남은 사랑으로 고통을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사랑이 있으면 겨울도 언제나 봄이다.

 

     류정호

 

복사꽃 피고

앵도꽃 피고

박새,

우짖는 봄바람에

복사꽃 지고

앵도꽃 지는데

 

사람아,아픈 상처 하나 있어

사는 일에 꽃 한 송이 피어남을 알지니

이 봄

슬픈 병 하나라도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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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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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이듬 –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김이듬 지음

 

 눈이 그치자 북극한파가 내려왔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출근길, 집을 나섰다. 꽁꽁 얼어붙은 어두운 길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마을버스 정류장에 방한복을 입고 모자를 덮어쓴 남자가 혼자 떨고 있었다. ‘영하 17라는 무서운 숫자가 마을버스 안내판에 찍혔다. 남자 뒤를 따라 오른 마을버스는 얼음처럼 싸늘했다. 겨울의 밑바닥을 달리는 차창으로 어둠이 흐른다.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손수건으로 땀을 자주 닦던 사람이었다. 나더러 외양이 주는 느낌보다 여리고 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평생을 생각했는데 그는 오늘만 말했다. 그는 꽃길만 걸으려고 했다. 꽃길이 끝나고 눈보라가 치자 그는 떠났다.”

 

 김이듬 시인이 쓴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이라는 책, ‘꽃길만 걸으려면 왜 따라왔니에 있는 글이다.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이라는 책을 읽고 김이듬 시인을 알았다. 이토록 나는 시인을 모른다. 시인은 삶과 세상의 어둠에 응시하며 울며 노래한다. 김이듬 시인은 5년 전부터 일산에서 책방이듬을 열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며 벌어놓은 돈을 다 날리고 건강을 해쳤다.


 “하여튼 돈을 모으기는커녕 그간 국내외 대학으로 강의를 다니며 알뜰히 모았던 돈을 다 날렸다. 10여 년 모은 돈이 반년 만에 다 사라졌다.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책을 주문하고 행사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인건비를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건강이 나빠졌고 스트레스성 탈모가 겹쳐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서도 되도록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질척거리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 승강장에 섰다. 매서운 추위는 지하까지 끈질기게 쫒아왔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와 바람을 몰고 달려온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안도 으스스 추웠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 썰렁했다. 마스크에 갇힌 사람들은 졸거나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책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 책은 팔리지 않는 동네책방에 쌓여있다. 가방에서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이라는 책을 꺼내 펼쳤다.


 “인문학과 예술을 나누는 소규모 공간은 소중하지만 사람 속으로 스며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책방이듬이 시인보호구역처럼 7, 8년 버틸 재간도 담력도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혼신을 다하지 않고 힘을 좀 비축할 것인가. 헤어질 것을 알고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미친 연인들처럼, 언젠가 죽을 것을 아니까 소용없는 일에도 하루하루 죽을 듯이 치열할 수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극단적인 걸까? 초가을 바람 불어 덜컹거리는 퍼런 철공소 문 담벼락에 머리를 찧으며 울던 밤이 지나갔다. 너무 세게 머리를 박은 걸까? 그 여파로 자신감과 의욕 저하, 수면 자애를 겪고 있다.”

 

 H지하철에서 내려 올라온 버스 정류장에도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추위에 벌벌 떠는 도시가 점점 어둠을 털어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앰뷸런스 소리가 도시를 찢어 발린다. 버스와 승용차가 이리저리 엉거주춤 앰뷸런스가 지나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앰뷸런스가 멀어지자 숨을 죽인 도시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우울하게 오른 버스 안에 희고 검은 마스크가 넘쳐났다. 코로나19가 유령이 되어 이 도시와 삶에 떠돈 지 벌써 1년이 가까워진다. 이 겨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작년보다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직 나는 살아있다. 3년 이상 책방을 유지했다. 망하거나 까무러치거나 도망치지 않은 건 많은 방문객과 초대 작가들 덕분이었다. 특히 책방을 자신의 공간만큼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코로나19에 잠식당하지 않고 다 털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곧 더 멀리, 더 낮은 곳으로 간다. 보증금과 월세가 낮은 변두리의 모서리로 가지만, 바닥을 쳤지만 지하실은 아니다. 이동하는 건 설레는 일이고 도전하는 건 작가의 책무라고 어제 일기에 적었다.”

 

 뱀 같이 굽은 터널로 들어간 버스가 어둠에 잠진다. 코로나19로 작년부터 일상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고, 재택 업무와 비대면 회의가 늘어났다. 삶에 만남이 멀어졌다. 도시의 삶은 유리 파편처럼 깨어지고, 집에 갇힌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얼마 전에 갔던 지하 책방에도 사람이 없었다. 삶이 깃든 오래된 책방이 문을 닫았다. 나에게도 책을 멀리하던 절망적인 시간이 흘러갔다. 터널을 벗어나는 차창으로 빛이 흐른다.

