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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 -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이희수 옮김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제목만은 마음에 안드는 책이다. 어떻게 봐도 부제는 책에 줄 점수를 깎아먹으리라 생각한다. 안그래도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 굳이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지...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내용을 연상시키는데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 아주 심각한,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만 보면 지구종말론 느낌의 책으로 오해받을 것 같다.
그 외 내용 면에서는 아주 만족스럽다. 번역도 매끈하게 잘 된 듯하여 읽기도 즐겁다. 적잖이 두툼한 이 책은 그 두께에 걸맞게 반드시 짚어볼 문제를 심도깊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조류독감, 구제역, 탄저균, 콜레라 등의 질병 재난이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어느정도의 피해를 낳고 있는지, 또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처를 해야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인류가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재난이 그렇듯이 이러한 질병 역시 인간이 자초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양계장에서는 싼값에 닭고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브로일러 양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고기가 부드럽고 쉽게 살이 오르는 품종의 닭만을 육종하여 좁은 공간에 밀폐시킨다. 운동을 최소화하여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가 칼로리로 낭비되는 일 없이 살로만 가도록 6개월을 키워내면 우리가 즐겨먹는 치킨이나 삼계탕용으로 팔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닭들은 면역력이 낮으므로 새로운 질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좁은 공간에서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병에 걸려도 순식간에 다른 닭들에게도 병이 전염되어 버린다. 더하여 정부에서는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발병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하기 마련이고, 발병 지역의 동물들을 폐사시키는 미봉책만을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로 인한 교역의 활성화, 특히 그 이면의 이기적 이익 추구가 질병의 전파를 더욱 촉진시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의학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전염병이 등장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작년의 신종 플루 사태가 잘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근대화의 한 지표로 위생상태가 꼽힐 만큼 현대의 도시는 위생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일단 그런 위생관리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질병이 등장하게 되면 도시만큼 질병이 잘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도 없을 것이다. 만약 현대에 페스트와 같은 질병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낳게 될지, 문명이 얼마나 쇠퇴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처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한 것이다. 이기심, 혹은 욕심을 조금만 버리라는 것. 지금의 생물학적 혼란을 야기한 것은 자본주의가 긍정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가 용납되는 한 지금의 생물학적 혼란은 점점 심각해질 수밖에 없으니, 거기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언제나 쉽게 나오는 결론이면서 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해결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희생이 없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한 것이 역사의 흐름이지만 이번에는 어떨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기 전에 끊임없이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