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최정수 옮김, 한명식 감수 / 안그라픽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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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건축의 대가가 쓴, 가본 사람이 읽으면 좋을 동방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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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최정수 옮김, 한명식 감수 / 안그라픽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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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나우 강을 따라가다가, 뒤이어 아드리아노플에서 검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뒤덮인 미케네풍을 발견했어. 전통은 대단히 끈질기게 살아남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에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는 오늘날의 괴벽보다 더 애통한 것은 없어.
(이 책, 28쪽, <라 쇼 드 퐁 작업실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르 코르뷔지에. 첨 듣는 사람. 책 날개 저자 소개에 따르면 무려 "근대 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 그리고 알라딘 저자 소개에 따르면 「타임」에서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100인' 중의 한사람이자 유일한 건축가! 그가 쓴 서방도 아니고 동방(!) 여행기라니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동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개인적인 느낌은,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더라!


르 코르뷔지에가 여행한 곳을 가본 후에 읽거나 건축(학)에 관심이 깊으면 좋겠다는 판단을 하면서 도중에 책을 덮었습니다. 저에게 보이지 않는, 저에게 보여주지 않는 장소와 건축물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와 생각을 읽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에는 (상상하시겠지만) 사진 한장 실려있지 않습니다.


     ▩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가보지 않은 사람은 읽어내기 힘든 여행기. ▩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좀 거칠게 표현해서, 여행지에 관한 르 코르뷔지에의 인상만 등장하는 여행기.


1. 저자는? 이 책은?

르 코르뷔지에, 1887년 스위스 태생, 본명 에두아르 자느레. 1911년 친구 오귀스트 클립스탱과 함께 소위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건축 사무소(페터베렌스)에서 설계사로 일하던 24살의 청년, 장차 "근대 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 소리를 들을 청년.
 
그런 그가 1911년 5월부터 10월까지 보헤미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같은 동방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의 건축(물)에 관해 받은 인상과 느낌을 적었다. 그 중 일부가 한 지방신문에 게재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것을 살려 1914년 「동방여행」이라는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었으나 세계대전으로 한번 밀리기 시작한 출간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러다 1965년, 여행한지 54년이 되던 해에, 르 코르뷔지에는 원고를 수정하고 주석을 붙여 출간을 결심했다.

이 책은 그렇게 50 여년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책이다.
(  이상은 이 책의 차례 앞에 서술된 (서술자 불명의!) 책 소개에서 fact를 주로 참고한 것. )
 
 
2.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흥이 없는 책.

우리는 밤이 되었을 때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틀 내내 실망을 느꼈다. 오, 무척이나 심하게, 결정적으로! 베오그라드는 부다페스트보다 백배는 더 어정쩡한 도시였다! 사실 우리는 '동방의 문'다운 도시를 상상했었다. ... 그러나 베오그라드는 최악의 수도, 상스럽고 불결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였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처럼 볼거리는 많았다.
(61쪽, <도나우 강> 에서)

좀 거칠게 표현해서, 이 책은, 여행지에 관한 르 코르뷔지에의 인상만 등장하는 여행기라고 말하면 어떨까 싶다. 사진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 지역 혹은 그 건축물에 관한 사실적 묘사도 없이 주로 인상만 적는다. 그곳을 가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전혀 감흥이 없다. 사실 이 여행기를 처음 쓴 것이 1911년이니, 타임머신을 이용하지 않는 한 그곳을 가볼 수도 없다.

베오그라드에 가본 적도 없다. 베오그라드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베오그라드에 대한 위와 같은 인상과 평가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어쩌면 베오그라드에 가본 적이 있거나 운이 좋아서 20세기 초에 베오그라드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 혹은 반대라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기가 그곳을 다녀온 사람에게만 감흥을 일으킨다면 말이 되는 걸까.

이 책은 처음부터 쭈욱 이런 식이다. 독자로서 참 난감하다.
 
 
3. 번역자의 오독 혹은 오타?

루이 14세 풍으로 지은 매우 웅장한 쉰브룬 궁전... (40쪽)
오래된 프랑스풍 공원이나 쇤브룬 궁전, ... (45쪽)   * 강조는 비프리박

쉰브룬과 쇤브룬, 도대체 어느 게 맞는 걸까. 짐작으로는 쇤브룬이 맞을 거 같긴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같은 책 안에서 다르게 적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둘은 서로 다른 곳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단순한 오타? 출판사 편집부의 존재 근거는?
 
 
4. 리처드 세넷의 르 코르뷔지에 평가.

