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메리의 아들 밀리언셀러 클럽 73
아이라 레빈 지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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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몰랐습니다만 '악마의 씨'라는 공포영화계의 대작이 있다고 합니다. 감독이 무려 로만 폴란스키이니 무리도 아니겠다 싶은데요, 그렇다곤 해도 상당 부분 원작에 힘입은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 원작이 바로 '로즈메리의 아기'랍니다. 이 책 '로즈메리의 아들'은 대략 20년만에 나온 후속작이었다고 하고요. 그렇다곤 해도 신작은 아니고 1997년에 출간된 책이 재간된 것이라고 합니다만...

 

 상관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악마의 씨'에는 저주에 가까운 일화가 있더라고요. 감독의 아내가 영화가 출시된지 1년 쯤 뒤에 악마 숭배자들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인데요, 알고 보면 영화랑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악마 숭배자들이 멍청한 착각을 하는 바람에 엄하게 살해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신기한 일이기는 하죠.

 

 아무튼 전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인터넷에 힘입어 줄거리는 파악하고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다. 워낙 유명한 책의 후속작이라니 기대하는 맘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고요. 책은 로즈메리가 30년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탄의 아이임을 알고서도 모성애에 굴복하여 아들을 키우던 로즈메리는 악마 숭배자들의 농간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죠. 깨어나고 보니 어린아이였던 아들 앤디는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교황 이상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죠. 아들과의 재회에 기꺼워하는 로즈메리입니다만, 앤디가 과연 겉보기대로 선량하고 훌륭한 인물로 자라난 것인지 내심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비록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까지 앤디가 타락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보호했습니다만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 불안을 부추기듯 앤디는 로즈메리를 어머니가 아닌 여성으로 보고 위험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앤디를 보좌하는 여러 인물들도 무언가 이상한 구석이 있고요. 그러던 와중에 앤디의 내연의 연인이 끔찍한 살해를 당하면서 사건이 고조되는데요...

 

 말하자면 종말론을 근간에 둔 소설이라고 하겠는데요, 마지막에는 여러모로 상당히 파괴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졸작입니다. 왠만하면 읽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책이에요. 단락을 끝낼 때마다 독자가 불안을 느끼도록 유도해내는 기법은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것을 빼고는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선 주인공은 물론 매력을 느낄만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고요, 사건의 흐름도 전혀 무맥락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호흡도 엉망이고요. 사탄이 등장한 이후로는 정말 실망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정도입니다. 결말의 반전에서는 전작과 연계하여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만들어보려는 작가의 야심이 엿보입니다만 글쎄요... 자기완결 구조는 충분히 거대하고 정교한 짜임새에 기반하지 않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뿐이지요. 작가가 결말을 내기가 귀찮아서 결말이 필요없는 구조를 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은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사랑하는 시리즈인데요, 왜 이런 신뢰가는 시리즈에서 이 책을 클럽원으로 택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오점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될 따름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이제 '악마의 씨'도 보고 '로즈메리의 아기' 책도 읽어볼 계획인데요, 전작이라도 훌륭해야 덜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20년만에 내는 후속작을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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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아들 1 - 마녀의 복수 일곱 번째 아들 1
조셉 딜레이니 지음, 김옥수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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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이 되면 아무래도 미스테리 스릴러 계열의 소설이 끌리게 마련이죠. 그래서 출판계에서도 여름철을 스릴러 대목이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마침 묘한 제목과 섬뜩한 표지가 눈길을 끌어 척 읽기 시작한 책 '일곱 번째 아들'입니다. 다만 제가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것이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이었네요. 해리포터를 필두로 했던 청소년 판타지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중세풍의 분위기를 풍기며, 유령과 마녀가 등장하는 호러형 판타지에 속하고요. 이렇게 예상과 다르면 아무래도 첫단추를 잘못 꿴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요..



서양 전승 중에 일곱 번째 아들이 낳은 일곱 번째 아들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책의 주인공인 톰이 바로 그 일곱 번째 아들입니다. 가난한 집이기도 하고 독특한 출신이기도 한지라 톰은 집을 떠나 유령 사냥꾼의 도제로 일을 배우게 됩니다. 유령사냥꾼으로부터 유령, 보가트, 마녀 등의 적들에 대한 지식을 배우게 되는데요, 시리즈로 이어지는 이 책 1권의 적은 멀킨이라는 강력한 마녀입니다.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이 마녀를 실수로 풀어주게 된 톰이 마녀사냥꾼과 마녀 견습생(?)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마녀를 처치하는 내용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사실 소설이라는 것은 이렇게 줄거리를 요약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죠. 상황에 따라 줄거리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놓치게 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 줄거리로 끝입니다. 단순해도 너무 단순해요. 마녀나 보가트 등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함에도 악당 이상의 기대감을 가지기 힘들고, 유령사냥꾼의 고충 토로나 학대받은 소녀 앨리스 역시 지나치게 평면적입니다. 주인공의 결단과 행동력도 우왕좌왕 이상으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고요. 대상 독자를 감안해서 의도적으로 단순화시켰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이 정도 묘사력과 플롯이라면 10대만 되도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해리 포터나 대런 섄과 같은 책과 비교해봤을 때 비교우위로 눈에 띄는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쉽기만 하군요.



