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트리스
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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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소설은 대부분 인간의 욕망을 화두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욕망이라는 것의 외연이 인간의 삶 모든 것에 걸쳐있는만큼 어떤 소재도 욕망과 관련이 없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만, 보다 노골적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욕망에 대해 파고드는 경향을 보게 된다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철학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보이는 이런 경향은 이 소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아직 국내에 개봉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만 이 책은 영화의 원작으로 유명세를 타는 케이스인가 싶습니다. 원제 대신 영화의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데요. 보통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는 소설을 보고 나면 영화가 재미없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괜찮을지 괜한 걱정을 해보게 되는군요.



소설의 중심에는 단 한 알만 먹으면 뇌의 기능이 100%로 발휘되는 신비로운 약 MDT-48이 있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막혔던 편집작업도 술술, 불어든 이탈리어든 외국어도 술술, 심지어 생전 알지 못했던 교향곡 악보 속의 콩나물 대가리들도 감동의 선율로 머릿속에 재생되게 됩니다. 당연히 주식투자로 떼돈 벌기도 아~주 쉬운 일이지요. 물론 이 약, 위험한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는 약입니다. 약 자체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요. 하긴 그런 것 없이 소설이 스릴러가 될 순 없겠지요? 이 작품의 두 축 중 하나는 만능약이 가져다주는 쾌감과 유쾌함을 간접체험하는 것, 또 하나는 스릴러 본연의 짜릿함이 되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만능약의 효과를 한껏 즐기는 주인공을 통해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쪽이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이런 약 한번쯤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약은 오직 희소할 때만 유의미하다는 것이지요. 욕망이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 잘 드러내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되네요. 스릴러적인 재미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전개가 빠르고 시각적 느낌이 강하여 영화화된 것도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가 개봉되면 한번 보러 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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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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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모두가 모두에게 타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출구 없는 고독에 빠져든다. 스스로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삶을 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고독에 따라잡히고 말테니까.. 역설적인 제목은 책을 읽기도 전에 불안함을 드리운다.



70년대 최인호를 널리 알렸던 [타인의 방]을 바탕에 깔고 작가는 새로운 책을 써냈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회는 변화했고 작가도 성장했을 터... [타인의 방]이 던졌던 화두가 어떤 식으로 성장했을지 기대하게 된다. 오정희 님의 소개대로 깊고 넓어진 작가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을까? 특히나 오랫동안 역사소설을 써왔고 [잃어버린 왕국], [상도], [유림]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현대소설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이 투병 중에 쓴 책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무언가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울리지 않았어야할 자명종이 울려 잠에서 깼고 입고 있어야 할 옷이 벗겨져 있으며 늘 사용하던 스킨이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살을 맞대고 사는 아내가 낯설고 낯설어 섬뜩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질감은 현실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다. 우연히 발견한 흰머리 한가닥처럼, 낯설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감이 존재하는 것. 변질된 것은 사회인가, 혹은 나 자신인가?



이질감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제목부터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키며, 갑작스런 세계의 변모라는 소재 역시 동 영화를 상기시킨다. 아니나다를까, 작가는 소설 속에 영화를 등장시킨다. 그가 이질감을 느낀 출발점에 이 영화가 하나의 실마리로 놓여있다. 이 실마리를 따라가면서 작가는 천변풍경 속의 인물처럼 여러 인물을 만나고 여러 장소를 떠돌며 답변을 찾아내고자 한다.



바뀐 것은 세계인가, 자신인가... 그 답변이 희미하게나마 제시되는 시점부터 소설은 현실에서 벗어나며 강력하게 관념적인 색채를 띈다. 철학적, 종교적인 사유가 차가운 냉동육과 같은 어조로 전개되고 그는 세계의 이치에 대해 눈을 뜬다. 그 이치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이 정말 끝인지, 아니면 순환의 한 부분인지 답변은 독자가 내릴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소설의 힘은 여러 역사소설을 통해 보여주었던 작가의 서술능력이 한껏 발휘된 결과인 듯하다. 마지막 부분의 꼬임은 왠지모를 작위적 느낌도 안겨주지만,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낯설음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한다. 섬뜩함과 흥분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독특한 책이 아니었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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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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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과 [담비사 모요]라는 독특한 이름의 저자가 눈에 띄는 책이다. 현재 세계최강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내외적 위기론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요즘, 이런 시세에 부합하여 이런저런 분석서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현 문제점을 짚어보고 있다. 비록 근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최고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이런 극단적인 제목의 책을 내게 된 것일까?