르 코르뷔지에는 거리 생활을 적대시했다. 잘해봐야 지저분한 잡동사니일뿐더러, 잘못되면 건축에 쓸 대지를 난장판으로 망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1920년대 파리 시의 르마레(Le Marais) 지역 지자체로부터 의뢰받아 설계한 '근린 계획(Plan Voisin)'은 지역 내 거리와 주거공간을 싹 밀어버리고, 순수한 교통흐름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리처드 세넷, 장인, 376쪽에서)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책 「장인」의 저자 리처드 세넷의 평가다. 근대 건축의 대가이긴 하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책 「동방여행」에 대해서도 어떤 대가의 혹평이 존재할 것만 같다.) 이에 대한 중화(?), 객관적 평가를 위해 르 코르뷔지에를 좋게 평가한 소개글을 덧붙여본다.

" 1965년 7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30여 개의 크고 작은 건축, 도시 작품들을 계획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인 100여 개의 작품이 실현되었다. 실현된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빌라 사브와이에(Villa Savoye, 1928~1931), 마르세이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1946~1952), 노트르담 뒤 오 순례성당(chapelle Notre-Dame-du-Haut, 1950~1955), 라 투레트 수도원(couvent Sainte-Marie de la Tourette, 1953~1960) 등이 있다. "   (알라딘 저자 소개에서)

"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척도로 삼는 모듈을 고안해 실제 건축에 적용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국제연합본부, 위니테 다비타시옹, 롱샹 성당 등이 있(다). "   (책 날개 저자 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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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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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인류사의 장인, 일, 노동, 손에 관한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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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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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 ... 당시 청년기의 내가 [한나] 아렌트 앞에서 펼치지 못했던 주장, 사람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또한 물질문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다. ...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일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에 희망을 거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 물질적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잘 알게 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 책, 25쪽, <프롤로그>에서, 리처드 세넷의 말)

진도가 잘 안 나가지만, 그 정도로 내용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이 있죠. 제 관심 영역에 드는 책이거나 저자의 생각이 신선하거나 제 생각과 비슷한 책인 경우에, 어려워도 끝까지 읽고 싶어집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이 바로 그렇습니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고 싶다!!! ^^ 


   ▩ 리처드 세넷의 경이로운 연구! 인류사에 나타난 장인, 일, 노동, 손의 긍정. ▩

 

Richard Sennett, Craftsman. 읽는 내내 동의하고 공감하고 감탄한 책.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거까지 찾아내고 분석할 수 있을까.
 

1. 서평 쓸 엄두가 나지 않는 대작.

리처드 세넷의 이 책은 주욱 읽는 동안 그저 동의하며 공감하며 감탄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거까지 찾아내고 분석할 수 있을까. 차분하게 한줄 한줄 적어내려가지만 그 무게는 가히 산의 무게로 다가오는 내용의 연속!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이런 즐거움도 동반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서평을 적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입니다. 지금 적고 있는 글이 서평이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써온 바와 같은 서평은 적기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고작 이제 어떤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 자가 그 세상에 관한 제대로된 후기를 적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이런 저런 생각과 인상 정도를 기록하는 데에 만족하렵니다.


2. 리처드 세넷, 이 저자, 누군데 나를 이렇게 끌어들이지?

무슨 '물건을 잡는' 동작을 취하려면, 먼저 [대상]을 향해 손을 뻗어서 접촉해야 한다. 흔히 하는 일로 유리잔을 잡을 때 우리의 손은 유리잔에 손이 닿기 전, 잔을 감싸 잡기에 적당하도록 둥그런 모양을 취하게 된다. 우리 몸은 손에 쥘 물건이 얼마나 차갑고 뜨거운지 알기 전에 미리 쥘 준비를 한다. 이처럼 감각 정보를 획득하기 전에 몸이 미리 준비해서 움직이는...
(250쪽, <5장 손>에서)

리처드 세넷은 이 책 「장인」을 접하기 전까지 몰랐던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저자, 누군데 나를 이렇게 끌어들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해당 도서 페이지도 훑어보고 웹 2.0 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검색해봤습니다. "뭐야,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 제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다른 책들을 뒤적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을 받은 저작물들이 줄을 섰군요.

