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경제학 - 금융의 덫에 걸린 경제 진단과 처방
한배선 지음 / 청림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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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아시아의 경제 위기와 재작년 미국 금융 위기, 그리고 작년 유럽 경제 위기까지... 연이은 경제 폭탄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다보니 이것을 일반적인 경제 주기에 의한 위험 이상의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사태의 표면적은 원인을 보고 혀를 차거나, 아니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파생위험 정도로 생각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경제위기가 동반하게 되는 많은 경제적 약자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치유해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러한 노력은 두손들고 반기게 된다. [빚 경제학]의 저자 한배선 씨는 기자의 입장에서 아카데미즘을 조합하여 현실의 경제를 해석하면서 이러한 위기의 중심에 '신용'을 둔다.

 

단도직입적으로 보자면 사실 이 책의 결론은 당연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금융은 태생적으로 실물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런 금융에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욕망이 거품처럼 달라붙다보면 결국 균형을 잃고 경제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신용을 억누르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보는 것일테고, 저자는 그러한 태도가 앞으로 계속된 경제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고 보는 것이리라. 저자는 9장까지 현 경제체제가 신용을 비대하게 만들어 위기를 불러오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내는데 주목하고 10장 이후로는 그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으로써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한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너나없이 덮처올 위험성을 잊지 말고 금융에 대해 적절한 굴레를 씌우자는 것인데, 그 굴레는 한편으로는 인간 탄생 이래로 모든 인간을 골머리 썩게 만든 문제덩어리인 욕망의 제어이고 다른 편으로는 시스템적인 제어장치, 예컨대 부채 관리 시스템이나 금융 감독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애초 학술서라기보다 분석서인만큼 이 책이 보여주는 대안에 대해 이리저리 말하는 것은 방향성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오히려 얼마나 꼼꼼한 서술이 이루어졌는지, 또 현상태에 대해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고 결론짓고 싶다. 다만 이 책이 겨냥한 독자층이 어디일지 아리송한 것은 사실이다. 교양서와 논문의 중간에 놓인 듯한 서술구조는 개정판을 낸다면 손볼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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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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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고전이 된 책이 으레 그렇듯 개정되어 출간되기를 반복한 이 책이 이번에는 30주년 기념판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저자가 35살이었던 젊은 나이에 쓰여졌으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지금에 와서는 정설처럼 받아지는 그의 이론은 많은 학자들에게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비록 독창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바이지만, 어차피 위대한 작품은 선배들의 어깨 위에서 쓰여지는 법, 그러한 논란이 이 책에 가치를 더하면 더했지, 덜어내지는 못하리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워낙 유명한 이론이니만큼, 또 개인적으로 진화론에 관심이 있어 관련된 교양서를 제법 읽어보다보니 요약된 내용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원본을 읽는 것은 가볍지 않은 도전이었다. 500쪽 가까운 분량에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쓰여진 이 책은 분명 기본적인 진화론적 혹은 생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상당히 버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슬쩍 여기저기 배어나오는 저자의 유머감각이 무게감을 덜어준다고는 하지만, 통독으로 후루룩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조금씩 끈기를 가지고 읽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책이지만 그만큼 읽기를 마친 후에 얻어지는 것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잘 알려진대로 이 책은 진화의 기본 단위가 개체 혹은 집단이리라는 상식과 달리, 실제로는 유전자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논하는 책이다. 젊은 시절에 쓰여진 책이라선지, 얼마든지 순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난폭한(?) 표현을 망설이지 않은 탓에 이 책이 인간의 독자적인 지위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식의 반감을 많이 샀던 모양이다. 현재에 와서야 인간이 좀 더 냉철해지고 차가워진 탓에, 또 이기적 유전자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큰 흐름을 이루게 된 덕에 누구라도 기본적 논지를 받아들이는데는 거부감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가 대담한 발상으로 창조해낸 밈의 개념이 근래에 와서 보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듯하다. 생물계에서 유전자가 담당하는 역할로부터 유추하여 문화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 밈이라는 단위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찌보면 간단한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상당한 설득력으로 구성해냈기 때문인지 문화연구에서 밈의 개념을 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간 원문의 서술이 궁금했었는데 적은 분량임에도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을 끈 것도 당연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물론 충분히 납득하기에는 분량이 불충분한지라 따로 관련도서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근래 종교 깨기에 열심이신지라 진화론자라기보다 사회활동가처럼 느껴지는 리처드 도킨스이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힘을 맛보기에 이 책만큼 적절한 책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만들어진 신]을 읽으면서 현실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힘들 수 밖에 없는 도전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에 걱정도 되었지만,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으신 연령이시니만큼 차후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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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노트북
제임스 A. 레바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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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슬픔이 너무나 많다. 특히 우리가 잠시 잊고 있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눈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보지 못한 점들을 눈앞에 들이대주는 소금과 같은 이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리라. 이 책, 블루 노트북 역시 그렇게 잊고 있던 잔혹한 현실을 비추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인도 뭄바이의 어린 소녀, 바툭이 남긴 비망록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툭은 빈민가에서 태어난 많은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에 의해 사창가에 팔려가 가혹한 삶을 인내하고 있는 소녀이다. 드물게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바툭은 고통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글을 쓰는데 집착한다. 환상 속에 자리잡은, 그러나 결코 현실에서 발을 떼지 못한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스스로의 한을 달래기도 하고, 자신의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책의 전반부는 소녀 바툭이 어떻게 사창가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창가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그려간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호텔로 무대를 옮겨 부유층 자제의 성교재로 팔린 바툭이 남성들의 욕망 속에서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전반부는 어쩔 수 없이 웃자라버린 바툭의 담담하면서도 깊이있는 속삭임들이 깊이 파고든다. 그러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한 소녀의 잔인한 운명 뿐 아니라 세계의 불합리함과 불가해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곤 했다. 반면 작가의 의도인지 몰라도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연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잔인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맥이 빠진다는 인상이 든다. 어떻게 그려내도 글보다 현실이 잔혹한 세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런 힘빠짐은 다소 아쉬웠다는 것이 사실이다.