독특한 제목의 이면에는 저자의 특이한 출신이 자리잡고 있다. 아프리카의 극빈국에 태어났으나 노력 끝에 미국의 최고 교육을 받는 행운을 얻어낸 저자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두 가지 눈을 가지고 사태를 지켜볼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셈이다. 그러한 저자가 던지는 문제제기는 어떤 것들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이 붕괴하는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선 미국이 계속적으로 정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EU 등 새로운 세력들이 일어나면서 미국의 지배에 강력하게 도전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미국이 앞으로도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경제붕괴는 우리의 경제 불안정과 같은 맥락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버블경제에서도 대두되었던 문제, 부채 증가로 인한 경제 건전성의 저하가 우리와 미국을 차례로 쳐왔다는 이야기는 새삼 섬뜩한 시나리오다. 더구나 힘든 일은 기피하고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 노동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미국의 경제를 좀먹고 있다는 통찰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사실 대단히 뛰어나보이지는 않는다. 문제 제기 자체가 해법을 제시한다고 해야겠으나 동력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해법이 보여도 주체들에게 그것을 실행할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결을 해낼 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을 방향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미국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기에 감수하며 읽어야할 불편한 부분도 없지 않으나, 외부인으로써도 충분히 귀기울여볼만한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만큼 일독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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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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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한 느낌의 표지가 눈을 끄는 소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입니다. 제목도 제법 독특하죠? 굳이 저녁 먹고 나서 수수께끼 풀이를 해야할 이유는 무엇일가 생각하게 되는데요. 젊은 작가가 쓴 소설로써 트릭 위주로 쓰여진 경쾌한 추리소설임을 암시하는 적절한 표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점 직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여 점차 인기를 끌었다는 독특한 이력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일단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입니다. 재벌 2세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형사로 일하고 있는 여주인공은 솔직하지만 가끔 어이없는 빈틈을 엿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상사 역시 재벌가의 아들임에도 형사로 일하고 있으며 가볍기가 종이 한쪽 무게인 사람입니다. 부끄러움과 염치란 일찌감치 어디다 팔아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죠. 마지막으로 작품의 남주인공, 야구선수였으나 은퇴 후 여주인공의 집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여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추리의 천재죠. 단, 결정적인 단점이 있어 여주인공의 존경보다는 짜증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 결정적인 단점이란 여주인공의 멍청함(?)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지적질해댄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주인공이 딱히 멍청하지는 않습니다만 천재의 눈에는 범인이란 다 바보처럼 보이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 솔직한 지적에 매번 폭발하면서도 결국 어려운 사건에 맞딱뜨리면 굴욕을 무릅쓰고 다시한번 집사에게 매달리는 아가씨의 모습이 꽤 귀엽습니다.



결국 탐정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집사라 할 수 있는데요, 그의 추리방식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미스 마플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아가씨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낮에 있었던 사건의 미스테리한 점을 집사에게 들려주면, 집사는 그 이야기만으로 즉석에서 사건의 트릭을 통찰해내는 방식인 것이지요.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인지는 아시겠지요?

철저히 트릭 풀이에 집중하는 책이니만큼 짤막한 단편들이 이어지는 방식을 택한 것은 현명했다고 보입니다. 부담없고 경쾌하게 트릭풀이만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인과를 확정짓는 추리 방식은 지금에 와서는 독자에게 호소하는 면이 많이 줄어들었다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감탄하고 경탄하며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이는군요. 저녁식사 후에 가볍게 머리를 굴려보고 싶은 추리소설 애독자에게 즐거운 후식이 될 법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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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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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라는 소설은 37년 전에 중편소설로 출간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본래 장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상황상 중편으로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고 그러한 아쉬움을 풀고자 이번에 장편소설로 개작하였다는군요. 37년전이면 작가가 30대의 문턱에 들어섰을 즈음이려나요? 아직 젊었던 시절, 작가의 생각과 지향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소설이라 하겠네요.



소설은 일제 말부터 한국전쟁을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플롯 자체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의 물결에 무력하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한 연약한 여인의 소위 '뒤웅박 팔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17세의 어린 나이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에 일본인 순사의 노리개가 되어 아들을 하나 얻습니다. 곧이어 광복이 되자 홀로 된 여인은 과거를 숨기고 한 남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습니다만 이 남자는 공산당원이었고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홀로 북으로 떠나버리죠. 그 후 첩자혐의로 곤욕을 치르던 중 만나게 된 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다시 한번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미군 역시 떠나버리고요. 여인은 힘들게 힘들게 세 아이들을 홀로 키워냈지만 장성한 자식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눈물과 아픔을 깨닫기에는 자신들의 슬픔에만 눈멀어있을 따름이고요.



화자가 여인이니만큼 이 소설에는 여성의 눈으로 보는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찌보면 순진하면서 소박하지만 그만큼 마음을 찌르는 진실을 드러내주지요. '그거 한마디로 하자면 남자들이 못나서 그리 된 거 아니니? 여자들은 다 집에 처박혀 있었고, 나라는 남자들이 다스렸으니까'라는 말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겪었음에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멍청한 남자들이 아직도 많고 많으니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네요.



중간중간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은 비록 등장인물의 눈을 빌렸습니다만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열기가 묻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먼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대신 국내에서 왜놈들을 하나씩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린다면 결국 독립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은 너무 순수하면서도 잔혹하여 마음을 복잡하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치기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만약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 더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그런 치기도 아름다운 꿈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작품은 주인공 점례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나 국가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주관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랬듯이 이러한 서술 방식은 한편으로는 더욱 진실함을 더해주지요. 볼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좁은 주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민중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 역사의 흐름이 규정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작가의 일관된 역사관과 관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가치를 믿고 그에 기대 우직하게 살아 생을 이어가는 것이 민중의 힘일 것입니다. 그러한 민중의 힘에 대해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그러한 삶의 모습은 분명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오래 전 소설의 개작이기 때문일까요? 다소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고 투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작가의 진심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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