위키피디아에서 세넷을 소개하는 인상적인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Sennett is probably best known for his studies of social ties in cities, and the effects of urban living on individuals in the modern world."
(세넷은 아마도, 도시에서의 사회적 연대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도시생활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리처드 세넷의 책으로 더 읽고 싶은 책 세권이 줄을 섰습니다. (국내 번역서 제목 기준.)
-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1998년 원저출간)
-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2003년 원저출간)
- 뉴 캐피털리즘 (2006년 원저출간)


3. 인상적인 대목 하나. "장인이 되는 데에는 적어도 1만 시간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통상적인 기준이다. ... 이 숫자는 복잡한 기능을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몸에 배게 하는 (즉 암묵적 지식으로 체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자들이 추정한 결과다. ... 매일 연습해서 10년 동안 1만 시간을 채운다고 하면, 하루 세 시간 꼴로 연습하는 게 된다. ... 중세 때 금세공 일을 배우는 도제에 적용해보면, 견습 기간이 7년이었으니 매일 다섯 시간 좀 못 되게 의자에 붙어 앉아 일을 배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루 다섯 시간이면 흔히 알려진 작업장 전통과 잘 들어맞는다.
(278쪽, <5장. 손>에서)

고개를 끄덕인 대목입니다. 공감합니다. 어느 분야에서, 어느 기술에 대해서, 어떤 특정 기능에 있어서, 전문가 혹은 장인 소리 듣기 쉽지 않지요. 그것은 수사적 표현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서 1만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 1만 시간이라는 숫자가 세넷의 추론으로 보나 인용문의 생략된 부분에서 제시되는 연구 결과로 보나, 현실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 우리가 흔히 쓰는 "10년 공부"라는 말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겠지요. 물론, 하루 투자 시간을 늘린다면 10년은 줄어들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
 
 
4. 잘된 번역, 매끄러운 번역, 재치있는 번역.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궁금증으로 번역자에 대한 궁금증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상당히 난해한(?) 내용으로 치부될만한^^ 이 책을 어찌 이리 매끄럽게 번역을 잘 했는지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원문을 되짚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습니다. 잘된 번역이라 할만 합니다. 일일이 원문과 대조해 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나가는 데 있어서 무리가 없는 매끄러운 번역입니다.

번역자 소개를 봤습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의 소유자더군요. 번역이란 것이 학력과 경력으로 하는 게 아니지요. 학력과 경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발로 한 듯한 번역'을 선사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이와는 반대로, 번역자 김홍식은 이 책의 번역에서 그의 학력과 경력의 화려함을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는 매끄러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번역은 학력이나 경력과는 무관하다!

재치 있는 번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살짝 인용해 봅니다. ^^

마스터가 가르쳐주는 대로 도제는 물 먹는 하마처럼 배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292쪽, <6장 말로 가르쳐주는 표현>에서)   * 밑줄은 비프리박.
 
 
5.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번역본의 구성과 누락.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들어가서 확인했습니다. ( 보러가기 )
책을 읽으며 제 머리 속을 어지럽혔던 의심은 현실이었습니다.

☞ 역자의 글 - 프롤로그 - 차례 - 본문 - 에필로그 - 감사의 글 - 주석.

역자의 글 위치가 너무 앞입니다. 솔직히 이건 원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차례의 위치는 너무 어중간합니다. 에필로그가 끝나고 36쪽에 차례가 등장합니다. -.-;
감사의 글은 원저의 순서를 따라 프롤로그 앞에 왔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원저에 있는 저자가 "○○에게" 바치는 헌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저자의 글귀 "travail, opium unique"는 왜 누락된 것일까요.
한 가지 더! 원저에 분명히 실려 있는 색인(index)이 우리말 번역서에는 왜 빠진 걸까요.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도 영 아니지만 사소하다고(?) 이렇게 빼먹는 건 정말 아니죠.

대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원저 그리고 멋진 번역에 이렇게 스크래치를 내다니!
출판사와 번역자의 세심함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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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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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빠듯한 일정에 따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긴다. 가이드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후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 파리의 외관만을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호흡만 늦추고 숨을 고르자. ... 과감하게 에펠탑이나 루브르를 포기해보자. ... 남들이 에펠탑과 루브르를 이야기할 때 혼자만 겪은 여행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그냥 지나쳐버린 파리를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 253-254쪽, <파리에서 휴식을 - 파리에서 정원을>에서)


1. 파리는 깊다?

'파리는 넓다'도 아니고 '파리는 깊다'라니? 일단 책 제목이 제 관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저자 고형욱의 소개도 관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영화기획자, 와인평론가, 음식비평가, 여행 칼럼니스트, 그리고 고등백수?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가'라는 소개가 그랬습니다. 뭔가 정형화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의 책보다 이런 자유로운(?) 직함의 소유자들이 쓴 책이 더 호감이 가는 때가 있지요.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가 그랬습니다.  

이 포스트 도입에 인용한 것 외에도, 고형욱은 이 책의 취지 비슷한 걸 책의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저 또한 크게,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여행의 원칙입니다.