뒤늦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상도 제법 받았고 무엇보다 영화화도 이루어져 올해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이러니 혹시 지나치게 나만의 눈으로 읽어낸 것은 아닐지 약간 걱정도 됩니다만 글쎄요... 이 책이야 어쨌든 시리즈물로서 일곱 번째 아들이 매력을 가지게 되는가는 전적으로 2권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곱 번째 아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톰을 유령사냥꾼으로 키워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톰의 아버지와 결혼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톰의 어머니는 과연 정체가 무엇일지, 그리고 주인공을 여난에 시달리게 할 것이 확정된 앨리스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가 2권에서부터 잘 풀려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리즈물 1권이 주로 설정으로 기능하고 그 요소를 살려내어 갈수록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낸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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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우주 - 인간 삶의 깊은 곳에 관여하는 물리학의 모든 것
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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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펼칠 때는 물리학에 대한 교양 입문서를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돌이켜보면 이 책은 오히려 한 물리학자의 신앙고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 닐 투록은 자신이 늘 우주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있을 정도인데요, 생각해보면 '우리 안의 우주'라는 제목부터가 저자의 그러한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네요. 우주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뿐더러, 그렇게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자체가 경이로운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책의 시작도 저자 자신의 개인사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감옥에 갇힌 아버지의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결국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져내리게 된 것은 '훌륭한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된다고 말합니다. 현대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이러한 훌륭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넓고 길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 눈 안에 우주를 보는 인간의 눈이 빠질 수 없는 일일 테고요.



물론 물리학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빠진 것은 아닙니다. 우주론을 중심으로 한 물리학 이론의 역사가 뒤를 잇고 있거든요. 고전 물리학에서 출발하여 양자론, 아인슈타인, 끈이론까지 물리학의 역사가 간결히 요약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서술이 되고 있는지라 과학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의 여백이 상당히 많은 편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매력적인 것은 디지털 혁명을 거친 우리 세계의 미래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해갈지, 그리고 그 안에서 과학과 인간의 자리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 가늠해보는 마지막 챕터였습니다.



여러모로 과학교양서라기보는 과학철학서에 가까운 인상을 받은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가치관과 과학적 내용이 신기하게 잘 버무려져 있었고요, 이해가지 않는 부분을 빼고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00쪽이 넘는 책입니다만 편집을 워낙 넉넉하게 해두어서 줄간격 줄이고 폰트 조절하면 실제로는 200쪽 정도나 될까 싶은 분량이기도 하고요.) 물리학계의 석학의 머릿속 세계는 어떤지, 느긋하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둘러볼 수 있는 책이 아닐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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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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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 소설은 재미라는 면에서는 실망스러운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감성이 비슷한 덕이기도 하고, 워낙 넓은 시장에서 걸러진 책들만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나 합니다. 특히 미스터리나 공포 소설은 기대 이상인 경우가 많더군요. 일본 미스터리의 경우,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최대한 간결하게 트릭에 집중해서 짜릿함을 주는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적 묘사에 집중하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이지요. 전자는 판형이 작고 표지가 양장본이며 두께가 얇은 반면, 후자는 판형이 크고 표지도 하늘하늘 하며 두께가 상당하다는 선입견(?)을 덧붙이고 싶군요. 굳이 이런 선입견을 덧붙이는 건, 이 책은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는데 전자의 유형을 기대하고 읽으신 뒤에 실망했다는 후기를 쓰신 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반부는 지루하고 후반부의 반전(!)은 시원찮다고 하셨더라고요. 역시 어떤 책을 기대하고 보는가에 따라 평가는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책의 외양을 보고 책의 성격을 예측했기 때문인지 초반부터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겠습니다만 근접한 유형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소설의 한 축은 경찰의 대실패로 기록된 64라는 이름의 유괴사건이, 다른 한 축은 중앙과 지방, 지방 내 경무부와 형사부의 권력 다툼, 그리고 한 개인의 선택 등 욕망의 충돌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64사건은 사건 흐름의 중대한 실마리이자 결말에서 재현되는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에 중심을 두고 사건 해결을 기대하며 읽는다면 당연히 지루하리라 생각됩니다. 책의 5분의 4는 나머지 한 축에 할당되고 있으니까요. 경찰이라는 조직 내에서 이익과 가치관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양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 중간에서 경찰로써, 혹은 한 인간으로써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써내려가는데 작가는 주력하고 있는 것이죠.



