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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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고보라는 이름,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밀한 이름도 아니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1993년에 죽었다는 것도, 이 작품 [상자인간]이 1973년에 출간된 작품이라는 것도 이 작품의 해설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었으니 말이다. 독특한 제목, 상자 안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담긴 표지는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상자인간이라.. 고독함이 묻어나는 이 제목 아래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

상자인간은 골판지 상자를 머리부터 허리까지 뒤집어쓰고 방랑자 생활을 하는 인물이다. 직장도 없고 집도 없고 익명성으로 무장한 채 포류하는 그들은, 사회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기만 하며 살아간다. 얼핏 부랑자처럼, 아니면 낙오자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히피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사회에 떠밀려 밀려들어간 삶이 아닌, 그들 스스로 택한 삶의 방식이 상자 속의 삶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이 책에는 그러한 인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낸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어찌보면 쉼없이 변주되는, 문명에 소외되어 타자화되고 도구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이 40년 전에 쓰여졌음을 감안하면 그러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문학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했다는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중층된 흐름들을 담아낸다. 예컨대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어 세계를 관찰하려고만 하는 상자인간의 모습 못지않게 개개인을 상자 속에 가둬둔 채 관찰하고 조종하려 하는 사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 다양한 사진을 싣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마치 실제의 현실을 서술하듯 하는 작가의 태도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의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현대작가의 작품이 늘상 그렇듯 가볍게 읽혀나가는 책은 아니다. 무엇인가 잡힌 듯 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이 더 많지 않았나 의심하게 만드는 난해함이 책을 덮는 손 끝에 걸려있다. 일단 첫 만남은 이정도로 만족하고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모래의 여인]이라도 찾아서 읽어봐야 하려나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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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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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님은 꾸준히 단편을 써주시고 있는 듯, 많은 단편 모음집에 이름을 보이시더니 이번에는 자신만의 단편 소설집을 내셨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라는 재밌는 제목을 단 단편집이다. 장르문학에 있어서 듀나라는 이름의 지명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책도 상당히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존에는 영화평론가로 더 알려졌던 것 같은데 이젠 소설가로 더 유명해지신 것도 같다. 여전히 신상정보가 베일에 가려져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말이다.

책은 [동전 마술]이라는 단편소설치고도 짧은, 그리고 그에 반비례하듯 불친절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선자리에 나간 주인공은 상대 아가씨가 세계의 틈새로 동전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마술을 하는 것을 본다. 그 뒤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하지만 어느 날의 사건을 계기로 이 동전 마술의 실체와 마주치게 된다. 일상공간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비현실성, 그리고 그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감상적으로 반응하는 섬세한 인간의 심리가 독자를 단숨에 듀나 월드로 끌어당긴다.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미스터리가 이야기를 휘어잡고 있지만 그 처음과 끝에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보게 되는 소소하면서도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 놓여 있다. 
[메리 고 라운드]는 세 명의 인물이 서로가 맺은 관계를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실'이란 실은 각자에게 다 다를 수 밖에 없다는, 한계성에 대한 인식을 코믹하면서도 긴장감있게 그려나간다.
[A, B, C, D, E & F]는 넷상의 삶이 현실의 삶을 따라잡아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왠만한 독자에게는 상투적인 코미디로 보일 가벼운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이 처음 인터넷이 보급되던 10여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달리 보이지 않을지?
[호텔]은 이 책 속의 몇몇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인간보다 진화한 인공지능이 '시스템'으로써 사회를 관리하고 있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관은 이어지는 작품인 [소유권]을 통해서 구체화되는데, 너무나 고도화하여 인간으로써는 더 이상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린 '시스템' 속에서 마치 연극을 하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상을 그려낸다. 미래로 갈 것도 없이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사로잡곤 하는 근원적인 한계에 대한 인식을 작가는 특유의 블랙 코미디를 사용하여 냉소하는 것이다.
[죽음과 세금] 역시 유사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음모론이 사실은 진리였다는 영화적인 구조를 차용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개인의 모습은 섬뜩할 따름이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만큼, 가장 무게감 있고 분량도 많은 작품이다. 역시 가장 일상적인 생활상으로 시작하여 단숨에 비현실적인 세계로 치닫는 듀나식 오프닝을 사용한다. 동시에 현재의 사회상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인 비판을 시도하여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동물성, 그로 인한 잔혹함을 그보다 거대한 시간과 '그 무엇'으로 단숨에 묻어버리는 작품의 결말은 작가의 냉소와 허무가 가장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 
전설의 현대적인 변주라고 할 [여우골]로 가볍게 숨을 돌린 뒤, 이어지는 [정원사]를 통해 인간의 오만한 자기 인식과 실존적인 사소함을 비웃고 나서, [성녀 걷다]를 통해 무한성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을 보여준 작가는 [안개 바다]를 통해 다시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가 보여준 세계로 돌아간다. 외계의 낯선 얼음성에 홀로 남겨진 남자 마티아스 볼츠만, 그리고 그 남자의 유일한 동반자인 개들.. 이들로 인해 시작된 창세기는 전복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로 전개되어 간다.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의 우위를 잃지 않았던 프랑켄슈타인 박사와는 달리, 피조물에 밀려나고 매몰된 끝에 재앙 혹은 세계의 종말로 화해버린 마티아스 볼츠만의 모습은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현상성에 대한 얄팍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낙관을 비웃는 듀나식 냉소도 몰론 빠지지 않고 말이다.
마지막 작품은 네이버 문학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디북]이다. 이 작품이 마지막을 장식하니 마치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서 보여준 결말을 책 전체에 적용한 듯한 인상이기도 하다. 미묘하게 남는 여운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듀나의 작품은 강력한 냉소와 허무로 무장하고 있어 그의 작품에 익숙한 사람조차도 때때로 불편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압도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은 독한 중독성이 있어 다시한번 그를 찾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 장르문학의 대표작가라 할 듀나의 내공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덧붙여 작품 곳곳에 인용되는 영화의 부스러기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주는 여분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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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멘토 강동진의 캔 스마일 주식투자법
강동진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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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의 대표적 수단에서 주식이 빠지는 일이 없는데요, 막상 주식에 도전하려면 상당히 겁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저축이나 보험이야 30분쯤 고민하고 그저 쌓아놓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주식을 하려면 경제 공부도 하고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니 말입니다. 개미투자자가 돈을 벌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의욕이 더 깎여버리고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마련, 주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겁이 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라도 본격적으로 주식에 뛰어들려면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은 주식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책은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장 '인지부조화', 2장 '종목선정론', 3장 '기술적 분석', 4장 '증시를 움직이는 경제지표', 5장 '수급논리와 포트폴리오 구성'입니다. 두툼한 두께에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을 텐데요, 소설 보듯 단숨에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보듯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메모도 하고 암기도 해가며 읽어야하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주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용어부터가 장벽인지라 완전 초보자라면 인터넷이라도 검색해가며 봐야하는 부분도 적지 않고요. 다소라도 사전지식이 있는 분이 보기에 적절하리라 생각되네요.