남들이 다 아는 파리가 아니라 약간 다른 시각으로 파리를 느낄 수는 없는 걸까. 대부분의 관광이란 도시의 외관을 둘러보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서 약간만 더 들어가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예정된 코스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자.
(8쪽, <머리말>에서)
 
 
 
2. 파리의 설명에 종횡무진 동원되는 문화예술사적 사실의 매력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센 강 위에는 모두 서른 일곱 개의 다리가 걸려 있다. 2006년 마지막으로 생긴 다리에는 프랑스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이름이 헌정되었다. 베르시와 국립도서관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는 차가 다니지 못한다. ... 차량 통행이 금지된 다리들 중에서는 퐁데자르 다리가 가장 유명하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사르트르의 초상 사진을 이 다리 위에서 찍었다. 대화를 나누던 사르트르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파이프를 만지작 거린다.
(291쪽, <강이 만든 도시 - 파리의 섬과 다리>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그리고 관심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한두번 들었을 법한 사람들, 문화예술사적 인물들이 고형욱의 파리 설명에 동원되고 등장합니다. 예컨대, 시몬 드 보부아르도 알고 사르트르도 알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안다 하더라도 위에 인용한 것처럼 파리의 다리와 연결지어 설명하기는 쉽지 않죠. 이런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구요. 이 같은 문화예술사적 사실(史實)이 동원되는 매력적인 파리 설명이 이 책의 전체를 수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여행의 한축 맛집기행은 파리 여행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

미식가라면 최고급 레스토랑의 이름 몇 개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미슐랭 스리 스타'로 알려진 레스토랑들이다. ... 그러나 고급 식당은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있다.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감수해야 한다. 만찬이 기본 300유로가 넘는다. 이렇게 파리에서 최고급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 10분의 1 가격으로 파리를 즐겨보자. 40유로 이내에 세 코스의 정찬을 즐길 수 있는 집을 찾아서. ... '값싸고 맛있는 집'들을 찾아보자. 뒷골목에 숨어 있는 파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295쪽, <식당을 순례하는 법 -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2010년 9월 11일 현재, 원-유로 환율은 약 1485원입니다. 갑부가 아닌 이상 아무리 해외여행 중인 파리에서의 만찬이래도 300유로(약 45만원)을 지불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돈을 내고 맛난 음식을 못 먹는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테구요. 고형욱은 이 가격의 대략 10분의 1 가격으로 파리에서 '값싸고 맛있는 집'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죠. 값 비싸고 맛있는 집은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값싸고 맛있는 집은 경험자만 찾습니다. 고형욱은 이 책의 2부에서 그런 식당과 카페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일부?) 적고 있습니다.
 
 
 
4. 가보고 싶은 곳이 줄줄이 생겨나는 여행의 뽐뿌

[아마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는 영화 속 사랑을 꿈꾸는 쪽지들이 붙어 있다. 낭만적 사랑이 자신의 운명이라도 되는 양 만남을 기약하는 메모들이다. 관광객들은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면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사진과 연락처, 짧은 메모를 남기고 ...
(244쪽, <책들의 도시 - 파리의 서점들>에서)

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은 독자에게 여행의 뽐뿌를 일으킬 때 본분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서 고형욱은 자주 혹은 가끔^^ 손에 잡힐 듯이 또는 매우 친근하게 파리의 어떤 곳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강렬한 유혹이 되어 독자에게 여행의 뽐뿌를 일으킵니다. 위에 인용한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 & Company)}에 관한 묘사가 그랬습니다. 마치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에 호기심이 마구 동한다죠. 파리에 가면 꼭 이 서점에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 만큼. ^^
 
 
 
5. 사진을 좀 싣지, 하는 아쉬움

보주 광장은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40미터인 정방형 건물이다.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이 초록 나무들로 생기가 돈다면 이를 둘러 싸고 있는 건물 외관은 빨간 벽돌로 품위를 갖추고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컬러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 광장에 세련된 풍모를 부여한다. 중앙에 울창하게 심어진 거목들 주위로 잘 다듬어 조경을 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210쪽, <400년의 도시 - 파리의 구(區)들>에서)

위의 4항에서 적은 것과는 반대로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머리 속에 그려질 듯 그려질 듯, 안개 속 부연 형체 마냥,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묘사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제 상상력이 부족한 건지, 말로 하는 설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사진을 좀 싣지!"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은 저작권 관련해서 게재가 어렵다 하더라도 건물들(예컨대 위에 적은 보주 광장 같은 곳들)은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출판사 혹은 저자한테, 책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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