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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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맨더빌, 상당히 생소한 이름이다. 보아하니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보았을 이름인 모양이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들어볼 일이 없었던 이름으로 생각된다. 표지를 보면 자본주의의 창시자라 할 애덤 스미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라 한다. 머릿말을 보자면 그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100년전 쯤, 영국 상업사회에 대하여 낡은 도덕 타령을 일삼던 사람들에게 '낡은 도덕에 맞춰 살다가는 경제가 다 망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대파문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오죽하면 이름을 본딴 Man Devil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할정도니 말 다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을 담아낸 책이 바로 '꿀벌의 우화'인 것이다.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본문으로 들어가본다.

 

이 책의 구성은 예상과 다소 다르다. 보통 고전책은 전반부에 원문을 싣고 필요에 따라 후반부에 해제를 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반부 80쪽 가량을 맨더빌이 활약하던 당시의 유럽 정세 묘사 및 그의 활동 내력, 그리고 서로 혼동되는 일이 많은 그와 애덤스미스의 이론을 비교하는데 할당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보통 신자유주의의 수호자로 알려져있는 애덤 스미스는 실제론 자본가의 적으로 해석될 주장을 적지 않게 하였으며, 자본가들이 진정 수호신으로 삼아야할 자는 맨더빌 쪽이라고 보인다. 번역자 최윤재 씨는 낯선 인물인데, 약간 시니컬한 듯, 적절히 서양식 유머를 구사해가며 서술해가는 글이 읽는 맛이 적지 않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문장이 독특하여 외국인이 쓴 글을 번역한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필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필자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그런 의도에서 애덤 스미스를 위한 변명을 아끼지 않는데,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많은 독자들이 실제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았음을 변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맨더빌의 글이 따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꿀벌에 대한 우화, '투덜대는 벌집'이라는 운문 형식의 글이 인용되고 뒤이어3가지의 주석이 뒤따른다. 당대의 풍속화와 엄청난 지문 및 해설이 속속 따라 붙어 배경지식이 부족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400년 전의 주장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격하고 냉소적인 어조를 보면 당대의 도덕주의자들이 얼마나 흥분했을지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서로 충돌한 것처럼 보인 맨더빌과 도덕주의자들이 결국 바라보는 지점은 같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도덕주의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던 것 뿐이고 말이다. 위선이 나쁜 것이 아니라 위선에 대한 위선이 나쁜 것이라는 말, 예전이나 현재나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나보다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논쟁을 불러일으킨 위험한 책이 후세에 많은 영감을 준 예는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애덤 스미스와 같은 경제학자에게 영향을 준 것은 물론 루소, 흄, 마르크스, 하이예크 등 계몽주의, 철학, 사회주의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역사적 무게감도 적지 않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만큼, 더하여 (위험한 책이 대부분 그러하듯) 읽는 재미도 적지 않은 만큼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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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구두 2010-12-0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고 갑니다.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 CEO가 읽는 클래식 2
홍상훈 지음 / 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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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 조금은 촌스럽게 보이는 제목과 만월이 분위기있는 표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대세인 자기개발에 기대는 듯한 제목이 조금은 불만스럽게 느껴지지만 한시를 소재로 하는 보기 드문 책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한자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시에 대한 애정도는 낮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한시를 소재로 한 책은 서점에서도 찾기 어렵다. 설사 있다고 해도 대부분 너무 어렵기 때문에 쉽사리 한시의 맛을 맛보기에는 벽이 높다. 그런 면에서 이런 책은 만남만으로도 반갑게 느껴진다. 

목차를 살펴보니 책은 4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현실을 수용하는 방법, 자기성찰, 열정에 대한 이야기, 더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의 4가지이다. 일단 한시 원본과 해석본이 나란히 병렬되어 소개된다. 낯선 작가도 적지 않지만 이백, 두보 등 유명한 시인의 작품이 많은 편이고 시도 상대적으로 쉬운 것들이 실려있다. 그리고 그 시를 읽으며 완상한 저자의 생각이 2쪽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고 여백도 많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사실 한자의 벽을 무시하고 본다면 대부분의 한시는 주제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내용 역시 어려운 편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더하여 저자의 단상들은 짧지만 아주 여러번 갈고 닦은 티가 나는 글들이다. 모자람도 더함도 없이 간결미가 넘치는 것이 여백이 많은 한시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다.  

책에 실린 한편의 시를 인용해볼까 한다. '유주객마음'이라는 작품이다.
 

" 빨리 뛰는 말은 늘 야위어 고생하고

  애써 일하는 이는 늘 가난에 찌든다네.