전문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초반부 주식투자를 할 때의 마음가짐을 서술해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CANSMILE'이라는 책의 제목부터가 저자가 강조하는 투자 철학을 요약한 말입니다.

[주식시장의 흐름을 점검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며, 전문가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체계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라. 정보는 항상 모델링하고, 레버리지 관리를 숙지하라. 마지막으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라]

책의 1장이 심리학 용어인 '인지부조화'를 제목으로 달고 있을 정도로 저자는 투자자의 마인드 콘트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식투자에 성공하는 것 못지않게 실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저자의 이런 태도는 믿음을 주는군요. 이 책 하나로 주식을 꿸 수야 없는 일이겠지만 성실하게 쓰여진 책인만큼 주식 입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교과서로 삼아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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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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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내게 글보다 이미지로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십여년 전 홀로 집에 있던 내가 주말의 명화에서던가, 토요명화에서던가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워낙 오래전이라 지금은 영화의 구체적인 부분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가슴 먹먹함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캐시 베이츠 분이 연기했던 에블린이 노파의 수다에 귀를 기울여가던 과정, 그녀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 스스로를 변모시켜가던 후반부가 또렷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당시의 내게 '삶의 주인'이라는 명제가 화두였던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본다. 영화를 보고 수년 후에야 이 영화가 베스트셀러 책을 원작으로 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어째선지 책으로 찾아볼 생각은 못했더랬다. 그랬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갑작스레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보면 책에도 확실히 인연이 있는 것일까... 

책의 저자인 패니 플래그는 극작가와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인물이라 한다. 그녀가 1987년 두번째로 쓴 장편소설이 이 책이었고 무려 36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다. 저자가 레즈비언이었고 그와 관련하여 정치적 활동도 활발했다는 사실 역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그녀가 활동했던 1980년대에 에벌린과 스레드굿 부인을 위치시킨 후, 스레드굿 부인의 이야기 안에 이지와 루스, 십시와 빅 조지 등을 담아내어 1920~30년대의 미국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씌여졌다.

