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한국에서 유독 사랑을 받는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손꼽이는 작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닌가 한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세계관과 그 안에서 기묘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펼쳐져가는 스토리라인이 한국의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원동력인 듯하다. 나 역시 출간된 그의 소설은 거의 다 읽어냈다. 처음 그와 만나게 되었던 '개미'의 충격이 워낙 커서 그 이후로 출간되는 작품마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다. 2년에 한번씩은 신작을 내는 그이지만, 보통 2권 내지 3권으로 된 소설을 내곤 하던 그가 작년 6권으로 된 '신'을 완간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신작 '카산드라의 거울'이 나와서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의 상상력에는 휴식도 필요없는 것일까?
이번 작품은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카산드라'라는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2세에 테러로 부모를 잃은 카산드라는 그 이전 유년기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때때로 미래에 일어날 테러사건을 꿈속에서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트로이 전설에 나오는 카산드라가 아폴론 신으로부터 예지의 능력은 받았지만 설득력을 박탈당했듯, 현재의 카산드라도 사람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결국 보호소로부터 도망친 그녀는 도시의 쓰레기장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5명의 부랑자와 유쾌하지 않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군인 출신의 오를랑도, 한때 에로배우였던 에스메랄다, 아프리카 출신의 주술사인 페트나, 그리고 북한 유민인 컴퓨터 전문가 김이 그들이다. 각각 공작, 후작, 자작 등의 별명을 붙인 그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쓰레기장 바깥의 세계를 배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미래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명감을 품은 카산드라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 역시 이 이방인들 뿐이다. 한편으로 자신에게 잃어버린 오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카산드라는 어릴 적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와 만나려 하지만 오빠는 신비로운 메시지만 남겨둘 뿐 그녀와의 만남을 피한다.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보는 그와의 만남은 이루어질지, 그리고 그를 도와 테러를 막도록 5명의 이방인들을 설득해낼 수 있을지??
한동안 미래세계와 사후세계를 떠돌던 베르나르의 이야기가 오랜만에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의 컨셉은 명백하게 '미래'이다. 우리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신뢰할 수 있는가 작가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이것은 개미 이래로 꾸준히 천착해온 주제에 다름 아니다. 개미에서는 개미 세계로부터 조화로운 세계를 배워오고자 하였으며 타나토노트 시리즈에서는 인과가 지배하는 세계를 통해 인간의 정신적 성장에 논하였다. 그러한 작가의 주제가 가장 깔끔하고 흥미롭게 정리된 것이 이번 '카산드라의 거울'이 아닌가 한다. 특히 소재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도 신화로부터 차용한 이번 책은 특출나게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 사실 끝을 찾을 수 없는 그의 상상력은 존경스러울 정도지만 '개미' 이후로 나온 작품들은 대부분 그 이상의 구조적 완결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 '카산드라의 거울'은 오랜만에 잘 짜여진 구조를 보여주어 읽어가는 동안 적잖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책 중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를 주지 않는 책은 없었지만 이번 작품은 주제나 구조면에서 효과적으로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도 가장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내게 있어 그의 작품 중 최고작은 '개미'라고 생각하지만 2순위에는 이 책 '카산드라의 거울'을 올리려고 한다. 그간의 저술활동을 정리하는 듯한 이번 작품, 다음작부터는 뭔가 획기적인 변신을 꾀하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