 

 “책방을 열고 가장 자주 왔던 이가 마음을 접고 떠났다. 우리의 마주침이 줄 무거운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거나 부드럽지 않은 살결을 만졌다. 그에게는 이제 다른 흥밋거리가 생겼다. 오늘 밤 내 울음소리는 참혹하지 않고 보통의 고양이 소리와 닮았다.”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매서운 거리를 걷는다. 메마른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추위에 떤다. 출근시간 빵집 앞에서 서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것이 오래되었다. 가난하게 늙은 노인들이 무료로 빵을 하나씩 받아 들고 도시의 변두리로 사라졌다. 돌아가신 어머니 같은 할머니 한 분이 웃으며 나에게 빵을 받으라고 했었다. 그 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올 것들은 돈 주지 않아도 온다. 밤이 그렇고 겨울이 그렇고 죽음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땐 아득했고 지금은 막막한 이들 앞에, 예열하지 못한 작은 방 안 추위처럼 가만히 사랑이 당도하기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모퉁이를 돌자 잿빛의 사무실이 보였다. 봄을 웃었던 길가 목련은 떨고 있고, 여름을 꽃피웠던 화단 속 백일홍은 짚으로 묶여있다. 겨울의 밑바닥을 지나면 봄이 다가오리라.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에 사랑이 올까. 죽음으로 멀어진 사랑이 나에게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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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
박초이 지음 / 문이당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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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 박초이 장편소설 문이당 삶과 세상의 원형감옥


 첫눈이 내리던 일요일, 창문으로 보이는 밖은 동화의 세계였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어릴 때 함박눈 속에서 뛰놀던 고향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하얀 세상과 아름다운 시간이 아련히 다가왔다 멀어졌다. 내리는 눈을 보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드르륵 핸드폰이 떨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였다. 일주일 전, K의 허리병이 도져 갔던 온천에서 코로나 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 집에서 가까운 X보건소 선별진료소 가는 길은 멀었다. 잿빛 하늘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X보건소 선별진료소 천막 안에 서있는 사람들 뒤에 엉거주춤 섰다. 그들의 얼굴은 불안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곧 내 뒤로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천막 밖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오래 기다린 후에 접수를 하고, 체온을 재고, 마지막 컨테이너 안에 들어갔다. 매일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의료인이 내 코와 입에서 검체를 앗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어둡고 잿빛이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몇몇 사람들과 회사에 비상연락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들이 오고 가고, 여러 상황들이 긴박하게 취해졌다. 밤이 불안으로 찢어져 내렸다. 밤은 긴 어둠에 잠겨버렸고,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깜박 졸다가 깨었는데,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밑바닥까지 잠겨있던 어둠이 물러가고, 강추위와 함께 날이 밝았다. 창문에 성에가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고, 격리된 삶도 싸늘했다. 오후 1시에 되어도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오지 않고, 여기저기서 걸려온 목소리들이 떨려왔다. 급기야 보건소로 간신히 통화 끝에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었다. 불안감이 조금 걷혔지만, 긴장으로 몰려온 피곤으로 푹 쓰러지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을 읽었다. 이 소설은 코로나19’로 어둠과 죽음에 빠진 지금의 삶과 세상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혈액원 출장 팀이 양천에 있는 부대에서 채혈을 마치고 보초병이 있는 군인별장인 용호별장에서 묵는다. 요즈음 매일 듣는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처럼 필리핀 치커 섬에서 발병한 바이러스 뉴스를 소설 속에서 읽었다.

 

 “채널을 돌리자 최의 손이 멈췄다. 치커바이러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치커 섬에서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개미를 먹는 습관이 있는데, 개미에 의한 바이러스로 추정된다고 앵커가 말했다. 증상으로는 설사와 구토, 복통, 가려움증이 수반되며 긁을 경우 출혈이 생긴다고 했다. 또한 심할 경우 몸이 붓고 급기야는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고 앵커가 전했다. 필리핀 당국에서 치커 섬을 봉쇄했는데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외교부에서 필리핀 여행 자제를 부탁했다.”

 

 양천 사람들이 지역 축제에 다녀온 후 치커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한다. 결국 전국적으로 치커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2만 명을 넘어선다.

 

 “뉴스에서 우리나라 확진자 수가 2만 명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모든 식당과 카페, 놀이시설은 영업금지를 당했다. 행사나 모임, 종교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으며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고속버스나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확진자가 천명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고 정부에서 발표했다. 외국 소식도 온통 비극적인 소식뿐이었다. 연일 확진자 수가 증가했고, 교통이 마비됐으며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치커바이러스 확산으로 혈액원 출장 팀은 대위에 의해 용호별장에 격리된다. 영천산을 뒤덮는 폭설이 내리고, 눈과 바이러스에 갇힌 용호별장은 원형감옥이 된다. 원형감옥에서 출장 팀은 치커바이러스처럼 무서운 대위의 광기를 견뎌야만 했다. 출장 팀 책임자 최는 치커바이러스 확진되어 죽음을 당하지만, 영미는 바이러스와 싸워서 살아남는다. 눈이 녹고 꽃이 피는 봄이 왔다. 부대 복귀 명령을 받은 대위에게서 풀려나 원형감옥을 벗어나는 출장 팀에게 두 번의 총소리를 들려온다. 원형감옥은 무너지고, 항체로 바이러스를 이겨낸 출장 팀은 집으로 돌아간다.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라는 소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자화상을 비극적으로 그려냈다.

 

 ‘코로나19’로 시작되는 성탄절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우리 부서 T와 접촉한 사실을 묻는 메시지가 오고, 곧이어 익명으로 어느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 내 주위에도 코로나19’가 가까이 와서 어둠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확진된 직원은 이제 조사를 받고, 격리를 당하고, 치료를 받아야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틀어놓은 뉴스에서 성탄절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대치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올해는 우울한 성탄절이 되고 말았다. 이제 삶과 세상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원형감옥이 되고 말았다.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라는 소설처럼 우리도 언제 코로나19’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다. 그 거울로 지금의 삶과 세상을 비쳐보며 어둡고 비극적이다. 벌써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이 8천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인구의 1%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소설은 이 어두운 바이러스 시대에 삶과 세상을 성찰하고, 길을 찾게 한다. 그 험난한 길을 소설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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