책은 인상적인 시로 마무리된다. 그 시의 일부분을 인용하며 나의 감상도 마무리하련다.

" 모든 것은 미리 알 수 있다. /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 우리의 선한 행동이 눈금 위에 놓인다. / 그걸 이렇게 기울이면 태양이 떠오른다. / 그걸 저렇게 기울이면 남아 있는 불꽃의 흔적이 연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 여러분이 진 빚이 등록되어 있다. / 그리고 여러분의 판단과 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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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독 어린왕자 -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신개념 영한대역 십독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원작, 박세창 번역 및 해설 / 표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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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론의 측면에서 같은 영어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구조를 이해해가는 것만큼 읽기 학습에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으로써 영한대역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출간되어있는 책도 너무나 많다. 그런 점을 감안해볼 때 새로운 시도보다는 성실성과 충실성이 더 좋은 책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 십독어린왕자는 일단 [어린왕자]라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나 좋아하며 읽고 또 읽게 되는 애독서를 원문으로 택한 점이 눈에 띈다.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지겨움을 참아가며 같은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러한 지겨움을 덜려면 재밌는 텍스트를 택하는 것이 선결사항일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읽고 또읽었던 어린왕자지만 영한대역 어린왕자는 새로운 기대감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서문을 대신하여 아주 기본적인 문법을 설명해주고 바로 본문으로 돌입하는 선택도 적절해보인다. 본문은 원문을 잘게 쪼개어 서너문장을 제시한 뒤, 직독직해적인 방식으로 해석을 싣고 까다로운 단어들을 붙여두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구문들을 해설하고 있기도 하다. 원서의 얄팍한 두께를 감안해볼 때, 300쪽이 넘는 이 책의 두께가 해설의 성실함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구조상으로는 확실히 평이하다 하겠지만 꼼꼼히 공을 들인 점들이 눈에 띈다. 어차피 영어공부의 길은 멀고 먼것! 왕도가 있을리 없고 결국 성실하게 공부한 사람만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실하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성실한 책이 반갑게 느껴질 것이고 말이다. 표담출판사에서 십독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있는 모양인데, 시사 문화사의 영한대역 시리즈만큼 고유한 이름으로 기억될만한 시리즈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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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시대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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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 근래 작고하신 작가로써 생전의 작품활동을 보면 거장이라는 말이 붙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분이 아니신가 한다. 쥬라기 공원과 ER의 엄청난 인기를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작품 중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재작년 예순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은 많은 팬들에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이상 그가 만들어낸 놀라운 이야기들을 즐길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후 그가 남긴 컴퓨터에서 완성되어 있는 미발표 원고를 발표하여 책으로 내게까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모험소설이었다는 것! 과학 스릴러만을 써오던 그가 난데없이 모험소설, 그것도 해양모험소설을 썼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을 꺼리지 않았던 것이 그답다면 그답다고 생각하며 웃음짓게 한다.

이 작품은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정통해양소설이다. 주인공 헌터는 포트로얄에서 영국의 국가공인해적으로 대활약을 펼치는 인물이다. 바다의 왕자였던 에스파냐가 점차 쇠퇴하면서 영국이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던 당시, 양국의 사략선들은 서로의 재물을 갈취하며 더러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 마틴세로스라는 에스파냐의 요새에 에스파냐 보물선이 정박해있음을 알게 된 헌터는 팀을 조직하여 보물선 훔치기 작전에 돌입하게 되는데...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보면 대항해시대라는 것이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는 두말할나위 없다. 선악을 논하는것도 우스워지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헌터 역시 선한 인물이라 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좀 더 교활하게 활동하여 더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해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까? 그만큼 마이클 크라이튼은 당시의 분위기를 살려가며 정통적인 해양모험소설을 쓰려 했던 것 같다. 물론 비현실적인 요소도 적절히 도입하여 흥미를 돋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해양소설의 감초, 거대 오징어대왕 크라켄도 적절히 등장해주시고 점성술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을 잘 버무려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로 독자들을 휘어잡아간다. 적절한 때에 들이닥치는 위기와 그러한 위기를 뛰어난 재주로 극복해가는 인물들의 활약은 역시 크라이튼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않다. 일단 좀 더 분량을 늘려 완급을 조절하고 디테일을 살려가며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부분들이 너무 급박하고 간결하게 전개되었던 점은 특히 아쉽다. 그리고 분명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면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겠지만 크라이튼이라는 이름값이나 전작들의 패도적인 재미에 비하면 이 작품은 범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아서 그의 새로운 도전을 숙성시켜갈 기간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의 작품들 다수가 영화화에 적합한 작품이었고 그 결과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데 이 작품 역시 조만간 스필버그의 손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라 한다. 스필버그의 손에서 원작보다 재밌다는 평을 받는 영화가 여러번 탄생했던 만큼 이 작품을 새로운 얼굴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거장의 새로운, 마지막 도전이라 할 이 작품, 충분한 만족감을 주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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