영화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여성들의 자아 찾기가 주된 축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에서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작가도 그러한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많은 힘을 쏟는다. 특히 책의 축이라 할 여성 이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이일 때 그녀는 부모에게 다시는 치마를 입지 않겠다고 선포한 후 평생 바지만을 입는데,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가 상당부분 그려질 것이다. 청교도적 규율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던 20년대, 그녀가 살던 남부 지방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편견과 차별이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었다. 그러한 구속은 서로를 결속시켜 삶의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배척하고 내부적으로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한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이지는 거침없다. 정의롭고 마음이 따뜻한 그녀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인 루스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자 거침없이 달려가 그녀의 남편을 물리치고 루스를 데려온다. 그 후 이지와 루스, 그리고 그녀를 돌보는 요리사 십시와 빅 조지는 함께 휘슬스톱 카페를 운영하며 그들의 주변에 그들이 가진 따뜻함과 정열을 전파해가게 된다. 그들의 전염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50년 뒤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평생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뚱보 여인 에블린은 영혼과 생의 변화를 경험할 정도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이 그려내는 30년대 미국의 생활상도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미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대 미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휘슬스톱의 모습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섬세하고 꼼꼼히 그려진 배경 위에서 등장인물들은 훨씬 생동감을 띈다. 마치 그들이 실제 살아있었던 것처럼 이 책의 인물들은 울고 웃고 사랑하고 질투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그러다보니 악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책의 주동인물들 역시 그러한 유혹에 빠져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파멸을 맞는 책 속의 다른 많은 인물과 다른 점은 위기의 순간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혹은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마음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실제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리라..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이 타인을 감화시켜 나와 함께 하게 하고, 그렇게 이웃이 된 이들이 나의 잘못을 막아주는 '선'의 선순환이 이 책에서 아름답고 생생하게 그려져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아닐지?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4번째로 읽어본 작품이다. 그 중 행복하게, 낙천적인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이 책이 아니었던가 한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현대의 고전을 찾아간다는 컨셉에 맞게 무겁게 읽어야할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편이지만 가끔 허를 찌르는 책을 출간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출간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랄까, 순서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상당히 기대해볼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에서 고전을 찾아가는 민음사의 노력이 독자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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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시크릿 - 미국을 읽는 70가지 방법
장익준 지음 / 다빈치프로젝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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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장 밀접하게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매체 중 하나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최신의 것을 도입하는데 앞장서고 있기도 하고, 주제라는 면에서도 현재의 삶과 가장 관련이 있는 소재를 택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영화를 사회적,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현실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는 일이 많다. 이 책 '할리우드 시크릿'도 그러한 책 중 하나이다. 세계 영화 시장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를 살펴봄으로써 미국 중심의 강력한 헤게모니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칼럼들을 모아놓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주제의 범위 안에 묶여있기는 하지만 각 칼럼의 주제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좋고 짬짬이 읽어나가기에도 편리하다. 흐름을 따라 읽어간다면 첫부분에서는 할리우드의 형성 과정과 그로 인한 특징이 설명되고 있다. 이어 할리우드의 영웅주의로 드러나는 미국의 패권의식을 살펴본 후, 할리우드에서 보게 되는 한국, 한국인의 모습을 찾아본다. 미국의 유명한 제작자, 배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있다.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역시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포화 속의 용기'라는 파트이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처하여 3명의 여성이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후, 그의 어머니 신디 시핸은 반전 운동에 앞장서 '반전 엄마'라는 변명을 얻었다. 반면 신드라 스미스는 둘째 딸이 지뢰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돌아오자 39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폭발물 제거 훈련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헬기 조종사였던 태미 덕워스는 비행 중 로켓탄의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잃었다. 고통스런 재활 치료를 거친 후, 그녀는 이라크 전쟁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정치에 뛰어드는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는 외부자로써-어찌보면-쉽게쉽게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지만, 막상 그러한 미국 안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라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미국의 '힘'에 대하여 훨씬 복잡한 심경일 수밖에 없으리라. 비판을 하려면 비판의 대상에 대하여 잘 아는 것이 중요한 법..  가장 현명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좀 더 번거로운 길을 택하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묵직한 분석을 시도하는 책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던져주는 소소한 생각할거리는 곱씹는 맛이 적지 않았다.

이 외에도 뱀파이어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층을 상징하는 반면 좀비가 빈곤층을 상징하고 있다는 발상, '임금은 올려줘도 노조는 안돼'라는 기업인들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는 영화 '시빌액션'에 대한 분석, 금권에 등돌리고 순수히 정의를 추구하던 하비덴트가 타락한 반면 강력한 자산가인 배트맨이 정의의 수호자로써 역할을 계속해갈 수 있었던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가 헐리우드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이 적지 않다. 다만 어째서인지 책에 오타나 편집상 오류가 너무 많은 점이 눈에 거슬린다. 우수저작상 수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책임에도 편집이나 재질이 좋지 않은 점은 아쉽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오타가 많다는 점은 출판사에서 성의가 없었던 것 아닌가 싶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혹시 다음 판이 인쇄된다면 꼭 교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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