  좋은 곡식은 야윈 말도 일으키고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 노릇도 하게 되지. "
 

얼마나 솔직한지!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인품과 지식을 꼽지만 현실에서 우선시되는 것은 건강과 경제적 여유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이 깔끔하게 뒤를 잇는다. 부에 사람이 끌려다녀서 안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감수하는 가난이 아닌 한 가난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조차도 황폐하게 만들게 마련이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라는 문제, 예로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 골치덩어리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시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주석을 붙이는 것은 다소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시의 주제이고 시인의 감성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좋은 선배가 덧붙이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역시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한편의 시를 더 인용하며 글을 마치련다. "장 소부에게 화답함"이라는 글이다.
 

" 나이들어 고요한 것만이 좋아

  만사에 관심이 없어졌네.

  스스로 돌아봐도 별 계책 없어

  부질없이 옛 숲으로 돌아올 줄만 알았네.

  솔바람 나의 허리띠 풀어주고

  산 속 달은 거문고 타는 날 비추는데

 

  궁극의 이치를 깨달았느냐고?

 

  어부들 뱃노래 포구 깊이 들려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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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몰입 - 가우스 평전
후베르트 마니아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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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라는 이름,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역대 수학자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명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많은 수험생에겐 공공의 적이기도 할테고 말이다. 사실 수학자 = 천재라는 일반적 공식에 가늠하더라도 가우스는 손꼽을만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천재도 분명 인간이었을 터,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그 인생에 굴곡이 없었을 리 없다.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따라 자신의 소명을 다한다는 삶의 기본적 그림은 그런 굴곡을 살펴볼 때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이하달 정도로 당대 유럽의 그림 그리기에 많은 분량을 할당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1700년대 유럽의 역사는 왕가의 결혼과 합종연횡, 계속된 분쟁 등으로 서로 떼어내기 어려울만큼 긴밀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천한 집안 출신인 가우스가 수학자로써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물론 그의 천재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만-당시 계몽주의적 사조에 힘입은 바도 컸으리라.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지식에 대한 탐욕, 그리고 지식이 만들어내는 힘에 대한 추구 등이 유럽의 인문적 성장을 가속시키고 있었고, 가우스 역시 그 물결 위에서 천재성을 꽃피울 수 있었다. 이 책의 풍부한 그림그리기는 당시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워낙 르네상스맨이 흔하던 시대(?)라 그가 수학 뿐 아니라 물리학, 지리학, 천문학 등 수학 제분야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그래도 놀라운 수준임에는 틀림없지만..) 오히려 믿기지 않을만큼 많은 업적들이 먼지에 덮힌 채로 남아있다가 뒤늦게 발견되었다는 점이 더 신기하게 다가온다. 희대의 천재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좋게 보면 겸손한, 나쁘게 보면 소심한 모습을 여러번 보여주곤 하는 것이다. 그런 성격 탓에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기도 했고 가족들에게 몹쓸 짓을 하기도 했다. 반면 체면을 중시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그 성격 탓에 보다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고 그만큼 많은 성과를 남기기도 했던 것을 보면, 인생의 명암을 알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50쪽 정도의 적지 않은 분량에 역사,문화,수학의 이야기가 얽혀나오다 보니 가볍게 읽기는 부담스러운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전기류에서 보기 힘든 저자의 코믹하고 풍자적인 어투 덕분에 그 부담이 많이 덜어진다. 번역 역시 상당히 깔끔하다. 천재의 쾌도난마식 삶이 아닌, 자신의 분야에 모든 것을 바쳐 몰입했던 삶을 살았던 가우스.. 인생에 있어 '완성'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볼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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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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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노라면 왠지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식사 예절부터 시작하여 몸가짐에서 주의해야할 바, 혹은 근래 사회의 일들을 이야기하듯 가르치듯 했던 것을 밥상머리 교육이라 하지 않았던가.. 요새야 아버지는 직장에, 아이들은 공부에 바쁘다 보니 가족이 한밥상에 앉기도 힘들 뿐더러 간만에 같이 앉더라도 묵묵히, 후다닥 식사를 하고 갈길 가는 일이 잦은 것 같다. 아무리 사회가 변했다 하나 아직까지도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런 교육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차지하는 바가 적지 않았더라는 생각을 해보노라면 왠지 현실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각설하고 군사부일체라는 말로도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임금은 곧 나라 전체의 아버지였다. 그런 '큰' 아버지의 밥상에서 정치가 빠질 수 있을리가 없었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책은 그러한 추측에 살과 뼈를 붙여가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책은 문화 관련 도서라기보다 역사 관련 도서라 해야할 듯하다. 책의 전반부는 조선 27명의 왕들이 어떠한 밥상 취향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러한 취향은 실제 정치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설명하는데 할당된다. 그러다보니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통사를 읽는 기분이 든다. 폭군이라 알려진 왕들의 까다로운 식욕과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왕들의 정치적 식사 행태(?)등은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책의 중심에 밥상이 놓이다보니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을 지나치게 밥상으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도 하고,조선왕조실록을 철저히 신뢰하는 입장에서 역사서술이 이루어지다보니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도 곳곳에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그렇다고 해도 왕들의 사슴꼬리에 대한 탐닉(?)과 감선-국가적 화(禍)가 있을 때 왕이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감선이라고 했다고 한다-횟수와 수명의 반비례에 대한 분석 등을 읽다 보면 재미가 상당히 쏠쏠한 것이 사실이다.

