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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헨리 단편 콘서트
0. 헨리 지음, 박영만 옮김 / 프리윌 / 2014년 4월
평점 :
누구나 어린 시절 읽은 책은 유독 기억에 남고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에게도 그런 책이 몇 권 있는데요, 미하엘 엔데의
'모모'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셍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비롯하여 오 헨리의 '단편선'이 그 책들이죠. 사실 '마지막
잎새'나 '현자의 선물'은 일찌감치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는데요, 벼룩시장을 둘러보다가 만만해보이는
단편소설집이 있어 집어든 것이 하필 오 헨리의 단편선이었던 것이 홀딱 반하게 된 계기가 되었더랬죠.
이 책 '단편 콘서트'에서는 오 헨리 소설의 특성을 '반전', '위트', '페이소스', '휴머니티'로 정리하고 있던데요, 저도 이러한
정리에 완전히 공감합니다. '마지막 잎새'나 '현자의 선물'은 그 중에서도 '휴머니티'가 강조되는 소설이라 하겠는데요, 그래서 그
당시의 저로써는 이것이 다소 구태의연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소설은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 '마녀의 빵'
등이었는데요, 상대적으로 '페이소스'가 강한 작품들이지요.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렇더라도
그것을 슬퍼하지 말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들인데요, 그런 미묘한 맛이 저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오 헨리의 문학성에 대한 평이 상당히 박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상하기까지 했던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니 문학성에
대한 평이 박한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 슬쩍 미소짓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고 너무나 장황한 어조나 현실성 혹은
진실성이 부족한 플롯 등이 여기저기서 드러나보이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어릴 적 추억의
힘인 것일까요, 아니면 그 자체가 오 헨리의 힘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단편 콘서트'에는 11편의 단편과 단편소설화된 오 헨리의 전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읽어보지 못한 작품은 4편이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단편집과 겹치지 않은 소설도 생각보다 많았던 편인데요, 조금 의아한 것은 이 작품들이 오 헨리의 소설 중에서 매력적인 축에 속하는
소설들 같지가 않다는 점이었어요. 제 취향이 작용한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슬픈 오류'나 '도시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등은 특히 평면적이고
밋밋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여 이 소설집으로 오 헨리를 처음 만난 분들은 그의 작품 세계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물론
'물레방앗간 교회'나 '섬', 그리고 가장 유명한 '현자의 선물'과 '마지막 걸작'이 실려 있어 다행스럽습니다만, 처음 오 헨리를 접하신
분이라면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 '마녀의 빵', '붉은 추장의 몸값' 등의 다른 소설도 꼭 읽어보셨으면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