책의 포인트는 여러 곳이 있겠습니다만, 일단 10년이 넘게 고민해서 써내려갔다는 말이 수긍될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면 묘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예컨대 경무부의 음모를 알게 된 주인공 미카미가 서장과 담판을 짓기 위해 서장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는데요, 열변을 흘려듣던 서장이 갑자기 미카미의 구두가 지저분하다는 말을 던집니다. 아, 구두를 보니 자네가 형사부에서 일했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는구나 하는 식으로요. 이 말을 듣고 불현듯 미카미가 느끼는 지독한 피로, 소통이 불가능한 벽에 부딪혔음을 깨닫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는 장면이 너무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또 주인공 미카미의 절묘한 위치 설정도 눈길을 끄는데요, 애초에 형사부에 소속되어 있던 미카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무부로 발령된 후 대 언론 홍보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경무부와 형사부, 경찰과 언론의 경계선에서 서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의 딸이 가출을 하는 사건이 더해짐으로써 미카미는 경찰과 사건 피해자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게 되기도 합니다. 경계에 선 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백안시,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내면적 갈등은 미카미에게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바로 그 위치 덕에 미카미는 주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 그리고 자신도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이후 미카미의 행보를 지켜보는 독자로 하여금 그의 선택에 공감하게 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조직에 대항하는 개인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자그마한 희망을 그려내면서 마무리된다는 점까지, 이 책은 정통적이고 한편으로는 고루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펼쳐냈다고 하겠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냉정히 돌이켜보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둔통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힘은 저자의 이름을 기억해두게 만드는군요.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타고 났다고 하던데요,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본연의 매력을 한번 더 체험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작가는 '미~'로 시작하는 이름을 좋아하나 봅니다. '미~'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아서 초반에 헷갈리더군요. 안그래도 일본 이름인데다 등장인물도 많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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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수기 - 세상 끝에 선 남자 아시아 문학선 5
주톈원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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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학선이 순식간에 5권까지 출간되었네요. 지난 번에 읽었던 '아시아의 고아'는 살짝 제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이번에는 어떨까 궁금했는데요, 여류 작가의 작품이며 세기말적인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소개에 눈길이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측과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는데요, 스토리텔링보다는 감정의 묘사에 주목하여 섬세한 그림을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점은 예상대로였습니다만, 놀라울 정도로 지적이고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은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황인수기'라는 제목에서 '황인'이라는 말은 동성애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황량해지고 황폐해진 세기말의 인간상을 뜻한다고 해설하고 있는데요, 이 작품의 서술자는 섬세하고 지적이지만 세계로부터 고립되고자 하는 동성애자이거든요. 이 작품의 실마리와 마무리는 서술자인 샤오가 어릴 적의 친구이자 애정의 대상인 아야오가 에이즈로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야오의 첫만남으로 인한 정체성의 자각, 연인과의 만남으로 인한 기쁨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되는 욕망과 사회와의 충돌 등을 회상하며 복잡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중시하는 것이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샤오의 사고과정과 고뇌인 점이 독특한데요, 푸코나 쿤데라, 혹은 알랭 드 보통을 연상하게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대만, 중국, 일본, 이집트, 인도 등의 설화와 문화, 철학이 동시에 등장하고 석가모니, 레비 스트로스, 미셸 푸코, 미시아 유키오의 가치관이 연이어 베어듭니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과 맥컬리 컬킨이 스쳐가기도 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육체와 정신의 충돌에서 출발하여 육체의 무게를 깊이있게 고민한다는 점에서 현대 소설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만 꽤 복잡한 소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작가의 머릿말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세기말적인 특성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화자를 동성애자로 설정한 것이 오히려 넘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 작품이 20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러한 설정이 상당히 강렬한 기호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우울함과 고통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내용보다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역자가 꽤나 고생을 했으리라 예상되는데요, 그분의 고생이 보람이 있어서(?) 날카롭고 이질적인 묘사가 중첩되는 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줄곧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죽음과 상실의 주제는 아무래도 책을 한번 더 읽어보며 소화해가야 할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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