후반부는 밥상을 담당했던 부서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재료가 쓰이고 그것이 각각 어느지방에서 올라왔는지를 서술해간다. 여기부터는 상당히 본격적이라는 인상이고 자료도 워낙 많다보니 읽는 속도가 조금 떨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벌충하듯 앞서 서술한 자료에 기반하여 음양오행에 따른 밥상의 구성원리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다시 읽는 속도가 올라간다. 책의 전반부가 읽기 편하여 빨리 읽을 수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집중도가 올라가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할까.. 음양오행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그러한 밥상의 구성원리가 가지는 고유한 의미를 서구의 그것과 비교하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 할만하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여 말씀드리자면... 책을 참조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리겠다^^ 

책이 전문적이고 본격적일 듯한 인상이 있어 접근하기 꺼려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겠다. 전반적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으며, 좀 성가신 제도 및 재료 설명부분은 적당히 훑고 넘어가는 정도로 지나가도 후반부의 결론을 이끄는데는 무리가 없다. 허영만 선생의 '식객'이나 드라마 '대장금'을 즐겨보신 분이라면 독서 싱크로율이 더 높을테고, 한창 조선사를 공부하는 중고생이라면 전반부만 읽더라도 학과공부를 훨씬 생생하게 정리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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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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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면서도 위태한 표정의 소년이 나신으로 독자를 쳐다본다.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마치 동물처럼 뛰놀던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 위태로움과 아름다움을 함께 아우르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이 흐르면 그저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외부의 독과 자신의 독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 독을 품지 않으면 안되기에 사춘기의 소년은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 책에는 5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모두들 위험과 맞닥드린 아이들이다. 책의 제목과 같은 첫번째 이야기 '성인식'에서 '나'는 내가 아끼는 개 칠손이의 생명을 손에 움켜줌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가지는 본질적인 잔인함과 마주친다. 칠손이의 생명을 거두도록 강요하는 어머니와 마을 어르신들은 잔인해보이지만 그러한 잔인함은 오히려 삶의 본질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간다. '어른'들은 '성인식'을 통해 '나'가 그러한 잔인함을 현명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투쟁이 없이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지만 투쟁의 본질적 의미를 잊어버리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것, '나'는 다리 밑에 새겨진 글을 통해 다시한번 삶의 선배들로부터 깨우침을 얻는다. 두번째 이야기 '문자 메시지 발신인'의 슬기 역시 위험에 처해있다. 왕따라는 이름으로 소속감을 박탈당한 것이다. 성인식이 소속을 부여하기에 중요한 의식이라면 슬기의 현재 상황은 역전된 성인식이다. 소속감을 박탈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그리고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러한 폭력과 다시 마주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슬기에게도 성인식은 가혹하기만 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보름맞이 굿놀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공포와 죄책감을 씻어낼 기회가 주어진다. 비록 그것이 일회적인 것일지라도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그녀가 인식하는 '성인식'은 더욱 파괴적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이야기에서도 아이들은 위험에 마주치고 그 위험을 극복함으로써 성인이 된다는 의미를 터득해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아이들이 아이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주변성 외에도 사회가 부여한 주변성을 부가적으로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홀어머니와 지내고 있거나 혹은 부모 대신 할머니와 살고 있거나 혹은 시장개방으로 경제적인 위태로움에 선 장애인 농부 부모의 곁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청소년이 읽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인상보다는 청소년을 소재로 한다는 의미의 청소년 소설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갈등의 극복과정도 정공법이라기보다 상당히 우회적인, 어찌보면 상당히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과정을 택한다. 있을 수 없는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무리를 하지 않았기에 무난하게는 느껴지지만, 작품들을 아우르는 이런 '착함'은 때때로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부족감, 그리고 거기서 깨닫게 되는 갈망 역시 작가가 노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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